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1
제 1041화
진천희의 잔영이 빠르게 도시로 향한다.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시야 속에서 안개가 둘러쳐진 성벽이 가장 먼저 보였다.
‘이 안개. 역시 기감을 방해하는군.’
강호인들은 이 기감에 대해 여러 형이상학적인 설명을 하나, 현대인인 진천희가 보기에 기감이란 결국 자신의 기를 퍼트려서 주변의 사물을 인식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안개가 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
시야도 차단시키지만, 감각도 봉쇄당한 셈.
“황구를 두고 오기를 잘했네. 여기는… 위험해.”
왕각연이 물었다.
“그나저나 사람들, 역시 전부 당한 걸까. 이쯤 되면 보일 법도 한데…….”
“그건…… 어? 저기. 사람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람을 발견했다.
병사였다.
그는 벽에 기대로 앉아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잠든 것처럼 보였다.
진천희는 즉시 다가가 진맥을 했다.
한참을 진기진맥을 하다가 말했다.
“보는 대로 진짜로 잠든 게 맞아. 하지만 왜 잠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네.”
“병이 아닌 거야?”
“응.”
다른 병사들도 모두 잠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일단 안으로 몰래 잠입했다.
잠입하자마자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잠들어 있었다.
벽에 기대고 있거나, 길에 쓰러져있거나 했다.
“그나마 날씨가 적당해서 다행이네. 겨울이면 동사의 위험도 있었을 테니.”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쓰게 웃었다.
왕각연이 말했다.
“내가 앞장설게. 심양은 일전에 표행 때문에 온 일이 있어서, 모용세가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거든.”
생각보다 인외마경이 아니자, 왕각연은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모용세가의 입구.
안으로 들어가니 텅텅 빈 게 보였다.
“어라? 사람이 없네.”
그 말대로 문지기며 하인이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가문을 마땅히 지켜야 할 검수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섬뜩했다.
그때,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둥, 둥, 둥!
북을 치는 소리.
두 사람은 기척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처진 눈의 미청년이 북을 치고 있었다.
허나, 그 북이라는 게 참 기묘했다.
북은 북이었으나 버섯으로 된 북.
그리고 모용세가의 가장 큰 전각은 버섯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서 오게나. 반선의 씨앗! 오랜만일세!”
“…….”
“은신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내 뱃속처럼 알 수밖에 없다네.”
진천희는 그제야 은신을 풀고 그의 앞에 나섰다.
“…….”
[천희야. 너 저 인간 알아?]왕각연의 전음에 진천희가 답했다.
[초면이긴 해도 아마 만나본 놈 같아. 애초에 혈선교 십천군 놈들은 모두 가면을 썼었거든. 어째서 벗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처진 눈의 미남자가 말했다.
“이 몸은 장천군. 예전에 한 번 만났던 적이 있었지.”
‘…….’
진천희가 놀란 기색이 없이 태연하자 장천군이 말했다.
“역시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군.”
“단가장에서 했던 버섯 농사가 비슷해서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아들의 몸을 가로채더니, 이제는 모용세가의 몸입니까?”
“비슷하네. 우리 같은 존재에게 육신은 그저 그릇일 뿐이니까.”
“정체는 이혼대법이겠군요.”
진천희의 말에 왕각연의 눈이 커진다.
“이혼대법? 그게 정말로 있는 거였어?”
“……있더라고.”
자신도 배웠다.
어디까지나 도주하는 십천군 놈들의 영혼을 잡기 위해서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꾼 몸이 하필 모용세가 아들놈일 줄은 누가 알았겠나.
“그렇네. 이혼대법으로 몸을 바꾸었지. 그리고 효자 노릇을 좀 하고 있었다네. 그런데 때마침 자네가 이리로 올 줄이야. 이거 참 운이 좋군그래.”
“전에도 패퇴했으면서 무슨 자신감입니까?”
“그때는 육신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리 조정되지 않았었단 말이지. 지금은 그때와 다를 거라네!”
그 순간, 장천군이 진각을 밟으며 쇄도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의 버섯이 폭발하면서 그 안에서 버섯 강시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일전 조천군이 버섯 산에서 끌고 나온 것과 같은 종류였다. 온몸에 비늘이 돋아난 용린인 강시다!
쐐에엑!
그런데.
조천군이 끌고 왔던 것들보다 그 움직임이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퍼펑!
장천군의 일장(一掌)을 향해 진천희 역시 손을 뻗어낸다.
그 손바닥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생겨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사이에 왕각연이 뒤로 물러나며 용린 버섯 강시들을 향해 폭영시를 쏴댔다.
콰쾅!
폭발이 일어나며 용린 버섯 강시들이 뒤로 튕겨 나가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걸 알아챈 진천희는 장천군과 손바닥으로 내공을 겨루는 상태로 재빠르게 사고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저놈들은 더 특별한 강시다!
“용린 석균 강시(龍鱗石菌僵尸)라네! 새로운 친구들이지!”
“버섯 농사가 아주 풍년이시군요. 조천군이 끌고 오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데 말입니다.”
“하핫. 그것들은 이른바 동강시 같은 것들이라네. 지금 저 녀석들은 금강시급은 될 거야!”
강호에서 강시의 강함을 나누는 등급.
동. 철. 은. 금.
그런데 지금 달려드는 것들이 전부 금강시급의 힘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금강시는 진주언가라고 해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기에 일 년에 3~4기 정도 만들면 많이 만들었다고 자평하는 수준.
그런데 그런 것을 수십이나 만들어 내다니!
“용린인과 본좌의 버섯이 융합하니 저런 걸물이 만들어지더군. 자. 얌전히 잡혀서 혈선께 같이 가세나!”
장천군이 다른 손을 내뻗어왔다.
그러나 진천희는 그런 장천군의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숨을 한번 들이쉬고 그대로 입을 벌렸다.
“와아악!”
위우우웅! 콰르르릉!
무시무시한 음공이 진천희 입에서 쏟아진다.
끔찍하리만치 파괴적인 음파의 기운이 그대로 전면을 흔들며 격타했다.
“크악!?”
점(點)이 아닌, 면(面)으로 행해지는 공격이기에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두드려 맞은 장천군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그래도 호신기를 두르고 있었던 듯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그 비틀거림을 통해 빈틈이 생겨났다.
이때가 기회.
태을단선검법의 극쾌의 일검이 그대로 펼쳐진다.
검 끝이 장천군의 심장을 깊이 파고들어 간다.
그극-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진천희의 안색이 천천히 굳어갔다.
‘서늘하다.’
강호인들이 말하기를 보통은 첫 살인이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예전에 본 무협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손을 덜덜 떨며 그날은 밤까지 술을 마시던 클리셰가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감각은 대체 언제쯤이면 익숙해지는 걸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어지간하면 불살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 어지간하면이 지금 상황은 아니다.
혈선교가 사람을 잡아먹고 무슨 해악을 떨치는지, 어떤 병을 퍼뜨리고 사람들을 조종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그리 나지 않는다.
여기서 물러서면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옳은 살인이란 게 있는 걸까?
현대인의 나약한 자아가 반문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강렬한 동기가 진천희의 가슴을 붙잡는다.
그것은 인류가 문자를 발견하고, 법전을 만들기 훨씬 이전에.
불을 발견하기도 전부터 있던 동기.
생명체이기에 갖는 지극한 동기가 속삭인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살기 위해서.
그저 오늘 죽지 않기 위해서 의원은 검을 내질렀고.
허나 잘리고, 잘리고, 잘리고, 한계까지 토막 낸 시간 사이로 장천군의 안면 근육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웃는다. 웃는다?
그는 두 손을 뻗어 장력을 발출했다.
얼마나 빠른지 현원전단신공의 시계(視界) 사이로도 정확하게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깝다.
콰과과과광!
진천희는 장력을 그대로 얻어맞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클클클, 보통 강호인이라면 상체가 뜯겨나갔을 것을…….”
“쿨럭, 외공을 열심히 익혔거든요.”
진천희는 검은 피를 뱉었다.
“그 순간에 낙법까지 취해?”
“나려타곤을 극한까지 익히면 낙법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하여간 성가신 상대야.”
극한에 다다른 외공, 거기에 강력한 내가기공에 절정에 달하는 나려타곤까지 합쳐지니 적의 한 수도 몸뚱이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빙정검을 놓치지도 않았고?”
“아무렴요. 스승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나름대로 귀히 대해야죠.”
가끔 타이밍 따라서 일부러 칼을 놓아버리고 냅다 정권을 날리기도 하지만 오늘만은 뻔뻔하다.
“검객은 검이 애인이니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는 소리는 안 하는군.”
“음…. 약간 그건 좀…… 그래요. 그거대로면 살인을 하는 데 애인을 쓰는 거잖아요?”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작게 웃었다.
아프다.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그 말 그대로 단순히 도검불침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면 몸이 뜯겨나갔으리라.
상대가 현경이라고 해도 진천희가 만나 보았던 반쪽짜리 현경이었다면 그 정도로는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그만큼 장천군이 숨겨놓았던 패는 강력했고.
진천희는 소매로 입가를 쓱 닦으며 말했다.
“심장을 찔렀는데도 출혈이 없군요. 설마, 그 몸 이미 죽은 겁니까?”
“고작 일 합 맞붙은 것만으로 거기까지 통찰한 겐가? 크크큭.”
“이혼대법의 사용자라면……. 강시의 육체에 빙의해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니까요. 물론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만.”
산 사람의 몸뚱이만큼은 조종하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혼대법은 혼이 중요하지, 육체는 중요치 않다 여기는 터.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네. 시체를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효율이 나쁘다 보니 말이야. 이 육체는 살아있지. 다만…… 인간 형태로 살아있냐면 그건 아니지만.”
“……?”
진천희의 눈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장천군은 기쁘게 바라본다.
역시 탐이 난다.
이 녀석은 자신과 함께 마도의 끝을 볼 수 있는 자질이 있었다.
혈선들은 제물로 바치라 하고, 백천군은 죽이자고 하지만 장천군은 뭐랄까.
만나 보면 만나 볼수록 이 녀석이 썩 마음에 들었다.
저 출처 모를 끝없는 지식과 기묘한 통찰력은 흡사 교주와 닮았지 않았던가.
‘가질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장천군이 손을 들자 용린 석균 강시가 달려들던 것을 멈추고 선다.
“궁금한가? 궁금하겠지? 하긴, 아무리 자네라도 고작 이혼대법 한 권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지. 심연 속에는 더한 심연이 있는 법이고 세상에는 별처럼 많은 금서(禁書)들이 존재한다네.”
그 순간, 빛이 공간을 왜곡하며 날아간다.
파앙!
왕각연의 무영시!
사각을 노린 저격이 소리, 소문 없이 날아가 장천군의 머리 한쪽을 날려 버린다.
“오오오! 궁금해했던 게 아니었군. 내 머리통을 노릴 틈을 계산하고 있었던 거였어. 역시 마음에 들어.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군. 방금 그 찰나에 보여주었던 표정마저도 연기였나?”
뇌수가 쏟아지는 대신 그 머릿속은 버섯 같은 조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조천군을 만나서인지 예상한 모양이군. 이 몸의 절반을 버섯으로 개조했지. 버섯. 좋지 아니한가? 거기다 버섯만이 아니야.”
촤아아아악!
장천군의 몸에 비늘이 돋아났다.
“천지석균은 용맥에 자리한 바위에서 천지간의 기운을 먹고 자라나는 버섯이지. 영약의 하나이며, 천년설삼만큼 귀한 거라네.”
“그렇다면.”
진천희가 궁금해서 묻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저격 장소를 계산하는 중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머리를 날렸음에도 살아있는 장천군을 보며 절망하기는커녕, 다음 약점을 찾는 저 두뇌.
저 차가운 두뇌가 너무나도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어찌하여 이런 존재가 튀어나온 거지?’
그는 분명 ‘우리’ 쪽 사람이다.
선악을 뛰어넘는 발상, 진리에 대한 집착.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무한에 가까운 지식까지.
그야말로 자신 같은 진리 추구자들을 미치게 만든다.
이 문답이 달콤하다 느낄 정도로.
“용린인을 만들 수 있는 용혈과 그 용혈로 변이된 육신에 이 버섯을 자라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게 용린 석균 강시……라는 거군요.”
“오오, 대화를 잘 따라오는군.”
오싹오싹-
푸른 눈이 자신을 죽일 계산을 하고 있다.
갖고 싶다.
하지만 갖지 못한다면 저 뇌를 입으로 삼켜서 씹어 보고 싶다.
영혼을 가두고 뜯어 보고 싶다.
얼핏 보면 맑고 순진한 눈이다.
허나 장천군이 매혹된 그 눈은 눈앞의 저 새끼를 찢어 죽일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네는 미친놈들을 더 미치게 하는 힘이 있다네.”
“?”
마침 진천희는 그 사슴 같은 눈으로 제초제를 떠올리던 중이었다.
‘이거 알아.’
‘나도 알고 있어.’
‘우리는 알고 있어.’
진천희 내면의 어린이 도서관.
현원전단신공을 타고 수많은 작은 진천희들이 깨어나 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