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27
제 1027화
“우선 한빙량피면을 각 심사위원에게 보냅니다.”
그렇게 건헌이 만든 요리가 모두의 앞에 차분히 내려앉았다.
“우선 한빙량피면을 먹어 보겠소.”
꿀꺽-
심사위원들의 입에 벌써 침이 고인다.
그도 그럴 수밖에.
량피면은 건헌의 주특기.
그동안 아끼고 아끼다가 이번에 꺼낸 것은 무슨 이유겠나.
진천희 소각주를 이기겠다는 바로 그 결의 때문 아닌가.
이윽고 젓가락으로 면을 넣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매콤함.
그것도 마라가 들어간 시간차공격이 향긋하게 혀를 적시기 시작했고, 그 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상큼함.
희미한 상큼함이 뒤를 시원하게 식혀주었으며 땅콩 가루가 어금니 사이로 씹히며 대지의 혼을 보여준다.
“이런 맛이?!”
“세상에! 고작 량피면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한빙량피면? 기존 량피면에 이런 조화를 내다니!”
심지어 주왕조차도 한빙량피면을 먹고는 침음을 내뱉었다.
‘더 볼 것도 없군. 이번에는 아우의 패배다.’
고작해야 행인두부 아닌가.
이 량피면이 만들어낸 중량감을 이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야말로 이건 ‘진짜배기’니까!
모두의 표정이 이 량피면에 감복하는 것을 느낀다.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젓가락을 휘두르고, 휘두르고, 휘두르다가.
탁!
바닥에 걸려 더는 면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이, 이럴 수가!”
“면 추가 안 되는가!”
“진정하게. 이다음 요리도 남지 않았는가!”
“크윽. 아쉽구나……. 대회만 아니었어도 본괴가 싹 다 훔쳐 먹었을 것을.”
심지어 투괴 어르신은 절도 예고도 날렸다.
건헌이 말했다.
“걱정 마시지요. 제가 우승하게 되면 100인분을 만들지 않습니까. 심사위원분들을 위해 각자 3인분은 능히 말아드리겠습니다.”
“오오오옷!”
태상방주 일걸은 벌써부터 귀가 팔랑거렸다.
심사위원으로서의 공정성조차 잊어버릴 정도의 맛.
이 맛은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하다.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나는 그 순간.
“드디어 다 드셨습니까?”
진천희가 묻자, 모든 심사위원들이 미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 먹었소.”
허나, 그 눈빛은 더는 심사를 볼 필요도 없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기는 미안하게 됐군.’
허나, 이 량피면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천희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면 차를.”
진천희의 말에 심판이 고개를 끄덕여 깃발을 들자, 입을 씻을 차가 각 심사위원 앞에 내려온다.
우롱차. 가장 기본적인 차다.
소화를 돕고 입을 씻는 것도 도와준다.
빙호지회지만 차만큼은 따뜻한데, 그것은 화 제국에서 차가운 차는 위장을 해친다는 보편적인 인식 때문일 터.
심사위원들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부탁드립니다.”
시원하게 식힌 행인두부가 탁, 놓인다.
“호오……?”
행인두부 위에는 땅콩 가루로 꽃을 그려놓았다.
“살구꽃인가?”
“보통 행인두부는 따뜻하게 먹는 요리일 텐데?”
“시원한 식감이라. 어디 어울리는지 볼까?”
그리 말하며 한입 먹는다.
그 순간…….
행인두부 안에 층층이 스며있던 꿀이 혓바닥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니, 이 어찌?!”
농후한 우유의 향은 천상의 것과 같았고, 그 속에 스며있는 꿀은 필시 행인두부 안에 층을 만들어서 꿀을 터뜨린 것.
그 순간, 태상장로는 보았다.
눈앞에서 천인들이 소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을!
“이런, 이런 맛이 있는가!”
거기에 뒤끝은 상큼하게 끝나는 게 살구의 향이 농후했다.
“입 안에서 살구꽃이 피는구나!”
“우유가 이렇게 농후할 줄이야!”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행인두부는 없어져 있었다.
‘아니, 언제 다 먹은 거지?’
분명 배가 부르지 않았던가?
량피면 한 그릇이 얼마나 푸짐한지 배가 다 차서는 더는 못 먹겠다 싶은 포만감이었다.
허나, 그것을 싹 내리며 행인두부가 입 안에 철석 들어간다.
“맛있다, 염병할. 소각주는 음식으로 또 무슨 마법을 부리는 거지?”
“행인두부가 왜 이리 적은 것이오! 후식이라고 해도 더 크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소!”
버럭 항의를 해보지만 대회는 냉정하다.
봄의 진법에라도 갇힌 기분.
행인두부를 먹는 순간 혀 안에서 탁 터지던 봄의 촉감이 아직도 선연하다.
편도(扁桃/아몬드)의 고소한 향도.
“심사위원분들은 점수를 매겨 주십시오!”
그 말에 심사위원들의 이마가 찌푸려진다.
“어렵군. 이번 싸움은 어려워.”
“중량감의 량피면과 공기감의 행인두부라. 하나는 너무 무겁고, 하나는 너무 가벼우니…….”
그때 주왕이 입을 열었다.
“마치 땅과 하늘의 싸움 같구나.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 정신이 아찔하구나!”
하늘을 뜻하는 글자인 건(乾)과 땅을 뜻하는 한자인 곤(坤), 둘이 만나 승부를 벌인다(一擲)!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주왕은 곧바로 고사를 찾아내어 읊었고, 관중들은 환호했다.
우오오오오옷!
과연 시를 쓰기 좋아하는 주왕다웠다.
호사가들은 주왕이 읊은 시구를 급히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것과 별개로 주왕의 이마에도 주름이 진다.
모든 심사위원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다.
“제한 시간 완료! 심사위원들은 표를 제출해 주십시오!”
“으……. 미치겠군.”
곽 장자가 혀를 차더니 결국 이름 하나를 썼다.
그것은 무영투괴도, 태상방주도 마찬가지.
주왕도 냈고.
오히려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제독태감이었다.
그는 이미 표를 낸 후였으니.
이윽고…….
찰나 같은 영원이 지나간다.
무화는 종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 무슨……?”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작게 중얼거린다.
이윽고 그녀는 결심했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3대 2! 그동안은 거의 만장일치로 결정이 나던 승부가 이렇게 갈릴 줄은 몰랐습니다.”
우오오오오오!
관객들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본다.
삼학사도 마찬가지. 양 주먹이 끈적했다.
모두가 무화의 입에 집중이 된다.
무화가 말했다.
“승자는… 승자는…! 백린의각 소각주 진천희!”
그 소리에 모두가 눈을 부릅뜬다.
예상의 뒤집는 반전의 반전!
우와아아아아아아—!!
“건곤일척(乾坤一擲), 하늘과 땅의 싸움에서 하늘이 승리하였습니다!”
그 말에 건헌이 주저앉았다.
“이, 이럴 수가! 내 량피면이 패배하다니!”
그와 동시에 진천희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엄 숙수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진천희가 이겼다는 것은 결국 다음 승부는 스승과 제자.
세기의 대결이 시작됨을 의미했으니까!
‘준결승까지 오니 이제 슬슬 버거운걸?’
진천희는 땀을 닦았다.
* * *
이제 남은 것은 결승전.
다음 날.
두 요리사는 만전을 기해서 단상으로 올라왔다.
무화는 결승전답게 가장 화려한 의상을 입고 올라왔으며, 강호인들 중에서는 그런 무화를 추종하는 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결승전을 진행합니다. 이 대회도 막바지. 긴말을 나눌 필요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결과일 터이니!”
그녀의 내공 섞인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다들 주먹을 쥐고 기대한다.
“진 소각주의 제자를 자처하는 엄 숙수! 그리고 제갈세가의 직계로서 요리 자부심으로 뭉친 진천희 소각주!”
진천희와 엄 숙수가 모두 손을 들어 인사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자, 그러면 각자 한 말씀을 해주시지요.”
진천희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의 은(恩)을 제자가 갚았던 일이, 이렇게 또 새로운 즐거움으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진천희의 눈빛을 바라보는 엄 숙수는 결연했다.
“제 요리 사부는 누가 뭐래도 진천희 소각주님이십니다. 반드시 뛰어넘어 제 요리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이길까.
확실한 것은 누가 이기든 이 승부는 강호사에 길이 남을 것이 자명하다는 것.
“그러면 결승전을 시작해 주십시오!”
지이이잉—!
* * *
엄 숙수 vs 진천희.
엄 숙수는 고기들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닭. 소. 돼지. 양.
서로 다른 고기들을 모두 한 요리에 담기 시작한 것!
그야말로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었다.
이것들을 썰어내는 데 내가기공이 사용되며 고기들의 생생함이 살아난다!
이거야말로 활검(活劍). 아니. 활식칼(活食刀)!
그렇게 다듬어낸 고기들을 여러 가지 향신료를 듬뿍 넣은 곳에 넣고 조린다!
탕!
그다음 꺼내서는 한번 불로 굽기까지!
“그다음 냉장고로 직행하나요? ……직행합니다!”
그사이, 진천희는 냉장 숙성육을 꺼낸다.
‘좀, 아까운 짓을 해볼까?’
그 냉장 숙성육을 이용해 육수를 끓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내 관점에서는 새끼 돼지 고기를 쓰는 것보다 냉장 숙성육으로 육수 만드는 게 훨씬 더 사치지.’
아니나 다를까, 관객석에서 ‘저 아까운 걸! 왜 안 굽고!’ 하며 이마를 짚는 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닭 목을 꺼내서 그대로 삶는 게 아닌가.
“설마 두 개의 육수를 섞는 건가요–?”
지구에서는 더블 수프라고도 부른다!
거기에 비장의 재료.
양의 뼈를 고아서 만든 육수까지 더한다!
트리플 수프!
엄숙수가 네 가지 고기로 요리를 만든다면, 진천희는 세 가지 육수로 요리를 만들고 있다.
“고기 대 육수의 싸움!”
그렇게 끓인 국물이 빙고로 직행한다.
빙고에서 식는 동안 곧바로 면을 뽑기 시작했다.
‘오행진기를 사용해서 반죽에 탄력을 더하고, 그것을 수타면의 중면으로 뽑는다!’
그 순간.
우우우웅-
진천희의 푸른 눈과 함께 그의 손부터, 칼까지 모든 것들에 예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헉?!”
태상방주는 보았다.
진천희 주변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다양한 색으로 세상이 조금 물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마 저 미친놈이 현경의 경지를 요리에 붓고 있는 건 아니겠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허나, 이놈은 신검합일의 경지를 양장피 만드는 데 쓰는 놈이었다.
그렇게 면을 뽑아낸 후.
그냥 물이 아닌, 아까 만들고 남은 육수에 면을 삶기 시작한 것!
엄숙수와 진천희 모두가 요리에 서두름도, 느긋함도 없이 정확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을 분배했다.
그 전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들기 위해 기를 썼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묘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리 시간 종료! 오, 이번에는 간발의 차이로 소각주님이 먼저 완성했군요. 무슨 귀계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걸 본 무영투괴 어르신이 평했다.
“그냥 면 요리는 불으면 맛이 없어서 먼저 한 거 같은데?”
그 말에 진천희도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없는 간단한 이야기였다.
‘아니. 왜 국수 좀 마는데 귀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난리야.’
대체 강호 놈들은 자신을 뭘로 보고 있는 건가 서러워질 지경.
그래도 표정을 바꿔 요리를 내놓았다.
“초계우양골면(醋鷄牛羊骨麵)입니다! 드셔 보시죠!”
직역하면 ‘닭과 소고기, 그리고 양의 뼈로 육수를 낸 국수’라는 뜻.
양념은 식초 위주로 넣었다.
굳이 말하면 이것은 지구 별 한국의 초계국수의 어레인지 요리!
초계국수는 한국에서도 여름 별미로 잘 알려진 냉면 요리 중 하나.
몸보신 요리이기도 하다.
여기에 동충하초를 넣는 집도 있는데 진천희는 세 가지의 뼈를 사용해 트리플 수프 방식으로 만들었다.
“의외로 요리가 너무 단출하다 할 수 있겠는데.”
“흠, 그동안 일광이 보여준 요리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신선하지 않았소?”
“그랬지. 단호박을 이용해 어릴 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거나, 바로 어제는 행인두부를 이용해 흥미를 만들었다네.”
“혹시 초심을 잃은 건가……. 일광.”
심사위원들은 걱정하며 한마디씩 했다.
허나, 진천희는 그저 웃을 뿐.
‘소각주. 설마 여기까지 와서 제자에게 져줄 생각인 것이오?’
그 순간.
우우웅-
태상방주의 눈이 살짝 커진다.
‘여전히 색이 변하고 있다?’
요리 때 잠깐 펼치고 끝나는 줄 알았다. 허나, 그게 아니었는지 여전히 진천희 주변으로 색이 변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풍경이 변하였기에 보통은 보기 어렵다.
그저 햇빛의 반사광 정도로만 생각할 테니, 조금만 더 떨어져 있어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깨달음이 없는 양민은 더더욱 보는 것은 무리일 테고.
바람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는 머리카락.
‘설마 이놈 여전히 현경의 깨달음을 유지하고 있…… 그럴 리가. 요리는 이미 끝났는데?’
그제야 말도 안 되는 가능성에 다다랐다.
‘설마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한 게 아니라 그냥 요리하다가 무아지경 속에 깨달음이라도 얻기 시작한 건가?’
그것도 현경의 깨달음.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요리하다 말고 탈각하여 설마 신선이라도 될 모양이오?’
생사의 기로 속에서 무학에 몸을 던진 것도 아니고 무슨 놈의 초계국수 만들다가 깨달음을 얻고 지랄이란 말인가!
‘야, 이 미친눔아?!’
우우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