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53
제 1053화
진천희를 바라보던 시선도 잠시.
이윽고 풍하금은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요리하는 시간이 짧지 않음에도, 그동안 골드의 시선은 수많은 정무 서류에 못 박혀 있다.
‘와, 숨소리 하나 내지 않네.’
실버의 경우에는 서류를 볼 때 중간중간 차를 마시거나 다과를 집어 먹거나 하면서 일을 한다.
하지만 골드는…….
‘죽은 사람처럼 일하는군.’
고요하다.
심장에 옥새가 날아와 꽂힌다.
“감사 결과 해당 관리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으니, 가장 깊이 연루된 관련자들의 목을 치도록 하지.”
“그 수는 서른 정도가 되겠군요.”
“이 정도면 소소한 편 아닌가?”
“네, 황상의 자비에 만백성이 감읍할 것이옵니다.”
인구가 많은 화 제국이라 처형 스케일도 남다르시다.
“쓸데없는 아부는 되었다. 다음 일을 처리하도록 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진천희는 요리를 해서 바쳤다.
탁-
“드시지요.”
“음. 이게 그 요리인가?”
짧은 한마디.
허나, 풍하금의 눈이 기대에 부푼다.
그만큼 진천희가 말아준 국수의 향이 깊고 시원했으니까.
그는 유려하게 세공된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할아범, 요즘 소화력이 떨어진 것 같은데 따뜻한 차로 한번 위를 보하고 먹게.”
“예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충복, 강철도 소화시키는 위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만용일랑 부리지 말고. 조심하게. 나이는 못 속이는 법이니까.”
확실히 골드가 실버보다 좀 더 제독태감을 챙기는 모양이다.
골드는 밥 먹는 소리도 그리 들리지 않는다.
조용히 면발을 삼키며 초계국수, 아니 정식 명칭 초계우양골면(醋鷄牛羊骨麵)의 향을 느낀다.
‘실버는 보통 농이라도 거는데 말이지.’
골드는 조용하다.
뭔 말을 건넬지 긴장하던 사람이 절로 김이 빠질 정도로.
이윽고 그가 말했다.
“맛있군.”
고작 이 정도의 감탄사?
이렇게 생각하는데 오히려 제독태감이 전음(傳音)으로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오오, 엄청 국수가 맛있으신 모양입니다. 좀처럼 이런 평 잘 안 하시던데 말입니다. 황실 주방장에게도 맛있다는 말을 잘 안 하시거든요.]그런가.
주로 풍하은을 자주 보다 보니 이런 건 그리 느낄 일이 많지 않았다.
[지금 폐하께서는 몹시 기분이 좋으신 상태이십니다. 다만 생각할 것이 많아서 말수가 줄어드신 것이지요.]뭔가 못마땅한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면 되었다.
‘그나저나 황상쯤 되면 관리를 서른 명 정도 처형해도 좋은 기분이 유지되는구나.’
현대는 사형제도를 유지하니 마니로 싸움이 나고, 사형수도 좀처럼 형이 집행되는 일이 많지 않은데 이 시대의 황상이란 존재는 현대인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이 아닐까.
‘하긴, 현대는 투표로 황제를 선출하는데 화 제국은 죽창으로 황제를 선출하지.’
살아남은 새끼가 황상이다.
강한 놈이 황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착한 놈이 황상이 되지는 못하리라.
애초에 사람이 착한데 어떻게 존속살인을 하겠나.
이 동네는 황제 되겠다고 다들 그걸 한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그것이 지엄하신 화 제국의 법도이니.
이윽고 풍하금이 말했다.
“요 근래 가장 맛있는 국수였다.”
[폐하께서 음식의 여운을 느끼시는 중이십니다. 나중에 야식으로 한 그릇 또 말아주시면 무척 기꺼워하실 겁니다.]아무튼 국물까지 싹싹 다 비운 것이 정말 맛있었던 모양.
[한 그릇 다 비우신 것도 오랜만이고요.]‘이쯤 되면 제독태감이 부모 아닌가. 아니, 사실상 부모 역할을 한 게 맞긴 하지.’
식사를 마치고는 진천희는 후식을 몇 개 더 내왔다.
감귤정과와 용정차.
달달하고 상큼한 정과가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주었다.
“아, 다 드시고 양치하셔야 합니다.”
“귀찮군.”
투덜거렸지만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안 했다.
다행이다.
우리의 골드깨서는 충치가 생긴 이력이 있으시지 않나.
차를 홀짝이며 금왕야는 눈을 감는다.
창밖의 바람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기분이 많이많이 좋으십니다.]제독태감께서는 잽싸게 황상께서 심기가 어지러운 것이 아니고, 지금이 무시무시한 상황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제독태감이 나서서 오해를 풀고 있을 정도면, 대체 그동안 골드가 저 표정으로 몇이나 죽인 거야.’
이건 착하게 산 사람에게 나오는 반응이 아니다.
“하나 더 내놔라.”
주겠냐도 아니다.
내놓으시란다.
그러면 어쩌겠나. 내어드려야지.
“다른 것도 드릴까요? 살구로 만든 정과도 있는데.”
“아무거나.”
그냥 빨리 내놓으시란다.
왜 골드 황상께서 충치가 생겼는지 알겠다.
‘단것 엄청 좋아하네.’
아닌 것처럼 별로 태를 내지 않고 있지만, 실버는 기름지고 짭짤한 것을 좋아한다면, 골드는 단것을 좋아하는 입맛 같다.
진천희는 바리바리 후식을 만들어드렸고 골드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며 후식을 즐긴다.
그러고는 틈틈이 제독태감에게 ‘할아범, 이것 좀 먹어 보게.’, ‘좀 딱딱한데 씹을 수는 있지?’ 하며 물어본다.
제독태감은 분명 무림 고수다.
그것도 강호인들은 모르는 무공을 익힌 엄청난 고수.
하지만 제독태감도 골드 황상 앞에서는 비 맞은 치와와의 표정으로 ‘맛있습니다요. 폐하.’, ‘어이고, 늙어서 이런 호강을…….’ 하며 기쁘게 먹었다.
쌍둥이 황상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모셨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왕야까지 하면 삼 남매지.
그중에서 효도(?)는 골드가 전부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실버와 레드는 약간…… 사고 치는 후레자식 포지션을 맡고 있는 듯하고.
진천희가 말했다.
“식사를 하셨으니… 정기검진은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골드의 기분이 좋은 이때가 기회다.
“그나저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만…….”
“호오. 네가 먼저 청하다니 드문 일이로구나. 무슨 일이냐?”
“황궁에서 거래하는 상단이나 공방에 대규모로 발주를 넣었으면 합니다.”
“음?”
“족답식 탈곡기라는 이름으로…….”
진천희는 미리 준비한 서류를 소매에서 꺼내서 건넸다.
“꽤 구겨졌는데, 설마 이거 보여 줄 틈을 노려 요리하는 내내 챙겨두고 있었느냐?”
“크헤헤헤헤.”
진천희가 괴이하게 웃자 골드는 한숨을 쉬었다.
“…다음에는 더 편하게 내놓거라.”
그게 쉬울 리가요.
이윽고 진천희가 제출한 서류를 한참 읽어 보던 골드가 말했다.
“네놈은 대체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내는 거냐?”
“어떤가요?”
“보급이 되면 될수록 농가의 부담이 엄청 줄어들겠구나. 다만 만들고 끝이 아니고 일종의 기관진식이 들어가니 수리가 문제인데…….”
기본적으로 관료 일을 많이 하다 보면 눈앞만 본다.
실무자라면 모를까 높으신 분들은 당장 필요한 예산과 거기에 드는 부가가치만 보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왜 쓰는지 모를 커다란 건물을 세워놓고 열심히 광고하고 일 년 후면 팽한다.
유지보수는 잊어버린다.
사실 당장의 부가가치도 안 보는 것 같긴 하다.
어찌 보면 그냥 조직의 생리 같은 것.
‘어째 위로 갈수록 머리가 굳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곧바로 몇 년 후까지 짚어내다니 과연 황상은 황상이다.
어째서 실무에 능한지 알 것 같았다.
“일단 동네 대장간에서는 절대 못 만들겠구나.”
“네. 들어가는 기관진식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처음 제대로만 틀을 잡을 수 있다면 그 후부터는 대량 생산이 가능할 겁니다.”
“…….”
풍하금은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좋다. 삼 일 후에 담당자들과 만날 수 있게 해 두마.”
드디어.
백린군 아웃소싱을 해줄 곳을 찾았다.
황상이었다.
* * *
다음 날.
진천희는 곧바로 황상의 치아를 검진했다.
“아~ 해 보세요.”
금왕야는 의자에 반쯤 누워서 입을 벌린다.
진천희는 그의 이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오우, 제법 관리를 잘하셨군요. 훌륭하십니다. 대신 잇몸이 좀 부었는데, 치실로 틈틈이 관리하셔야겠는데요?”
그리 말하더니 손으로 진동을 만들어 일종의 스케일링을 하기 시작했다.
“애가 히금 애대로 보고 이능 게 만느냐…….(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느냐?)”
“뭘 말이십니까. 왕야?”
“앤손으로 호히지 아늘 만큼 호히동을 주고 오른혼으로 흡공으로 그거 빠라드리고 인는 거 가튼데…….(왼손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초진동을 주고 오른손으로 흡공으로 그걸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오우, 과연 영민하십니다. 초음파……. 아니 일종의 음공을 이용한 원리지요. 소인이 드디어 현경에 올라 이제 더욱더 깔끔히 폐하의 치석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경? 치석 제거?
“…….”
약간 금왕야는 미친놈 보듯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치석 제거는 중대 사안이다.
“아프시면 손드세요.”
위이이잉-
그렇게 가내수공업 치석 제거까지 끝내고 금왕야는 제독태감에게 잔을 받아 양치를 했다.
시뻘겋게 피가 흘러나오자 제독태감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고 진천희가 말했다.
“아까 말했듯 잇몸이 많이 부으셨어요. 약도 처방할 테니까 하루 세 번 식후 복용하셔야 해요. 그래도 새로 썩은 곳은 없으니까 다행이군요.”
“후, 치아 진료는 적응이 안 되는군.”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영구치는 새로 나지도 않으니까 평생 조심해서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해요. 자, 그러면 다음 환자.”
그 옆에는 풍하은이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아니, 나는 괜찮다니까 그러네…….”
“치아 보는 김에 반위도 진맥해야죠. 추적 검사를 해주겠다는데도 그러시네.”
“…….”
“뭐가 그리 못마땅하신 겁니까?”
“내가 나갔다 온 사이에 금이한테 맛있는 거 해줬다며. 이번에 빙호 빙고 대회에서 상 탄 거. 나는 안 주냐?”
확실히 실버는 골드에 비해 편하다.
감정 표현도 다양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이런 식으로 따박따박 요구하는 게 상대하기 쉽다.
“정기검진 끝나고 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실버는 못 이기는 척하고 앉았다.
“자, 아.”
“아~”
의원은 그렇게 제국의 가장 큰 근심 하나를 해결했다.
‘와, 둘 다 관리 엄청 빡세게 했네.’
금왕야야 잇몸이 좀 부었다고는 해도 은왕야는 완벽하다.
금왕야처럼 철저하게 관리하는 흔적은 안 보이는데 타고나기를 건체인…….
‘……이쪽은 대장암이지.’
아니, 큰 한 방이 있지만 대체로 건체인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면 완치이고도 남은 상황이고 몸 전부 아픈 곳이 없다.
하는 김에 은왕야도 치석 제거를 해주었다.
현경의 깨달음으로 초진동 스케일링.
이후, 진천희가 준비한 물약으로 몇 번 양치하고, 그냥 물에도 양치했다.
진천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건강하시군요. 다행입니다. 그리고 온 김에 제독태감님도 정기검진을 하시죠?”
그 말에 제독태감이 약간 당황했다.
“소인은 안 해도…….”
“나이가 있으시니까요. 아. 지금은 황제 폐하의 보필을 위한 근무 시간이시죠? 날 잡고 천천히…….”
그 말에 금왕야가 끼어들었다.
“아니. 내가 보는 앞에서 그냥 할아범도 검진하거라.”
도망치면 가만히 안 두겠다는 말투.
“음. 그렇죠?”
강제로 하게 되었는데 제독태감은 외려 뭉클해진 표정이다.
“네, 네에……. 그렇습지요.”
나이가 들수록 애가 된다던데, 제독태감도 마찬가지.
이래서야 황위 다툼 때 황상을 앉히기 위해 강을 피로 물들이던 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진천희는 제독태감을 한참 검진하며 말했다.
“나이 때문에 쇠약해지신 것 외에는 괜찮네요. 하지만 보양은 필요할 것 같으니, 따로 처방전을 드리겠습니다. 황실이니 어려운 재료도 다 구할 수 있지요?”
“음,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금왕야의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독태감도 황송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가족 같네. 아니… 사실상 친가족이 맞나.’
진천희 역시 피로 이어져 있긴 하나, 배가 다른 사이이기도 하고 그들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
* * *
제국에는 천하십대상단이라는 데가 있다.
현재 단연 톱은 금혈방.
원래라면 대대로 상인 일을 해왔던 다른 대상단이 위에 올라가 있었으나, 지금은 금혈방의 아성을 이길 자가 없다.
덕분에 다른 상단들도 배가 아픈 상황.
그리고 이 천하십대상단 모두 황궁과 이런저런 계약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책사업에 끼어들기도 하고 중간에 돈을 떼어먹기도 하면서 재산을 불려 가는데.
여기서 TMI 하나를 이야기해 보자면 공손세가는 아직 천하십대상단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다.
바로 아랫급이라고 할까?
천하십대상단만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대부분 대를 이어서 부를 축적해온 상단들이다.
그리고 관과도 대대로 이어서 유착해온 곳이 대부분이고.
그중에서.
군수 사업 쪽에서 큰손으로 꼽히는 상단이 하나 있다.
철금방.
대규모의 대장간과 공방을 보유한 상단이다.
진천희와 독대하고 앉은 것은 바로 그 철금방의 방주.
철금신.
천하십대상단의 방주이자 철금상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고작 일개 촌부일 뿐이라고 낮춰 말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막대한 권력과 황금, 인맥은 태수 정도는 태수 ‘따위’로 만들 수 있다.
“이리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비록 방주의 자리에 있으나, 어찌 보면 우리는 같은 ‘장인’ 아닙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의 본업은 상인이고, 진천희의 본업은 의원이다.
철금방주는 생각했다.
‘저자가 황상에게 총애를 받는다는 신의(神醫). 장인이라 말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좋겠군.’
신의(神醫) 진천희도 생각했다.
‘그 유명한 철금방 방주인가? 뜯어먹으려면 친해져야겠어.’
화 제국 돈을 거머쥐고 있는 거대 세력의 수장이 이권 앞에서 부딪친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혈투에 ‘장인’은 이용당했을 뿐.
문득 진천희는 황상의 속내를 깨달았다.
-자, 대충 알아들었겠지? 이제 서로 죽여라.
이놈의 화 제국은 상인으로도 고독(蠱毒)을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