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35
제 1035화
“도망갈 필요 없어. 우리 둘로 충분해.”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상대는 버섯 강시로 만들어진 대군!
그뿐이 아니었다.
이놈들은 강시처럼 쿵쿵거리며 뛰는 게 아니다.
사람처럼 내달리고 있다.
다만 몸 여기저기에 버섯이 피어 있어서 그것은 기괴하고 끔찍하기까지 했다.
만약 살아 있는 상태라면 어떻게든 치료를 시도해 보겠지만, 아무리 봐도 죽어있는 상태.
두개골 자리에 버섯이 돋아나 있는 것도 있었고, 내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버섯이 자라난 경우도 있었다.
그것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다.
그 수가 그야말로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뒤로 모용세가의 사람들로 보이는 자들이 천천히 따라오고 있다.
원수를 발견하자마자 왕각연이 이를 빠득 갈았다.
“모용세가 놈들… 감히…….”
왕각연의 두 눈에 불길이 일어나는 것처럼 번쩍였다.
살기가 하늘로 치솟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좋아. 싸우자! 너라면 무슨 수가 있겠지!”
이성은 도망치라 하고 있다. 허나, 왜일까?
본능은 이곳에서 버티라 속삭이고 있었다.
문득 왕각연은 옆에 선 친우를 본다.
진천희의 푸른 눈이 스산하게 빛나고 있다.
“…….”
모용세가가 혈선교와 손을 잡은 건지, 혹은 혈선교가 모용세가를 집어삼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양민을 이렇게 희생시킨 이상 저들은 명백한 악(惡).
저들을 내버려 둔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
저들이 활개 치는 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테니까.
사거리에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왕각연이 화살통을 고쳐서 맸다.
화살을 뽑기 쉽게 한 것.
화살이 없어도 무영시라고 해서 기로 만들어진 화살을 쏠 수야 있다.
허나, 저격이 가능한 지금 굳이 내력을 소모해서 그럴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왕각연은 화살도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사정거리에 도달한 순간 왕각연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눈 한 번 깜빡일 동안 화살이 세 발이나 날아갔다.
정확하게 머리에 화살이 꽂혔고.
파바박!
버섯 강시는 움찔거릴 뿐 쓰러지지는 않는다.
그때 진천희가 말했다.
“목을 노려. 그게 약점이니까.”
그 말에 왕각연이 목을 정확하게 맞춘다.
그제야 버섯 강시들이 쓰러졌다. 다만 완전히 죽은 건 아닌 상황.
놈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바둥거리고 있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강시와 싸울 때 다들 머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부위는 목이거든. 목은 신체를 통제하고 움직이는 회로가 지나가는 곳이라서, 그곳을 끊으면 강시라고 해도 움직일 수 없어.”
“강시에 대해 엄청 잘 아네?”
그 말에 진천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진주언가에서 배운 게 있거든. 그보다 이 거리에서 목을 맞힐 수 있는 네 궁술이 사기다.”
“사기?”
“그런 게 있어.”
“아, 근데 나 이 자리에서 저격 위치 안 바꾸고 계속 쏠 건데 그래도 돼?”
놈들은 두 사람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는 대충 감지한 모양이지만, 정확히 어느 위치에 매복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쏘다 보면 들통나기 마련.
진천희가 답했다.
“괜찮아. 옛날 생각 나고 좋네.”
“좋아.”
친우의 허락이 떨어졌다.
왕각연은 계속해서 버섯 강시들을 하나둘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개미를 엄지로 으깨듯 강력한 폭력이 놈들을 휩쓴다.
결국 들통났다.
끼이이익!
버섯 강시들은 자기들만의 울음소리로 서로에게 알린 후, 곧바로 정확하게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쿵쿵!
발에 닿는 모든 장애물들을 부수고, 나무는 부러뜨린 채 일직선으로 달린다.
그 모습을 보며 진천희가 말했다.
“오우, 이제야 발견하다니. 너희들 역시 시력은 약하구나.”
“나 가지고 무슨 실험해?”
왕각연의 말에 진천희가 답했다.
“병법에도 그러잖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이 경우에는 적이라기보다는 해충 박멸로 보고 있지만, 결국 비슷한 거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마치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 같은 느낌.
허나, 제갈세가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고 옛사람들이 말해오지 않았나.
왕각연은 구태여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사이 진천희가 등에 멘 깃발을 여기저기 꽂기 시작했다.
왕각연이 화살을 날리며 물었다.
“진법? 아니면 주술?”
“둘 다.”
진천희의 대답에 왕각연이 씨익 웃었다.
화르르륵!
진천희와 왕각연이 선 곳을 중심으로 사방에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석진(火石陣).
말 그대로 불길을 만들어내는 진법.
그 영역은 백 장에 달했고, 버섯 강시의 절반은 왕각연의 화살에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고작 절반만이 진법에 도착해 그대로 뛰어들었으나 몸이 불타버리는 게 아닌가?
끼이이이익!
“오우, 역시 풀 타입 몬스터 상대로는 불 속성 스킬이 최고지.”
“아까부터 진짜 이상한 소리만……. 오행 이야기야?”
“비슷해.”
화석진의 불길이 버섯 강시들을 불태우고 또 불태운다.
그리고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역시 지맥이 좋은 곳이 아니라서 진법이 오래 유지가 안 되네.”
“……깃발 몇 개로 불 피운 놈이 뭐라는 거야?”
그때였다.
쓰러진 강시들 뒤로 산 자들이 포착되었다.
딱 봐도 강시들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자.
모용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웬 놈이냐!”
그들은 강시들을 박살 내고 있는 두 불청객을 향해 곧바로 덤벼들어 왔고.
곧바로 진천희는 돌비파를 꺼내 들었다.
지이이잉-
비파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금속성의 울림.
순식간에 음공이 터져 나왔다.
그 틈에 왕각연은 무영시를 사용해 수십 발을 순식간에 하늘로 쏘아 올렸다.
팡팡팡팡팡!
고작 1초.
보이지 않는 기의 화살들이 하늘로 솟구친다.
그렇게 까마득하게 올라간 화살이, 정점에서 추락하며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죄다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소나기와도 같았다.
신벌로 이루어진 소나기.
퍼버버버벅!
“으아아악! 궁왕!? 설마 궁왕이 껴있는가!”
“궁왕의 화살을 볼 생각 하지 마라! 일단 빠르게 죽여!”
당황하는 모용세가 검수들을 보며 진천희가 말했다.
“오우… 각연이 미쳤네?”
“왜 그러세요. 활인천마님?”
“아니, 그 별호는 제발… 미안하다…….”
모용세가의 무인들 전원 쓰러진다.
기이한 건.
“죽여라. 죽여라!”
“침입자다! 어서 죽여!”
고막이 터지고 팔 한쪽이 날아갔음에도 광기에 차서 계속해서 달려드는 것.
“반응이 통상적인 강호인의 것이 아닌데?”
왕각연이 말했다.
“정파라면서 사파에서 도는 광분단이라도 빨았나?”
“광분단?”
“고통을 잊고 싸움에 미친다는 단약이 하나 있어. 요즘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데, 설마하니 모용세가씩이나 되는 무인이 먹을까 싶었는데… 여기 먹고 있네.”
이 광경을 보며 진천희는 탄색했다.
‘……침식, 마을, 버섯, 단약, 중독자, 혈선교, 난장판……. 솔저? 솔저? 으으, 머리가.’
진천희가 이마를 쥐어짰다.
“역시 장천군 이눔 시키, 와 있는 거니?”
익숙한 악몽을 느낀다.
원래 연쇄살인마들은 저마다 고집하는 패턴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강호 마두들도 비슷하다.
사람을 죽일 때 꼭 이상하게 거꾸로 매달아 죽이는 놈이 있는가 하면, 꼭 사람 머리를 터뜨려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놈도 있다.
현대인 입장에서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일종의 강박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천군 놈의 버섯 농사가 풍년이다.
현이가 보고 싶어졌다.
* * *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광분하여 달려들었지만, 누구 하나 큰 적수는 되지 못했다.
마치 공간 그 자체를 쥐고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듯 음공과 무영시가 적을 계속해서 꿰뚫는다.
“정녕 이길 수 없는가!”
“그럴 리가. 우리 숫자가 몇인가!”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수상한 단약을 으득 씹으며, 그 힘에 깊이 심취한 모용세가의 무인들.
이미 그들의 몇은 통각을 잊어버린 듯 마지막까지 발악하듯 덤벼든다.
진천희는 이마를 찌푸렸다.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놓아서 무엇을 하려고. 대체 모용세가는 무슨 생각인가.’
그렇게 왕각연의 무영시와 진천희의 음공을 버티며 접근한 이가 일곱 명.
다행히 그들의 눈동자는 또렷한 것이 단약에 이성까지 물들진 않은 듯했다.
그들은 스스로 검진을 짜서 앞으로 접근했는데.
왕각연은 모르나, 진천희는 한 번에 그 검진의 요체를 파악했다.
[모용세가 칠성검진이다. 조심해!]칠성검진(七星劍陣).
북두칠성(北斗七星)에서 유래했다는 검진.
서로의 내기가 서로를 이어주고, 그것이 호신기를 만들어 내어 진천희와 왕각연의 공격을 막아낸 것.
그리고.
선두에 선 이는 예전에 진천희가 본 적이 있는 이.
암영당주 모용립.
“오랜만이오, 진 소각주.”
과거 용봉지회 때 무림맹에서 만났던 자였다.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육감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오랜만이군요, 암영당주.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이다니… 아예 혈선교의 수하가 되기로 한 겁니까?”
그 말에 모용립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여상하게 답했다.
“혈선교와 동맹을 맺었을 뿐이지. 수하라니, 당치도 않소.”
“무림공적과 동맹이라……. 미쳤군요? 무림맹이 이 일을 좌시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미치기는. 곧 강호는 혼란에 빠질 거요. 무림맹도 와해되겠지.”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마치 눈앞에서 모든 것을 본 것처럼.
“그런 말을 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마교가 칼을 빼 들 것이고. 혈선교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요. 우리도 그 혼세에서 한자리 차지해야 하지 않겠소? 적자생존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니. 우리는 가문을 위해서 그 어떤 진흙도 마다하지 않을 거요.”
“참으로 당당하십니다.”
진천희의 비아냥에 모용립은 어깨를 으쓱했다.
“후후후. 당연하지. 그걸 위해 있는 것이 암영당주이니 말이오.”
“그래서, 시간을 끄는 것 같은데. 준비는 다 끝나셨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군. 물론이외다. 급급여율령! 모두 다시 일어나 저들을 죽여라!”
그 순간.
불탔던 버섯 강시들이 비척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왕각연이 목에 화살을 꽂아놓은 놈들도 있었는데 그놈들도 바둥거리던 것을 멈추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세를 포기한 모습에 왕각연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그럴 만했다.
여기서부터는 사마외도의 길.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무인이라고 하더라도 악몽으로 남을 짓 아니던가.
광기.
그것도 인간의 광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악의를 마주하면 인간의 정신은 으레 부서지기 마련.
허나 진천희는 현을 퉁기며 왕각연의 정신을 붙잡는다.
그러고는 현원전단신공이 그 광기를 마주한다.
개파조사께서 남긴 현원전단신공은 축복이자 저주.
극한까지 각성된 정신은 미치고 싶어도 미칠 수 없으므로.
‘구시술이 아니야. 오히려… 괴뢰술에 가깝구나. 하긴, 구시술로 움직이기에는 많이 파손되었으니까.’
꿈틀거리는 강시들의 모습과 버섯의 움직임까지 모두 다 눈에 담는다.
광기와 공포를 한곳으로 밀어 넣는다.
거기에 신경 쓸 시간은 없으니까.
대신 놈들의 움직임과 신경 반응 속도를 파악하고, 재생 속도와 정도를 살핀다.
그것은 괴물을 본다기보다는 학자가 표본을 보는 것에 가까운 눈.
‘괴뢰술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뭐가 있지?’
그 순간, 세계는 한없이 느려지고, 느려지고, 느려지다가 마침내 ‘고정’된다.
진천희 뇌 속에서 수많은 책들이 빠르게 펼쳐진다.
그것은 도서관이었다.
책장은 하나같이 높고, 책은 묘하게 컸다.
어린이 도서관.
어릴 적, 도망칠 때 들어가던 도피처.
크레파스로 그린 기린이 책장 모서리를 장식하고 있다.
작아진 의원은 거대한 도서관 속에서 기억의 책을 뽑는다.
“하하하. 진천희! 여기가 그대의 무덤…….”
화르르륵!
그 순간, 고정된 세계가 한 번에 풀리며 사방이 다시 불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아닛!?”
모용립이 놀라서 눈을 홉뜬다.
사그라든 줄 알았던 불길이 다시 사방을 태우며 버섯 강시들을 순식간에 장작더미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엎어지면서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몸을 꿈틀거리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시체.
괴뢰술이 한 번에 풀린 것.
“제가 최근에 주술을 꽤 많이 배웠거든요. 그리고 상대의 주술을 해제하는 것도 좀 배웠죠.”
“노오오오옴!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모용립이 진천희를 향해 노호성을 터뜨린다.
“오우. 이렇게 화내실 줄은 몰랐네~”
죽여야 한다.
결국 과거 암살에 실패하여 일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나.
문득 ‘사마현’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용세가가 더 커질 방법이라… 그것은 일광이 죽어야 가능한 게 아닌지?
-예언 아닌 예언을 하나 하지요. 일광은 언젠가 모용세가를 무너뜨리러 올 것입니다. 일광을 죽인다면 모용세가는 살 것이고, 그가 살아있다면 모용세가는…. 후후후.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사마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렀으나, 틀림없는 사마현의 얼굴이었다.
단순히 인피면구를 써서 용모를 바꾼 것이었으면 암영당주인 그의 눈을 속일 수 없다.
피부 상태 같은 세세한 부분이나, 조금 더 눈빛이 어둡고 광기가 차 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무엇보다 주특기인 천변검만공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
그는 ‘사마현’이다.
동생이 형을 배신해 혈선교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허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일광은 우리 모용세가를 무너뜨릴 놈이다.’
눈앞의 저 오만방자한 제갈세가의 꼬맹이를 죽여야 한다!
‘내 이놈을 한낱 피륙으로 만들어 주리라.’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