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23
제 1023화
본선이 시작되었다.
진천희의 상대는 수염을 길게 기른 건장한 노인.
나이에 비해 곧은 등과 움직일 때마다 기묘할 정도로 조용한 소리.
진천희는 그를 보는 순간, 상대가 무공을 깊이 수련한 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이번 대회는 수준이 높군.’
그때 관중석의 누군가가 외쳤다.
“선식어옹 요진이다!”
“천하백대고수 중 하나 아닌가!”
“그뿐인가? 천하십대숙수 중 한 명이 바로 선식어옹이라네!”
진천희도 그제야 사람들의 말을 듣고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선식어옹!
생선 요리의 달인이며, 특히 선식어죽으로 유명하다.
허나, 진천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가운 탕은 따뜻한 탕에 비하면 맛이 없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괜히 엄마가 애한테 국 끓여줄 때 폰 좀 그만 보고 식기 전에 먹으라고 버럭버럭 한소리 하는 게 아니다.
그 맛을 온전히 느끼려면 진짜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과연 선식어옹은 어떤 요리를 내놓으려는 걸까.’
저 정도의 고수가 아무런 대책 없이 이 자리에 섰을 리가.
진천희는 상대의 힘을 가늠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요리 시작!”
지이이이이잉-!
심판의 외침에 따라 징이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관객석에서 쩌렁쩌렁한 울림이 터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본선부터는 진천희도 용모를 바꾸지 않고, 백린의각 소각주의 자격으로 출전한다.
소각주가 싸운다는 소리에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이 자욱했다.
“일광! 일광! 일과아아아앙!”
뭔가 응원 별호가 기묘했지만 진천희는 상관없다.
반대로 선식어옹 역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이기시오! 선식어옹!”
“상대를 죽사발로 만들란 말이오!”
“일광을 아주 끝장내 버리시오오오오—!”
아무리 선식어옹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먼 타향에서 이렇게까지 응원을 받기가 쉽지 않을 터.
진천희를 응원하던 자들은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
“강호인, 강호인들이다. 강호인들이 선식어옹을 응원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일광이 거꾸러지길 바라는 거지.”
강소성에 집단 전투 금지령, 줄여서 혈사금지령이 내린 이후, 일부 강호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비무로 은원을 풀기에는 은원이 지나치게 깊고, 그렇다고 상대와 싸우고 싶어도 그 상대가 강소성을 나가지 않으면 답이 없어진다.
그러니 일광을 없애야 해결이 될 터.
허나, 무식하게 강한 이 괴물딱지를 어떻게 치워야 할지 도통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무림맹에 이야기를 보내도, 사도련에 이야기를 보내도 제대로 된 답이 오지 않는다.
결국 이 요리 대전에서라도 일광이 거꾸러지는 게 보고 싶어 모였다.
“선식어옹! 반드시 승리하시오오오!”
내공 섞인 고함이 쩌렁쩌렁 울린다.
다른 곳에서는 하늘 같은 태수님의 상대편을 응원한다는 건 목 달아날 일이지만 강소성에서는 괜찮다.
칼을 들지 않으면 진천희는 내버려두는 편이고, 또 강호인이라는 게 이 정도까지 억누르게 되면 반드시 요철처럼 튕겨 오르기 마련이니까.
‘뭐, 사실 이것도 좀 슬슬 한계긴 하지.’
강소성에서는 크고 작은 혈사를 모두 다 금지시켰다.
현대인에게는 당연히 사람이 죽는 일인데 왜 이 짓을 하냐고 할 일이지만 강호인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억압이 되는 상황이니까.
피식-
진천희는 기가 죽기는커녕 작게 웃을 뿐.
그리고 미리 준비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호박을 꺼내서 자른다~! 껍질은 그대로 두고, 그 속을 파내어 끓이기 시작!
거기에 설탕을 살살 넣은 후. 중간에 잣과 대추를 넣고 이번에는 뭉근하게 익혀 낸다.
조리 방법은 그야말로 간단!
중요한 것은 재료의 배분.
진천희는 진지하게 양을 맞추고, 진하지 않고 맑은 느낌의 국물 형태로 만든 후 냄비를 꺼내 찬물에 냄비를 담갔다.
열 빼기!
냄비가 제법 빠르게 식는다.
그다음 과정으로 호박 스프를 그릇에 담은 후 유호 빙고에 넣으면 끝!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사회자, 무화가 소리쳤다.
“어어? 진 숙수는 벌써 끝입니까?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만! 선식어옹은 엄청난 속도로 생선의 살과 뼈를 발라냅니다!”
지난번 사회를 보았을 때 평이 좋아서 다시 한번 초빙받았는데 전보다 더 단련된 음공으로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무화가 가리킨 곳을 모두가 바라본다.
“홀홀홀홀, 요즘 젊은이들은 요리를 너무 쉽게 만들려고 하는군. 진 숙수도 다를 바가 없어 보이니 앞날이 걱정되는구만.”
그리 비판하더니.
선식어옹은 엄청난 속도로 생선 뼈를 발라내고 그걸로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 칼끝의 정밀함은 그야말로 일절!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절륜한 속도로 다른 재료들도 다듬어내기 시작했다.
탁탁탁탁탁!
그 모습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려하구만.”
“선식어옹의 진짜 요리 실력을 이렇게 견식하다니.”
“그에 비해 일광은 이번에는 너무 소박하지 않나.”
일광은 유호 빙고 앞에 앉아서 차를 즐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자. 요리 끝!”
대애앵!
선식어옹이 먼저 요리를 완성했다.
“오오, 붉은 국물의 차가운 스프로 보이는데요?”
무화의 말에 선식어옹이 답했다.
“냉홍연근어탕(冷紅蓮根魚湯)이오. 맛있게 드시오!”
번역하면 ‘차갑고 붉은 연근 생선국’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각 접시가 사람들 앞에 내려앉는다.
“호오, 탕 요리라. 어디어디…… 한번 볼까?”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곽 장자.
그는 강소성에서도 손꼽히는 미식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으며, 백린 배달을 가장 먼저 사용한 자이기도 했다.
그가 아침마다 백린객잔에서 만두를 먹는다는 사실이 퍼지자 다른 장자들도 그 호화로움을 즐기기 위해 같이 시키지 않았던가!
삼학사가 ‘흐름을 따르는 자’라면.
곽 장자는 ‘흐름을 만드는 자’.
어찌 보면 삼학사의 상위 호환일 수도 있겠다.
그는 국을 한입 떠먹더니 눈이 커졌다.
“이 맛은……?!”
그리 말하며 잠시 말이 멎는 게 아닌가.
심사위원단의 목소리는 진법으로 인해서 장내에 크게 울린다.
진천희가 이건 무협의 신묘한 진법이라고 하기보다는 약간 자연의 kiiiii를 이용한 오페라하우스 같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나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어찌 되었건 양민인 곽 장자의 목소리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
관중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곽 장자를 바라본다.
하나, 곽 장자는 말하기도 전에 한입 더 떠먹고 있다.
“…….”
아니, 대체 무슨 맛이기에 말없이 떠먹고만 있는 건가!
그걸 지켜보던 제독태감이 홀홀 웃으며 같이 떠먹더니 이렇게 말했다.
“홀홀홀, 살짝 매콤하면서도 생선의 농후한 맛이 잘 살아 있는 요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차가운데도 강렬한 이 맛이라니!”
개방의 태상장로 일걸도 떠서 입에 먹는다.
“음! 본디 병자에게는 차가운 국을 떠먹이면 안 되나, 이것은 다르지. 안에 들어 있는 약재들과 농후하게 익은 생선 살까지. 그 모든 것들이 환자의 기력을 보양하라 주장하고 있네. 오히려 입으로 불어 식혀 먹을 필요가 없으니 바로 먹일 수 있고 말이네.”
무영투괴도 한마디 덧붙였다.
“이 음식! 본좌가 훔쳐 먹을 만하군!”
무전취식을 하겠다는 말을 당당히 하였으나, 그 의미는 크다.
오오오오옷!
그 말에 평소 몸이 안 좋은 양민들과 노인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연 선식어옹이오!”
“그렇지. 탕의 본질은 결국 위장을 보하는 데 있지 않소!”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주왕에게 향했다.
후룹-
그녀는 상석에서 조용히 선식어옹의 탕을 먹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평을 줄까.
이윽고 주왕이 말했다.
“음…. 나는 좀 심심한데……?”
어어어어어어억?
심사의원은 물론이거니와 관객석의 모두가 입을 쩍 벌린다.
주왕은 생각했다.
‘아니, 뭐. 솔직하게 말하라며? 다들 솔직하게 말했잖아.’
지금 모인 자들 중 주왕의 나이가 가장 젊다 할 수 있었고.
살아 있는 군신(軍神)이라 불리는 그녀가 이렇게 약선 탕을 먹을 일은 거의 없다.
애초에 숙취로 속이 쓰린 일도 거의 없는 사람이 자신인데 뭐 어쩌란 말인가?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좀 허전하다.”
쿠웅!
선식어옹의 눈이 커진다.
‘어, 어찌하여…… 주왕 전하……?’
그것을 단번에 눈치챈 자는 역시나 제독태감이다.
제독태감이 턱을 쓸며 빠르게 말했다.
“뭐, 아무래도 보양식이니 말입니다. 주왕 전하께서는 정정하시니 몸을 보할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래도 먹다 보니 더워지는군. 분명 시원한 탕인데 몸이 더워지는 게 참 이상해.”
그래도 나쁜 평은 아니었다.
거기다 주왕을 제외한 나머지 심사위원 모두 매우 좋다는 평을 남긴 건 사실이니!
선식어옹이 말했다.
“어떠냐, 천하진일광. 네놈이 비록 제갈세가의 직계로서 만두로는 천하제일일 수 있으나, 다른 요리에서 이 선식어옹 어르신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야!”
기세등등하게 진천희를 노려본다.
그때.
저벅-
선식어옹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진천희.
그저 그릇을 옮겨 걷는 것뿐인데, 그 첫걸음 소리가 기묘하게 선식어옹의 뇌리에 박혔고.
그 후에는 그 어떤 걸음 소리나 기척도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마치 세계를 오려 붙인 것 같은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선식어옹은 깨달았다.
‘보법이 신선의 경지에 다다랐구나!’
그저 그릇을 들고 옮기는 것뿐인데도 마치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듯한 감각.
이만큼의 경지를 보이는데도, 모두의 시선은 진천희가 들고 있는 그릇에만 고정될 뿐.
정작 그런 절륜한 무학을 보이는 진천희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노오오오옴. 대체 어떤 깨달음을……! 아니, 그리고 그 정도의 무학을 고작 그릇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용으로만 쓰는 거냐?’
참고로 선식어옹 본인은 검기로 생선살을 바른다.
무림의 광인이란, 자기가 했던 미친 짓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법.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며, 진천희는 접시를 내려놓았다.
탁.
가볍게 쟁반을 흔들자 그릇이 회전하며 날아가 심사위원석에 자리를 잡았다.
핑그르르-
그릇이 한 바퀴 돌았건만 안에 든 음식이 출렁이는 법도, 넘치는 법도 없었다.
그 모습에 선식어옹은 한 번 더 놀랐다.
‘허공섭물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절묘한 무학을 손목에 담아 던진 것이야.’
쾌, 강, 유의 모든 무학이 저 손목질 하나에 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 솜씨로 암기를 던졌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천하를 평정했을 터.
‘왜 이런 놈이 여기서 요리나 하고 있는 거지?!’
참고로 선식어옹 본인은 열양기로 재료를 가열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오우, 제가 내놓을 요리도 국물 요리인데 공교롭긴 하군요. 제 요리는 이겁니다!”
금향남과탕수(金香南瓜糖水)!
진천희가 그 이름을 말하자 모두의 고개가 살짝 갸우뚱했다.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에.
진천희가 심사위원들을 향해 말했다.
“드셔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