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2
제 102화
대체 어디에 꿍쳐 둔 건가, 이 인간이.
진천희는 남궁운이 누워 있는 침상 이불을 젖혔다.
확!
거기에는 술이 없었다.
“대체 어디에 숨겼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 기름진 거랑 짠 거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수분을 많이 섭취하라고 했고.”
“그렇죠.”
“술도 수분이지.”
이게 무슨 의사 복장 터지는 소리란 말인가.
“알코올 섭취하지 마십시오.”
“알…… 알코?”
“아니, 술 먹지 말라고요! 그냥 물 마시라고! 물!”
현대의 어르신들도 그렇지만 무림인들도 의사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
남궁운의 짐을 뒤적거리던 진천희는 침상 밑에 있는 작은 호리병을 찾아냈다.
마개를 여니 소홍주의 향이 훅 밀려왔다.
“의각 들어올 때 짐 검사는 다 했을 텐데 이건 대체 어디서 꿍쳐 온 겁니까.”
“후, 약간의 손재주지. 이 또한 풍류일세.”
‘얼어 죽을 풍류!’
진천희는 소홍주를 압수하고는 다른 술이 더 있는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눈치를 보니 더 있는 것 같은데 말은 안 할 것 같다.
진천희는 결국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황구야! 황구 어디 있니!”
왕!
진천희에게 붙은 이후 개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황구였다.
개방에 황구의 거취에 대해 전서를 썼는데 개방의 답장은 굉장히 간단했다.
‘황구는 선대 방주 일걸의 수제자이고, 선대 방주께서 명하지 않는 한은 누구도 황구의 거취에 대해 결정할 수 없다.’
보통 전서구들은 각 문파가 부리는, 말 그대로 사유재산이었다. 그러나 개방에서 개는 다른 대우였다.
황구는 말 그대로 정말 개방을 구성하는 하나의 일원이었다.
황구의 지능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다.
어찌 되었건 황구는 진천희의 명에 따라 숨겨 둔 모든 술병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진천희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내 살다 살다 난초 화분 밑에다가 술병을 숨겨 두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왜요. 속곳에라도 넣어 두지 그러셨습니까.”
“그러기에는 걸핏하면 들어와 환자복을 빨아 재끼니 방법이 없더군. 으…… 소형제, 정말 다 가져갈 건가?”
“요로결석으로 죽고 싶습니까? 그 죽음의 고통을 다시 느껴 보시게요?”
“안주는 안 먹었으니 된 거 아닌가.”
‘술도 먹으면 안 된다고! 왜 듣고 싶은 것만 들어!’
그때 황구가 컹컹, 어딘가를 향해 짖었다. 남궁운의 혁대였다.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어허, 어딜 사내가 사내의 혁대에 손을…….”
“개소리하지 마십시오.”
“거 소형제 말이 너무 거칠어졌구만.”
혁대에서 나온 것은 육포였다. 그야말로 요로결석 환자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그것이었다.
“안주도 잘 챙겨 드셨군요. 거기다가 얼마 안 남은 것 보니 꽤 많이 드신 것 같습니다.”
“커험. 소형제…… 그게 말일세.”
변명하려는 남궁운을 향해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체외충격파쇄석술(Extracorporeal shock wave lithotripsy) 가겠습니다. 이걸로 분쇄돼서 소변 배출되면 다행이고, 반응 없으면 수술 가야 해요.”
진천희는 모든 술과 안주를 압수했다. 또한 하루 세 번씩 황구가 이 병실을 ‘산책’하도록 했다.
“유호, 남궁운 환자한테 물 계속 먹여요.”
“알겠습니다.”
“외부 음식, 술 반입은 황구가 다 알아채겠지만 그래도 혹시 걸리면 저한테 알려주고요.”
남궁운은 무서운 환자였다. 그러나 황구가 더 무서웠다.
황구는 남궁운이 또다시 어디선가 빼돌린 양고기 육포를 찾아내 뺏어 먹기에 이르렀다.
* * *
시술 당일.
진천희는 남궁운을 눕혔다.
그런 남궁운 주변으로 의각원들이 둘러싸고 앉았다.
“왠지 본보기가 된 기분이군. 소 형제.”
진천희가 답했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왕 이렇게 된 거 남궁 소협을 의술의 거름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학습용인가?”
“네. 다른 의각원들도 요로결석 치료술을 배워야 하니까요.”
진천희는 모든 의각원들이 보는 앞에서 남궁운의 아랫배를 천천히 눌렸다.
“가장 좋은 건 소변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거지만 그게 힘들면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우선은 결석의 형태와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시술 전 주의해야 할 건…….”
진천희는 계속해서 설명을 해 나갔다.
사각사각-
의각원들이 열심히 진천희의 말에 따라 필기를 해 나갔다.
신기한 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붓이 아닌 흑연을 깎아서 천으로 감은 형태의 필기구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먹과 벼루가 필요 없고 필요한 것만 빠르게 적을 수 있어서 편리해 보였다.
“남궁 소협의 경우 신장과 요관 사이에 끼어 있는 형태로 요로결석으로서는 흔한 위치 중의 하나입니다. 정확히는 두 곳이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여러 곳에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 여러 번 시술을 해야 하지요.”
“소 형제, 결석이 한 곳에 난 게 아닌가?”
“저는 한 곳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좀 술과 고기를 멀리할 기분이 드십니까?”
진천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모든 의각원들에게 남궁운의 아랫배를 눌러 결석을 진맥할 기회를 주었다.
“아니, 내가 좀 술과 고기를 꿍쳐 두었기로서니 이렇게 사람을 실험대로 쓰는 것인가.”
진천희는 차분하게 답했다.
“옆 병실 환자분과 나눠 드시지 않으셨다면 이렇게까지 안 했겠지요. 덕분에 응급 수술 잘했습니다. 약간의 위기가 있었지만 환자분은 무사하십니다.”
진천희는 화사하게 웃었다.
모든 의각원들이 진맥을 하고는 뭔가 열심히 필기했다.
“그러면 다음은 체외 충격입니다. 강한 충격파를 통해 분쇄하는 과정으로 사람에 따라 따끔거리는 감각을 느끼는 분도 계십니다.”
진천희는 주먹을 부드럽게 말아 쥐었다.
“오행신공의 풍, 수를 조합하여 충격파를 사용합니다. 통배권의 묘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제대로 때린다면 장 파열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안 되겠죠?”
“소 형제. 본보기로 내 신장을 향해 통배권을 쓰진 않겠지?”
진천희는 남궁운을 무시했다.
“금이나 토기가 섞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치는 느낌이 아닌 미는 느낌을 사용해야겠죠. 유(流)의 묘리를 떠올리셔야 합니다.”
진천희는 주먹을 폈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환부를 눌렀다.
우우웅-
진천희가 집중하자 남궁운은 아랫배가 떨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찌르는 듯한 따끔한 감각도 밀려왔다.
“이 상태를 유지하며 결석을 부숴 나갑니다. 그렇게 파쇄한 결석은 소변으로 배출됩니다.”
몸에 칼을 대지 않고 하는 수술.
감탄하는 소리가 의각원들 사이에서 절로 나왔다.
실험쥐로 누워 있던 남궁운은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백룡 아우가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군.’
체외충격파쇄석술.
새로운 치료법이 이렇게 의각에 등장했다.
* * *
진천희와 스승님, 유호는 남궁운의 병실을 찾았다.
시술 후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진천희는 마지막으로 남궁운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진맥했다.
‘파쇄된 결석이 예상대로 무사히 소변으로 잘 배출되었군. 다행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자 진천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나면 기뻤다.
그건 진천희에게 있어서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내일 퇴원하셔도 되겠는데요?”
“다행이군.”
“그래도 술과 안주는 앞으로도 조심하세요. 재발하는 사람도 꽤 돼요.”
“내가 그래도 소형제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군.”
현대 지구라면 이런 입원 절차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곳은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경과 상황까지 의각에서 관리시켰다.
치료법이 좀 더 안정화가 된다면 내공을 익힌 의원이 의방에서도 시술할 수 있을 거고 그리된다면 많은 무인들을 살릴 수 있을 터였다.
‘자, 그러면 이제 이 인간을 어떻게 요리한담.’
원작에 의하면 그는 천마 여하륜에게 죽는다.
진천희는 이 사람이 어떻게든 목숨은 부지했으면 했다.
머릿속으로 하나씩 정리하고 있을 때, 지켜보던 당아가 입을 열었다.
“소백룡. 나와 대련하자.”
“독공은 전혀 모릅니다.”
이번에도 거절하려는 찰나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무공 비무를 원한다!”
“음?”
의외의 말이었다. 하지만 첫 만남이면 모를까 진천희에게는 오늘 일과가 많았다.
거절하려던 찰나 제갈린이 말했다.
“받아 보거라.”
“스승님?”
“당가의 독문 무공은 좀처럼 대련할 기회가 없단다. 성취에 도움이 될 것이란다.”
스승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진천희로서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제갈린이 한마디 덧붙였다.
“당 소저는 당가의 후기지수이자 연배에서 가장 뛰어난 독수로 손꼽히지. 아마 네가 상대했던 하오문의 추적자들과는 많이 다를 거란다.”
사파와 정파의 무공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확실히 어릴 때부터 추궁과혈과 벌모세수를 거쳐서 체질부터 문파에 맞춰 나가는 게 정파의 교육 방식.
똑같은 고수라고 해도 당 소저와 삼살추서의 싸움 방식이 다를 건 분명했다.
진천희도 궁금해졌다.
* * *
연무장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스승님과 궁귀, 그리고 유호가 참관하는 자리였다.
진천희가 목검을 들려고 하자 당아가 말했다.
“저희 사천당가의 특성에 따라 비무는 진검승부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제갈린은 씨익 웃었다.
“좋습니다, 당 소저. 대신 서로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싶으면 저나 다른 이가 중간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저희 가문 어르신도 그렇게 하니까요.”
사천당가는 기본이 진검승부였던 모양이었다.
‘하긴 암기를 나무로 일일이 깎기도 좀 그렇고.’
당아가 말했다.
“대신 독은 마비 독만 사용하도록 하겠어요. 해독제는 백린의선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작은 호리병을 제갈린에게 건넸다. 제갈린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유호, 그 검을……!”
유호는 기다렸다는 듯 진천희에게 빙정검을 던졌다.
핑그르르-
탁.
진천희는 옆을 돌아보지도 않고 검을 붙잡았다.
스르릉-
흘러내리는 검집 사이로 칼날이 냉기를 뿜으며 흘러나왔다.
당아가 말했다.
“딱 봐도 절세의 보검으로 보이는군.”
“…….”
진천희는 대답 대신 초식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당아도 그런 진천희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
“비무를 앞두고 긴말할 거 없다는 뜻인가? 역시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든다면서 어째서 싸우자는 걸까.’
진천희는 무림인의 생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아까는 분명 영락없는 청소년기의 아이였는데 초식 자세를 취하니 마치 산처럼 위압감을 가지는 게 신기했다.
‘왕각연도 이랬지.’
수천 번, 수만 번 연습한 듯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얼핏 봐서는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상대하기 어렵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