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54
제 1054화
“그렇지요. 우리는 ‘장인’이지요.”
진천희는 수더분한 미소를 흘렸다.
철금방은 강호 문파라기보다는 상회(商會)에 가까운 방파로, 사실 강호에서도 문파로 쳐주지는 않는다.
다만 천하십대상단쯤 되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무력을 보유하기 마련.
‘그 규모는 거대 방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중소 규모의 문파 너댓 개를 합친 정도는 되지.’
당연히.
상단의 주인들도 그 나름의 무공을 익혀야 한다.
강호 무림에서 돈만 있어서는 언제 어디서 시체가 될지 모르니까.
이 철금신도 마찬가지.
진천희가 딱 보니 무위는 초절정 초입.
그래도 이 정도면 강호에서 어지간해서는 비명횡사는 안 당할 수준이다.
현재 금혈방의 인명록에 따르면 화경에 이른 고수가 강호에 대충 백 명에서 이백 명 사이고.
초절정의 고수 정도는 대략 천여 명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이 넓고 넓은 제국 땅에서 상위 천 명 안에 들어가는 정도면 그래도 자기 명은 보전할 수 있을 터.
다만…. 진천희가 의원으로의 눈으로 보니 무위가 전체적으로 불균형하긴 했다.
아마도.
‘비싼 돈을 써서 개정대법을 받은 다음 영약을 먹고 억지로 끌어 올린 무위인 모양이네.’
하긴, 무인이 아니고 상인이라면 필사적으로 무공을 익힐 필요는 없긴 하지.
그렇다고 해도.
건장한 무골인 데다가 손에는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다.
이걸 장인들은 쇠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다.
진짜 쇠 냄새가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다는 의미.
‘대장장이 출신이로군. 하긴, 철금방은 대장장이가 세운 상회이자 방파라고 들었으니…….’
철금방의 역사는 약 이백 년.
상당히 유서 깊은 조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천희는 한눈에 거기까지 파악하고 말했다.
그는 찻물 한 모금에 웃음을 거두고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황제 폐하의 주치의이자 천하에 명망이 높은 진천희 태수를 뵙습니다. 소인은 그저 작은 상회를 운영하는 철금신이라고 합니다. 어인 일로 소인을 부르셨는지요?”
비록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으나 목소리는 단단하다.
외견으로는 마흔 후반으로 보이는 인물이지만, 영약과 무공 덕분에 젊어 보이는 것이지 사실 일흔에 가까운 나이.
‘역시 무공이 불로장생의 비결이야.’
제대로 된 양생공을 익히고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내상을 입지 않으며 적당히 잘사는 게 젊음의 묘약이 아닐까.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대답했다.
“천하십대상단이라고 칭해지는 철금방의 방주께서 작은 상회를 운영하신다고 말씀하시다니요.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말씀은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
과공비례(過恭非禮).
지나치게 행하는 공손함은 도리어 예의가 아니라는 뜻의 고사성어.
자신을 과하게 낮추는 그런 행동은 상대에게 실례라는 뜻이기도 했다.
일종의 조롱이나, 기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
“금혈방의 소방주이자 하오문의 소문주와 의형제이시며, 천하제일의 의각인 백린의각의 소각주이신 진 태수님에 비하면 저 같은 것은 그저 작은 상회의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과공은 아닌 셈이지요.”
무인이 검으로 힘을 겨룬다면 상인은 입으로 힘을 겨룬다.
반상에 수를 두듯 각자의 말이 화점에 내려앉는다.
“비꼬는 솜씨가 대단하시군요.”
“비꼬다니요. 그저…… 너무 금혈방과만 사업을 진행하시니 이 철 모는 조금 심통이 난 것뿐입니다.”
한 가지의 말에 열 가지의 의중이 담겨 있었고, 철금신은 상인이자 장인으로서의 경험으로, 그리고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과 전생과 현생을 거쳐 반들반들해진 정치력으로 수를 나누었다.
“하하하. 그러실 것 같아서 제가 좋은 일거리를 하나 논의코자 황상께 청해서 철 방주님을 모셨습니다. 다만 이것에 대한 수익금은 황실에 귀속이 되어야 함은 알고 계시겠죠?”
철금신은 생각했다.
‘젊다. 젊은 놈이라면 보통 본인이 가진 패를 먼저 꺼내서 싸울 터. 뒷배인 황상을 끌어들여 이야기의 물꼬를 트다니, 제법 노회한 수를 쓰는군.’
분명 눈앞에 있는 놈은 결혼도 안 한 젊은 놈인데 어째서인지 손주, 증손주는 봤을 늙은 거상을 상대하는 느낌이다.
철금신이 말했다.
“그거야 이를 말입니까. 그나저나 어떤 일거리입니까? 백린의각을 천하제일 의각으로 만들고, 금혈방을 천하제일상단으로 만든 진 태수님께서 소개시켜 주시는 일거리라면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는 기대하듯 운을 띄운다.
상인에게 있어서는 감정도 결국 무기다.
만약 이렇게 대응했는데 별것 아니거나 그저 그런 수준이라면 곧바로 표정을 거두어 거래를 불리하게 만들 포석.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일광은 오히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라며 밝은 목소리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제법 자신 있는 모양인가 본데, 안타깝군.’
보통 황궁에서 하는 사업치고 기발한 건 거의 없다.
보수적인 관료 체계에서 나올 만한 건 거의 거기에서 거기이고, 특출나다 싶은 것은 이미 다른 지방에서 시험 사용을 했기 때문에 철금신의 귀에 들어오기 마련.
‘황상이 적극적으로 나선 걸 보니 아마 높은 확률로 무기겠군.’
특히 요즘 들어 제국 밖의 적들이 강성해지고 있다.
이런 긴장감 속에서 무기는 필수 아닌가.
‘거기다 우리 공방을 사용하는 것이니 분명 철에 관련되어 있을 터.’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아닌가.
‘더더욱 우리는 들어줄 수가 없네. 일광.’
군수산업을 하며 기발하다 싶은 무기들은 전부 만들어왔다.
강호에서 말하는 신병이기급은 아니나 그래도 병사들이 들 만한 모든 것들, 그리고 동창과 금의위가 사용하는 보검 수준의 물건들이 그의 공방과 상단을 거친다.
허나, 진천희가 꺼낸 것은 기묘한 모양의 물건이다.
“무엇입니까?”
“어……. 탈곡기입니다. 정확히는 족답식 탈곡기인데, 순식간에 곡식 낱알을 털어내지요. 이걸 도정만 하면 되니 훨씬 일이 줄지 않겠습니까?”
“탈……곡기?”
‘설마 이 철금신에게 농기구를 만들라는 건가?’
어이가 없어 설계를 내려다보았다.
기관진식을 이용한 방식인데 어디 비동을 만들어야 할 수준의 기술도 아니고,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의 철금방이면 금방 복제할 수 있는 구조이긴 했다.
허나, 동네 대장장이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수준.
즉, 농가에서 쓰는 수준을 한참 넘은 문물이다.
“이런 것을 농민들에게 쓰게 한다는 겁니까?”
단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한다. 허나, 진천희는 태연했다.
“한번 써 보면 중독됩니다, 이거. 그리고 사람이라는 게 한번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다시 불편해지는 건 못 참거든요.”
“농민 개인으로는 절대 이 가격을 지불하지 못할 겁니다.”
“마을 단위로 사게 하면 되지요. 그걸로도 충분히 전부 될 겁니다. 또한 관에서 절반의 가격을 지원한다 하였습니다.”
철금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돈이…… 된다!’
마을 단위로 사는 것이라면 다소 비싸더라도 괜찮다.
거기다 관에서 절반을 내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본전을 뽑고 남는다는 뜻.
스윽-
진천희의 얼굴이 바짝 다가온다.
“어떤가요?”
거절은 거절한다!
하지만 이 늙은 상인에게도 할 말은 있다.
“확실히 사업성이 있어 보입니다만……. 다른 곳에서 복제를 해서 팔 가능성도 존재할 것 같군요. 지난번 두창 접종 때도 돌팔이들이 판을 치지 않았습니까.”
‘쯧. 아픈 곳을 찌르는군.’
이 시대에는 의원 시험이 없다.
시험을 봐서 의원 자격증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의원이라고 말하면 의원이고, 우리 아버지가 의원이라고 하면 의원인 시대.
그러니 두창 접종이 효과를 보자 전국 각지에서 돌팔이들이 가짜 두창 접종을 해주고 돈을 받은 일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관이 나서서 붙잡았지만, 신고율도 낮은 시대다.
마을 사람들끼리 ‘우리는 한 식구 아닌가!’ 하는 정서가 있고, 그게 기묘하게 튀어서 ‘우리는 한 식구니까 이 두창 접종은 돌팔이가 아니다. 식구가 꽂아 주었으니까 진짜 들을 거다.’라는 기적의 삼단논법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백린의각에서 이놈들 잡느라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탈곡기는 내부로 들어가면 좀 복잡한 구석이 있지만 겉으로 보면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어 보인다.
“잘못 만들면 사람이 다치거나 자주 고장 날 수도 있어 보이고. 그리되면 마을 단위로 족답식 탈곡기를 사는 일이 점차 줄어들 겁니다.”
‘짭온돌을 깔고 온돌은 위험하구나’라고 느끼듯, 잘못 만든 짭은 진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황상께서 저작권에 대한 칙령을 내리고자 하신다 들었습니다.”
“저작권이라?”
“쉽게 말해 관에 먼저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소유권을 주는 것이지요.”
“크게 효용을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시대는 신고율이 굉장히 낮다.
전화는 없고, 관은 멀고, ‘우리는 한 식구’ 정신은 가깝기 때문.
“하지만 관이 나설 명분은 되지요. 또한 황실에서 지분을 일부 가져가게 됩니다.”
명분.
그것은 꽤나 중요하다.
“적용이 되면 적어도 크게 한탕 하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한마디로 큰 상단에서 경쟁 제품을 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그 확증만 있어도 꽤 일은 편하게 돌아가게 된다.
“…….”
철금신은 입을 다물고 머릿속 주판알을 굴린다.
답은 나왔다.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헌데… 도움을 하나 받고 싶습니다만.”
“도움이요?”
과연 상인이다.
그냥 일을 함에도 하나를 더 가져가려는 것.
진천희는 여차하면 거절할 생각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편히 말해 주시지요.”
“육식표준편차행정법(六識標準偏差行政法)을 저희 문파에 전수해 주셨으면 합니다.”
육식표준편차행정법!
그것은 그야말로 행정법의 꽃이자 마스터피스.
이걸 굳이 전수해 달라는 이유는 별게 아니다.
진천희가 이걸 전수한 데가 황가에서 운영하는 교육원이었기 때문.
제국의 교육원.
즉, 공교육.
관료 되는 자를 매수하여 배워 보려고 했으나, 웃기게도 본인은 어찌저찌 해도 남 가르치는 것까지 제대로 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고.
설명이 가능한 관료는 뇌물이 많이 들었다.
또한 자칫 그 교육법을 사사로이 썼다가는 처벌받을 빌미를 줄 수도 있어서 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세계에서는 이게 미친 소리 같긴 하지만…….’
황권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부조리의 끝판왕.
즉. 진천희의 힘으로 육식표준편차행정법을 자기네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청탁인 것!
물론 이것을 백린의각은 진즉 도입했으며 강소성 전체에도 이미 도입된 상태.
하지만 그거야 진천희가 개발자니까 개발자 특전이라고 볼 수 있고… 애초에 주왕야는 황제 뒤통수에 꿀밤을 때리는 게 가능한 누님이니까…….
“음, 좋습니다. 해 드리죠.”
진천희 입장에서도 이득이었다.
‘의료품을 사천당가에만 의지하는 것도 손해지.’
백린의각에서 필요한 메스와 주삿바늘은 천하제일 보검일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일.
그저 일정 이상의 양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이 철금방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터.
‘다양한 활로를 뚫는다면 단가는 내려가기 마련이니까.’
이쪽도 상인의 마음이다.
그렇게 두 상인이 손을 잡았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
“빙정검 말입니다. 저희 천 년 전의 선조께서 구상을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만. 훗날 멀리 외유 나가실 때 대장간을 빌려 따로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흠?”
문득 북해빙궁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빙정검을 만든 장인께서는 어딘가로 다시 떠났다고 전해집니다만, 기록에 따르면 여인이고 성격이 꽤나 괴팍하다고 하더군요.
-여인의 몸으로 장부(丈夫)도 버거워하는 대장간 일을 홀로 하면서 명검을 계속 만들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기록에는 절세의 무공을 사용한다 하더군요.
-천 년 전 사람입니다.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개파조사를 하였다면 아마 후인들을 볼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허나, 후손들이 그런 귀한 무공을 가지고 대장간 일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남긴 후인이 천 년을 지나 이곳에 있단 말인가.’
절세의 무공을 가졌으니 대장간 일 하는 것을 포기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면 어딘가 초야에 묻혀서 명검을 만들어낼 거라 추측하기도 했고.
하지만 오히려 무공은 그다지 전수가 된 것 같지 않고, 대장간이… 돈을 많이 만지는 군수상인체로 극한의 효율화를 추구하게 된 것.
‘하지만 철금방은 괜찮은 검을 만들긴 하지만 또 지보급의 칼은 만들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돈은 중요한 동기다.
모용세가가 그랬듯 이쪽도 마찬가지.
‘흘러 흘러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진천희는 운명을 느낀다.
예기치 못하게 모든 것이 퍼즐처럼 딱 들어맞았다.
“선조의 자취를 이렇게 후대가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군요. 괜찮다면 한 번만 견식해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