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55
제 1055화
철금방주는 한참 동안 빙정검을 관찰하더니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며 달려 나갔다.
‘대체 뭘 하려고?’
외부적으로는 상인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장인이라고 말했던 것은 허언이 아니었던 모양.
‘그나저나 빙정검의 자취를 철금방에서 찾다니.’
기분이 참 묘하다.
원래라면 북해빙궁에 박혀 있을 칼이니 결코 철금방의 후손이 그것을 다시 만질 일은 없었을 터.
허나 결국 시간과 시간을 지나, 사람과 사람, 연과 연을 지나서 여기에 도착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어찌 보면 강호인의 폐관 수련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철금방이 무림지보급 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가 없거늘.’
철금방은 산서성, 하북성, 섬서성, 하남성, 산동성의 넓은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집단이다.
제국의 북서쪽에서 북쪽에 걸쳐 있다고 할까.
특히 무구의 대량 생산 및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철금방의 본단은 황궁이 자리한 북경 성벽 밖 외부 도시에 있다.
북경은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 그리고 황궁을 둘러싼 도심지를 보호하는 북경 성벽, 이 성벽의 밖에 조성된 시가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내성 도심지에는 부유한 가문이나 권문세가의 장원, 혹은 최고급 가게들이 모여 있다.
반면 외부 시가지에는 서민이나 중산층의 거주 구역, 각종 가게 및 황궁에 물건을 공급하기 위한 공방 등이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진천희는 멀리 갈 것 없이 철금방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학사들은 수군거리며 진천희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교육관의 관리들과 달리 이쪽은 꽤나 기대하고 있는 눈치.
육식표준편차행정법(六識標準偏差行政法).
이것은 관보다는 상(商)에서 더 필요한 학문이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듣기로는 천인에 비할 정도로 잘생겼다 들었는데…….”
“호오, 나도 들었네.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을 홀려 일을 시킨다지.”
“악독하군. 하지만 마음에 드네.”
“이 사람, 위험한 사람이로군!”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된 사람도 존재했다.
“드디어 상계의 전설인 진 태수에게 강의받을 수 있단 말인가?”
“백린의각을 살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자 아닌가. 단순히 신문물을 발명하여 팔았다고만 볼 수 없네. 그 수완은 아우인 사마현조차 한 수 배울 정도라 들었으니.”
“금혈방의 그 사마현 말인가.”
“그렇네.”
사마현이 금혈방에 들어온 이후, 그 기세가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커져 가고 있음을 모를 이들이 없다.
과거 금혈방만 해도 그들이 있는 철금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금방의 주 판매처는 관이고 국경 지대.
군수물자를 잡은 곳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돈을 엉덩이에 깔고 산다.
거기다 대대로 그런 업을 이어 살아왔으니 축적한 자본은 그야말로 어지간한 고관대작 가문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
그런 땅 짚고 헤엄치는 철금방을 이긴 것이 금혈방.
그것도 사마현이 등장하고 난 후였다.
이미 수많은 자들이 사마현이라는 작자에게 암살대를 보냈으나, 사마현은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해져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사마현이라는 작자를 겨드랑이에 끼고 키워낸 것이 일광 진천희.
강호의 신의(神醫)이자 광인이었다.
그런 진천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자는 돈에 관심이 없는 자들뿐.
적어도 이 철금방에는 존재치 않는다.
그리고…….
드르륵-
“안녕하십니까. 오우, 좋은 아침이네요.”
당사자가 들어왔다.
“우오오오오오오!”
철금방의 학사들이 소리를 질러 화답을 한다.
진천희가 씨익 웃었다.
“열의가 뜨겁군요. 좋은 분위기입니다.”
* * *
철금방의 학사들은 진천희의 무엇 하나라도 전부 다 흡수하려고 애를 썼다.
스승으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만큼 의욕이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 중에 몇이나 제대로 익혀 갈지 미지수이긴 하군.’
조정에서 일을 할 때는 제대로 익히지 않은 이는 재시험을 보거나 새로운 과제를 주어서 억지로 익히게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
받아 가는 것은 개개인의 역량에 달렸다.
그렇게 외주를 주고 교육을 끝냈다.
철금방에서는 족답식 탈곡기를 만들어 판매를 하기 시작했고, 시험 삼아 ‘대여’도 시작했다.
과거 사마현이 빙호 빙고를 뿌렸을 때 했던 제도.
마을 몇이 시험 삼아 대여를 했고 마침 추수철인 농가들이 나서서 더 많이 대여하기 시작했다.
지주들이나 토호는 아예 구입을 시작했다.
‘워어, 이건 무슨 큰 홍보도 없이 팔리기 시작했네.’
빙호 빙고 때는 대회도 열고 입소문도 만들고 금혈방이 온몸으로 용틀임을 했어야 했는데 족답식 탈곡기는 그저 조용히 계속 팔리고 있다.
‘관이 나섰기 때문이구나.’
각 관아에서 몇 개 비치해 두고 대여가 가능하다는 말 한마디로 모두가 써 보기 시작한 것.
그렇게 써보고 나니 십시일반으로 구매를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빌리기만 해도 좋지 않나?’
현대인은 의문점이 생겼지만 그것은 금방 해소가 되었다.
“올해는 은전 몇 냥으로 빌릴 수 있으나, 나중에는 관리들이 중간에 떼어먹으려고 대여료를 올릴 것이 분명하니 당연히 구매를 원하지 않겠소?”
“그렇지. 그렇지! 거기다가 다른 마을이 탈곡기를 다 대여하면 우리가 쓰지 못하니 차라리 한 대 사는 게 낫지.”
“빌리는 건… 아무래도 누구 손을 거쳤는지 걱정이 되어서……. 우리 물건이 아닌 느낌이고.”
‘아아, 그런 것이었군.’
가장 큰 것은 내년 추수 때는 분명 관리 몇이 가격을 붙여 비싸게 빌려줄 거라는 불안감.
사실 이건 화 제국의 역사를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하다.
황상께서 붙잡아다가 곤장을 치는 것도 원투 데이다.
금융실명제는커녕 전장의 거래 기록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인데 결국 부정부패의 꼬리를 잡으려면 마을 사람들의 증언 외에는 없고.
그 증언을 받아서 금의위 출두를 해도 기록을 못 찾으면 증거도 없다.
그러니 크게 해먹는 게 아니면 찾기가 어렵다.
자잘하게 해먹는 수준 정도는 황상도 답이 없다.
여기서부터는 기술력의 문제로 최소 트랜지스터는 발명이 되어야 가능할 성싶었다.
‘철금방은 이제 라이선스 비용을 황실로 보내야겠군.’
황제는 분명 제국의 주인이나, 황실 직속 재산과 제국의 재산은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뭐, 폭군이나 암군이면 대화률 죄다 무시하고 막 가져다 쓰겠지만.’
골드&실버의 미학은 아니다.
거기다 두 사람은 경영에 일가견이 있다 보니 황실 재산도 나름대로 풍족하지만(여기서 풍족의 기준은 보통의 부호들과 자릿수가 몇 개나 다르다), 아무튼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재산이 늘어나는 것은 괜찮은 경험이지 않겠나.
‘거기다 제국에 토호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지.’
엄청나게 많은 땅을 가지고, 농민들에게 땅을 빌려주는 형태의 대지주들이다.
수많은 소작농들이 한 명의 대지주를 위해 일하고 있는 셈.
먼 훗날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이라고, 이런 방식으로 땅을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게 되지만 이 시대에는 이게 또 당연하다.
그게 하나의 계급이 되고 있는 셈.
대지주들은 어마어마하게 탈곡기들을 사들였고, 소작농들은 그 탈곡기를 대여받는 형태.
그것만으로도 탈곡기 대여료라는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는 데다가, 대지주들 입장에서는 탈곡이 빨리 끝나야 그만큼 빨리 수익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 징수한 쌀을 하루라도 빨리 유통할 수 있을 테니 조급해질 만했다.
거기다가 한 가지 더.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오우, 뒤집어서 생각하면 황상은 탈곡기의 판매량과 판매 위치를 보고 대지주들의 규모와 그 땅의 숫자를 짐작할 수 있게 되겠구나!’
소름이 돋았다.
진천희야 백린군 농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보급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 결과로 닳을 관절 좀 덜 닳고, 나갈 척추 좀 덜 나가면 땡큐고.
하지만 황상은 통치하는 자고, 행정하는 자.
대지주들은 실제 가지고 있는 땅보다 최대한 적게 표기를 할 게 자명했고.
소작농들은 글을 모르니 자신들의 땅이 제대로 신고가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거기다가 나라에서 정한 소작법상, 대지주라 하더라도 얼마 이상 곡물을 뜯어갈 수 없도록 막아 둔 게 있다.
그게 제대로 지켜지는지 알려면 진짜 토지 규모와 위치를 알아야 한다.
‘철금방 소속 장인들 중에 동창 몇이 섞여 있겠군.’
이번 추수가 끝나면 대지주 몇의 목이 날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는 데 고작 눈 한 번 깜빡일 정도.
처음 발상이 어렵지, 생각의 방향을 정하고 나면 그 속도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게 다 현원전단신공 덕이겠지.
‘워어, 나는 곧 있을 피의 숙청에 또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되었군.’
사실상 원흉이 된 셈인가.
‘요즘 조정 대신들에게 황상의 마검이라 불리기 시작했는데 걱정이구만.’
그냥 마검도 아니고 피를 먹은 마검이란다.
이 세계에는 가끔 그런 칼이 있단다.
사람을 수천 명을 베어서 그 피를 먹고 주인을 미치게 만드는 그런 검이.
보통 소림, 아미, 보타문 승려 아니면 무당파나 화산파의 도인들께서 그런 마검을 보고 더는 혈사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정화를 하는 일들이 있단다.
그 외에는 마교 보물 창고에 이런 마검들이 보관되고 있어 필요한 순간, 천마의 명을 받아 중원을 어지럽히기 위해 풀린다고 하던데.
‘이제는 나를 마검이라 부르고 있구만.’
별호까지 합쳐서 광검(狂劍).
황상의 미친 칼 되시겠다.
어쨌거나 이 별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고, 농민들 천 명이 농기구를 들고 궐기해도 무림인 하나 이기지 못하는 세계다.
레닌이 환생하여 소작농들을 뭉쳐 자본가 돼지의 배때기를 찌르고 싶어도 저 어디 돈 먹은 사파 고수가 다 쓸어버리면 끝일 터.
이곳에서 레닌이 살아남으려면 신공절학의 기연이 닿아 붉은 천마로 거듭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세계에서 황상의 역할은 꽤나 중요하지.’
디스크 환자 좀 줄여 보겠다는 시도가 이렇게까지 파장을 일으키며 나아갈 줄은 몰랐다.
‘금왕야 설계 실력이 장난 아니네.’
문득 숨소리 하나 흘리지 않고 뚫어지게 서류를 바라보던 그의 옆얼굴이 떠올랐다.
차 한 모금, 다과 하나 입에 넣지 않고 머릿속에서 결론이 날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독태감에게 흘러가듯 들은 말로는 은왕야가 가볍고 빠르게 수를 쓰는 편이라면, 금왕야는 깊게 한 수를 쓰는 편이라 들었다.
‘주왕야께서는 보통 일을 치는 쪽이고.’
깊은 한 수.
여기까지 설계한 것은 필시 금왕야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애초에 철금방을 꽂아준 게 금왕야였고.’
철금방은 제국의 병장기를 책임지는 곳이니만큼 동창이나 금위의와 사이가 돈독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어쨌든 이것만으로는 백린의각에 크게 떨어지는 돈은 없지.’
애초에 단가를 낮추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 않았던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큰돈이지만, 큰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크지 않은 금액이 이제 매년 들어오게 되었다.
대신.
다른 권리를 받아온 게 있다.
바로, 기대하시라 빠라빠빠!
소금 판매권!
물론 소금 팔고 나서 세금을 바쳐야 하지만…….
소금 판매권이라는 게 이 시대에 어마어마한 이권이라는 게 중요하다.
옛날 전래동화에 소금 부자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시대에 소금은 비싸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게 또 소금이라.
중소 규모의 염상(鹽商-소금 상인) 하나가 사실 어지간한 대문파급의 현금을 움직일 정도.
이걸 무슨 옛다 용돈이다! 하듯 훌쩍 넘긴 게 아닌가.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폐하아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어어어어!
-염상권이라니요!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아아!
-그렇지 않아도 진 태수의 권력이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힘을 더 보태시면 나라가 혼란해지옵니다!
얼마나 대단한 권리인지 이번에는 가완도 한이정도 실드를 못 쳐주었다.
‘나도 이걸 왜 나한테 줬는지 모르겠네.’
하필 주왕 전하께서 역시 기깔나게 춤이라도 춰줘서 받아온 거냐고 말을 얹은 게 조정에 퍼졌다.
‘망했군.’
가뜩이나 뒷문으로 다니는데 소금 판매권까지 따냈으니 소문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당시에는 몰랐다.
이런 호화 혜택을 주었는지.
허나, 세상에는 공짜란 없는 법.
황상의 마검, 아니 광검(狂劍)이 생각했다.
‘망했군. 조만간 피바람 불겠어.’
조만간 관리들은 왜 황상이 일광에게 쌀밥을 주었는지 알게 되리라.
‘아니, 나는 농기구. 고작 농기구 아웃소싱한 게 다라고오오오!’
스노 볼이 구르기 시작했다.
상대가 골드인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