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3
제 103화
진천희는 직감적으로 당아가 상당히 강한 상대임을 눈치챘다.
그동안 상대해 왔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승부가 될 거라는 것도.
심판 궁귀가 말했다.
“사천당가 당아! 무기는 철편과 암기, 백린의각의 진천희, 무기는 빙정검! 그러면 시작!”
궁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진천희는 내공을 사용했다.
마치 주변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현원전단신공.
사고 가속.
뇌를 이상 발달 시키는 현원전단신공은 전투 시 생각 속도 자체를 빠르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감각적으로 주변의 사물이 느리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진천희가 그렇게 많은 목각 인형의 주먹질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현원전단신공 덕분이었다.
‘보여도 못 피하는 것만 어떻게든 하면 된다.’
물론 사고가 가속된다는 거지 무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목각 인형이 날리는 공격 중에는 알고도 대응하기가 어려운 경우의 수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공격은 피할 수 있다.
‘이걸로 삼살추서 때도 쉽게 이겼지.’
세 명이 합쳐서 절정 고수를 이길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지만 수읽기에 앞서는 진천희가 우세한 것은 사실이었다.
‘암기와 채찍이라. 어떤 종류의 무공인지 경험해 본 적이 없어. 그러니 처음은 신중하게 가 볼까.’
진천희는 가볍게 선공에 들어갔다.
태을단선검.
일초식.
선운지로!
분명 찌르기이지만 칼을 쥔 손의 움직임이 흡사 구름처럼 부드러웠다.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검에 숨겨진 변화는 6가지나 된다.
상대의 무기에 닿는 순간 이 6가지 중 하나로 검초가 변화해 공격한다. 단순히 변화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빠름은 찰나와도 같았다.
“오오, 대단하군.”
지켜보던 남궁운이 탄성을 질렀다.
‘어디 이걸로 잽을 걸어 볼까?’
검을 찔러 넣는 순간, 사고 가속 상태인 진천희의 눈에도 빠르게 보일 정도로 당아의 손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뱀……?’
옷 안쪽 팔에 감고 있던 채찍이 튀어나온 것.
카강!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그 순간, 채찍이 그대로 검을 감아 조이려고 했다.
그것을 감지하는 순간 진천희는 재빨리 변초를 주어 검을 빼냈다.
“쳇! 보통은 이 일합에 정리되는데 말이야.”
당아가 혀를 찼다.
그녀의 채찍이 휘리릭, 그녀의 몸을 감싸듯 휘어졌다.
남궁운이 말했다.
“당 소저가 아쉽게 되었군. 고작 무공을 배운 지 2년 차인 소형제에게 일합이 막히다니 말이야.”
“뭐, 2년?”
놀라서 진천희를 노려보았다. 그걸 들은 남궁연도 놀랐는지 눈을 홉떴다.
“듣기로는 그렇다 들었는데 어떤가? 소형제, 진짜로 2년인가?”
진천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식은땀이 조금 흘렀을 뿐이었다.
‘잠깐의 충돌이었는데 손목이 울려. 걸음마 전부터 무공을 배워 왔다는 건 이런 거구나.’
세가의 힘을 이렇게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거기다가 채찍. 이쪽은 전혀 상대할 기회가 없었어. 생소하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뜻도 된다.’
일합 만에 끝냈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진천희도 현원전단신공이 아니었다면 대응하는 게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녀가 씨익 웃었다.
“암기의 명가라지만, 본가의 다른 무공도 보통이 아니라고? 오늘 봉인을 푼 내 흑염룡이 피에 젖겠군. 재미있겠어. 크크크큭!”
그녀가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광소했다. 그 모습을 남궁운이 애잔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당아야. 어른이 되고 나서 어쩌려고 이렇게 업을 쌓느냐. 너도 결국 당가의 다른 어르신들처럼…….”
“크핫, 크하하하하하!”
이불을 찰 것이다. 분명 이불을 찰 것이다.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어린 날의 수치심을 상대로, 당문 무공을 탓하며 머리를 가끔씩 쥐어뜯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아에게 먼 이야기였다.
성장기 그녀의 뇌는 호르몬과 당가의 독문 내공이 지배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그 광경을 보는 진천희는 차분했다.
‘마공에 이성을 잃은 것 같지는 않은데 당가 내공의 부작용인가.’
의외로 정확하게 당아를 진단했다.
‘지구에서도 소아과 그만 다니고 싶고 일반 외과 보내 달라는 아이들이 딱 저 정도 나이지.’
오랫동안 지병이 있는 아이들은 소아과에서 쭉 외래 진료를 받는다.
어릴 때야 별생각이 없지만 차츰 머리가 굵어짐에 따라 소아과에서 어린 아기들 사이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게 부끄러워지는 때가 온다.
그때가 보통 저 당아의 나이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그때 아기들 사이에서 쪽 팔린다는 이유로 부모님 손을 억지로 일반 외과로 잡아끌곤 했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당아라는 이름은 없었는데 아명이거나 별호로 불리는 상태인가?’
채찍을 쓰는 당가 고수가 등장한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별호로만 언급되어 같은 사람인지는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삽화가 있는 소설도 아니었고 고작 몇 줄 안에서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사고 방향을 바꿔 보자. 소설에서 채찍에 대해 어떻게 묘사되어 있었지?’
채찍.
현실에서는 검이나 창에 비해 살상력이 높은 무기라고 할 수 없지만, 무협 세계에서는 내공으로 채찍을 살아 있는 것처럼 조종이 가능하다고 언급되어 있었다.
실제로 강호 십 대 고수 중에 혈편왕이라는 무공 고수가 존재했다.
편공의 고수로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열 명 중의 한 명이었다.
‘이자가 당아인지를 모르겠네.’
아무튼 채찍은 그만큼 강력한 무기였다.
거기다 만약 당아가 혈편왕이라면 진천희는 미래의 천하 십 대 고수를 상대로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애초에 내가 무공으로 누군가와 대련한 경험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이건 많이 까다로운걸? 믿을 건 결국 현원전단신공뿐이군.’
현원전단신공의 두 번째 효능.
그것은 압도적인 기억력이었다.
그걸로 책의 내용을 빠르게 떠올리고 상대의 공격 패턴을 기억해서 바로 임기응변으로 막는 게 가능했다.
역대 제갈가의 사람들이 무공 파훼식을 빠르게 만들어 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선 시간을 끌어 볼까!’
진천희는 검을 당겨 수비의 자세를 취했다.
“먼저 안 와? 그러면 간다!”
당아가 공격에 들어갔다.
진천희는 당아의 공격 하나하나를 쳐 내며 막아 내기를 시작했다.
당아의 공격 사이로 암기가 들어왔다.
카가강-
그것을 막아 낼 때마다 주변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마비 독이었다.
‘이거 알고도 못 피하는 수인데?’
목각 인형들의 공격이 떠올랐다.
철편 때문에 몸을 피하면 암기에 당하고, 막아 내면 독무에 당한다.
오행신공을 운기하며 독을 해독하고 있지만 고명한 당가의 독은 진천희의 예상보다 상당히 복잡한 형태였다.
‘그렇다면 공격인가.’
진천희는 검을 쥔 손을 바꿨다. 방어 일변도인 상태에서 반대로 공격으로 바꿨다.
이건 당아도 몰랐는지 그녀가 눈을 홉떴다.
그녀의 철편을 쳐 내는 데 성공하고, 그녀의 목젖을 향해 검초를 날리려고 했다.
이대로 찔러 들어가면 끝이다.
치명타에 들어가기 전에 스승님이 나설 줄 알았는데 스승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잠자코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스승님……?’
그 순간 진천희의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엇?’
몸이 삐걱거린다. 신경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뻣뻣하게 굳은 몸은 더 이상 진천희의 의지를 거부하고 멈추었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게 마치 다른 사람 몸 같다.
앞에서는 당아가 크크큭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본문의 어둠이 소백룡을 잠식하기 시작했나? 길었군.”
‘독? 운기만으로는 해독하기에 부족했나?’
그렇게 몸이 딱딱하게 굳는데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쉬워할 건 없단다. 2년의 수련으로 당문의 후기지수에게서 수백 초를 이끌어 내다니. 심지어 첫 비무에서 말이다.”
자랑스러워하는 말과 함께 당아의 철편이 진천희를 강타했다.
“울부짖어라, 나의 흑염룡이여!”
빠아아악!
진천희의 몸이 떠올랐다.
승리한 당아가 분노로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악! 이게 겨우 2년이라고?”
진천희의 마지막 검수는 그녀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만약 당문의 마비 독이 느렸다면 진 건 그녀였을 터였다.
“헉, 허억…….”
당아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2년 아니죠? 백린의선님.”
그 말에 제갈린은 능글맞게 웃었다.
“2년이 맞단다. 실전 경험은 이제 겨우 두 번 정도이려나. 개방의 선대 방주님을 살리기 위해 흑의인 사이로 도망친 게 첫 번째. 하오문의 잡졸들을 상대로 강호행을 한 게 두 번째니.”
백린의선의 입에서 진실이 나오자 모두가 경악에 빠졌다.
심지어 2년이라고 먼저 말한 남궁운조차 입을 벌렸다.
“알고는 있었는데 저 정도일 줄은 몰랐군. 사실상 그러면 이런 비무는 처음인 건가?”
진천희는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에 마비 독을 전부 해독한 모양이었다.
그걸 본 당아는 더 놀랐다.
“코끼리도 쓰러지는 양을 넣었는데 저걸 어떻게 그사이에 해독한 거지?”
남궁운이 말했다.
“신기하긴 하군. 내공이야 영약으로 해결했다고 쳐도 검초도 판단력도 처음 싸운 것 같지가 않으니…….”
진천희가 말했다.
“졌네요. 스승님.”
“그거 보라지 않았느냐.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후후후.”
진천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말 맞는 거 같아요. 진 건 아쉽지만.”
그러면 이길 생각이었냐.
당아는 진천희를 봐주지 않았던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졌다면 당가에서 직접 불러서 폐관 수련을 시킬 만큼 개망신이었으니까.
반면 진천희는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아, 목각 인형! 해답을 찾았어.’
보이는데도 피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진천희는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짧은 깨달음이 짜릿하게 척추를 강타했다.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으로 이 느낌을 빠짐없이 기억했다.
스승님이 진천희에게 말했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냈구나.”
“네!”
“외공을 단련시키려면 유호가 고생 좀 하겠군.”
그 말의 의미를 진천희는 알고 있었다.
‘이제 전처럼 목각 인형한테 처맞진 않는다!’
과연 그 말대로 진천희는 목각 인형의 합격을 무사히 피해 낼 수 있게 되었고, 진검으로 세 대 모두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유호는 다시 목각 인형을 고치고 개량하기 위해 몸을 갈았다.
외공은 맞아야 느는 법.
진천희를 패야 하는 이 상황과 이해관계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