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10
제 1010화
유호가 특수 제작한 커다란 금속 수조.
유호의 ‘응원’이 들어가 있어서 독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는 거대한 물이 가득 차서 찰박인다.
수조 앞에 유호와 진천희가 서 있었다.
“그래서 도련님. 그 독을 이 수조 안의 물에 넣는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그게 왜 냉매가 되는 겁니까?”
“한빙독. 이라고 알아?”
“흠……. 들어는 봤습니다. 독 중에서 음한지기를 띠고 있는 독이라고 하더군요.”
진천희가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한빙독은 분명 독은 맞지만 주변을 아주 차갑게 만들지.”
“그 독에 당하면 마비와 함께 온몸이 차갑게 얼어서 죽어 버린다 들었습니다.”
‘저 같은 존재들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요.’라고 유호는 작게 중얼거린다.
진천희가 답했다.
“그렇다면 이걸 물에 희석시키면 어떻게 될까?”
“한빙독을 품은 물이 되겠……. 그렇군요. 그걸로 주변의 온도를 내리겠다, 이겁니까?”
정답.
“……도련님. 독하디독한 한빙독을 그따위로 쓰시겠다고요?”
“어허! 말은 바로 해야지. 독한 한빙독이니까 약으로도 쓸 수 있는 거야.”
아니, 소빙정 있지 않나.
한빙독이 무엇인가.
강호의 살수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독물 중의 하나다.
아무리 양민을 위한다고 한들, 그걸 빙고용으로 개량해본다?
유호가 듣던 중 가장 미친 소리.
하지만 진천희는 태연했다.
‘냉장고의 역사는 도서관 책으로 몇 번이나 본 일이 있었지.’
1700년대 영국 과학자 윌리엄 컬런.
보통 몸이 젖었다가 마르다 보면 시원해진다.
그는 그 사실에 주목해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기화열.
그는 액체가 주변의 열을 빨아들인 후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이 기화가 일어나며 주변의 열을 빼앗고, 물체의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즉. 차가워진다.
‘이게 기화열의 원리지.’
이 원리를 이용하기 위해서 그는 알코올의 한 종류인 에틸에테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인류 최초로 인공적인 얼음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
즉. 그가 쓴 에틸에테르는 최초의 냉매(冷媒)!
하지만 발견과 발명, 그리고 개발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가 쓰는 본격적인 냉장고 개발 자체는 다른 이들이 하게 된다.
제이콥 퍼킨스는 압축시킨 에테르를 기화, 그 후 다시 응축시키는 기술을 발견해 냉장고의 기초를 만들고.
여기서 윌리스 캐리어는 뜬금없이 그 기술을 응용하여 에어컨을 만든다.
‘찬양하라. 에어컨!’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올리버 에번스, 제임스 해리슨, 카를 폰 린데, 또 누구 있더라……. 다양하게 개발하고 특허도 냈지, 아마?’
그렇게 인류의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이며 나중에는 프레드 울프가 본격적으로 가정에서 쓸 만한 냉장고를 만들어냈다.
‘도멜레’라는 제품.
블링블링한 화이트 디자인과 개나 애들의 공습을 막는 잠금장치,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는 나름대로 괜찮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던 그놈에게도 단점이 있었으니.
하필 그 시대 자동차 가격보다 비쌌다고.
먹고살기도 빡빡한데 자동찻값을 냉장고에 때려 박는 건 제정신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후에 ‘모니터 탑’이라는 냉장고가 출시할 때까지 보급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참, 냉장고 폭발 위험은 그 당시 기준으로 매우 사소한 단점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허나, ‘모니터 탑’이 나오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냉장고의 가격은 앞선 냉장고의 3분의 1 가격!
거기에 렌탈 서비스까지 가세했다고 한다.
매달 저렴하게 돈을 내고 쓸 수 있도록 뚫어주니, 그 정도는 서민도 감수해볼 만할 터.
이 냉장고는 출시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후발주자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전 세계로 뻗어나가 수많은 가정에 정착하게 된다.
그야말로 냉장고로 세계정복의 신호탄을 날린 셈.
현대에서는 정수기와 안마의자에 쓰는 렌탈 제도.
이 렌탈 제도와 냉장고는 역사적으로 상호 협력관계라고 할 수 있다.
렌탈 제도가 없었다면 냉장고가 확산되는 속도는 훨씬 늦어졌을 테니까.
‘이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
어찌 되었건.
이들 냉장고는 모두 전기를 쓴다.
전기 모터로 열교환기를 이용, 냉매를 통해 냉장고 내부 온도를 낮추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21세기 지구 별에서는 전기 사용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도 많다.
제3국 오지 같은 곳에는 전신주 하나 없는 곳도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발명가들은 머리를 쥐어짜 내어 전기가 필요 없이, 기화열만으로 작동하는 냉장고를 만들고야 말았다.
이런 시도를 우리는 적정기술이라고 부른다.
팟인팟(Pot-in-pot)과 미티쿨(Mitti Cool) 그리고 코카콜라 바이오쿨러(Bio-Cooler) 같은 것들.
‘이 중에서 지금 기술로 가장 쓰기 쉬운 게 팟인팟이긴 하지.’
팟인팟은 특히나 무인도에 떨어져도 쓰기 좋다.
1. 큰 항아리 하나, 작은 항아리 하나를 준비한다.
2. 큰 항아리에 모래나 흙을 넣는다.
3. 그 위에 작은 항아리를 놓는다.
4. 작은 항아리와 큰 항아리 사이에 끼인 흙에 물을 부어 적신다.
5. 작은 항아리에 냉장을 원하는 채소나 과일 등을 넣는다.
6. 젖은 천으로 덮어서 밀봉한다.
Profit!
아무리 전기가 안 통하는 국가고, 플라스틱 같은 게 없어도 딸랑 도자기 두 개, 물 한 병 그리고 천 하나면 끝이다.
이렇게 하면 흙에 있는 물이 기화하면서 작은 도자기의 열을 계속 빼앗게 되고.
꼴랑 3일 보관할 수 있는 과일이 3주 넘게 싱싱하게 유지될 수 있다.
단점은 작은 그릇 안만 가능하다 보니, 생각보다 수납 공간이 적다는 것.
그리고 건조할수록 기화가 잘 되는 터라, 습기가 많은 지방은 효율이 떨어진다.
그런 동네는 그냥 땅에 장독 묻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보급이 쉽지 않다.
‘여기서 미티쿨은 조금 더 세련된 형태의 팟인팟이라고 보면 되지.’
직사각형의 상자 형태의 토기인데, 맨 위에 물을 넣는 공간이 있다.
거기 물을 부으면, 미티쿨 전체로 물이 조금씩 흘러 들어가면서 미티쿨 전체를 적시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마르면서 안쪽의 기온을 낮추는 것.
둘 다 전기도, 냉매도 필요 없는 제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코카콜라의 바이오쿨러는 무엇인가?
이 녀석도 냉장고처럼 생겼는데, 머리 부분에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게 특징.
그 식물이 자라는 흙 부분에 물을 부으면, 기화하면서 내부의 온도를 낮춘다고 하는데…….
문제는 이 바이오쿨러가 상당히 제작비가 높다는 데 있다.
왜냐면 팟인팟과 미티쿨에 비해서 여러 가지 비싼 재료가 듬뿍 들어가니까.
보냉 재질의 금속. 그리고 냉각 거울까지.
게다가 외관도 네모네모 시크한 것이 좀 더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고 있다.
즉. 단가가 비싸다.
이 무림 별에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물건도 아니고.
그래서.
진천희는 본래 팟인팟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려다가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천하진일광은 더 차가운 냉장고를 원한다!
그래서!
팟인팟에 냉매 응집기를 부착할 생각을 하게 된 것!
보통 냉장고의 냉매는 ‘프레온’, ‘암모니아’, ‘메탄’, ‘에탄올’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천희는 과감하게 짐조 & 현경지독을 변형해서 만든 한빙독을 쓴다!
‘이걸 냉매로 쓰면 아주 그냥 냉동고도 가능할지 모르지.’
물론 이렇게 해도 소빙정 하위 호환이다.
허나, 소빙정의 가격을 생각하면 비할 바가 아니지.
진천희의 설명을 들으며 유호는 생각했다.
‘미친놈이네. 이거.’
유호가 물었다.
“그거, 부서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독이 흘러나올 텐데요?”
“괜찮아!”
“뭐가 괜찮습니까?”
“냉매에 쓰는 한빙독은 그 특성상 공기에 닿는 순간, 기화되어서 사라질 거고, 처음 넣는 양도 배탈을 일으키는 수준 정도만 넣을 거거든. 뭐, 공기에 닿지 않게 깨끗하게 입에 넣기 위해서는 전용 공구가 필요한데, 그거 먹으면 설사를 유발할 수 있긴 해.”
“……그런 한빙독이 있습니까?”
그 순간, 진천희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왼팔이 새카맣게 물들며 냉기를 뿜어냈다.
파사삭-
“응. 짐조의 깃털이 천하제일의 독이며 무림지보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 알겠어.”
“……독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 겁니까?”
“모든 독은 못 해. 하지만 한빙독은 가능해. 내 특기가 빙공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그것은, 한 제자가 스승을 살리기 위해 걸어온 자취.
구음절맥.
스승님의 몸속에 있는 냉기를 없애기 위해 살아왔던 세월들이 그를 증명했다.
기묘하게도 가장 증오스러운 것이 바로 냉기이고, 겨울일진대.
의원은 그것을 무찌르기 위해 역으로 누구보다 빙공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 담에 만난 것이 바로 독공.
현경지독을 흡수하여, 살이 녹는 고통을 느껴가며 아등바등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살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독공을 더욱 연마했고.
이제는 독공에 관해서도 사천당문과 비견할 정도의 수준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영물, 아니, 지역에 따라서는 성수라고 취급되는 짐조의 깃털 다섯 장을 이 팔로 모조리 흡수했다.
‘고작 필멸자가 감당할 수 있는 독이 아니거늘…….’
유호는 생각했다.
허나, 대부분의 존재들이 그렇다.
특히 위대한 존재일수록 결코 아래를 보는 일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잣대로 선물을 주고, 그것은 필멸자에게 저주가 된다.
허나, 괜찮나.
눈앞에 있는 자는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하는 자니까.
얼음에 대한 ‘증오’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두 가지가 의원에게 약이 되었나.
“스스로 독을 합성하고 형체화할 수 있게 된 겁니까?”
“응. 사천당가에서 말하는 독인지경의 경지인 셈이지. 한빙독 한정이지만.”
미친 소리 같지만 그랬다.
‘증오와 두려움도 잘만 쓰면 냉장고가 된다.’
독이 약이 되듯이.
청년 안에 있던 고통과 고난들이 웃기게도 냉장고를 만들 한빙독이 되었다.
‘차라리 그 독으로 천하일통을 하지…….’
냉장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소빙정, 빙정, 원시빙정까지 다 있는 놈이 단가 낮추겠다고 이러고 있다.
미친놈이다.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거대 수조에 가득 찬 물 안으로 한빙독의 정수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본래 맑았던 물이 검푸른색으로 변했고, 동시에 철로 된 수조의 표면에 서리가 내려앉을 정도로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수조 안쪽의 한빙독액(寒氷毒液)은 얼어붙지 않은 채로 찰랑거린다.
신이(新異)한 현상!
“좋았어! 냉매 완성!”
“그래서, 그걸 냉각 거울에 넣는 겁니까?”
냉각 거울 혹은 냉매 응집기라고 불리는 물건. 그것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국자 비슷한 물건을 가져다가 냉매(한빙독액)를 한 국자 떠서 냉각 거울의 입구에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입구를 꾸욱 닫으면 완성.
“자, 이제 연구당에 넘기자.”
“이론대로 돌아갈지 확인해 보는 작업이군요.”
“응. 내 입으로는 안전하다고 했지만 위험성도 봐야 하고, 지속성도 봐야 하고.”
그렇게 말하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기어이 뜯어서 먹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토하는 약도 넣어놔야겠어.”
“아니, 대체 그런 놈이 세상 어디에 있다고…….”
뻔히 먹으라고 만든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설사 독을 입에 집어넣는 놈이 있다고?
심지어 어린애는 아예 뜯지도 못하게 설계할 텐데 다 큰 어른이 그런다고?
진천희가 말했다.
“응. 있어. 있더라.”
응급실에서 일주일만 있어도 인간은 정말 여러 방법으로 스스로를 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끔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기도 하고.
‘입에 형광등 물고 온 아저씨도 있었지.’
왜 형광등을 입 안에 가득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넣을 때는 위풍당당했지만, 뺄 때는 그의 턱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힘으로 억지로 빼다 깨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인간은 뭐든 다 할 수 있다.”
“……?”
이 여우는 백린의각 본산에 있어서 잘 모른다.
분타 가서 응급 환자 한 번만 받아 보면 그때는 깨닫겠지.
이윽고 유호가 말했다.
“기화될 때 냄새도 나면 좋겠군요.”
“그러면 냉각 거울이 부서진 걸 바로 깨닫게 될 테니까. 괜찮네.”
발상이 또 다른 발상을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