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50
제 1050화
스승님과 유호, 녹력은 모두 돌아갔다.
진천희는 뒤처리가 남았기에 좀 더 있기로 했다.
회복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니 승전연회가 벌어졌다.
그런데 북해빙궁을 대표하여 아이샤 왕국의 왕자가 직접 와 있는 게 아닌가!
‘아니, 한빙 왕자가 직접 와있을 줄은 몰랐는데.’
과거 구양절맥을 앓았던 옛날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헌양하기 그지없는 자태였다.
‘그때 치료해 준 이후로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분타주에게 듣긴 했지.’
진천희가 치료를 해준 이후, 아이샤 왕국 백린의각 분타의 의원들이 한빙 왕자의 몸을 관리해주고 있다 들었다.
가끔씩 서신을 주고받고 있는데 건강이 매우 회복되었다는 말 일색이었다.
과연 그 말대로 혈색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가주인 공손현이 상석에 앉고, 바로 옆에 왕자가 자리했다.
그리고 진천희도 옆에 앉는다.
모두 예를 표하고는 공손현의 허락에 따라 다시 착석한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진천희가 슬쩍 속삭였다.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은인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라 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한발 늦은 주제에 이렇게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소.”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요녕성의 복원을 돕고 있다 들었습니다.”
스승님께서 말해주셨다.
“그렇지. 그거라도 했야 하니까.”
엄청난 기세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 들었다.
“그런데 왕자께서 직접 오셔도 되는 겁니까?”
“아, 사실 안 되지. 하지만 오고 싶었네.”
하여간…….
진천희는 투덜거리며 한빙 왕자의 손목을 잡고 가볍게 진맥했다.
“역시 건강하시군요.”
“당연하지.”
공손영이 슬쩍 와서 한빙 왕자와 와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두 사람은 예전에 함께 차력 쇼를 했을 때를 떠올렸다.
진천희도 함께 껴서 그날을 회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오.”
진천희가 쓰게 웃었다.
“모용세가에 희생된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네.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하였으니 그것으로 다행일지 모르겠군요.”
파앙!
그 순간, 왕각연이 등을 때렸다.
“너 또 땅 파냐?”
“으응?”
왕각연이 말했다.
“언니, 얘 좀 봐요. 대승도 이런 대승을 해놓고는 혼자서 궁상떠는 것 좀 봐. 넌 신이 아니야. 인마.”
“그……으렇긴 하지.”
“에이씨, 술이 덜 들어갔나?”
그리 말하더니 진천희를 팔로 감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억지로 술을 콸콸콸 입에 부었다.
“뿔난 송아지, 기분 좋아져라!”
아니, 이 무식한 강호인이?!
‘이놈들아! 현대 회식 자리에서 이랬으면 너희들 다 신고감이야!’
진천희가 바둥거렸지만 공손영까지 껴서 꽉 끌어안으니까 저항할 기력을 잃었다.
결국 진천희도 알딸딸하게 취해서 소리 질렀다.
“마쉬쟈아아아아!”
“조오았어!”
“아자아자아아!”
내공으로 취기를 날려 버릴 수는 있겠지만 두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슬퍼하기에는 이미 흘린 눈물이 너무 많았고, 갈 길은 구만리.
이루어낸 것을 기뻐하며, 성취한 것을 즐거워하며 그렇게 함께 보내는 것이 좋겠지.
“비파 한 곡 뽑겠슙니다!”
진천희는 풀린 혀로 비파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음악.
허나, 흥겨워서 저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리는 노래였다.
“장포가 다 젖을 때까지~ 요~녕성! 전냥 없어도 오늘만~은! 날라~뤼! 빠라빠라빠! 빠라빠라빠빠!”
그 노래를 들으며 공손영과 왕각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현대로 쳐도 다소 연식 있는 노래.
“이상한 음악인데?”
“흥겹긴 하네.”
두 사람은 금방 신이 나서 진천희 양옆에서 춤을 추었다.
그 옆에서 음공에 소양이 있던 공손가 몇몇 무인들이 경악했다.
“비파로 저런 소리가 어떻게 나는 거지?”
“아니 술 먹고 대충 튕기고 있는데 박자가 무섭도록 정확하오.”
그러거나 말거나 진천희는 노래를 부른다.
“빠라빠라빠! 빠라빠라빠빠빠라~! 헤이!”
오늘은 이긴 날.
그리고 죽은 이들에게 이 승리를 보여줘야 하는 날.
의원은 울고 웃었다.
좋은 밤이었다.
* * *
그렇게 진천희는 얼마간 요녕성의 복구를 도왔다.
그러면서 틈틈이 공손영과 왕각연의 무공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왕각연은…….
“활에 관해서는 내가 뭐 해줄 게 없네.”
파가가가강!
그녀가 날린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고는, 그대로 관통하여 그 뒤에 있는 목인형 여섯 개를 관통했다.
그러고는 담벼락도 관통하더니 그대로 산까지 의념이 날아갔다.
“그래?”
“오히려 내가 도와줄 건 위력을 좀 줄이는 정도?”
“왜?”
“저렇게 관통만 해서야 아군도 언젠가 다칠 거니까.”
“……쓰읍, 맞는 말이군.”
모든 것을 관통한다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쏘는 사람도 제어가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화경의 끝자락을 축하드립니다. 궁제시여.”
“궁제는 무슨! 아직 궁왕이라는 별호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곧 알려질 거야.”
진천희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왕각연이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르겠어. 이제 의념을 담아 쏘는 법을 배웠는데, 이다음 경지에 관해서는 아빠한테 배운 적 없으니까.”
“아마… 음…….”
진천희는 턱을 문질렀다.
“뭔데?”
“개파조사께서도 거기까지는 안 간 거 아닐까?”
“엥?”
“애초에 일인전승이었잖아. 등선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는 나야 모르지만, 이다음 경지면 현경인데 그것에 대해 글로 적는 게 가능은 할까 싶어.”
제갈세가의 비급.
그리고 황궁 서고에서 보았던 수많은 비급들.
현경의 경지에 거의 다다라서야 쓸 수 있는 무공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현경의 실체가 정확히 어떤 건지 적어 놓은 건 없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그냥 상상으로 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허무맹랑한 무공도 많았고.
진천희가 말했다.
“그냥 거기서부터는 따라가는 게 아니라 네가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경지가 아닐까 싶다.”
“정론이라 짜증 나네.”
“그치?”
진천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에 왕각연도 함께 미소 지었다.
“내가 길을 만들어야 한다라. 와아…. 그런 대단한 걸 내가 무슨 수로 해?”
“네 재능은 뛰어나. 그 나이에 벌써 그만한 성취를 얻은 이가 없을 정도로. 냉정하게 말해서 혈편왕 당아도 남궁운도 천재라 불릴 수 있겠지만, 너와는 달라.”
“음?”
“……대체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거야?”
“헤헤헤헤헷. 눈치챘나?”
그 말에 왕각연이 한참 웃었다.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설마 그 나이에 벌써 죽고 싶어지기라도 했던 거야?”
“그럴 리가. 나만큼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 못 봤어.”
맞는 말이었다.
만약 죽고 싶었다면 진즉에 죽었을 여로다.
재능은 있었다.
영약도 공손세가의 오른팔로서 많이 먹었을 터였다.
공손현이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니까.
허나, 그것만으로는 저렇게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
‘이건 세끼 밥 먹듯이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거다.’
얼마나 많은 생사결을 거치고, 얼마나 많은 생사의 기로를 넘은 걸까.
그럼에도 무심하게 잘 지낸다고만 서신을 보내는 이 친우가 의원으로서 좀 짜증 났지만, 그 타고난 운과 성취 하나만은 인정할 만했다.
왕각연이 말했다.
“나 협객이 되고 싶었거든?”
“응. 어릴 때부터 동경했잖아. 동전 세 닢에 마을을 구한 이야기를 모서리가 닳을 정도로 읽고 말이야.”
“그래. 맞아. 그런데 현실은 참 힘들더라고.”
“…….”
“네가 알다시피 나는 그렇다고 이상주의자는 아니야. 안 되는 건 안 되는지 알고, 힘들 것은 힘든지 알아. 그러니까 공손세가에 몸을 의탁했던 거고. 거기의 지원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공손세가의 힘을 빌려 일을 해결하기도 하고 그랬던 거지.”
왕각연은 벌러덩 연무장에 대자로 누웠다.
“하지만 말이지. 생각보다 무명(武名)이 알려지진 않더라고. 알고 보니까 양민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거야. 무명(武名)은 있는 사람을 구해야 더 알려지더라고.”
“그렇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양민을 구하는 일이 가진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쉽지는 않더라. 오히려 더 어려울 때가 많았어. 관이나 다른 세가나 문파가 엮이면 더 그렇고. 차라리 흑도를 시원하게 밀어 버리는 건 편하더라고.”
왕각연은 그리 말하며 검지를 들고 활을 쏘는 자세를 했다.
입으로 ‘피유~’ 소리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네가 만든 백린의방들을 봤지. 거기는 누구도 목숨을 걸 필요 없이 그냥 양민을 구하더라고. 그냥 구민 대책이 있고, 급하면 대출도 해주고. 그래서 그냥 깨달은 거야. 나 혼자서 하는 건 한계가 있구나 하고. 결국 협객은 그러니까 약간 환상 같은 거지.”
“그래서 너는…….”
“솔직히 말하면 너한테 질투했었어. 그래서 너를 이기고 싶어서 목숨을 걸었어. 나는 협(俠)을 한다 믿었지만 사실 그냥 너처럼 유명해지고 강해지고 싶었던 거야. 너도 대충은 알고 있었지?”
“…….”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아니, 모르는 척했다.
물론 약간의 치기 어린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허나, 그것이 목숨을 걸 만큼의 갈망이 되었을 줄은 몰랐다.
진천희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뭔가 후련해졌네.”
왕각연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반듯한 옆얼굴 위로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바람에 날린다.
이제는 전인미답의 길이라.
그녀는 그 말을 반복했다.
“그래. 내 길이 그래도 틀린 건 아니었어. 네가 사기적으로 강한 거지.”
“나는……. 음… 꼼수를 많이 썼지.”
소설의 미래를 알고 있어서 부릴 수 있는 꼼수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편법일 뿐, 진짜로 강한 것은 바로 왕각연 같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네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각연아.”
“응.”
“그러니… 나를 위해 조금만 배워 줄래?”
“응?”
왕각연을 내려다보는 진천희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우리 친구, 외공과 재생공에 관심이 있니?”
마치 삼십 년 차 약장수 외길 인생만 걸어온 듯한 목소리.
그야말로 사짜 같은 자태로 친우가 말했다.
“좋은 거 가르쳐 줄게.”
“?”
* * *
그렇게 왕각연에게 외공과 재생공 등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을 스파르타로 가르쳤고, 그것은 공손영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구결과 기초를 다 익힐 때까지 연무장을 굴러야 했다.
진천희 교관은 봐주는 일이 없었고,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공손현은 움직이는 게 싫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왕각연과 공손영은 이제 전보다 더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 유리하게 되었으리라.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마친 후, 모두와 작별을 했다.
배를 타고 백린의각으로 돌아가며 진천희는 배 위에서 물끄러미 배 아래를 보았다.
“음? 거기 뭐라도 있습니까?”
선원의 질문에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냥 보고 있었습니다.”
왜일까.
배 아래에서는 금방이라도 괴어인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버섯이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드는군.’
세계는 그가 알던 것보다 더 깊고 어둡고 광기로 차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도 인간은 살아간다.
이 험난한 세계 속에서도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지 않던가.
‘나도 준비를 해야지.’
말세가 다가오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으리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 한다.
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