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506
#닥터 플레이어 506화 – 외전 54
레이펜타이나에서 온 이들이 거센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가난의 폐하 만세!”
“레이펜티이나의 빛 만세!”
그 함성에 요르문드에서 레이몬드 밑에 모인 이들이 눈썹을 꿈틀했다.
레이몬드는 비단 레이펜타이나의 은인만이 아니다.
요르문드의 은인이기도 했다.
“황금 가난의 성자 만세!”
“가난! 가난!”
“레이펜타이나 것들은 꺼져!”
“우리의 전설이야!”
레이펜티아나와 요르문드 세력이 레이몬드를 가운데 두고 서로 살벌할 기세를 흘렸다.
레이몬드는 어색한 얼굴로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에요. 원래 저희는 곧바로 수페인 항을 공격하려고 했어요. 바다 쪽으로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로즈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바다에 죽음의 저주가 펼쳐져 있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함대가 항구 안쪽으로 접근했는데, 곧바로 함선이 부식하면서, 안에 있던 병력의 피부가 벗겨지며 죽음을 맞았어요.”
“……!”
레이몬드는 침음을 흘렸다.
끔찍한 저주였다.
“그런데 그런 저주가 바다에 펼쳐져 있으면, 항구 안의 사람들도 타격이 클 것 아닙니까?”
“그게…… 저 도시에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정말입니까?”
“네, 정찰대를 보내봤는데, 외성 쪽은 인적 없이 텅 비어 있다고 해요.”
수페인 항은 커다란 도시다.
절망의 지배자의 본거지답게 요르문드 최고의 도시 중 하나.
그런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니?
“그래서 무언가 수상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어요.”
확실히 이대로 진격하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성을 버리고 도주한 건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레이몬드는 근처에서 수페인 항의 동태를 살피던 요르문드의 종족에게 물었다.
“최근 수페인 성에서 대규모 인파가 밖으로 이동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 그런 적은 전혀 없습니다.”
성안에 있던 이들까지 이주했으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동한 흔적도 전혀 없었다.
‘뭐지?’
그냥 들어가기에는 꺼림칙한 상황.
그런데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어리석은 미물들이 죽을 곳을 찾아왔구나.]“……!”
저 성벽 위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뭐야?’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세등등하게 나타나긴 했는데, 숫자가 많지 않았다.
대략 100명.
저 정도 숫자야 이곳에 모인 이들이면 가뿐할 텐데?
그런데 로즈가 무겁게 침음을 흘렸다.
“용족. 저렇게 많은 숫자의 드래곤이라니?”
“……!”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저들이 드래곤이란 말입니까?”
“네, 귀의 형태나 피부의 비늘 등을 볼 때 분명해요.”
레이몬드는 그제야 자세히 성벽 위에 나타난 이들을 살폈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뱀 같은 동공, 피부의 비늘 등, 여러 면에서 달랐다.
“그것도 상위 종인 엘더 드래곤도 많아요. 최소 30명 이상은 상위 종으로 보여요.”
용은 하위종인 레서 드래곤과 상위종인 엘더 드래곤으로 나눈다.
레서 드래곤은 대략 SS급, 엘더 드래곤은 SSS급의 힘을 발휘하는데, 저런 마물이 100마리나 한꺼번에 나타나다니.
‘저건 반칙이잖아! 저런 놈들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레이몬드는 눈을 끔뻑거렸다.
생각해 보니 할만 할 것 같기도 했다.
시선을 돌렸다.
레이펜타이나와 요르문드의 모든 강자가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누구도 겁먹어 보이는 이는 없었다.
“가난의 폐하의 영광을 위해!”
“가난! 가난! 가난!”
“폐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빚! 빚! 빚!”
“빛! 빛! 빛!”
시작은 레이펜타이나의 병력이었다.
질세라 요르문드의 이들도 거센 함성을 외쳤다.
“황금 가난의 구원자를 위해서!”
“황금 가난의 성자 만세!”
하늘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마치 전설과 같은 결전이 펼쳐졌다.
100마리나 되는 용이 하늘을 누볐다.
거기에 양 대륙에서 모인 초인들이 드래곤에 맞서 격전을 펼쳤다.
‘으아아, 무섭잖아.’
하늘 위에서 온갖 궁극 마법이 터지는 모습에 레이몬드는 하얗게 질렸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사망일 것 같았다.
“모두 물러서지 말아라!”
반면, 로즈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용맹하게 병력을 지휘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철의 제국 황실에 전해져 내려오는 혼돈을 제압하는 여러 보구로 드래곤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데 힘을 보태었다.
“저 폐하 멋있어요.”
린든이 찔끔 말하였다.
레이몬드도 동의하였다. 이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항상 참 멋있는 로즈였다.
‘……나도 손을 보태야겠다.’
레이몬드는 힐끗 눈치를 살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쉽지 않은 상대들이었지만, 아군이 더 대단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나중에 생색내기 좋겠지.’
하지만 막상 나서려고 하니 할 게 없었다.
직접 앞에서 싸우는 건 무서웠다.
레이몬드는 대신 뒤에서 응원하였다.
“모두 기운을 내십시오!”
“여러분의 투쟁이 대륙을 빛으로 밝힐 겁니다!”
그런데 레이몬드의 응원은 뜻밖의 효과를 낳았다.
스킬이 발현된 것이다.
파앗!
레이몬드의 몸에서 환한 빛이 피어올랐다. 숭고하기 짝이 없는 빛.
동시에.
[전장의 구원자]분류 : 구원자 스킬
등급 : 레전드
숙련도 : —
[세상을 구하기 위한 당신의 숭고함이 전장에 퍼집니다!] [전장에 참여한 이들의 능력이 향상됩니다!]“오오!”
“가난의 축복이야!”
“가난의 성자님의 축복이 내 몸에?!”
팽팽히 유지되던 싸움의 추가 기울었다.
용족들은 하나둘 죽음을 맞아 쓰러졌고, 이윽고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가난의 성자 만세!”
“모두 가난의 성자님 덕분이야!”
한 것도 없이 모두의 칭송을 받게 된 레이몬드였다.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안으로 진격하죠.”
드래곤도 모두 쓰러뜨렸고, 더는 거칠 게 없었다.
성안으로 밀고 들어가니 로즈가 말했던 대로 인기척 없이 휑하였다.
“절망의 지배자는 저 안쪽의 내성에 있는 것 같군요.”
“네, 맞아요. 그런데 고객님.”
그때 로즈가 뜻밖의 행동을 하였다.
레이몬드의 손을 꾹 잡은 것이다.
“로즈 님?”
“그냥, 잡고 싶었어요.”
레이몬드는 가슴이 두근 뛰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로즈 님과 결혼하게 되는 건가?’
어어, 하다가 잊혀졌지만 청혼을 받았던 것도 같다.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로즈를 보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빚 때문에 두려워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두근거림은 그런 감정이 아니란 것을.
그러니까…… 그도 로즈를 좋아했다.
“……사랑합니다.”
레이몬드의 말에 로즈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흔들리는 눈동자.
그러다가 배시시 웃었다.
“하나만 약속해 주겠어요?”
“말씀하십시오.”
“꼭 들어준다고 약속해 주세요.”
“……원금 일시 상환 빼고는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레이몬드는 진지하게 답했고, 로즈는 쿡쿡 웃었다.
“이 보구 받아주세요.”
“이건?”
깃털 모양의 보구였다.
“철의 제국 황실에 내려오는 보구로 소유자의 생명을 위협할 만한 위기가 있을 시 감지하여 안전한 곳으로 소유자를 이동시켜 주는 보구예요.”
“하지만?”
“그냥,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고객님이 가지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레이몬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물건을 어떻게 받겠는가? 원래 소유주인 로즈가 가지고 있는 게 옳았다.
“로즈 님이 가지고 있으십시오.”
“절대 싫어요.”
로즈가 빙글 웃었다.
“그거 알아요? 고객님을 만난 후,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무 채색하게 죽어가던 영혼이 고객님 덕분에 살아나게 되었죠. 그러니, 고객님이 위험할 바에는 차라리 제가 죽는 게 나아요.”
“…….”
그 진심이 절절히 담긴 말에 레이몬드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도 받을 수 없습니다.”
“안 받으면 원금 일시 상환. 그리고 앞으로 받을 대출은 법정 금리 연이율 20%로.”
“…….”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협박이 들어왔다.
레이몬드가 뻣뻣이 굳은 사이, 로즈는 쏘옥 보구를 레이몬드의 주머니에 넣어버리고는 철의 제국 인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하여간.’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크게 위험할 일은 없겠지. 여기 모인 전력이 얼마인데.’
절망의 지배자는 이미 대부분의 힘을 잃었다.
반면, 아군의 전력은 양 대륙을 모조리 끌어모은 것과 같았다.
놈의 운명은 이제 끝이었다.
레이몬드는 호기롭게 외쳤다.
“모두 진격!”
그렇게 외성을 지나, 아군의 최고 주력이 내성 안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레이몬드를 비롯한 일행은 흠칫하였다.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이 느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절망의 지배자.”
저 앞에서.
어둠에 휩싸인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 속에서 놈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내가 절망의 지배자다. 전설이 예비한 구원자여.]“……!”
[설마 이렇게까지 날 궁지에 몰아넣다니. 과연, 전설이 예비한 구원자구나. 그대를 칭찬하마.]“닥쳐라.”
레이몬드는 일갈했다.
졸보인 레이몬드답지 않은 거친 대응.
이유가 있었다.
‘생각보다 강해 보이지 않아.’
약하다는 건 아니다.
지금껏 만났던 어떤 강적보다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홀로 이 자리에 모인 온 대륙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최근 힘을 잃은 영향인 것 같았다.
‘우리의 승리야!’
강약약강의 레이몬드답게 신이 나서 외쳤다.
“지금껏 너의 악행을 처단해 주마! 지옥에서 후회하도록!”
물론, 그 처단은 자신이 아닌 다른 동료들이 해줄 것이다.
은근슬쩍 뒤로 빠졌고, 레이몬드를 추종하는 수많은 초인이 앞으로 나섰다.
휴스톤 왕국에서부터.
드디어 이 길고도 길었던 놈과의 악연을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이었다.
[인정하마. 나는 더는 너 전설의 구원자의 상대가 될 수 없지. 하지만.]놈이 어둠 속에서 짙게 미소를 지었다.
[결국, 죽는 건 너희가 될 것이다.]레이몬드는 싸한 불길함이 등줄기를 스쳐 지나갔다.
“놈을 막아야!”
하지만 늦었다.
[강림하라! 모든 만물의 근원을 비트는 이적의 저주여.]파지직!
그와 동시에 허공이 열리며, 놈의 손위로 광채의 구가 떠올랐다.
결계에 쌓인 공간에서 번뜩이는 빛의 구.
일반적인 빛의 구가 아니었다.
불길한 느낌이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