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Purity RAW novel - Chapter 17
16. 그에게로 가는 길
“들었어?”
“뭘?”
병동 스테이션 뒤쪽 간호사실 안쪽에서 수간호사를 기다리던 지원의 귀에 간호사들끼리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강 교수님이 집도하는 리버 티피엘(간이식) 수술에서 김원철 선생이 칭찬 무지 많이 받았다더라. 환자 혈관이 마구 터져서 강 교수님하고 같이 들어갔던 이 교수님도 완전히 얼굴 하얗게 질려서는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대. 그런데 김원철 선생이 이민수 교수님 옆에서 완벽하게 어시스트했나 봐. 아니, 어시스트 정도가 아니라 자꾸만 터지는 혈관들을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묶어서 위험한 상황을 넘겼대. 들어 보니까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었다더라. 이 교수님은 물론이고 강 교수님도 칭찬할 정도였대.”
“진짜?”
“그렇다니까. 혈관이 자꾸 터져서 조금만 늦었어도 환자가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을 뻔했는데 김원철 선생이 손 빠르게 움직여서 완전히 도움이 된 거지. 오늘 수술실 상황으로 보건데 미라클 팀에 김 선생이 뽑히는 건 따 놓은 당상이야.”
“정말 그렇겠네.”
“김 선생이 사교성이 좀 떨어지고 차가워서 그렇지, 실력은 알아주잖아.”
“실력이야 최경훈 선생도 좋지. 환자를 생각하는 면에서는 최 선생이 훨씬 낫지.”
“그래. 그렇지만 수술실에서는 김 선생이 좀 낫지 않나? 두루두루, 여러 방면에서 점수를 매기면 최 선생이 훨씬 많은 점수를 받겠지만 말이야.”
“아휴, 이제 와서 그깟 점수 매기면 뭐 해? 게임은 벌써 아웃인데. 최 선생, 그날 당직 비운 일로 미라클 팀에 들어가는 건 물 건너간 거잖아. 이제 김 선생이 저렇게 활개를 쳐대는 통에 더더욱 가망 없어진 거지.”
“내 말이. 그날 일만 아니었어도 박빙의 승분데. 최 선생, 안 됐다.”
“그러니까 말이야.”
“여기서 뭐 해!”
간호사들의 쑥덕거림 사이로 불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수간호사, 선애였다.
“할 일이 없어? 병동 체크 다 끝났어? 다 끝내고 여기서 수다나 떠는 거야!”
“아, 아뇨. 지금 가요.”
간호사들이 선애의 불호령에 놀라 꽁지 빠지게 내빼는 걸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아휴, 여하튼 맘에 드는 구석이 없어.”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지원이 있는 안쪽 커튼을 홱 젖히고 들어오던 선애의 눈이 커졌다.
“언제 왔어?”
지원은 희미하게 웃었다.
“좀 전에요.”
선애의 눈길이 조금 전 간호사들이 서 있는 자리를 흘깃 쳐다보았다.
“간호사들 말하는 거, 들었어?”
지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그것 때문에 심란하다. 경훈이, 정말로 미라클 팀
원했었는데.”
지원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말해 뭣하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다행인 건, 그나마 경훈이 이 상황을 제법 잘 극복해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겉으로 보이는 면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아쉬운 꿈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지도.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했다. 그는 평소처럼 쾌활했고 환자들을 대할 때도 정성을 다했다.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수련 생활을 잘 해내고 있었다.
“저, 왜 보자고 하셨어요?”
지원이 묻자 선애가 ‘아, 맞다’ 하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뭐 하나 물어보려고. 한 선생, 혹시 얼마 전에 경훈이랑 둘이 경진이가 운영하는 카페에 갔었어?”
“카페요?”
“그래. 경훈이 사촌, 최경진이 운영하는 재즈 카페. 왜, 춤도 추고 흘러간 옛 노래도 부르고 하는 데 있잖아.”
“아.”
그제야 기억이 났다. 사촌, 경진이라고 할 때는 미처 기억해내지 못했는데 ‘춤도 추고 흘러간 옛 노래도 부르고’ 하는 부분에서 기억이 났다.
“네, 갔었어요.”
“갔었어?”
선애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웃으며 덧붙이기 시작했다.
“아니, 며칠 전에 경진이하고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걔가 그러더라고. 혹시 우리 병원에 경훈이 애인 있다고 소문났냐고. 그래서 내가 그렇다고 했지. 한지원이라고 우리 외과에서 전공의로 있는 여의사라고 했더니 경진이가 깔깔 웃는 거야. 그러더니 얼마 전에 한 선생이랑 경훈이랑 왔다 갔다고 하더라.”
지원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애의 집이 경훈의 집과 이웃사촌이며 두 집안이 무척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그의 사촌과 허물없이 통화하는 선애가 놀랍지도 않았다.
“경훈이 어머니가 하도 답답해서 경진이한테까지 물어본 모양이야. 경훈이, 그 녀석이 이사한 집을 아직도 안 가르쳐 준다잖아. 혹시 한 선생은 알아? 그 녀석, 어디로 이사했는지.”
순간, 지원은 당황했다.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타인의 눈에 비칠 두 사람의 모습이 걱정되었다. 특히 그의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지원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래? 그 녀석이 한 선생한테도 말 안 했어? 아, 진짜. 그 녀석 왜 그럴까? 정말 수상해.나중에 내가 시간 내서 미행이라도 해볼까 봐”
미행이라는 말에 지원은 긴장했다.
“무슨 사정이 있겠죠. 경훈 선배, 나쁜 짓 할 사람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그런데 궁금하잖아.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숨겨? 집에도 숨기고 말이야.”
“하하, 그냥 그럴 사정이…….”
“어쨌든, 내가 조만간 시간을 내서 미행이라도 해볼 거야.”
지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이러다가 그와 함께 사는 걸 그의 집에서 알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한 선생, 오늘 당직 아니지?”
“네.”
“그럼 오늘 시간 돼? 난 오늘 바쁘거든. 한 선생이 시간 되면 경훈이 잘 구슬려서 물어봐. 응?”
Rrrrrr. Rrrrrrr. Rrrrrrrr.
선애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난처해하는데 갑자기 구세주처럼 전화벨이 울렸다. 지원은 냉큼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왜? 누구 전환데?”
선애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지원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미소를 지었다.
“아뇨, 아무도 아니에요. 전 그럼 가볼게요.”
“어? 어, 그래.”
지원은 아직도 계속 울리는 휴대폰을 들고 황급히 아무도 없는 비상구로 달렸다.
“지원…….”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경훈의 목소리는 듣지도 못하고 지원은 그대로 비상구 문을 열어젖혔다.
“또 무슨 일이세요?”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계단 난간을 꽉 움켜쥔 지원은 차갑게 얼굴을 굳힌 채였다.
-바쁘니?
“말씀하세요.”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닌데 이토록 두려울 수가 있는 걸까?
지원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두려웠다. 그 존재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아직도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끌어당기는 존재가 싫었다. 너무 싫고 두려워서 이렇게 전화 통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
-내가 그때 말했던 돈…….
“대학 등록금 말씀이세요?”
-아니, 그건 겨우 빚을 내서 해결했다. 그런데…….
그런데요? 그런데 또 왜요! 또 무슨 돈을 요구하려는 건데요!
지원은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꾹 눌러 참았다.
-그런데 그 돈을 빌려 준 사람이 어서 갚으라고 하도 성화를 해대서…… 네 동생은 아르바이트다, 뭐다 해서 열심히 돈 벌면서 학교 다니고 있는데 너무 힘에 부쳐.
“걔 아버지는 뭐 하고요? 걔 아버지한테 해결하라고 하세요.”
-너도 알잖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이 그런 큰돈을 어떻게 해결해?
“전요? 저는 그런 큰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넌 그래도 의사잖니.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저, 의사 되는데 뭘 해주셨어요? 대학 등록금 한 번 대준 적 없었잖아요. 버렸으면 그걸로 끝이지, 왜 이렇게 괴롭히세요!
악다구니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원은 심호흡을 했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조용히 말했다.
“제가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오늘?
반가운 티가 역력히 나는 목소리였다. 지원은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집 근처로 가서 전화 드릴 테니까 기다리세요.”
-그래, 그러마. 고맙다, 지원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지원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한동안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치밀어 오르는 화기를 삭이며 무거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문득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지원은 흠칫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선배.”
경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원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가 계단을 내려오더니 마주 선다.
“방금 전화, 누구야? 누군데 그렇게 화난 투로 받아?”
지원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말하기 싫어?”
경훈이 부드럽게 물었다. 지원은 아주 잠깐 이 사실을 영원히 숨길 수 있는가에 대한 확률을 따져 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건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세상을 다 속인다고 해도 그는 속이고 싶지 않다.
지원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날 버린 친어머니요.”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는다. 친어머니라는 대목에서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날 버린’이라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그에게 자식을 버린 어머니는 비상식을 넘어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 테니까.
“어머니가…… 널 버렸어?”
낮은 저음이 물어왔다. 지원은 긍정의 표현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은 왜?”
지원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왜 전화했냐고요? 돈이 필요해서요.”
그의 얼굴이 더 깊게 일그러진다. 그도 그녀의 실체를 알 필요가 있으니까. 현재의 그녀가 있듯, 과거의 한지원도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하니까. 지원은 무심한 어투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과거사를 덤덤히 말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난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어머니가 재혼하는 집에 들어갔어요. 어머니의 새 남편은 날 못마땅해했고 그 집 아이들도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를 싫어했어요. 결국 고등학교 때 외할머니 댁으로 쫓겨났어요. 외할머닌 아버지께 연락을 했지만 그쪽도 이미 재혼을 한 상황이고 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을 받았어요. 대신,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가 저한테 아파트를 마련해 줬어요. 학비도 대주고 생활비도 보내 줬어요. 그쪽 가족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참 짧았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지내온 세월이 이 몇 마디에 설명이 된다는 사실이 지원은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괴롭지 않다. 그가 있어서. 최경훈이 그녀의 곁에 있어서.
“예전에 병원 앞 커피숍으로 찾아왔던 분이 친어머니야?”
지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가 고백했다.
“널 따라갔었어. 전화를 이상하게 받고 가는데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더라. 그래서…….”
“맞아요, 친어머니.”
그녀를 바라보는 경훈의 눈빛이 어두웠다. 동정, 안타까움, 아픔, 그 모든 것이 보인다. 지원은 자신이 겪은 외로움을 그가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걱정 말아요, 이젠 다 극복했으니까. 어릴 땐 그게 상처였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원은 애써 웃어 보였다.
“우리 관계, 이게 문제가 될까요?”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문제?”
“선배 집, 부모님들이 내가 외롭게 자라서 반대를 하거나…….”
“자식이, 별 걱정을 다해. 반대하면? 그 정도도 내가 해결 못할까 봐?”
지원은 희미하게 웃었다.
“혹시 반대하시면 말해요.”
“말하면?”
그가 험악하게 인상을 쓴다. 그녀가 지레 포기하겠다고 하면 화라도 낼 태세였다.
지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더 잘해야죠. 허락받을 때까지 완전 잘하려고요. 나, 가정사 빼곤 어디 가서 빠지는 여자 아니란 거, 보여 드려야죠.”
그녀의 능청스러움에 경훈도 웃었다. 그러더니 그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돈…… 필요해?”
친어머니께 해줄 돈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이다. 지원은 그를 흘기며 되물었다.
“필요하면?”
“내가 줄 수 있어.”
“어떻게?”
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웃었다.
“영규 자식이 돈 만들었어.”
“아.”
“못 받은 전세금 받았으니까 필요하면 말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마침 잘됐어요. 그 돈으로 선배 독립해요.”
“뭐?”
이번에는 그가 놀란다. 지원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선배 부모님 만났을 때 떳떳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 둘이 같이 사는 거, 어른들은 이해 못하실 거예요. 아까 선애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선배 집에서 선배 이사 간 곳 궁금해한다고. 나, 그 말 듣는 순간 죄짓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니까 나, 죄인 만들지 말고 이사 가요.”
경훈이 듣고 보니 그렇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지원을 향해 눈을 게슴츠레 뜬다.
“자식, 진짜 나랑 결혼할 모양이네.”
“그럼 가짠 줄 알았나?”
“그러게. 하하, 그런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지. 난 너한테 우리 부모님 만나러 가자고 말한 적도 없잖아.”
지원은 갑자기 창피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가 먼저 나서서 결혼에 대해 말한 적도 없다. 청혼도 그녀가 한 거나 마찬가지고. 너무 안달하는 것 같아 보여서 자존심도 조금 상한다.
“그러게요. 그 말 들으니까 좀 화나네. 결혼, 생각 좀 해봐야겠다.”
지원은 짐짓 삐친 척 돌아섰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팔을 홱 잡아챈다.
“에이, 농담이야. 농담. 자식이, 그거 가지고 삐져? 야, 요즘 같은 여성상위시대에 여자가 좀 적극적이면 어때서?
더 멋져 보인다니까.”
“몰라. 어쨌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니까.”
그의 손을 홱 뿌리치고 지원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야, 야. 한지원. 아, 그 자식. 알았다, 알았어. 내가 할게, 내가. 내가 다 한다.”
지원은 경훈이 안달하며 따라오는 걸 보고 더 빨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으며 황급히 그의 손을 따돌렸다.
그와 있으면 모든 것이 유쾌하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불쾌함도 최경훈과 있으면 어느새 사라진다. 그는 그녀의 환상과 행복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성민아.”
의국에서 해인에게 몇 시간 전에 끝난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던 성민은 자신을 부르는 경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예, 선배님.”
“지원이, 봤어?”
“지원이요? 아뇨, 못 봤는데요.”
“지원 쌤, 퇴근했어요.”
못 봤다는 성민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해인이 툭 끼어들었다. 경훈은 해인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퇴근?”
“네.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저녁때부터 서두르시던데요?”
“약속이 있다고 했어?”
“네. 정장 입고 나가는 게 무지 중요한 약속인가 보던데.”
경훈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패였다.
“알았어.”
전화를 해볼 요량으로 의국에서 나오는데 문득 뒤에서 성민이 해인에게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정장? 혹시 선보러 간 거, 아냐?”
“설마요. 경훈 쌤이랑 사귀시잖아요.”
“그니까. 근데 한지원, 그게 어디로 튈지 짐작이 안 되는 인물이잖아. 이러다 우리 경훈 쌤, 물 먹는 거 아냐?”
“지원 쌤, 그렇게 나쁜 여자 아니거든요! 성민 쌤은 그렇게 여자 보는 눈이 없으세요?”
“어, 야. 너, 왜 그래? 난 그게 아니라…….”
경훈은 조용히 의국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꺼내 든 그는 복도를 걸으며 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어디야?”
-나, 퇴근했어요.
“그러니까 어디냐고?”
잠시 대답이 없다. 경훈은 인상을 썼다. 그런데 문득 지원이 대답한다.
-친어머니 만나러.
“뭐?”
경훈의 얼굴에 걱정으로 가득한 먹구름이 끼었다.
“괜찮겠어?”
어머니가 부탁했다는 돈을 해주러 가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으로서는 스스로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그녀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걱정 말아요. 그래도 날 낳은 어머니잖아요.
“그래, 그럼 만난 후에 전화해. 내가 데리러…….”
-선배.
“어?”
-고마워요.
“뭐가?”
-나한테 용기를 줘서.
무슨 용기?
경훈은 묻고 싶었다. 그런데 묻지 않아도 그녀가 대답한다.
-내가 과거를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줘서.
그게 뭔지 궁금했다. 그녀가 마주 보려는 과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경훈은 지금 지원이 혼자 겪어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과거가 어떤 것이든 그녀는 혼자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나중에 전화할게요.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경훈은 끊어진 전화기를 가만히 응시했다. 여전히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용기 내어 마주 본 과거가 다시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현관 벨을 세 번째로 누르려고 손을 들던 지원은 안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지원이에요.”
대꾸가 없다. 갑작스러운 침묵이 현관 너머에서 느껴진다. 덜컹, 문이 열린다 싶더니 어머니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너, 미쳤니? 여기까지 뭐 하러 와? 전화하면 내가 나갈 텐데. 빌라 밖에서 기다려. 내가 바로 뒤따라…….”
하지만 지원은 어머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어머니가 잡고 있는 현관문을 홱 열어젖힌 그녀는 성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얘, 얘!”
당황한 어머니가 지원의 팔을 잡고 당겼지만 그녀는 그 손마저 뿌리치고 집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안 계세요! 저, 지원이에요! 새아버지, 안 계세요!”
그녀의 큰 목소리에 안방 문이 열리고 새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오셨다. 지원을 쳐다보는 눈이 황당하고 어이없어하며 커진다. 주방 쪽에서는 새아버지의 딸이 나오고 건넌방에서는 새아버지의 아들과 이복동생인 찬호가 나왔다. 지원의 예상대로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어머니의 식구들 모두가 집에 있었다.
“네가 웬일이냐?”
새아버지가 나서서 무뚝뚝하게 묻는다.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지원은 턱을 치켜들고 대답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지원아, 나랑 하자. 나하고 나가서 얘기해.”
어머니가 지원을 붙잡아 당겼다. 하지만 지원은 새아버지와 그 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에게 드릴 말씀 있어요. 말씀드리기 전에는 한 발짝도 안 나가요!”
“얘가 왜 이래! 어서 나가자니까!”
어머니가 경악스러운 힘으로 지원을 잡아당겼다. 지원은 그 힘을 떨쳐내지 못하고 휘청 몸이 흔들렸다.
“어디 들어 보자.”
문득 새아버지가 말했다.
“여보.”
어머니가 긴장된 목소리로 남편을 부른다. 지원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떨쳐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당당하게 거실로 올라섰다. 그녀가 거실 한복판으로 가자 새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거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원은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는 지원과 눈길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 집 할머니는 지원을 유령처럼 대했었다. 대놓고 싫다고는 안 해도 행동으로 눈짓으로 치 떨리게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그렇게 눈치가 보였었다. 밥을 먹을 때도 편하게 먹지 못했고 물 한 모금을 먹을 때도 눈치가 보였었다. 차라리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이 제일 편하게 느껴질 만큼.
지원은 할머니를 똑같이 외면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쪽 옆에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새아버지의 자식들과 그녀의 이복동생인 찬호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이리 와서 앉아.”
찬호는 쭈뼛거리며 다가왔지만 새아버지의 아들과 딸은 그대로 서 있었다. 지원은 피식, 한 번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새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래, 할 얘기가 뭐냐”
어서 할 말 하고 ‘내 집’에서 나가라는 투로 들렸다. 지원은 그 차가운 어투를 무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어머니가 제게 돈 부탁하시려고 찾아오셨었어요.”
이미 알고 있는지 새아버지가 별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네 동생 등록금이다.”
“아버지!”
찬호가 놀라서 새아버지를 부른다. 그러더니 어머니를 향해 물었다.
“제 등록금 때문에 누나한테 돈 해달라고 하셨어요? 왜요?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요.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데…….”
“공부하는 학생이 그렇게 고되게 일을 하면 공부는 언제 해? 그리고 누나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닌데.”
새아버지가 엄한 말투로 찬호에게 말했다.
“제 일이에요. 제가 갚는다고 하잖아요! 무슨 자격으로 누나한테 또 손을 내밀어요? 뭐 해준 것도 없으면서!”
“이놈의 자식이! 어디서 애비한테!”
그동안 잠자코 있던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원은 그 모든 광경이 낯설지가 않았다. 충분히 예상했던 장면이고 그래서 전혀 새삼스럽지 않았다.
“돈, 해드릴게요.”
지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어머니의 가족들의 틈으로 스며들었다. 놀란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래야지. 네 돈 받아서 내가 쓰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네 동생 등록금에 쓰겠다는데.”
새아버지의 말에 지원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네, 그럼요. 제 동생 일인데 제가 그 정도는 해야죠. 그래야 가족이죠.”
순간 새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의 표정도 험악해졌다. 지원이 말한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이다.
지원은 이미 짐작했던 그대로 반응하는 그들을 보며 다시 분명하게 말했다.
“찬호는 제 동생이고, 또 이 집 가족이니까 저 또한 가족이잖아요. 그러니까 가족 일에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하죠.
안 그런가요, 할머니?”
그들은 지원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어린 지원을 집에서 내보내 버렸고 지금껏 없는 듯, 모르는 척하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새삼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할머니가 대노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누가 가족이야!”
지원은 차가운 눈으로 할머니에게 눈길을 돌렸다.
“저, 이 집 가족 아닌가요? 그럼 찬호도 가족 아니에요?”
“찬호는 이 집 자손이야!”
“그럼 전 뭐예요? 찬호가 제 동생이라면서요?”
할머니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지원은 다시 눈길을 돌려 새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편리할 때 써먹는 게 이 집안에서 말하는 가족이에요? 저, 가족으로 못 받아들이겠다고 내치신 것 아니었어요? 그런데 돈 필요하니까 동생이라며 도와야 한다고 하세요? 그럼 저도 이 집 가족인 거잖아요. 아니에요?”
새아버지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었다. 험악하게 굳은 얼굴로 지원을 경멸스럽게 노려보았다.
“넌 아니야!”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가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지원은 냉소를 머금었다.
“저도 이 집 가족 되고 싶은 마음 없어요. 그런데 자꾸 어머니 보내셔서 가족이라고 상기시키시면 가족이 될 수밖에 없어요. 찬호 누나 되는 자격으로 이 집안의 가족으로 받아 주세요. 그럼 돈 해드릴게요. 주말이면 밥도 먹으러 오고 할머니께 안부 인사도 드리러 오고 가끔 집 밥이 그리우면 여기 와서 자고 가기도 하고 형제들과 수다도 떨고…….”
“닥쳐! 어디 와서 감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할머니가 고함을 쳐댔다. 새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말리지도 않았다. 대신 한 마디만 했다.
“나가.”
새아버지가 다시 분명한 어투로 말했다.
“나가. 다시는 너, 찾아가는 일 없을 테니 여기서 당장 나가!”
지원은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들으셨죠? 그까짓 돈 때문에 날 가족으로는 못 받아들이시겠다는 새아버지 말씀. 어머니도 약속해 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로 저, 안 찾아오시겠다고.”
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새아버지가 어서 대답해 주고 내보내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어머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널 찾아가지 않으마.”
그제야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예의 바른 아이처럼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세요. 원하시는 대로 다시는 이렇게 찾아뵙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지원은 그대로 현관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 문득 찬호의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그를 스치고 지나쳤다.
혈연, 그게 뭐 벌거라고. 자식도 버리는 마당에.
하지만 지원은 언젠가, 때가 되면 찬호에게 연락을 할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을 ‘누나’라고 인정해 주는 유일한 동생이니까.
지원은 어머니의 집을 나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복잡한 감정일 때는 뭔가에 몰두할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결심하고 찾아갔지만 막상 어머니와 그 가족들에게 등을 돌리고 나니 그저 시원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어머닌 그녀를 낳아 준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 주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식구들 또한 잠시나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낸 사람들이 아니던가.
아마, 외면하려고 기를 써서 인정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나마 그들이라도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건지도. 싫다고, 밉다고, 증오한다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찾아오는 어머니께 돈을 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렇게라도 하면 왠지 혼자는 아닌 것만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가 저들에게 필요한 때가 있구나, 힘들 때만 이용하는 돈줄이지만 그래도 내가 저들에게 아주 잊혀진 존재는 아니구나.
아마, 그런 치졸하고 비굴한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동안 이렇게 모질게 끊어내지 못하고 한심한 관계를 이어 왔는지도……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지원은 병원 로비로 들어서며 혹시 경훈이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가 아직 남아 있다면 훨씬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천륜은 끊는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데 그녀는 오늘 그 일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허전하고 복잡한 기분을 그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경훈 쌤, 오늘 주사의모 모임 있다고 성민 쌤이랑 나가셨어요.”
경훈은 퇴근했냐고 묻는 지원의 질문에 해인이 말해 주었다.
“그래?”
“네. 근데 선생님은 퇴근하신 거, 아니셨어요?”
“밀린 차트 정리하려고 다시 왔어.”
“네에.”
그러면서 해인이 지원의 눈치를 슬쩍 살핀다. 지원은 그런 해인을 쳐다보았다.
“왜?”
“네? 아, 아니요. 사실은 성민 쌤이 지원 쌤 선보러 간 거 아니냐고 하셨거든요.”
“선?”
“네. 오늘 지원 쌤, 정장 쫙 빼입고 나가셨다고 하니까 그러시더라고요. 하하. 저야 물론 말도 안 된다고 했죠.”
지원은 황당한 해인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해인이 그럴 줄 알았다며 웃는다.
“그죠? 웃기죠? 하여튼 성민 쌤, 없는 말도 잘 지어낸다니까요. 얼마나 뻥도 심하고 장난도 심한지. 남자가 그렇게 가벼우면 안 되는데 말이에요. 제 어장에 그런 남자는 성민 쌤뿐이에요. 전 싫다는데도 굳이 자기가 제 어장에서 반장 한다고 설친다니까요. 정말 귀찮아 죽겠어요.”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성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는지 해인은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원은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해인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이 겹쳐졌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 그건 숨긴다고 숨겨지는 얼굴이 아니었다. 장담하건데, 해인은 벌써 이성민에게 90퍼센트 이상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경훈은 주사의모 회원들의 열화와 같은 구박에도 불구하고 술자리를 박차고 나와 병원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 지원과 문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녀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계속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술도 맛이 없고 사내놈들의 우스갯소리도 재미가 없었다. 그저 빨리 한지원의 곁에 있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친어머니를 만나러 간 그녀가 좋은 마음이 아닐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쓰였다. 오늘 같은 날은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경훈은 그 좋아하는 술도 마다했다.
애애애앵, 애애애애앵.
좀 더 빠른 지름길을 통과하려고 응급실과 인접해 있는 후문으로 들어가던 경훈은 갑자기 급하게 울리는 앰뷸런스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응급실 앞 주차장으로 이제 막 한 대의 앰뷸런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급하게 주차를 한 앰뷸런스에서 119대원들이 내렸다. 그리고 뒤이어 주차장으로 두 대의 경찰차가 들이닥쳤다.
경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119대원들이 앰뷸런스 안에서 이동침대를 끄집어 내리자 그 위에 누워 있는 환자가 보였다. 그의 눈길이 환자의 배에서 진하게 배어나는 핏물을 발견했다.
경찰들이 에워싸고 119대원들이 이동침대를 끌고 응급실 안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응급실 전공의들이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경훈은 오늘 GS(일반외과) 당직이 누구였는가를 떠올려 보았다.
환자의 배에 난 외상과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을 볼 때 총상일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저건 외과 수술이 필요하다.
김원철.
경훈은 오늘 당직이 김원철임을 떠올렸다. 그리고 당직 교수가 염승철 교수라는 것도 기억해냈다. 염승철 교수는 몇 달 전에 정직 한 달을 끝내고 다시 외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경훈은 걱정이 되었다. 성실한 의사의 면모를 보이기보다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 더 적극적이라 비겁하고 기회주의자적인 면이 더 강한 염 교수라서 이제 막 들어간 환자가 염려스러웠다.
잠시 망설이던 경훈은 결국 응급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만 확인하고 올라가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