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18
제 1018화
두 손에 피를 가득 묻힌 채로, 그리고 그 얼굴에도 피가 튀어 묻어난 상태로 짓는 그 웃음은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주님. 그리고 대주님. 이 일은 저도 예상치 못한 일이오니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나이다.”
그러며 사마현은 포권을 해 보였다.
“쯧쯧. 그 말은 소각주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 이 말인 겐가?”
독고중후의 말에 사마현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하여튼… 소각주는 어째서 네 녀석 같은 것을 의형제로 받아서는……. 하긴 그러지 않았던들 재생 당주께서 살아 있었을 리도 없었겠지만.
좋다. 사마 당주를 봐서 그 부탁은 들어주도록 하지. 가세나.”
“예. 당주님.”
독고중후가 그대로 몸을 날린다.
왕채백은 잠시 사마현을 바라보다가, 그 뒤를 따랐다.
사마현은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가게에서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이는 점소이 몇이 나왔다.
기묘하게도 귀 아랫부분이 색이 조금 다르다.
인피면구로 얼굴을 감추었다는 뜻.
그리고.
그륵-
사람의 성대로 낼 수 없는 숨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시체를 보니 살짝 흥분된 모양.
괴어인.
하오문에 인간이 아닌 것들이 흘러들어왔을 때 이놈들도 함께 섞여 있었다.
지난번 싸웠던 괴어인 부족처럼 인간에게 적대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을 먹어야 하는 곳도 있으나, 의외로 상식이 통하고 거래를 할 만한 부족도 존재했다.
‘전체에 비해 극소수지만.’
물론 그렇다고 이 부족이 사람을 안 죽이는 건 아니다.
그저 지난번 부족처럼 악신을 모시고 인간을 식량으로 보기에 죽이는가, 아니면 생존의 경쟁자로 보기에 죽이는가의 차이.
결국 대부분의 괴어인은 사람을 죽인다.
허나, 그건 사마현에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마현이 부리고 있는 사파들 중에 살인을 안 하는 놈이 없기 때문.
이 강호에서 살인의 여부로 부하를 정해야 한다면 혼자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이미 강호 놈들이 돈에 미쳤다 손가락질하는 최고의 살인귀가 아닌가.
‘먹는 게 아니면 별 신경 안 쓰지. 금혈방 흑점은 인육 취급 안 하니까~’
식품 위생은 중대 사항이다.
사람을 먹는 놈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대화가 통하는가.
양민은 건드리지 않는가.
사마현이 정한 법도를 지킬 수 있는가.
그리고 돈이 되는가.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있는가.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화폐 체계가 있고 화폐를 욕망하는 한, 금혈방 분타가 갈 터이니.
‘괴어인들은 아직 금융에 대해 잘 모르지.’
돈을 욕망하되 무지하다.
전통적으로 이런 부족들이 돈을 얻는 방법은 상단을 습격하여 재물을 착취하는 것.
굉장히 원시적이다. 사파 흑도들이나 쓰는 방법 아닌가.
‘물론 인간 흑도들도 원시적이고.’
그렇다면 파고들 건덕지가 있지 않을까?
형에게는 아직 비밀이다.
유 총관은 마을에 내려와 몇 번 마주친 일이 있으나 괴어인치고는 꽤나 상식이 통하고,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경고만 남기고 돌아갔고.
백린의각을 지키는 정체불명의 괴물.
다행히도 백린의각을 지키는 ‘괴물’은 그래도 규칙만 지키면 무심한 편이다.
그 규칙을 넘기는 순간 한 줌 자비도 없다는 게 문제지.
“치워. 형 못 보게.”
“그륵!”
시체를 치우는 그 손길은 살수에 가까울 만큼 신속했다.
이윽고 핏자국 하나 남지 않은 그 자리.
사마현은 나른하게 웃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향한다.
환희의 송가.
예전에 형인 진천희가 흥얼거리는 것을 기억해 두었던 것.
이렇게 사람을 죽인 날이면 부르고 싶어지는 음이었다.
* * *
“아미타불. 오랜만에 뵙는구려, 제갈 시주. 경지를 넘어 해탈에 가까워진 것을 축하드리오.”
신승(神僧) 원선(元善) 대사.
소림사의 주지승이며, 무림맹의 한 축이기도 한 노승(老僧).
강호십대고수 혹은 강호십육대고수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이유는 별게 아니다.
이 노승이 싸우는 모습을 본 이가 거의 존재치 않으니까.
그것은 제갈린이 강호십육대고수 안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와 같다.
“말씀 편히 하시지요. 대사님. 이 제갈 모가 가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제갈린은 그윽한 미소를 지은 채로 화답했다.
“허허헛. 이 늙은이를 뭐 감당하고 말고 할 게 있겠소이까.”
“천하삼존과 겨룰 수 있으신 분을 소생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제갈린은 격을 넘어 초월적인 경지에 도달한 이후로 세상을 범인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오행신공의 공능(功能) 덕분이며, 현원전단신공의 신이(神異)함, 거기에 구음절맥(九陰切脈)의 상이스럽기까지 한 예민한 감각 덕분이었다.
“그것은 제갈 시주도 마찬가지 아니오?”
웃으며 좌선을 하고 앉은 노승.
그 체구는 작고, 몸은 노쇠하고 왜소하다.
그러나 제갈린의 감각 속에서 노승은 마치 부처의 화신처럼 느껴졌다.
불가의 내가진기는 그 색채와 느낌이 여타의 무공들과는 전혀 다르다.
정종무공 중에서도 가장 단단하고 고요하며 흔들림이 없는 것이 바로 천년소림의 내공이 아니던가.
그런 소림의 무공의 총화가 눈앞에 있다.
“빈승이 왜 제갈가의 사람을 불렀는지 아시오?”
“…….”
제갈린은 반개한 눈으로 답하지 않는다.
그때, 신승 원선 대사가 들고 있던 찻잔을 던졌다.
피잉!
‘잘못 받으면 죽겠군.’
제갈린은 그리 생각하며 순식간에 찻잔의 신묘한 경지를 깨달았다.
‘아, 도에 다다르셨군.’
찻잔 안에 들어있는 것은 틀림없는 현경의 경지.
이 찻잔을 제갈린이 받을 수 있는지 신승은 묻고 있었다.
제갈린은 손을 뻗는다.
현경의 도에 다다른 찻잔이니 보통의 힘을 담고 있지 않다. 받지 못한다면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으리라.
이런 것을 고작 문답으로 쓰다니.
‘괴짜이신 건 여전하군.’
제갈린의 소매가 산들바람을 맞은 듯 살짝 부풀어 올랐다.
제갈린을 보는 신승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린다.
‘과연 혈기린은 이 잔을 받을 수 있는가?’
탁.
제갈린이 손을 뻗는다. 기묘했다.
이런 강맹한 찻잔을 받아치려면 그만한 내공이 필요하다.
허나, 기묘하게도 마치 천지자연이 제갈린을 돕듯 스스로 찻잔이 느려지고, 느려진다.
의념.
그저 멈추라는 의념 하나만으로 찻잔이 제갈린 앞에서 부드럽게 한 바퀴 휘돌더니, 이윽고 제갈린의 손아귀에 빨려 들어간다.
제갈린은 찻잔을 받아 부드럽게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향이 좋군요.”
“소림의 차가 입에 맞으십니까?”
신승, 원선 대사가 껄껄 웃었다.
제갈린은 그런 그를 바라본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부처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모습.
눈으로 보면 그저 작은 체구의 노승이지만, 눈을 감고 육감과 기감으로 바라보는 원선 대사는 소림사의 주지승이 거하는 방을 가득 채우는 불상처럼 보였다.
황금빛 광채가 뻗어오는 자애로운 부처의 상.
그랬다.
제갈린이 그 경지에 다다랐듯이.
원선 대사 역시 이미 현경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왜 그가 싸우는 모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을까?
왜 그의 무위는 알려지지 않았을까?
어째서?
천년소림의 주지승이.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었는가?
그것은 그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원선 대사를 마주한 제갈린은 그를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지도 않겠지만, 이기기도 어렵다.
그것이 원선 대사가 이룩한 무위의 경지였다.
“그것은 제갈 시주도 마찬가지 아니오?”
“저야 이제 막 문을 넘었으니 갈 길이 아직 멀지요. 헌데……. 원선 대사, 굳이 저를 부르실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천기는 이제 흩어져 사라졌다.
현경에 이른 이도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제갈린은 그럼에도 아직 조심하고 있으나.
신승 원선 대사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천년 소림의 지하에 가두어 두었다는 악성(惡性)들을 처리하는 데는 원선 대사 혼자로도 충분하리라.
“그들 역시 속죄하고, 해탈할 수 있으니. 그를 위해서라오.”
“글쎄요. 그들이 누군지 모르겠으나 소림사의 참회동에 갇혔다는 것만 보아도 그 죄악과 죄업이 산과 같은 이들일진대 굳이 기회를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천대성 손오공도 죄업을 쌓았고, 그의 의형제들인 저팔계와 사오정 역시 죄업을 쌓았으나 개과천선하였지 않았소? 저들도 그럴 기회 정도는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오.”
“글쎄요. 저들에게 해를 당한 이들의 원한과 원념이 과연 그를 용납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제갈 시주의 망집일 수도 있다오.”
“오욕칠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이 제갈 모는 아직 확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원선 대사는 인자한 얼굴로 웃음 짓는다.
“색(色)이 곧 공(空)과 같고, 공 역시 색과 같다고 하니.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역시 그러하다는 말을 혹 아시오? 미혹도 이와 같은 것이라오.”
원선 대사의 말에 제갈린은 쓰게 웃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로군요. 허나. 그것은 사람의 길은 아닌 듯합니다.”
“어찌 사람의 길이 아니라고 하는 거요?”
“결국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모든 것을 버리고 해탈한다면. 그것은 인간입니까? 아니면, 인간이 아닌 무엇입니까?”
“그것 역시 사람이라오. 또한, 그것 역시 인간이지.”
“그래서. 해탈한 존재는 과연 더 좋은 것입니까?”
잠시 원선 대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불가에 입적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수행하고.
결과적으로 부처에 가까워지며 해탈을 목적으로 살아온 고승에게 가장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이 묻고 있었다.
해탈한 존재가 과연 인간인가?
그리고 그런 인간은 과연 좋은 것인가?
“과연……. 제갈 시주는 대단하구려.”
그 누구보다도.
인간 같지 않으며, 인간이지 않은 자.
그럼에도 그의 뿌리는 여전히 인간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자를 제자로 두고 있다.
그게 제갈린에게 남은 몇 없는 인간의 조각.
그런 자이기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요. 부처가 위대한 자라고 하여, 그것이 저에게 좋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들 일월신교에 속한 이들과 혈선을 따르는 버러지 같은 것들처럼.”
“그렇구려. 정의란 서로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이니……. 허헛. 이 노승도 아직 미혹과 색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려. 허나 그렇다 할지라도 본승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를 뿐이니…….
제갈 시주께서 참회동의 진법을 수리해 주었으면 하오.”
그러나 노승은 여전히 웃고 있다.
마치 부처와 같이.
“이것으로 과거의 은과 원은 전부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옛날 제갈린이 소림에게 받았던 은원.
무당권제께서 남긴 것과는 다른 종류이나, 소림 역시 조금이나마 제갈린에게 남긴 것이 있다.
흰 기린(白麟)은 원(怨)만큼이나 은(恩)도 잊지 않는다.
“본승과 본사는 그대에게 과거에도 은을 입힌 적이 없으며, 원을 준 적도 없다오.”
빙그레 웃는 노승의 얼굴을 보며 제갈린은 헛웃음을 내었다.
“그러나 저는 은을 입었고, 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계산한 것으로 치지요.”
제자인 진천희는 모르는 옛날의 업(業).
“좋을 대로 하시구려.”
제갈린은 작게 묵례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목탁 소리와 함께 반야심경의 독경이 시작되었다.
제갈린은 그 독경 소리를 뒤로하고 주지승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안내를 받아 소림사의 깊숙한 심처로 향한다.
나무로 이루어진 숲 안쪽의 작은 바위로 된 둔덕.
그 앞에 서자 오싹한 마기(魔氣)와 사기(邪氣)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안에 갇힌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참회동을 수리하는 대가로, 저것들 중 한둘 정도는 얻어 갈 수 있을까?
제갈린의 두 눈이 동공을 넘어 눈 전체가 새파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은 참회동의 진법과 그 너머를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
그 순간, 제갈린의 눈이 살짝 커진다.
“재미있게 흘러가는군. 여기 개파조사님의 흔적이 있을 줄은…….”
‘고작 보는 것만으로 참회동의 본질을 깨달았는가!’
‘이 무슨 천재성이.’
그런 제갈린을 바라보는 소림의 승려들 모두 솜털이 곤두섰다.
그 순간, 참회동에서 괴성이 울린다.
크와아아앙–!
참회동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그것만으로 승려들이 칠공으로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
제갈린의 은빛 머리카락이 실타래처럼 풀어진다.
그러고는 그의 주변으로 섬뜩한 의념이 솟구쳤다.
“희(憙)에게 좋은 것을 주려면 서둘러야겠군.”
그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제자 놈.
인간을 사랑하는 의원.
사내의 의념에 따라 세계의 색(色)이 공(空)으로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