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0
제 100화
‘꼭 게임하는 기분이네. 물론 그때는 안 아팠지만.’
문제는 맞는 것도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진천희 자신이고, 때리는 것도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진천희 자신이라는 거다.
잘못해서 어딘가 부러져도 게임 캐릭터의 라이프가 하나 까이는 게 아니라 진천희의 뼈가 부러진다는 거다.
‘옛날에 문방구 앞에서 100원 넣고 탄막 피하는 게임을 했었지.’
그때의 어린 진천희는 100원으로 끝판 보스를 깨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운이 좀 따라 주어야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커서는 100원이 아니라 10,000원을 줘도 못 한다.
그때의 동체 시력과 집중력, 판단력은 그 나이여야 가능했던 거니까.
그런데 그때의 그 느낌이 다시 살아났다.
진천희는 목각 인형의 주먹을 열세 번이나 연달아 피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몰입하던 진천희는 그만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 지금 어떻게 이걸 피하고 있는 거지?’
그 순간, 네 번째 주먹이 진천희의 명치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커억!”
사정없는 급소 공격에 그만 허리가 꺾이고 말았고 네 개의 목각 인형은 기다렸다는 듯 진천희를 집단 구타 했다.
빠바바박!
“크어어어억!”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행신공의 내공으로 최대한 몸을 치료하면서 오행금강공이라는 외공을 사용해야 했다.
처맞는 것도 수련이다! 원래 외공은 처맞고 그걸 치료하고 하면서 익히는 거니까! 다져지는 몸뚱이에 강해지는 육체!
그것이 외공 수련!
일거양득!
‘내 인권. 없어…….’
이 시대에는 교육 인권 같은 건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져 반신불구가 돼도 지 탓이고, 말년에 관절이 닳아서 고생을 해도 지 탓이다.
달궈진 모래에 손을 집어넣다 손가락을 잃게 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그건 지 탓이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신사적인 교육법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알고는 있는데…… 무공이란 건 꼭 이따위로 교육해야 하는 걸까.’
매우 원론적인 질문이었다.
‘유년기에 이런 교육을 받게 되면 아동 발달 과정상 별로 정서적으로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진천희는 무협 세계관을 뒤흔들 근본적인 생각을 하고 말았다.
‘애초에 무협지 보면 은원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허다한데 이 또한 정서 발달에…….’
인간 목숨이 파리 목숨인 세계에서 부질없는 고찰이었다.
현원전단신공의 공능 때문일까.
이렇게 처맞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때 땡땡땡 종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진천희를 패던 목인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거 외공 수련에 너무 열심이십니다? 도련님.”
“놀리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놀리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열심히 하시는 걸 보고 놀라서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목각 인형을 아낌없이 쓰시는 분은 우리 도련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게 놀리는 거지. 인마.’
진천희는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인데요? 유 총관.”
“남궁세가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남궁세가……?”
진천희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바로 답했다.
“아, 요로결석.”
남궁운이다.
“잘됐네요. 남궁운도 살고, 나도 좀 쉬고.”
“크크크. 많이 아프셨습니까?”
“외공이 늘어서인지 처음만큼은 안 아파.”
진천희가 허파에 바람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호오, 그렇다면 다음번에는 좀 더 개량해야겠군요. 안 아프면 외공을 단련하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이눔의 새끼가!’
진천희가 유호를 향해 말했다.
“유 총관도 일해야 하지 않아?”
오냐, 마침 잘 긁었다. 진천희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걸 핑계로 고생 좀 오지게 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 * *
진천희는 방으로 돌아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음. 환골탈태 이후로는 키가 더 안 자라네.’
환골탈태를 거쳤을 때 한꺼번에 성장했기 때문일까. 그때 이후로 키의 변화는 미미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또래보다는 큰 편이었기에 진천희는 만족했다.
‘이제 보통 아이들의 속도로 성장하겠지.’
거울 속 잘생긴 얼굴이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전생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생긴 미모라 뿌듯해졌다.
거기에 새로 맞춘 무복까지 갖춰 입으니 서화에나 나오는 미공자의 초상화 그 자체였다.
진천희는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왕각연이었다.
그녀는 마침 진천희의 문을 두드리려는 생각이었는지 들었던 손을 머쓱하게 내렸다.
“무슨 일이야?”
진천희의 말에 왕각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서 찾아왔어.”
진천희는 문득 왕각연이 입은 무복이 그동안 보았던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인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야?”
왕각연이 고개를 저으려 하다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끄덕였다.
“아빠는 몰랐으면 좋겠어.”
그 말에 진천희와 왕각연은 대나무 숲 쪽으로 잠시 걸어갔다.
‘각연이가 무슨 일이지?’
그녀는 딱히 의각 소속은 아니다.
아버지인 궁귀가 의각 무력당의 간부로 특채되어 있지만 왕각연은 딱히 백린의각에 취직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군식구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눈치 줄 유호도 스승님도 아니다.
백린의각 사람들 모두 왕각연을 좋아한다.
힘든 의각 생활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조카를 예뻐하는 느낌이었으리라.
얼마나 걸었을까. 대나무 숲 깊이 들어갔을 즈음 왕각연이 불쑥 말했다.
“나 강호로 나갈 거야. 강호 출도를 해 보려고.”
“뭐? 이렇게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천희 너도 몰래 강호 다녀왔잖아.”
그 말에 진천희가 뺨을 붉혔다.
“그렇긴 하지.”
“폐관 수련 한다고 들어간 네가 강호에 위명을 떨치고 돌아오는 걸 보고 많은 고민을 했어. 나도 해 보고 싶어.”
진천희는 생각했다.
‘나는…… 말리고 싶다.’
진천희의 눈에 왕각연은 여전히 아이였고, 강호는 무서운 곳이었다.
물론 왕각연의 실력을 낮추어 보는 건 아니다.
그녀가 마교 자객을 상대로 얼마나 잘 싸웠는지 진천희가 가장 잘 아니까.
‘어쩌지? 말린다고 들을 애도 아니고, 내가 말릴 처지도 아니고.’
진천희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돈은, 돈은 어쩔 거야?”
“무공이 있으니 뭐라도 하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지.”
“운룡표국 쪽에 가 보는 건 어때? 개방 쪽에서도 일을 알선해 줄 거고.”
“아, 그래도 돼?”
“당연하지! 음, 돈을 버는 건 개방보다는 운룡표국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예전에 강호 출도 했을 때 운룡표국에 삼살추서의 소개장을 써서 보낸 적이 있었거든. 빚 빨리 갚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
진천희의 말에 왕각연은 대답 없이 생각에 잠겼다. 진천희는 빠르게 생각했다.
‘그래. 운룡표국이 좋지. 국주님도 좋은 분이시고, 동시에 표국이다 보니 눈치도 빠르시고. 각연이가 안전하게 강호의 생리를 익히기 좋아.’
비록 본체는 왕각연과 비슷한 또래로 추측된다고는 해도 진천희의 정신은 아득한 성인이었다.
진천희의 눈에 왕각연은 아직 애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강호 출두를 하겠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다.
더욱 무거운 건 왕각연은 하필 아빠인 궁귀를 닮아서 남이 말린다고 들을 성격이 아니라는 거다.
“으… 하지만 운룡표국은 아빠와 여러 번 거래했던 곳이고 나 잡아다가 도로 끌고 오면…….”
“정식으로 표사 계약을 하면 뭐라고 못하실 거야.”
“그러면…… 알았어. 그럴게.”
왕각연의 대답에 진천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다려 봐, 내가 빨리 써 줄게.”
진천희는 후다닥 방으로 돌아가서 지필묵으로 왕각연의 소개장을 써서 건네주었다.
“원래 표국에서 궁사는 무척이나 귀한 대접을 받거든. 국주님도 반가워하실 거야.”
왕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희야. 고마워.”
그녀는 진천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진천희는 그런 왕각연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몸 조심해야 해. 다치면 바로 날 부르고. 백린의각 소속 의방이면 언제든지 내게 연락이 닿을 거니까.”
“응. 조심할게.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녀는 그런 진천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더 강해져서 올게, 천희야. 그리고 널 지켜 줄게.’
강호행을 끝낸 후 나날이 강해지는 진천희를 보며 왕각연은 벽에 부딪쳤다.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진천희는 문득 뭔가 생각이 났는지 후다닥 다시 지필묵을 향해 갔다.
“공손현, 공손영 소저분들께도 추천장을 쓸게.”
“공손가? 그쪽에도 인연이 있었… 아, 생각났다. 예전에 지나가듯 들은 적 있어.”
공손영은 진천희가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구해 준 이다.
거기다가 깨달음을 유도해서 벽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두 자매라면 절대 왕각연을 허투루 대하진 않을 터였다.
“개방 쪽에서는 이미 알 테니 더 필요 없을 거고.”
“넌 정말 아는 사람도 많다.”
왕각연은 소개장을 갈무리하고는 재빨리 멀어졌다.
“이 이상은 안 돼. 이러고 있으면 너랑 더 있고 싶어질 테니까.”
그녀는 소매로 눈가를 훔치더니 경공으로 바람처럼 멀어졌다.
그런 왕각연에게 진천희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가 큰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생경했다. 평생 누군가를 치료만 해 왔지 아이는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복잡한 심경에 왕각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 바라보다가 진천희는 불쑥 말을 내뱉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지켜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신 겁니까?”
궁귀가 대들보에서 내려왔다.
“저도 몰랐는데 지필묵을 쓰다가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거든요.”
“너무 오래 바라보았나 봅니다. 허허허. 수행이 아직 부족하군요.”
궁귀는 그리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를 너무 많이 닮은 녀석입니다. 저 나이에 저도 집을 박차고 나갔지요. 이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었는데…….”
궁귀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인으로서의 결정이니 응원해야지요. 거기다가 운룡표국이면 이따금씩 잘 지내는지 안부는 알 수 있겠군요. 거기까지 안배하신 겁니까?”
진천희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은공께는 늘 받는 게 많습니다.”
“아니에요. 왕각연의 실력이라면 사실 이런 도움은 필요 없을 텐데 괜히 오지랖을 부렸죠.”
“허허허. 너무 겸손하신 것도 보기 좋지 않습니다.”
그는 그런 진천희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떨 때는 영락없이 어린아이 같다가도, 어떨 때는 세상을 다 산 노인 같은 지혜를 보일 때가 있었다.
‘표를 내지는 않지만 가끔은 심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시지.’
궁귀는 그런 진천희가 고마웠다.
“그나저나 소각주님, 남궁운은 그렇다고 쳐도 당가의 아이는 조심하십시오.”
“당가의 사람도 왔다고 듣기는 했어요. 그런데 왜요?”
“당가의 사람들은 독공 때문인지 전부 괴팍한 구석이 있거든요. 특히 사춘기쯤 되는 아이는 이해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원래도 사춘기 애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나?’
진천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소설에서도 비중 있는 당가의 인물이라고 해 봐야 다 성년을 맞이한 자들뿐이었다. 청소년기의 당가의 아이는 소설에서 묘사가 없었다.
“뭐, 별일 있겠어요.”
그저 궁귀의 기우려니.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