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507
#닥터 플레이어 507화 – 외전 55
“그건……?”
[네놈도 의술을, 아니, 들어봤겠지. 방사능이다.]“……!”
레이몬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놈은 큭큭 웃음을 흘렸다.
[난 원래 평범한 흑마법사였다. 이계의 마물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의술이란 놀라운 지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기적의 지식을 이용해 난 요르문드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놈이 힘을 얻게 된 계기.
일전에 들었던 적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난 불안감을 느꼈다.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궁극의 질병을 원했어. 그러다가 역시 이계의 지식에서 답을 찾았다.]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놈이 찾은 궁극의 질병.
방사능이었다.
확실히 아무리 현대 의술이라도 방사능 피폭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네놈이라도 방사능을 대량으로 창조하는 건 무리가 있을 텐데?”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강력한 초인.
방사능의 양이 적다면,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며 탈출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나도 방사능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건 무리였겠지. 사물의 근원 입자에 간섭해야 하는 마법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수를 썼다.]“수라고?”
[인신 공양을 했지. 나를 따르는 모든 군세와 이곳 항구에 사는 모든 이를.]“……!”
왜 인적이 없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끔찍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저 방사능이 퍼지면 이 자리의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아직 마법이 완성된 게 아닌 듯 방사능은 외부에 퍼지지 않고 있었다.
결계로 격리된 공간 안에서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방사능의 양이 정점에 이르면 공간 격리가 해제되면서 이 일대 전체가 지옥으로 변할 것이 분명했다.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고농도의 방사능은 초인이라도 버틸 수 있는 종류의 재앙이 아니었다.
‘어떻게? 의술로도 해결이 불가능해.’
레이몬드는 눈이 컴컴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완벽한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대로는 몰살이었다.
‘이런!’
파지지지지직!
결계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이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로즈가 레이몬드의 손을 꽉 잡았다.
“저와 했던 약속 기억하시죠?”
“……!”
위험하면, 보구를 사용해 도주하라는 약속.
로즈가 레이몬드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구를 작동시켰다.
“나 비르문드의 주인으로서 명하노니, 바람이여! 임하여라!”
우웅!
보구가 빛을 뿜었다.
레이몬드를 저 멀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안 돼!’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대로 보구가 발동하면,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단 말인가?
레이몬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든 레이몬드라도 살리려 하고 있는 로즈.
로즈뿐이 아니었다.
휴스톤 왕국에서부터,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이가 레이몬드를 보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레이몬드라도 목숨을 살리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레이몬드는 울컥 가슴이 치밀어 올랐다.
‘다들 한 명도 죽게 할 수 없어! 난…… 손에 들어온 호구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이 자리의 모두가 그의 호구였다.
그는 욕심쟁이.
지금껏 늘 그랬듯, 절대로 자신의 호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생각해 내!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야!’
레이몬드가 간절히 외치는 순간, 한 가지 방법이 퍼뜩 떠올랐다.
‘하나…… 있어.’
모두를 살릴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잘못하면 난 죽을 거야.’
그가 정면으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잘못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어서, 떠나요!”
그때, 파아앗! 보구가 맹렬한 빛을 뿜었다.
레이몬드를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레이몬드는 이를 꽉 물더니, 선택했다.
“아니, 가지 않겠습니다.”
“고객님?!”
대신, 레이몬드는 반대로 행동했다.
마법을 이용해 빛의 구체로 날아간 것이다.
“고객님?!”
“아니, 폐하?!”
“안 됩니다!”
모두가 경악해 외쳤다.
단, 한 명. 절망의 지배자만이 레이몬드의 의도를 눈치채고 외쳤다.
[어리석은! 이미 늦었다!]레이몬드는 스킬을 발동했다.
[위험물 제거]분류 : 혼돈 스킬
등급 : 레전드
숙련도 : —
[환자의 안전에 위협을 주는 물질을 아공간으로 이동시킵니다!] [위험도가 높을수록 더욱 높은 숭고함이 필요합니다!]폭탄이나 독극물 등을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문제는 방사능도 제거가 가능하냐는 거였다.
다행히 가능한 것 같았다.
문제는,
[위험도가 지극히 높습니다!] [물리적 형태를 이룬 위험물이 아닌 파장의 형태입니다! 필요한 숭고함이 대폭 가중됩니다!] [필요한 숭고함이 지나치게 높아 금액으로 환산이 불가합니다! 백지 수표를 맹세하십시오!]숭고함.
돈이다.
‘젠장, 이럴 때까지 돈이냐! 이 돈벌레 시스템 놈아!’
레이몬드는 버럭 소리를 외치고 싶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백지 수표를 맹세하란다.
사실상 파산에 달하는 대가를 바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겠어! 한다고! 살려주기나 해!’
그와 동시에 파앗, 스킬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방사능은 형태가 있는 물질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방사능을 마법을 통해 공간 이동시키다니. 믿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하지만 안도하기 일렀다.
쩌적.
이동이 마무리되기 전이었다.
방사능을 감싸고 있던 결계가 균열을 일으켰다.
[네놈이라도 죽여주마!]놈이 무리해서 방사능을 방출한 것이다!
‘아.’
레이몬드는 순간 눈앞이 컴컴해졌다.
당연히 피할 수 없었다.
죽게 될 것이다.
‘……이제 부귀영화가 코앞인데.’
그런데 최후의 순간.
또다시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파아아아아앗!
레이몬드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레이몬드를 향해 내려왔다. 마치 그를 보호하듯.
[당신은 이 세상에 가장 숭고한 자. 당신을 지키고자 하는 세상의 의지가 발현됩니다!]차락, 빛의 날개가 레이몬드의 등 뒤에서 뻗어 나왔다.
실체가 있는 날개가 아니었다.
레이몬드의 숭고한 영혼이 형상화된 것이다.
‘나…… 괜찮은 거지?’
레이몬드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다행히 멀쩡한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라, 이 숭고한 빛의 영향으로 방사능도 모조리 사그라들었다.
남은 건 창백하게 질려 있는 놈의 모습뿐.
[어, 어떻게…… 이, 이럴 수가……? 전설이 사실이라니? 미, 믿을 수 없는……?]전설.
레이펜티아나나 요르문드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오로지 남들만을 위하는 바보같이 거룩한 이가 세상에 나타날 것이니.
그자가 대륙을 구할 것이라는 전설이었다.
레이몬드는 그 이야기와 다르게 욕심꾸러기였지만,
‘빛의 사자 행세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레이몬드는 힐끗 놈의 상태를 살폈다.
방금 마법으로 대부분의 힘을 사용한 듯 놈은 무기력해 보였다. 처음에 보였던 위압감도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면, 거리낄 것 없었다.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세상이 그를 정말로 구원자로 착각하기라도 한 건지 그의 검에서 찬란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세상의 의지를 대변하여.”
레이몬드는 최대한 웅장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정말 자신을 위대한 구원자, 빛의 사자로 여기도록.
그래서 앞으로 온 세계를 자신의 호구로 삼을 수 있도록.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도록.
“너를 심판하겠다!”
파아아아아앗!
레이몬드의 검이 놈을 꿰뚫었다.
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구원의 빛이었다.
* * *
그렇게 전설은 이루어졌다.
요르문드 대륙, 레이펜타이나 대륙을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놓았던 절망의 지배자는 소멸하였고, 레이몬드는 전설이 예비한 구원자가 되었다.
다들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가난의 성자님 만세!”
“우리 레이펜타이나의 빛!”
“빛! 빛! 빛!”
거기에 맞서 요르문드의 종족들도 함성을 질렀다.
“빚! 빚! 빚!”
“그런데 왜 황금이 아니라 빚인가?”
“레이펜타이나 놈들이 그러길, 남들을 위해 막대한 빚을 지고 있어서 빚의 성자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아, 그렇구먼! 빚! 빚! 빚!”
그렇게 끊이지 않고 레이몬드를 찬양하는 함성이 들려왔고, 레이몬드는,
‘……제발, 다들 닥쳐줘.’
팍팍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제 모든 일을 끝냈는데도, 그가 울상인 이유. 간단했다.
‘……이 망할 시스템.’
마지막 순간, 시스템은 백지 수표를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승낙했는데, 상상도 못 한 대가를 요구했다.
[요르문드를 재건하십시오!]돈을 요구한 게 아니라, 이런 요구를 한 것이다.
‘으아아! 내가 왜?! 내가 왜?!’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돈으로 대신 지불할 수 없냐고 했더니, 십자연맹제국의 예산을 다 털어도 갚을 수 없는 대가를 요구했다.
‘……젠장, 원래도 요르문드도 내 호구로 만들려고 하기는 했지만.’
레이몬드는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레이펜타이나를 넘어 양 대륙을 아우르는 최고의 부자가 되기로 했으니, 요르문드를 어느 정도 복구하는 건 필수였다.
일단 사람들을 살찌워야 뜯어먹을 수도 있는 거니.
‘……그래, 좋게 생각하자. 세계 최고의 부자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거야. 난 이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 거야. 양 대륙을 아우르는 최고의 부자로.’
레이몬드는 거듭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지금 눈시울이 붉어진 건, 앞으로 누릴 부귀영화를 상상해서다. 절대 우울해서가 아니다.
‘그나저나 한탕 해야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은 절망의 지배자의 본거지다.
당연히 놈이 남겨둔 산더미 같은 보물이 있을 것이다.
‘제일 좋은 보물이라도 꿀꺽하자.’
아무리 황제라도 혼자 전리품을 독점할 수는 없었다. 특히 이번에는 참여한 이가 많으니까.
레이몬드는 대신 제일 좋은 보물이라도 하나 횡령하기로 하였다.
‘어디 보자. 흐흐, 좋은 게 너무 많아 뭘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네.’
역시 온갖 보물이 많았다.
하지만 웬만한 건 다 무시했다.
대신 최고로 좋은 보물을 찾았다.
분명 일국을 살 수 있을 가치를 가진 보물이 있을 것이다.
이윽고, 레이몬드는 하나의 보물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도구 원반이었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직감이 외쳤다.
이걸 가져가야 한다고.
‘다른 보물을 다 합쳐도 이것 하나의 값어치에 미치지 못할 거야.’
레이몬드는 스리슬쩍 원반을 품에 집어넣었다. 거기에 다른 물건들도 몇 개 더 삼켰다.
그때, 저기서 외침이 들렸다.
“고객님? 어디 계세요?”
“네? 네, 갑니다!”
레이몬드는 화들짝 로즈에게 갔다.
이어 이어지는 입맞춤.
덕분에 레이몬드는 모르게 되었다.
원반이 있던 장소에 무슨 문구가 적혀 있었는지.
[차원 이동의 보구.] [나…… 는 이 마도구로 이계틀 탐험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 는 지구란 곳에서…….]절망의 지배자가 남긴 원반 밑에 적혀 있던 문구였다.
* * *
그리고 반년 후.
레이펜타이나 대륙 전역이 축제에 뒤덮였다.
레이몬드와 로즈의 결혼식 날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기쁨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한 명 눈물을 훌쩍이는 이가 있었다.
린든이었다.
“왜 그러냐, 린든.”
“훌쩍, 훌쩍. 한슨 대공 선배. 저 차였어요.”
“……차여? 누구에게?”
린든은 엉엉 울었다.
“크리스틴 공녀님께요.”
“……?”
한슨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크리스틴 공녀에게 고백했단 말인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엉엉! 공녀님도 저를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의술에 전념하겠다고…… 거절하셨어요. 엉엉.”
“그건……”
의술은 핑계고 그냥 린든 네가 싫어서 찬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한슨은 입을 다물었다.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다 잘해요? 결혼도 성공하고.”
참고로, 한슨은 카탈 왕국의 쥬드 국왕과 결혼하여 추기경 겸 대공이 되었다.
“아직도 모르느냐, 린든?”
“네?”
“다 마스터를 본받으면 된다. 근성이 약해진 것 같은데, 따라 해라, 빛을 본받자!”
“몰라, 나빠! 다 싫어!”
린든은 더욱 꺼이꺼이 울며 도망갔다.
어쨌든 그런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기쁜 날이었다.
결혼식 장소는 십자연맹제국과 철의 제국의 중간 접경지대.
수많은 이가 모여들었다.
휴스톤 왕국의 오든 국왕, 소피엔 왕녀, 라이프 공작.
드로튼 왕국의 마카펠 3세 국왕, 뒤락 후작.
카탈 왕국의 국왕 쥬드.
페닌슐라 왕국의 라시드, 실벤느, 기드온 등등.
자유 도시 연합의 군주들.
마탑의 라이나, 마탑주 등등.
황도와 철의 제국에서 은혜를 입었던 수많은 이.
성국의 천족들.
모두 레이몬드의 빛에 은혜를 입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중간에 레이몬드의 포부를 알리는 순서가 있었다.
간단했다.
“……레이펜타이나와 요르문드의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게 제 꿈입니다.”
그래서 살찌워 등골을 빨아먹는 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레이몬드의 목표였다.
물론, 사람들은 또 착각해 감탄했다.
정말 레이몬드는 하늘이 그들을 위해 내린 축복이라고.
레이몬드의 헛발질이 계속되는 한, 사람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착각하게 될 것이다.
결혼식이 진행되었고, 레이몬드와 로즈가 입을 맞추었다.
완전한 빛의 시대를 여는 입맞춤이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