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34
제 1034화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별거 아니야. 그냥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어.”
진천희는 ‘활인천마’에 대해 열심히 얼버무린다.
쌓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져 쌓아왔던 삶이 너무나도 깊고.
하지만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왕각연은 웃는다.
이제 그녀의 손에 묻힌 피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많은 이들을 죽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을 잃었고.
과거 자신만의 별호를 얻기 위해 뛰쳐나갔던 작은 여자아이는 궁왕이라는 별호 대신 업(業)을 쌓았다.
이 업이 쌓이고 쌓여 업보(業報)가 되고, 언젠가는 자신의 목도 그 업보란 괴물에 삼켜질 것을 알고 있다.
왕각연은 깨끗한 말년을 바라지 않는다.
허나, 그 끝에 협(俠)이 있기를 바랐다.
“모용세가는 어느 순간부터 양민들을 수탈했어.”
“음?”
“갑자기 모용세가의 부름을 받고 한 마을이 전부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
“관은……?”
“신고를 했으나 움직이지 않아. 알잖아. 모용세가 정도 되는 명문 대파는 관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거기다가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더 그렇겠지.”
“……그렇구나.”
“그 마을 중에는 공손세가 무인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곳도 있었어.”
“그 부모는 못 만난 거야?”
“편지는 왔지만……. 응. 역시 이상했어. 서신의 필체가 다르다고 하기에는 애초에 글을 몰랐던 부모라 대필해주는 사람을 바꿨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였다.
“하지만 지금은 몰라. 그 무인은 부모를 찾다가 모용세가에 무례를 범한 죄로 죽었지. 그리고 그 녀석은 내 친우였고. 내 목숨을 한 번 구명한 적도 있었고…….”
왕각연은 활을 손질하며 말했다.
“그 친구가 쌓았던 업(業)을 이제 내가 완성해야지.”
“공손세가에는 너 같은 무인들이 많니?”
“나는 친우를 잃은 것뿐이고. 모용세가에 가족을 다 잃은 무인도 있어.”
아아, 용서란 이 얼마나 기계적인가.
이곳은 진천희의 땅이 아니다.
강호이고, 은원이 숨 쉬는 곳이었다.
이 업의 끝에서 왕각연이 말했다.
“그 부모님이 어떻게 생겼고, 이름도 뭔지 알아. 놀러 갔을 때 떡을 구워주셨거든.”
“그러면…….”
“응. 떡값은 해야지. 어쩌겠어.”
왕각연은 여상하게 말한다.
그녀의 눈이 매와도 같았다.
“하지만 너는…….”
“……모용세가에서 암살자를 보내서 날 죽이려고 한 적이 있긴 하다.”
예전 북해빙궁으로 향할 때 모용세가, 황보세가, 하북팽가가 세트로 살수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음, 너야 원한은 충분하겠군.”
“사람 죽이려고 보냈는데 좋은 감정은 없지.”
“그럼에도 생각보다 덜 화를 내고 있고.”
“나 죽이려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좀 헷갈리기는 해.”
왕각연은 그 말에서 진천희의 고난 길을 보았다.
진천희가 쓰게 웃었다.
“어쨌든 나는 선인은 아니야. 그냥 내 손에 닿는 선에서만 움직이는 게 좌우명이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손이 너무 넓고 많지 않나?
왕각연은 그걸 말하려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게 또 천희지.’
두 사람은 그렇게 출발했다.
속도를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황구의 등 위에 타고 이동했다.
삐이이이이-
하늘에서는 뇌진이 정찰하고 있다.
비전투 가솔들은 전부 본가에 모여 있고. 주력 전투 부대는 백호당과 주작당으로 나뉘어서 움직이고 있지만…….
정보 조직만은 아직 복귀하지 않고 활동 중인 상황.
전서구가 빠르게 진천희에게 서신을 떨어뜨리고는 다시 멀리 사라진다.
“암호네. 뭐라고 쓰여 있어?”
“공손세가 암호인데 각연아, 네가 먼저 해석해야 하지 않니?”
“귀찮아. 거기다 몇 번 암호 틀린 이후로는 공손현 언니, 아니 가주님도 나한테 보낼 거면 대충 써서 보낸다고. 그러다 몇 번 서신을 탈취당한 적도 있긴 하지만.”
“…….”
책사의 고통이 느껴진다.
왕각연도, 동생인 공손영도 뇌까지 근육인 강호인 아닌가.
암호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진천희가 해석해 주었다.
“정보 조직 쪽 정보에 의하면, 서음(西陰)이라고 하는 마을에 모용세가의 무인 수백여 명이 진입했다고 하네. 그것을 먼저 처리해 달라고 하는데?”
그리 말하며 원향반을 꺼내더니 황구의 목을 탁탁 친다.
“오, 뭐야? 엄청난 귀물로 보이는데.”
“모산파에서 일을 해주고 대가로 받았지. 원하는 물건을 가리키는 지보 중의 하나이긴 한데…….”
자르르륵-
“음, 다행히 상대가 추적을 막는 주술을 쓰는 건 아닌 모양이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냥 빙글빙글 돈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그런 게 아니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겠지.
진천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황구 볼을 만지자, 황구가 알았다는 듯 방향을 빠르게 틀었다.
탁, 타다닥!
거대한 개가 유턴하자 두 사람의 몸이 확 뒤로 젖혀진다.
하지만 누구도 튕겨 나가지 않는다.
그저 허벅지의 힘만으로 그대로 버텨서 황구에 매달릴 수 있으니까.
진천희가 말했다.
“공손세가의 무인의 수는 수천. 그것은 모용세가도 마찬가지. 거기에 낭인도 끌어모은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응.”
“그런데 공손세가는 그 수천 중 3분의 1을 본가의 방어에 놓았고, 3분의 2를 각각 주작당과 백호당으로 나누어 배치 후 출격하는 상황이야.”
“분명 너 나랑 같은 설명 들었을 텐데 너만 왜 이렇게 자세하지?”
“원래 사람은 자기가 할 일 빼고는 신경 안 쓰니까 그런 거지. 나야 같은 책사니까 기억해둔 거고. 어쨌거나 모용세가는 적어도 십여 개로 갈라져 움직이고 있거든.”
“호오, 그래? 그게 어때서?”
진천희가 말했다.
“즉. 저쪽을 각개격파해서 잡아먹는다면 공손세가가 이긴다는 거지.”
“오옷!”
장수는 그제야 반상이 어떤 풍경인지 깨달았다.
책사인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정보!”
“우리 정보당이 꽤 뛰어나지 않아?”
“하지만 모용세가 쪽도 뛰어날 거야. 공손세가의 전략을 얼마 후면 알아차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산개된 적의 병력이 집결해서 오히려 주작당과 백호당 둘 중 하나를 잡아먹으려고 들 수 있거든.”
즉. 서로의 정보가 언제 알려지고, 서로의 병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변한다!
게다가 적도 숨기고 있는 전력이 있을 것이고. 이쪽 공손세가도 그것은 마찬가지.
전대에 활동하던 원로 노고수들까지 전부 나선 상태였고, 진천희가 여기에 도움을 주러 왔듯이, 저쪽도 무림맹이나 다른 동맹의 지원을 받았을 수 있다.
결국 승부의 향방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니.
“일단 이쪽은 계획했던 대로 움직인다! 그게 공손현의 책사로서의 계책이다.”
반상의 풍경이 순식간에 변한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왕각연이 전음으로 말했다.
황구가 속도를 높인 상태라서 바람 소리 때문에 전음 보낸 것.
[그러면……. 그러면 모용세가는 우리를 써서 이렇게 휘젓는 것을 알고 그쪽 책사가 대응하는 걸 수도 있겠네?]왕각연이 비록 무예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는 하나 머리가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좋은 편이다. 귀찮아할 뿐이지.
진천희가 전음으로 답했다.
잡느냐, 잡히느냐.
흑백의 반상 속에서 난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진흙 구덩이 속에서 왕각연은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천희야. 나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거야. 그건 알아둬.]그때 먹은 떡값은 반드시 피로 치러져야 할 터.
그것은 왕각연의 강호인으로서의 자아였고.
친우라고 하더라도, 부모라 하더라도,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음……. 알았어.]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서음 근처까지 도착했을 때. 뇌진이 ‘삐이이익!’ 하고 길게 울었다.
그건 화가 난 울음소리였다.
[적들이 있나 보다.] [저기 언덕으로 가자.] [알았어. 황구야!]굳이 긴 이야기는 필요치 않았다.
둘이 서음 마을 근처 언덕으로 올라갔다.
저격하기 적합하기 때문.
그리고 그러다 문득, 두 사람 모두 얼굴이 굳어졌다.
‘저건……?’
마을 중앙에 거대한 버섯이 자라나 있었다.
허나, 버섯이라고 느낀 것은 어디까지나 진천희의 경험적인 추론일 터.
왕각연의 눈에는 기묘하게 생긴 고목처럼 보였다.
“설마. 혈선교가…….”
진천희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러자 왕각연이 물었다.
“저런 버섯은 처음 보는데……. 혈선교? 저거. 혈선교가 쓰는 버섯이야?”
“혈선교 십천군 중에 사람의 시체를 모판으로 버섯을 키우는 놈이 있어. 장천군이라고 했었지.”
진천희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왕각연의 표정이 심각하게 구겨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의념을 따라 바람이 불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왕각연은 화경이다.
화경도 꽤나 깊이 들어간 화경.
이미 의념을 깨닫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경지.
진천희의 손등 위로 따끔따끔한 감각이 지나간다. 마치 정전기(靜電氣)와도 같았다.
‘절세의 궁사의 분노란 이토록 두려운 것인가.’
이윽고 왕각연은 고개를 돌려 마을 바라본다.
두 눈에 내력을 집중하고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 시선이 마치 매와도 같았다.
이윽고 왕각연이 이를 악물었다.
빠드득-
어금니가 부딪치며 증오를 노래했다.
“네 말대로야. 사람들이… 죽어 있어. 그리고 버섯이 자라 있고.”
“……그게 보여?”
진천희 역시 안력을 집중했지만 이 거리에서는 왕각연만큼 보이진 않았다.
“나는 궁사야. 눈이 좋아야 해. 특별한 안공을 수련했거든.”
“나도 나중에 배우고 싶은걸.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은?”
“없는 것… 아니. 있어. 저런…….”
그 순간, 왕각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진천희도 안력을 돋구어 마을 쪽을 보았다.
작긴 해도 뭔가가 보이긴 했다.
사람으로 보이는 작은 점이 움직이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형체가 완전히 사람이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점으로 보이는데도 기괴함이 밀려온다.
이윽고 평정을 되찾은 왕각연이 말했다.
“사람이야. 버섯이 자란 채로… 움직이고 있어.”
“그거…….”
“모르겠어. 안색을 보니 죽은 것 같은데… 아……. 강시! 강시구나!”
독버섯으로 만든 강시라.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몽이었다.
“하나가 아니야. 하나, 둘……. 계속 나와.”
“우리를 알아차린 모양이네.”
왕각연만큼 자세히 보이는 건 아니지만, 마을에서 사람의 무리가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은 보였다.
마치 개미들의 무리가 다가오는 모양새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윽고. 그것들의 형태가 좀 더 뚜렷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망할, 숫자가 너무 많아!”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대군(大軍)!
버섯 강시들이 마치 해일처럼 밀려온다!
그 압도적인 숫자에 왕각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크와아아아앙—–!
왕각연이 급히 말했다.
“천희야, 돌아가자. 이건 못 이긴다!”
여기서 개죽음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그 순간, 진천희가 비파를 들었다.
디링-
그리고 등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오방색 깃발을 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광인과 악공과 도인을 합친 것 같은 기묘한 행색!
그런데 그걸 절색의 미모로 하고 있다.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는 말로 해결이 되는 건가.
“오우.”
‘오우? 그게 무슨 뜻이지?’
친우가 뭔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