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1
제 101화
016. 손님맞이 (2)
다실 입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자니 남궁 남매와 당가의 아이로 보이는 소녀가 올라오고 있었다.
검은색 무복에 붉은색 자수를 박은 옷을 입은 그녀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었다.
‘당가의 청소년은 대낮에도 잠행복을 입는군. 그래서야 낮에는 잠행은커녕 눈에 더 잘 띌 텐데 괜찮을까.’
사천당문.
붉은 글자가 박력 있다.
이 의상은 당가의 아이가 청소년기에 어둠에 먹혀 좋지 않은 상태가 되었을 때 입히는 옷으로, 대다수는 본인이 원해서 입는다.
선선대 가주께서 청소년기에 직접 옷방에 의뢰하여 만들었다.
그렇게 제작한 몇 벌의 무복은 아직까지 전해져 와 같은 증세(?)를 가진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 준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밤처럼 어둡고 피처럼 붉은 그 옷의 마력에 매료가 되어 자진해서 입고 다녔고, 다른 무가의 어르신들은 그 무복을 보고 알아서 서로 양해해 주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통 있는 옷이었다.
그녀는 진천희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까만 두 눈동자가 마치 작은 짐승과도 닮았다.
남궁운이 대형견을, 남궁연이 고양이를 닮았다면 당아는 희고 작은 강아지를 닮았다.
‘아, 그 뭐더라. 지구에서 봤던…… 포메라니안!’
포메라니안을 닮았다.
그것도 까만 털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전체적으로 씩씩하게 귀여웠다.
‘당과 좋아하려나. 저 나이 애들은 뭘 좋아하지? 찹쌀떡? 호박엿? 곶감 주면 좋아하나?’
진천희 안에 있는 아재의 본능이 어서 저 아이들에게 뭔가 많이 먹여 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나도 저런 딸 갖고 싶다.’
옛날에 포기한 꿈이 은근히 고개를 들었다.
진천희는 주섬주섬 소매에서 먹을 것을 찾았다.
맛있는 걸 어서 많이 주고 싶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네가 소백룡이냐!”
목소리가 꽤나 우렁찼다.
진천희가 답했다.
“네, 맞습니다.”
“나는 사천당문의 당아다. 대련을 요청한다!”
‘오우…… 눈이 마주치자마자 대련이라. 강호에서 그렇게 대련을 요청하는 낭인이 있다는 말을 듣기야 했는데…….’
현상금을 노리고 덤벼드는 놈들의 뼈를 만져 준 적이야 있지만, 대련은 달랐다.
진천희는 한 번도 그런 대련 신청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신선한데?’
이게 바로 강호의 향기인가.
나도 이제 그런 걸 당하는 위치까지 왔는가.
진천희는 과거에 소중히 숨겨 왔던 로망을 떠올렸다.
당아가 말했다.
“약학 대련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을 먹이고 먼저 해독하는 걸로 승부하자!”
그 말에 진천희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 대련이 아니잖아?’
독공을 익힌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독공 대련이다.
그러나 진천희는 독공을 익힌 적이 없을뿐더러 진천희의 전공은 부술이지 해독이 아니었다.
“싫은데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뾰족해졌나 보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지 당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진천희는 그런 당아를 무시하고는 남궁운을 향해 말했다.
“모두 들어오세요.”
접객실로 진천희는 모두를 안내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진천희가 남궁운에게 말했다.
“남궁 소협, 손목을 이리로.”
남궁운이 순순히 손목을 내밀었다.
진천희가 남궁운의 맥을 잡자 당아는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아니, 외인에게 순순히 맥문을 잡히다니. 운 형이 그만큼 이 녀석을 신뢰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말에 진천희도 남궁운도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험험, 웃으시면 안 됩니다. 맥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크, 크흠, 그렇지. 잠깐 가만히 있겠네.”
남궁연은 그런 당아의 목에 팔을 두르고 뒤에서 껴안았다.
“무거워. 연 매, 무거워!”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와서 진천희는 꾹꾹 참았다. 남궁운도 같은 마음인지 맥이 흔들리다 돌아오다 반복했다.
진맥을 끝내고 나서 진천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조언 안 들었죠?”
“물을 많이 마시고, 짜고 기름진 것을 피하라는 이야기 말인가?”
“네.”
진천희의 말에 남궁운이 시선을 피했다.
“어…… 요즘 어르신들과 친우들이 자꾸만 술자리에 불러서 어찌할 수가 없었네만.”
“결석이 더 커졌네요. 지금은 그래도 위치가 괜찮은데 조금만 더 있었어도 시작됐을 거 같아요.”
“뭐가 시작된다는 거지?”
“지옥의 고통이요.”
그 말에 남궁운이 눈을 홉떴다.
그때 당아가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진맥만으로 결석이 생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건가.”
확실히 결석은 진맥으로 찾기가 어렵다.
내상이나 외상은 내가 진맥을 통해 기가 끊긴 곳을 찾아 윤곽을 그려 나가는 방식으로 찾아내지만 작은 결석은 어렵다.
그것도 일이 터지기 전의 작은 형태의 결석.
보통 결석이 커져서 요도든 신장이든 손상시키기 시작한 후에나 알아채는 게 부지기수였다.
‘요로결석에 대한 외과적 지식 덕분에 찾기가 쉬워졌다고 말해 봐야 궁금증만 더 사려나.’
진천희가 대답하지 않자 당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요로결석을 진맥으로 미리 예지해서 알아냈다는 의원은 본 적이 없다! 분명 사기 아닌가!”
‘음, 이 시대의 의학으로만 생각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
외과 의학이 발전하지 못한 이 세계에서는 요로결석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 내지 못했다.
어째서 돌이 생기는지 알 수 없으나 아랫배가 미친 듯이 아프고, 진맥을 할 즈음에는 늦거나 배에 칼을 대고 기도해야 했다.
그만큼 당시에는 사망에 이르는 위험한 병이었다.
특히나 감염의 원인을 모르고 항생제 역시 발명되지 않은 이 시기에는 부술은 그만큼 위험한 치료법이었다.
“일단 요로결석이라는 걸 알아내는 건 지금 상태에서는 쉽습니다.”
“뭐지?”
“남궁 소협, 좀 아파도 참으실 수 있겠습니까?”
“진 형제, 나는 그런 건 괜찮으니 하지 말고 그냥 바로 치료해 주게.”
그러나 당아는 다른 의견이었다.
“네가 의원이라면 당장 보여 주거라!”
“으…… 뭘 하려는지나 일단 들어 보겠네. 내 몸이잖나.”
진천희가 차분하게 답했다.
“별것 아니에요. 남궁 소협 안에 있는 결석이 있는 곳 위를 제가 내공을 담아 지그시 눌러서 조금 움직여 보는 거죠. 크기가 작기는 해도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생겨 있어서 그만큼만 해도 꽤 아플 거니까 알 수 있겠죠.”
“운 형! 좋은 방법입니다! 이대로면 눈 뜨고 돈만 뜯기는 수가 있어요!”
“내 몸이라니까, 얘들아. 연이야, 너는…….”
남궁연은 눈을 빛냈다.
“오, 오라버니의 몸에 결석이 있는지 확인하는 건 중요한 문제입… 입니다. 결코 오라버니가 저를 하도 놀려 먹는 것에 대한 복수가 아님을 밝힙니다.”
진천희가 쾌활하게 웃었다.
“2대 1이군요. 그러면 누릅…….”
“……자, 잠깐!”
진천희는 결석이 있는 등 아래쪽을 꾸욱 눌렀다.
내공을 넣고 그 위를 조금 더 만져 주니 결석의 느낌이 왔다.
“허…… 허억!”
요로결석.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의 말로는 총에 맞은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칼로 쑤시는 것 같다고도 했고 송곳으로 찢은 다음 후비는 것 같다고도 했다.
진천희는 요로결석에 걸린 적은 없었으나 그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남궁운이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숨만 삼키며 꺽꺽거리기를 3초.
진천희는 잽싸게 손을 뺐다.
당아가 말했다.
“연기가… 아니군. 정말로 고통스러운 표정이야. 운 형의 영혼의 비명을 나는 느꼈네.”
“당아야, 그리고 연이야. 니네 둘은… 삼 일 동안 간식 없는 줄 알아라.”
남궁운은 낮게 뇌까렸다.
그 찰나의 통증에도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보이나, 진 형제. 내가 지금 소녀 둘을 돌보는 건지, 악마 둘을 돌보는 건지 모르겠네.”
연이는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이것이 찐 오누이로군.’
죽고 나서 복수는 해 주겠지만 기회 될 때 서로에게 한 방씩 꽂아 주는 건 지구의 그것과 똑같았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 거로구나.’
“남궁 소협, 거 평소 마음을 곱게 쓰십시오. 남궁 소저를 하도 놀려 먹으니까 이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돌려받는 거 아닙니까.”
“크윽…… 하지만 동생 놀려 먹는 건 내 낙일세. 외인이 참견할 건 아니네.”
그 말에 진천희가 물었다.
“남궁 소저, 한 번 더 눌러 드릴까요? 한 번으로는 역시 알기 힘들죠?”
“살려 주게! 살려 주게나!”
* * *
요로결석 파쇄 시술을 하기 위해 남궁운은 잠깐 입원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남궁연과 당아도 함께 머물게 되었다.
둘은 사이가 무척이나 절친한지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낯도 많이 가리고 말도 더듬는 남궁연이 당아와 함께라면 밝게 웃고는 했다.
당아가 사춘기를 맞이해 다른 당가들처럼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그래도 성정이 워낙 착해서 그런지 의각 내에서도 괜찮은 평가였다.
단지 새로운 무공을 연마하겠다며 의각의 붕대를 가져가 다치지도 않은 팔에 감거나 하는 정도의 기행을 할 뿐.
올바른 붕대 감는 방법을 의각원이 가르쳐 주었는데 눈을 빛내며 배웠다.
그동안 진천희는 남궁운의 상태를 면밀히 검사했다.
‘자연 배출은 죽어도 안 되는군.’
술과 고기로 살아가는 사내다.
대체 이런 파락호가 어떻게 무림맹주가 되어 천하제일검을 논하게 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행히도 백린의각에 입원하게 되는 동안에는 술, 기름진 음식, 짠 음식 모두 금지시킬 수 있었다.
‘원작대로라면 요로결석이 결국 자라긴 했어도 어떻게든 해결했다는 건데…….’
진천희는 턱을 문질렀다.
‘설마하니 결석을 안고 있는 채로 스승님처럼 내공발로 어떻게든 해냈을 리는 없고.’
염증이나 폐색은 둘째 치더라도 통증이 사람이 견딜 통증이 아니다.
문득 진천희는 다시 생각을 바꿨다.
‘여기는 무림이다. 여기 인간들은 진짜 무슨 짓이든 해.’
유랑후만 해도 자살하겠다고 본인 다리를 고정한 하프 핀을 뽑아서 주왕을 찌르지 않았나.
생살을 찢는 고문을 해도 비밀을 지키겠다고 입 다물고 버티는 게 이쪽 인간들이다.
‘이곳은…… 외과의의 지옥이다.’
신념에 관련된 문제면 환자가 증상에 대해 전부 말하지도 않을뿐더러, 뭐만 하면 신념 때문에 나가서 목숨을 걸거나, 은원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거나.
‘남궁운이 요로결석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어차피 소설에 안 나오는 일이야. 주인공인 여하륜 입장에서 남궁운은 엄청 강한 적수일 뿐이니까.’
진천희는 깔끔하게 해답을 내렸다.
‘나는 의사니까 의사로서의 일을 하면 돼. 눈앞의 환자에 집중하자.’
진천희는 그런 남궁운의 몸을 한참 진맥하다가 눈을 떴다.
“결석이 대체 왜 그사이에 커진…… 거기다 술은 대체 뭔 수로 드신 겁니까. 설마 의료용 증류주를 마신 건 아니죠?”
“그것도 진맥에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