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9
제 1049화
‘큭.’
진천희는 머리를 붙잡고 정신을 차린다.
어렵다. 보통 인과율은 하늘을 의미한다.
허나, 이능을 준 것은 복희 아닌가.
어찌 되었건 진천희는 풍가의 사람이고 풍가는 복희의 후손이니까.
‘결국 모든 것은 심증뿐인가.’
아무리 생각한다고 한들 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왜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기증이 밀려온다. 이러다가는 의식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점점 머릿속이 울렁거린다.
‘…….’
현원전단신공, 작은 진천희들도 이 질문에는 침묵한다.
진천희는 깊이 심호흡하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게 이런 상황이고, 이게 바로 백천군이 깔아둔 판이었단다.”
“…….”
“그는 너를 죽이고 싶어 한단다. 확실한 죽음을 원하지. 네 능력에 대해 완전히는 아니어도 약간의 짐작은 하고 있는 거고, 그것을 광증만으로 깔고 있는 자란다.”
단순히 혈선교를 위해 죽이고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
애초에 혈선교를 위한다면 죽이는 쪽보다는 제물로 삼거나 아니면 미친 소리 같지만 장천군과 조천군이 원하는 대로 세뇌시켜 랩실 친구로 만드는 게 더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죽음.
확실하고 깔끔한 죽음의 덫.
진천희는 증오의 향을 느낀다.
“그자는 네 죽음에 집착하고 있단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니 더욱 네 목숨을 소중히 여기렴. 물론 그리 말한다고 한들, 네가 얼마나 들을지는 미지수이나. 그래도 이번에는 네가 이겼구나.”
제갈린은 제자의 머리를 쓸었다.
“스승님 덕분이죠.”
“나는 그저 마지막에 도착했을 뿐, 나머지는 네가 전부 한 게지. 거기다 왕각연의 성장은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
“…….”
화살에 의념을 담는다.
이제 왕각연이 쏘는 화살 한 발, 한 발이 법칙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 될 터.
왕각연은 아버지인 궁귀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궁왕은 궁제가 될 것이다.
‘아니면 궁황이라 부르든가.’
강호인들은 황(皇)이나 제(帝)를 막 섞어서 부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니까.
“모용세가는 앞으로 어찌 될까요?”
“몰락은 확실하고……. 관군이 개입되었으니 황상께서 관련자들을 전부 잡아 죄를 물으시겠지.”
관련자라고 해도 가문 단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다.
그 범위가 얼마나 넓을지 상상이 안 된다.
“아이들은……?”
“모용세가 아이들의 많은 수가 이미 혈선교 생체 실험에 쓰였단다.”
“네?”
“모용신이 어떻게 인체를 개조했겠느냐. 그 무공과의 적합성은 어찌 판별했겠느냐.”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인간을 버릴 생각…… 아니, 이미 인간을 버렸죠.”
진천희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문지른다.
제자는 충격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반면 스승은 담담하다.
“본디 세가의 가주가 나쁜 마음을 먹게 되면 그 세가의 가장 약한 존재가 실험으로 쓰이는 법이란다.”
스승님은 자신의 어릴 적 과거를 회상하는 눈으로 제자에게 그리 말했다.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늙었다고 그 기력이 쇠할 수도 있겠지만, 모용세가의 장로쯤 되면 젊은 놈보다 강할 테니 논외로 치고. 결국 만만한 게 아이들인가.’
하지만 아이들은 새싹 아닌가. 가문의 미래를 열 존재들.
‘설마 애는 다시 낳으면 된다고 판단한 건…… 아니겠지?’
진짜 그랬을까 봐 무섭다.
스승님이 말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황상께서 거두셨단다. 혈선교와 관련이 없다는 게 증명이 된다면 훗날 금의위나 동창이 되겠지.”
“연좌제는 적용 안 했군요.”
이 시대는 연좌제가 당연하다.
반역을 저지르면 구족을 몰살하는 시대였다.
당장 스승님만 해도 관이 아닌 무림의 연좌제였지만 제갈세가의 아이까지 전부 씨몰살당한 경험이 있지 않던가.
“관군을 모아 황도로 진격했다면 그랬겠으나, 증거만 보았을 때 무림일통이 가장 큰 목적이었던 듯하더구나. 크게 보면 마교 같은 독단적인 세력이 되고자 했겠지만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진천희는 모용신이 자신 앞에서 왕 어쩌고 칭했던 것은 함구하기로 했다.
죽은 놈은 말이 없으니까.
“그리고요?”
“모용세가의 아이들 중에는 무골이 많고, 어릴 때 이미 벌모세수에 영약을 밥처럼 먹은 애들이다. 그런 애들을 연좌제 적용해서 죽이기에는 인재 낭비지.”
“……”
냉혹한 계산에 등골이 시리다.
“물론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혈선교와 어디까지 연루되어 있는지, 혹시 개조라도 당한 건지 철저하게 조사야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어릴 적 나 같은 경우였다면, 가문의 비사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였다면. …쓸 수 있으면 쓰는 게 좋지 않겠느냐?”
진천희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 제갈세가가 그런 혈사를 경험했을 때, 황군이 어린 스승님을 거두어갔다면 지금쯤 금의위든 동창이든 되었겠구나.’ 하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겠지.
“그런 의미에서 너도 너무 모용세가에 신경 쓰지 말려무나. 적어도 성인들이 저지른 짓을 가지고 감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진천희는 냉정하게 말했다.
“작은 마을도 아니고 거대한 도시 하나를 전부 집어삼키려고 했으니까요. 이건 선을 많이 넘긴 했었죠.”
“마을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마을 단위로 생체 실험을 했던 기록도 있는 모양이고 말이다.”
“아…….”
왕각연이 말했었다.
친우의 부모님이 사라졌다고.
모용세가와 관련된 작은 마을들은 쥐도 새도 없이 사라졌다고.
‘그래. 이럴 것 같았지.’
아이들도 실험에 썼는데 피도 안 섞인 마을을 안 할 리가.
그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했던 걸까.
“고작 돈 때문에……?”
“돈을 얕보지 말려무나. 돈은 충분한 살인 동기가 된단다. 그리고 실험 동기가 되기도 하지.”
진천희는 마른세수를 했다.
동기가 너무 보잘것없었다.
과거 북해빙궁에서는 아들을 살리려고 그 짓을 벌였다.
물론 그건 용서 못 받을 짓이 맞지만 적어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벌인 짓이었다.
남궁세가 가주는 막혀 있던 벽을 뚫기 위해 일을 벌였다.
본인은 마공인지도 모르고 익히다가 생긴 일이었다.
이를 알게 되고 스스로 단전을 폐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교인들은 천마가 신이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낙원을 위해서 그 모든 참상을 벌인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세뇌 비슷한 것을 받아 왔고 그 세계가 전부라 믿는다.
그리고 돈, 돈은…….
이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동기였고, 가장 큰 해악을 끼쳤다.
“어찌 되었건 요녕성의 패권은 이제 공손세가가 쥐게 되겠지.”
“네. 민심도 완전히 그쪽으로 돌아섰고요.”
“모용세가와 연루된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던 일은 꽤 알음알음 퍼진 모양이더구나. 그 실체가 밝혀졌기도 하고. 공손영과 함께 하던 공손세가의 무인들과 그의 가족들의 충심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기도 했고 말이다.”
좋을 때는 그 사람의 본질을 보기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면 가장 힘들 때 어찌 행동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당시 패색이 짙은 주작당을 구하러 백호당을 끌고 달려갔던 일화는 꽤나 많은 강호인들의 심금을 울린 모양이다.
“음, 그래. ‘공손세가는 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이게 공손이오?! 공손 가주는 목숨을 위해 이리도 쉽게 아군의 목숨을 구렁텅이에 버리는 것이오?
지존천마에 나왔던 문구였다.
공손영이 없는 공손현은 그랬다.
공손세가가 분명 천마인 여하륜에게 대적함에도 많은 이들에게 지탄받는 이유이기도 했었고.
이게 어떤 식으로 반발이 올지 공손현도 알고 있었다.
허나, 죽은 동생은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러니 자기 파괴적으로 살던 인생.
어떻게든 여하륜을 죽이고 자신도 일찍 죽으면 만족하는 삶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공손영이 살아있음으로써 이제 공손세가의 평판은 180도 바뀌었다.
‘모용 가주의 생각이 틀린 것이지. 인간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인데…….’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 생각하겠지만, 결국 그 쌀을 만드는 것은 농부이고, 요리를 하는 이는 양민이다.
나무꾼이 나무를 자르면 상인이 나무를 사고, 그것으로 목수가 집을 짓는다.
사소한 것부터 인간은 타인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였다.
‘모용세가 가주, 모용신은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한 게지.’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이 똑똑하게 사는 것이라 믿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지능이 높고, 지혜가 깊어질수록 한 가지 면만 보지 않는다.
당장의 이득이라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 수년이 지나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모용 가주가 원하는 힘을 가지고 자체적인 패권을 누린다고 한들 그렇게 일이 쉽게 돌아가지는 않겠지.’
허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게 막는 게 인간의 탐욕 아닌가.
탐욕 앞에서 인간은 조금씩 멍청해지기 마련.
그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진리였으니까.
“그나저나 북해빙궁에서 상당한 숫자의 무인들이 왔더구나.”
“아, 제가 뇌진을 시켜 중간에 지원군을 청했었거든요.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되어서, 이미 다 끝나 버렸긴 했지만요.”
“결국 와서 전투보다는 요녕성 재건을 돕고 있다 들었다. 강호인이 토목에 크게 쓸모 있다는 것은 네 녀석 덕에 증명된 사실이지만 아쉽긴 하더구나.”
“헤헤헤헤.”
스승마저 토목으로 부려먹었던 자가 뻔뻔하게 웃었다.
“아무튼, 아직 그런 부분은 책사로서 미숙하더구나. 처음 상황을 파악했을 때 미리 보냈으면 때를 맞췄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예지의 영역 아닌가?
보통 사람이라면 미친 소리나 억지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허나, 진천희는 순순히 납득했다.
‘현장에서 첫 정보를 입수했을 좀 더 조심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군.’
진천희가 말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만약 제 추측이 틀렸을 경우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헛걸음만 하는 셈 아닙니까? 그리고 자칫 혈사가 커질 수도 있고요. 모용세가가 다른 세가의 손을 빌려 더 혈사가 커진다거나…….”
“그래 봐야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두었으니 지원이 오려면 시간이 최소 보름은 걸린단다. 그 안에 힘으로 쥐어패 버리면 될 터. 모용세가 가주 놈 목을 인질로 흔들고 있으면 지원이 뭘 할 수 있겠느냐.”
그렇군.
대화를 나눈다거나, 회담을 거친다거나, 모용세가가 공손세가에 와서 했던 그 선전포고도 다 스킵하고 주먹으로 답을 보겠다는 건가.
“저어, 사람을 부르는 비용과 발생할 은원은……?”
“가주 공손현에게 알아서 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면 되지 않느냐.”
‘음, 이건…… 악마의 지혜군.’
혈선교가 개입되었다면야 유비무환의 수라 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런 게 아니라 평범한 세가 간의 혈전이었을 경우?
자칫 기둥뿌리가 뽑힐 일이다.
이 짓을 했다가는 공손현은 두 번 다시 진천희를 부르지 않을 터였다.
문답무용으로 아주 그냥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다 뜯어 버리는 계책이지만 어쨌든… 공손세가가 이길 것이고, 모용세가는 질 것이고…….
어……. 날린 인망은 공손현이 알아서 할 일이시고.
날아간 재산도 알아서 할 일이시고.
초대받은 책사 진천희만 룰루랄라 폐허를 뒤로한 채 집으로 귀환하는 엔딩인가.
‘어쩌면 이쪽이 스승님이 원하시던 바……겠군.’
스승님께서 말했다.
“보통 본가에서는 그런 식으로 처리해 왔단다.”
‘괜찮은가. 제갈세가의 인망.’
이쯤 되면 괴담에 나오는 원숭이 손 아닌가.
네놈의 소원은 들어주는데 뒷일은 알아서 해라?
“그러면 이제 슬슬 일어나거라. 승전연회를 해야지. 주연인 네가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니.”
“스승님은 꼭 참가 안 하실 것처럼 말씀을……. 어라, 참가 안 하시려고요?”
“후후후, 공식적으로 나는 백린의각에 있는 중이다. 내가 이곳에 온 사실은 없던 일로 덮어두라고 일러두었다. 이 시기에 내가 전면에 나서면 안 되지.”
스승님은 꼭 무슨 스릴러 소설에 나오는 흑막처럼 웃으셨다.
‘하는 일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진천희가 물었다.
“슬슬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의각도 오래 비워 두면 안 될 테니 말이다. 덕분에 녹력의 성능도 잘 실험했고.”
……역시 한 가지 의도로 움직이진 않으신다.
진천희는 녹력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너는 뒤처리를 하고 돌아오거라.”
그리 말하며 스승님은 밖으로 나갔다.
잠시 공손현을 만나 마지막 대화를 하고 돌아가실 모양이었다.
어둠 속.
문득 기척 하나가 더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호였다.
“어? 스승님 따라 안 가?”
“…….”
유호는 대답 없이 빤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싸게 먹혔군요.”
“하하하, 그렇지?”
“다음에도 그럴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그리 말하며 쾅 소리를 내며 나가는 게 아닌가.
‘방금, 걱정해 준 거 맞지?’
좀 헷갈리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