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6
제 1046화
콰르르르르르—-!
귀에서도 피가 흘렀다.
고막이 터진다.
찢어진 고막 사이로 세상이 물속에 잠긴 것만 같았다.
진천희와 모용신 두 사람의 몸뚱이가 파괴의 잔향만으로도 튕겨 나간다.
그야말로 세상을 부수는 가공할 힘.
‘아, 공손영 누나에게 부상자를 데리고 멀리 물러나라고 전음한 보람이 있긴 하네.’
이런 폭발에 휘말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없다.
왕각연에게도 도와달라 부탁했으니 도와주었겠지.
저격도 하랴, 사람도 구하랴 퍽이나 힘들었으리라.
그리고 동시에.
“끄으으윽!”
온몸에 성한 곳이 없다.
팔다리가 죄다 박살 난 게 느껴진다.
내력으로 부러진 몸뚱이를 억지로 움직이고 있다.
현경이 된 몸뚱이.
최소한 부공삼매는 올 줄 알았건만, 그저 평소와 같다.
‘이런 현경도 있나?’
뭔가 기묘했다.
현경으로 넘어간다면 좀 더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현대 지구의 모바일 게임 레벨 업 비주얼은 아니더라도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만 단전에서 무한한 내력을 느낀다.
‘틀림없는 현경이 맞긴 해.’
무한한 내력은 천지교태를 이루었다는 증거라 할 수 있겠지.
거기다가 몸뚱이는 사지가 다 부러졌으니, 천지교태의 내력이 없었다면 사지가 낙지처럼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을 터.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 와중에도… 나는…… 웃긴 생각부터 하는군.’
유머는 좋다.
상처 난 몸에도, 마음에도, 영혼에도.
숨을 쉬는 게 지극히 어려웠다.
반면 모용신.
그는 진천희보다 상황이 나았다.
그는 자신의 애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렸지만 서 있긴 했으니까.
“크윽, 모용신이 이긴 건가?”
멀리서 지켜보던 공손세가 무인이 말했다.
그러나.
“푸학!”
모용신이 피를 토하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쓰러진다.
그 피는 아주 검게 변해 있다.
독혈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진천희는 온몸이 박살 났음에도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쓰러진 모용 가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원은 갈라진 성대를 짜내서 억지로 말했다.
“모용 가주. 당신이 졌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모용가주는 이를 악문다.
일어나고 싶다. 허나 불가했다.
그의 단전이 들끓어 주화입마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그뿐이 아니었다.
치이익-
폭발하며 독이 이미 그의 몸에 스며들어 침범하고 있는 게 느껴지니까.
“어… 어찌 이런 독이……. 설마, 사천당가의 전설인 무형지독인가?”
“아니요. 그것은… 현경지독. 과거 오독문에서 독공으로 현경이 된 이의 독과 독신조라고 불리는 짐조의 독이 결합한 거라 할 수 있겠네요.”
“허…. 이런… 이런 독이 있을 줄이야…….”
털썩
그 말을 끝으로 모용신이 앞으로 완전히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진천희는 억지로 몸을 움직여 그의 맥을 짚었다.
그것은 의원의 습관이었다.
‘살아… 있군. 지독하네.’
완성된 용린인의 신체가 독기에 아직도 저항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그래도 죽겠지만…….’
죽일까?
진천희의 눈에 순간 살기가 어린다.
그동안 보았던 인외마경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상대는 혈선교와 결탁한 자.
그 죄를 생각하면 죽어도 싼 놈이 아닐까.
그러니 죽일까?
놈의 손에 희생된 양민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살의가 뇌수까지 치밀었다.
왕각연은 숨을 참고 진천희의 선택을 기다린다.
허나.
‘여기서 죽인다면 모용 가주는 원하는 걸 얻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아무런 진실도 알 수 없을 거고.’
모용 가주가 어떤 식으로 혈선교와 접촉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들이 잘 쓰는 수법이 무엇인지, 그동안 어떻게 강호의 이목을 피해 모용세가가 몸집을 불렸는지도 취조해야 한다.
‘반면 무인으로서의 죽음은 강호인들이 가장 미치도록 바라는 것이지.’
어찌 보면 광신과도 같았다.
진천희는 모용 가주의 심리를 안다. 그의 머릿속을 짐작했다.
그는 방금까지 전능한 힘을 가지고 무한한 내공을 휘둘렀다. 그런 자가 패배하였으니 죽는 것을 원하리라.
‘단전을 파괴하고 사지근맥을 끊는 것보다 깔끔한 죽음을 간절히 바랄 터.’
진천희가 손을 쓰면 제아무리 용린인의 재생력이라 하더라도 두 번 다시 단전을 회복시킬 수 없게 된다.
현경의 경지에서 양민보다 못한 육체로 돌아가는 것.
그보다 더 큰 지옥을 없을 터.
‘원하는 결말대로 가주고 싶지는 않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모를까.
죽음으로 이 죄에서 도망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죽음이야말로 모용 가주가 원하는 바일 테니.
‘평생 뇌옥에서 반성하며 고통스럽게 사시오.’
자제하는 친우를 보며 왕각연은 생각했다.
‘저게 강호인들이 진천희를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이지.’
감정대로 목을 참하지 않는다.
일부러 도발을 하고 스승 욕을 하면 죽여 주리라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그냥 더욱 고통스럽게 살아가도록 만들 뿐.
‘저놈 손에 걸리면 자결조차 쉽지 않지.’
진천희가 단전을 부수고 손을 뻗자 독기가 그의 왼팔로 빨려 들어간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머리는 천천히 맑아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현경이 되었나. 씁, 좀 더 심상을 가다듬고 싶었는데…….’
다른 이들이 들었으면 현경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두고도 계속해서 심상만 다지는 미친놈이라 부르겠지만 진천희는 달랐다.
‘하지만 마지막 조각은 충분히 다 찼어.’
모용 가주가 만든 칼의 파도 속을 무아지경으로 헤쳐 나가지 않았던가.
마지막 심상이 완성되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현경에 확실히 발을 디뎠다.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
3개의 단전이 원활히 이어지고, 그것이 천지자연의 기운과 소통함을 느낀다.
이게 아니었다면 이 왼팔의 현경지독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겠지.
‘무협 소설 보면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온몸이 환골탈태하고 새로 태어나고 그러지 않나.’
그런 조짐은 없다.
진천희의 현경은 고요했다.
새벽에 조용히 피어나는 꽃망울처럼.
‘이게 스승님이 보시는 세상인가. 하하, 스승님이 칭찬해 주실까?’
결국 닿지 못했다.
스승님께서 보여주신 그 이상향에는 마지막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허나, 진천희에게는 진천희만의 심상이 완성되었다.
“후우.”
깊게 숨을 토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와, 현경이 되었다고는 해도 너무 힘드네.”
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쓴다.
“오오오, 진천희~ 분위기 잡고 있었어?”
“넌 무슨 건달처럼 이야기하냐.”
“헤헤헤헷! 덕분에 주작당 사람들도, 백호당 사람들도 목숨을 구했어. 우리 영이 언니도.”
“덕분에 살았다. 욘석!”
어릴 때부터 봐왔던 꼬맹이가 현경이 되었는데도 공손영도 왕각연도 예전처럼 대해준다.
그 증거로 진천희의 머리를 마구 쓸어 흐트러뜨리고 있으니까.
“악, 누나. 악악! 저 지금 머리 땀에 다 젖었는데.”
“괜찮아. 괜찮아.”
진천희가 말했다.
“고마워. 각연아. 현경을 상대로 틈을 만들어 주다니.”
“내 경지로 힘든 거 맞지? 어쩐지 진짜 뒤지게 힘들더라.”
왕각연은 작게 투덜거린다.
승부가 나자 공손강이 소리쳤다.
“모용 가주가 쓰러졌다! 모용세가는 모두 항복하라! 그런다면 선처하겠다—!”
혼란에 빠진 모용세가 무인들.
반면 공손세가는 의기양양하게 승기를 치켜들었다.
그때.
모용신의 몸이 들썩거리는 게 아닌가.
‘음? 벌써 깨어날 리가 없는데?’
단전은 이미 박살 났으니 깨어난다고 해도 방도가 없다.
그때였다.
우득, 우드드득!
모용신의 등짝이 찢겨지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버섯이 자라나는 게 아닌가?
마치 그것은 하루 만에 자랐다는 전설의 천산고목과도 같았고.
왕각연와 공손영이 탈진한 진천희 대신에 반사적으로 공격을 했다.
콰과과과광!
두 사람이 쏘아 보낸 강기가 버섯과 충돌하며 폭발한다!
흙먼지가 엄청나게 피어오르다가 가라앉는다.
연기가 걷히며 시야가 돌아온다.
그곳에는 반쯤 찢어진 모용신의 시신.
그 시신 위로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금발의 조천군과 처진 눈의 장천군.
놀랍게도 분명 박살 낸 몸뚱이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섯으로 이런 것도 다시 만들 수 있는 건가?’
무슨 사술을 쓴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육안으로 보았을 때 그때와 거의 비슷한 육체였다.
“이런이런, 우리 둘의 역작을 이렇게 쓰러뜨려 버릴 줄이야.”
“놀랍군. 놀라워. 그렇지?”
“그래. 이러니 연구가 질리지를 않는다니까?”
두 사람은 웃으며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광기가 역력하게 맺혀있었다.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건데. 역시 자네는 우리 쪽 같은데 말이야.”
“우리와 손을 잡으면 좋지 않겠나?”
진천희는 생각했다.
‘큰일이군. 이런 몸 상태로 싸워야 한다는 건가.’
현경에 올라 천지교태를 이루어 무한의 내공은 가지고 있다.
허나, 다친 몸뚱이는 또 다른 이야기.
현경에 오르니 이제 알 것 같았다.
현경과 현경의 싸움은 얼핏 무한과 무한의 싸움처럼 보이나, 현대인이 보기에는 그 무한을 담는 ‘그릇’과 어떠한 무한을 끌어내는지 결정하는 ‘수질’의 싸움.
완성된 심상을 가지고 육체란 껍질로 싸워야 한다.
‘그래서 탈각(脫殼)이라고도 부르는 거군.’
탈각(脫却), 탈각(脫殼).
한국 무협에서는 둘 다 사용한다.
뜻은 비슷하다.
결국 벗어서(脫) 버린다는 뜻.
물리친다는 뜻의 각(却)과 껍질이라는 뜻의 각(殼).
등선을 하게 되면 육체를 버리고 신선이 된다 하지만 일단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서 육신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원이 올라간 현경의 경지는 무언가 다른 고수들이 올라가는 현경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육신을 더 혹사시킬 수 있을까?’
무골은 아니지만 그래도 환골탈태와 그에 준하는 것을 여러 번 거친 몸뚱이다.
아우들이 가진 몸뚱이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명문대파의 가장 밑자락에 들어갈 정도의 몸은 된다.
계산은 차갑게 이어지고 이어진다.
그리고 설령 답이 안 나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거절하죠.”
저쪽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흥미를 가진 듯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단순히 제물로 삼기 위함이 아닌 뉘앙스도 풍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손을 잡는다고 거짓으로 말한다면 뭔가, 나중에 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시간을 돌려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육감이다.
“호오, 자네의 몸을 보면 더는 못 싸운다는 것을 알 텐데. 그건 신의(神醫)라 불리기 시작한 자네라면 더 알지 않나.”
“아, 제 몸 상태는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싸울 수 있지요.”
허세다.
만약 여기서 오행합벽을 한 번 더 내부에서 터뜨렸다가는 삼합도 못 되어 기경팔맥이 터져 죽는다.
보통 강호인이라면 한 달은 족히 정양해야 할 전투를 연이어서 몰아쳐 왔다.
여기에 진법에 주술까지.
강대한 적을 몇 번이나 처리하며 치료는 변변히 하지 못했으니 그 결과는 뻔했다.
여기 온 내내 아슬아슬하게 몸을 혹사시켰으니까.
허나, 이런 상황에서 아픈 소리는 할 수 없지 않나.
“흐음, 곤란하군. 자네뿐만 아니라 공손세가의 모두가 자네의 결정에 죽을 수 있는데 말일세.”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하지. 우리를 순순히 따르겠다고 하면 저들을 살려주지. 약속하겠네.”
그 말에 공손영이 소리 질렀다.
“개소리하지 마라! 누가 네놈들의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냐!”
스릉!
공손영이 검을 뽑아 든다.
허나, 그녀도 멀쩡한 몸은 아니다.
왕각연은 함께 소리를 지르는 대신 기척을 감추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
저격을 할 곳을 찾는 모양.
이쪽도 결사항전의 의지가 분명했다.
강호인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자존심이고 긍지다.
타이타닉이 침몰하는데 스스로의 긍지를 지켜 약자들에게 구명정을 양보하고는 연초 시원하게 빨다 가는 대인들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 시절 사람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 시절 때보다 지금이 더하다.
현대인에게 보기에는 그들은 죽음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이 더 중하다 여기는 듯했다.
명예와 긍지, 그런 것들.
‘재미있지? 나는 몇 번이나 죽었는데 아직도 이 시대 사람들만큼 죽음에 의연하지는 못한데 말이야.’
그래.
이들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멋대로 이 몸뚱이를 바쳐주겠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
애초에 원하지도 않는 구원 아닌가.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눈을 반개했다.
가자, 가자, 이 끝에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생에는 하나의 신념이 담겨 있을 뿐이니.
삶에도 의미가 있듯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족한 것 아닌가.
의원은 신념의 끝을 본다.
결코 검게 물들지 않을 백색을 본다.
그것은 설원과 같았고, 겨울의 끝과도 같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저항해왔다.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몸을 뒤집고, 기어가고, 마침내 서서, 걸어간다.
일생을 중력에 저항하는 삶.
내 등허리는 아직 올곧은가.
내 신념은 아직 꺾이지 않았나.
“당신들을 따른다고 해도 결국 세상에 끝이 온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그러니, 저는 저항하겠습니다.”
두 놈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웃는다.
눈앞의 의원은 이제 한계다. 굳이 그건 두 사람이 장천군이고 조천군이기 때문에 아는 게 아니다.
어린아이가 봐도 그는 이제 한계의 한계까지 몰려 있다.
숨 한 번 쉴 때마다 꺽꺽거리는 몸으로 눈빛 하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런 대적자가 존재할까?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되네. 일광이 가장 강할 때가 바로 이런 때이니.]조천군이 장천군에게 전음을 보낸다.
[웃기는군. 제아무리 제갈세가라고 한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수를 쓸 수 있겠는가. 그것보다 저 눈빛 퍽 마음에 들지 않나?]저자를 붙잡아 우리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두 존재는 전음을 나눈 후, 의원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저항한다고?”
“네. 당신들에게.”
그 순간, 진천희는 초월심무를 펼친다.
흑과 백의 세계가 아득하게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다.
그 모습에 조천군과 장천군의 눈이 커진다.
“이것이 네놈의 심상인가?”
“하하하하핫! 말도 안 되는군. 이게 사람의 심상이라 할 수 있는가?”
점, 선, 면.
마지막에는 공간을 점한다.
현경의 의념이 공간을 잠식하며 모든 색을 빼앗고, 빼앗았다.
겨울.
죽음에 저항하며 흑백의 세계에서 수국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일광, 네놈은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는 사람이라 믿고 있겠지만, 이 심상을 품고 어찌 사람이라 하겠느냐!”
“아뇨.”
진천희는 단언한다.
“저는 ‘사람’입니다.”
현경을 이끌어낸 마지막 심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생에 대한 광가(狂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