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8
제 1048화
진천희는 깨달음을 얻고 탈진한 왕각연을 들쳐 업었다.
“소멸했을까요?”
그 말에 스승님이 생각에 잠긴다.
“타격이 컸을 거다. 설령 살아 있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날뛰기는 어려울 터.”
“파사(破邪)의 힘이 크군요.”
“그래. 마(魔)를 잡기에는 이것만 한 게 없지. 그리고 그것을 한 호흡 만에 영안도 없이 직감만으로 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
“…….”
진천희가 으득 이를 갈았다.
“분하느냐?”
“네. 명조령이 통하지 않아 속상합니다.”
“너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다. 놈들에게 잡혀 있는 영혼들을 해방시켰으니 그것에 만족하렴. 너는 사람들을 구했다. 그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리 말하며 제자의 머리를 쓸었다.
진천희 주변으로 해방된 영혼들이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있었다.
-꼼짝없이 잡아먹힐 줄 알았던 우리 가족이 갈 수 있다니.
-엄마, 엄마아아아아…….
-다행이야. 먹히지 않아서 다행이야.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정말 감사합니다. 대인.
수많은 영혼들이 드디어 도망쳤다는 안도감에 전율하였으나 제자는 못내 아쉬운지 이를 아득 갈았다.
‘그런 제자의 시행착오를 지켜보는 것도 스승의 즐거움이지.’
늘 한 번에 모든 것을 해내던 놈이었다.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인간이 어떻게 그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냐고 의각원들도 속닥이지 않았던가.
이제는 현경.
더더욱 그 속닥임이 커질 게 분명했다.
그런 녀석에게도 고민이 하나 생긴 셈.
제갈린은 작게 미소 지었다.
“비록 금서 중 하나라고 하나 이혼대법이 강호에 풀린 지 얼마나 오래 지났더냐. 그사이에 대응책 한두 개 정도는 이미 만들어 두었겠지.”
제갈린이 다시 부채를 탁탁 흔든다.
그때마다 녹력이 움찔하며 스승님의 눈치를 보았다.
생각보다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휴가 이틀이 날아갈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일까.
녹력이 왠지 작아 보였다.
유호가 말했다.
“번개 말입니다만, 주인님은 아직 주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잖습니까. 그리고 녹력은 의외로 그런 공격 쪽 주술은 전문이 아닙니다.”
“흠. 보기보다 쓸모가 없군. 밭농사에는 쓸 만할 것 같지만…….”
“그 질소 고정법인가 하는 것 말이군요. 확실히 그런 것에는 쓸 만할 겁니다.”
녹력이 시무룩해져서 생각했다.
‘뭐지? 내가 참회동에 갇혀 있는 동안 인간이 ‘존귀한 자’만큼이나 진화한 건가.’
그가 알고 있는 인간이란 천 년이 지나도, 만 년이 지나도 그리 변화할 것 같지 않던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진법 설치는 ‘존귀한 자’께서 했다고 해도 결국 그 진법을 실행한 것은 저기 저 은발의 사내가 아니던가.
그때 아래에 있던 인간이 말했다.
“내가… 내가 뭘 본 거야? 번개? 사슴뿔? 백색 화염……?”
“저 부채 대체 뭐야? 한번 휘둘렀다고 백염이 치솟다니, 무림지보 같은 건가……?”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갈린은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녹력의 휴가를 하루 깎아버리고는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나저나 그 힘을 가지고도 다쳐 오는 이유를 짐작은 했다만,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구나.”
진천희는 타닥거리며 꺼져 가는 하얀 불꽃을 바라보다가 얼빵하게 물었다.
“……어… 스승님 대체 어떻게 오셨어요? 지켜보시다니……. 어찌……?”
[일전 소림에 갔을 때 제국 전역에 펼쳐진 대진법을 발견했지 뭐냐? 그것을 이용해 용맥을 이용한 일종의 축지를 사용한 것이란다. 물론 매번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흠…….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방금 엄청난 이야기를 내뱉으셨는데, 전음은 마침 돌아가는 열차표가 하나 있어서 그거 사서 왔다는 느낌이었다.
‘추, 축지……? 대진법? 용맥? 왜 제국에 그런 게 있어?’
그리고 한 가지 더.
‘그걸 안다고 축지법이 돼?’
보통 선도에서 말하는 전설의 술법 중의 하나 아니던가.
땅을 접는다는 그런 거.
진천희는 일단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 스승님이면 솔방울로 수류탄을 날릴 수 있고, 눈빛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는데. 그깟 축지술이 무슨 상관이겠냐.’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해 주신다 하였으니 그때 말해 주시겠지.
“그러면 우선 뒤처리부터 하죠.”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털썩-
진천희의 몸이 앞으로 구르다시피 엎어진다.
왕각연의 몸도 함께 엎어질 뻔하다가 유호가 잡아서 대신 들었다.
제갈린은 제자의 뒷목을 붙잡아 짐짝처럼 들었다.
“큭, 스승님?”
“사지 근맥이 다 끊어지기 직전이구나. 죽을 생각이라도 했던 게냐?”
“!”
보통이라면 그만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는 것을 뜻할 터.
허나, 스승님은 제자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그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진천희는 결국 스승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조금 자려무나.”
그 말을 끝으로 진천희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린 건가.
온몸의 통증이 멀어지며 깊은 수마가 밀려들었다.
* * *
꿈을 꾸었다.
옛날 삐약이 시절 꿈이었다.
작은 단칸방에서 혼자 살아가며 무리하던 시절, 어느 날인가 몸이 아파 끙끙거렸다.
‘와, 독감인가.’
분명 예방주사도 맞았던 것 같은데, 아니면 몸살……?
잘 모르겠다.
이불 밖을 나갈 기력이 없어서 한참 엎드려 있었다.
쾅쾅쾅쾅!
“야, 문 열어!”
“못…… 열어요. 선배.”
세상에서 가장 싸가지 없는 선배가 왔다.
“화분 밑에 예비 열쇠라도 놓은 거 없……. 아니다.”
드르륵-
여긴 2층이다.
단칸방이라고 해도 2층이었다.
하지만 선배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선배, 그거 무단침입…….”
“으뢋차차차차차차차!”
제멋대로 굴러들어와서 라디오를 발길질로 박살 냈다.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가뜩이나 아픈데, 저 꼴을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밀려온다.
“비실한 새끼, 이런 집에서 사니까 아픈 거지.”
……설마 이 몸살로 선배 뒷정리까지 해야 하나.
이 선배가 후배를 간호하면서 스스로 박살 낸 라디오며 와르르 책장까지 다 치우고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부엌은 저기냐?”
양말이다.
꼴에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다고 양말로 들어온 모양이다. 하지만 양말 발바닥이 새카매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나.
선배가 들고 온 비닐봉지에는 약과 먹을 것이 들어있었다.
* * *
‘왜 그때 꿈을 이제야 꾼 거지?’
참 지랄 같다.
‘어쩌면 혈선교주는 선배가 아닐지도.’
술법 중에 과거의 인물로 보이게 만드는 게 있는 거 아닐까?
그런 걸지도.
옛날 선배를 떠올리면 이건 전혀 다른 사람 아닌가.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착각일 게 분명하다.
진천희는 스스로를 그렇게 납득시키고 또 납득시켰다.
“일어났구나.”
눈알만 천천히 돌려 상태를 보니 온몸에 침이 꽂혀 있었다.
스승님이 보였다. 유호도 있었고.
녹력은……. 음,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허드렛일을 하러 나간 듯했다.
“어떻게 오신 겁니까?”
제갈린이 답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목숨을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와아, 죽. 을. 뻔. 했. 네. 요.”
무표정하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으며 제자의 몸에 침을 꽂았다.
기껏 구해 주었는데 고맙다는 말보다 의문부터 표하는 몹쓸 놈의 제자에 대한 질책이었다.
진천희는 얼굴이 벌게져서 답했다.
“……그…….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정도 되돌리는 수준이라면 너도 다치지 않고 바꿀 수 있겠지. 하지만 판이 꽤 길었다. 뿌리부터 바꾸려면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바꾸었어야 할 테니 최소 한 달은 족히 걸렸을 터고. 그때에는 네 손모가지가 날아가 있겠더구나.”
“거기 간 것 자체가 이미 죽을 자리였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장천군과 조천군만으로 그 귀계를 다 짠 건 아닌 것 같고. 필시 백천군이겠지. 왜인지 모용세가는 백천군을 의지하는 듯하니.”
“…….”
“그자는 너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너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모용세가라는 판을 깔아둔 거고. 장천군과 조천군은…….”
“그걸 이용한 겁니까?”
“글쎄? 이용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그저 배역을 하나씩 맡아서 본인들도 모르게 백천군의 목적을 이루고 있었던 게지.”
“목적이라 함은…….”
“네가 죽는 것, 또는 사지 중 하나를 잃는 것.”
“…….”
“내가 보기에는 그는 네 능력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나,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온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 것 같고, 거기에 대가가 약간……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짐작하는 듯싶더군.”
“그렇다 하더라도 저를 완전히 죽이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너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겠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에 대해 모른다 하더라도, 기적을 일으키는 데 어느 정도의 대가가 필요한지는 알 터이고. 때로는 그 기적 중에 특히 미래를 ‘예지’하는 데 더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날도 올 거다.”
미래 예지.
실상은 그저 미래에서 과거로 되돌리는 것.
허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을 본다면 그리 보일 만했다.
제갈린이 말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제갈세가인 네가 모르지는 않겠지.”
“네…….”
백천군은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니, 진천희는 살짝 경악했다.
“나도 거기까지 정보를 얻어 내고 나니 네가 이미 출발한 후더구나.”
이제 스승님이 정답을 말해 줄 차례였다.
“자, 그러면 이제 거기까지 말해야겠군. 용맥에 대해 어디까지 아느냐?”
“기가 모이는 장소로 진법의 축이 되는 곳입니다. 용맥에 따라서는 모산파 같은 문인들이 수련하기 좋은 장소가 조성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큰 진법들은 보통 용맥을 끼고 만들곤 합니다. 대문파도 용맥과 주변 지리를 고려해 자리를 잡고요.”
“거기까지가 정석이구나. 그러면 용맥과 용맥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네?”
진천희 눈이 살짝 커진다.
그것은 제국의 어떤 서적에도 적혀 있지 않은 이야기였다.
“풍수를 볼 때 다들 용맥을 찾지만 이 용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모르더구나.”
“……네.”
“용맥끼리는 땅속에서 혈관처럼 서로 이어져 있단다. 그것까지는 자연 현상이지. 허나, 지하 깊이 이어져 있기에 인간이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아는 경우는 드물 터.”
“그……렇군요.”
“그것을 이용한 대진법이 제국 전역에 펼쳐져 있더구나. 사용하는 방법은 소림에서 발견한 것이고.”
역시 스승님은 한 가지 의도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으시는구나.
진천희는 작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굳이 대진법을 쓰는 게 아니더라도 유호를 이용해 빨리 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그간 네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닌 것인지 이 눈으로 보니 참 즐겁더구나.”
비아냥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스승님의 말씀은 제자로서는 가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네?”
“처음에는 과감하게 아주 과거로 돌아가겠거니, 그래서 대가를 크게 치르겠거니 하였으나. 네가 몸을 가는 것을 보니 모두를 살릴 때까지 반복하겠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단다.”
“함부로 죽지 않기로 약조하였으니 저는…….”
“그래. 하지만 친우의 목숨이 네게 ‘함부로’일까. 심양 사람들 전부의 목숨이 네게 ‘함부로’일까. 글쎄, 모르겠구나.”
스승님의 목소리가 진천희를 관통한다.
진천희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백천군은 왜인지 네 목숨에 집착하고 있다. 다른 십천군들과는 달라. 언제나 너를 확실하게 죽이는 것을 상정하고 있지.”
“…….”
“나는 꽤 비정한 스승이란다. 네가 한 번, 최악의 경우 두 번 정도 죽는 것까지는 포기한 스승이지. 네가 가야 할 길은 상식을 넘는 가시밭길이고. 만약 거기까지 막아버리면 너를 가둬서 키워야 할 것이고, 말세가 온다면 너는 아무것도 성장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 되겠지.”
스승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자의 죽음까지 계산에 넣는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지옥의 가장자리였으니까.
“하지만 그 한 번, 두 번의 죽음으로도 해결이 안 될 때. 악순환의 고리를, 악순환인지도 모르고 빙글빙글 돌다가 사지 모든 것을 바치고 나서도 답이 없을 때. 그때는 어찌해야 되겠느냐?”
왜일까.
문득 어린이 도서관이 떠올랐다.
낮은 눈높이의 책꽂이들과 얼룩말 그림.
그걸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장이 자꾸 뛰기 시작하여 억지로 진정시켰다.
‘모든 것을 바쳐도 답이 없을 때. 나는 어떻게 되지?’
생각을 뒤집어보자.
언젠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팔과 다리, 눈과 혀, 생명에 직결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바쳤다면, 그다음은 어찌 되나?
진천희는 장갑으로 감추었으나, 이제는 없는 왼쪽 새끼손가락을 바라본다.
그것은 진천희가 처음으로 이능을 각성했을 때.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내 새끼손가락은 어디로 간 거지?’
시간을 거스른 대가.
‘대가’라는 의미는 본디 지불이나 비용.
즉, 넓은 범위의 물물교환을 내포한다.
질문을 바꾸어보자.
‘내 손가락은 누가 가지고 있는 거지?’
그 순간, 진천희는 왜인지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늘? 복희?
그 순간, 머리가 핑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