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6
제 106화
한 달 후 점심시간.
진천희는 스승 제갈린과 함께 의각 내부의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옛날의 제갈린은 식생활도 조심하며 먹었어야 했으나 진천희의 집도 이후 건강해져서 이렇게 일반 식사도 가능해졌다.
그 이후, 제갈린은 어지간하면 공동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표면상 명분은 의각원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
‘희대의 개소리지.’
회장님이 회사 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것과 똑같다.
직원들은 체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진짜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애초에 제갈린이 남 신경 쓰며 살 인간이 아니라는 것.
청수한 외모에서 오는 선한 인상과 겸양한 인상, 그리고 배려심 넘쳐 보일 것 같은 기품과 별개로 하는 짓은 마이 웨이였다.
의각원이 체하면 침으로 다스리면 될 일이었다.
식체도 못 다스리는 의원은 의각에 있을 자격이 없다.
두 번째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공동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기 시작한 게 화근인 것 같다.’
진천희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의각에 밀려오는 일들과 본인 개인적인 수련, 그리고 의각원들 교육까지 하려니 식사는 최대한 간편하게 하는 게 조았다.
그러기 위해 있는 게 공동 식당.
제갈린과 함께 식사를 하면 자꾸만 이것저것 챙겨 주시고.
‘네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만들어 보았단다. 희야.’라면서 제자에 대한 사랑과 집착을 뿜어내시니 그게 부담스러워 공동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게 되었다.
공동 식당은 간편하게 식사만 하고 가도 되었고, 함께 수술하게 될 의각원들과 수술 플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진천희의 인맥이 날로 넓어져 갔다.
환골탈태를 엉겁결에 거친 연후에는 키도 스승님이나 유호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커져서 사내다운 태가 났기 때문에 거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스승님은 본인도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겠다 하여 진천희의 옆에서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오늘 음식은 특별히 네가 좋아하는 걸로 준비시켰단다.”
“…스승님.”
회장님이 옆에 앉아 본인의 오른팔에게 반찬을 얹어 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익숙한 광경이기도 했다.
의각원들은 최대한 제갈린과 진천희에게 시선을 두지 않으려 애를 쓰며 공동 식당 모서리에 모여 밥을 먹었다.
‘떠나지 마라, 얘들아. 사소한 인사라도 해 줘!’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제갈린이 처음 공동 식당으로 왔을 때 모두 인사를 하였는데 스승님이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평범하게 남처럼 대하라는 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제자와의 식사 시간 동안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반찬 질은 정말 좋아졌지. 암… 이렇게 좋아지기도 드물 만큼 좋아졌고말고.’
황궁 주방장 출신의 유명 숙수를 모셔 왔다.
하늘이 내린 약선 요리의 대가라고 했던가.
밥알부터 때깔이 달랐다.
진천희는 포기하기로 했다.
어찌 되었건 스승님이 제자를 끔찍이 여기는 것은 계속될 거고, 진천희 자신도 이런 스승님의 성정을 모르는 게 아니지 않나.
정 싫으면 유호한테 도시락이라도 부탁해서 까먹으면 될 일.
하지만 스승님이랑 하는 대화도 좋았기에 그냥 이렇게 장소만 바꾸어서 먹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스승님이라고 노는 게 아니었다.
스승님은 밥을 먹으면서 몇 가지 서류를 뒤적였다. 그러고는 유호에게 다시 넘겼다.
“밥 먹는 시간이라도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스승님.”
“이 스승을 걱정해 주는 거니? 기특하구나.”
“스승님의 건강은 중요하니까요. 거기다가 곧 용봉지회고요.”
연말이 다가온다는 건, 즉 용봉지회가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올해에도 무림맹에서는 백린의각에 용봉지회를 의뢰했다.
“귀찮구나. 하지만 거절을 할 수도 없는 부탁이지.”
“다른 의각들은 받고 싶어서 안달인 영예의 자리 아닌가요?”
내 몸보다 자식 몸이 더 소중한 게 부모 마음이다.
용봉지회는 강호에서 내로라고 하는 모든 세가의 부모들이 끔찍하게 아끼는 자식들을 모두에게 선보이는 곳.
당연히 내 자식들을 치료하는 의원에게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 자리를 맡는다는 건 무림의 수많은 세가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도 되었다.
중소, 중대형 의각부터 천하 삼 대 의각까지.
모든 의각들이 이 일을 받고 싶어 한다.
“백린의각은 부술당의 창설부터 백린신단까지 무엇 하나 발전하지 않은 게 없었단다. 내가 중간에 박차고 나갔는데도 맹주님이 또 초대를 하시더구나.”
그랬다. 작년 용봉지회 때는 스승님이 집채만 한 흑마인 군림흑마를 뺏어 왔다.
남궁가에서 자랑하던 명마였다.
제자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승님은 뒤를 돌아보지 않으시고 달리셨다.
“군림흑마는 잘 지낼까요?”
잠시나마 의각에 있으면서 수많은 의각 마구간 암말들에게 추파를 던지던 놈이었다.
일이 정리되고 표국을 통해 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말들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대단한 놈이었다.
스승님이 답했다.
“창룡검 남궁운이 타고 온다고 들었단다. 작년 용봉지회에서 무당을 제치고 우승했지. 무당파 노인장들이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고 들었단다.”
“올해도 출전하나요?”
“올해는 이제 용봉지회에 정식으로 참가하지는 않는다고 들었단다. 대신 동생인 남궁연이 출전한다 전달을 받았지.”
“앗! 정말요?”
진천희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승님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남궁연은 강하단다. 정신적인 부분만 어찌할 수 있다면 소림과 무당에 어깨를 견줄 수 있겠지.”
“당아는 참석하나요?”
“당가의 어르신들이 마지막까지 고민한다는 소식은 들었단다. 전서의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날이 갈수록 마음의 어둠이 깊어져 그 맹수를 풀어놔도 좋을지 모르겠다. 마음의 어둠이란 타인을 갉아먹는 것 이상으로 미래의 자신을 갉아먹을 수 있으니.’라고 하셨지.”
한마디로 당아의 중2병이 나날이 깊어져서 용봉지회에 보내도 좋을지 고민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당아를 위해서라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의 당아는 비록 약간…의 구설수에 오르고는 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은밀한 중2병’일 수 있었다.
당아의 마음 속 어둠과 피를 탐한다 외치는 저 혈기는 어쨌든 혼자서 덮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용봉지회에 갔을 때는 더는 ‘은밀한 중2병’이 아니게 된다.
모두가 당아를 알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강하기 때문에 상위까지 올라갈 게 분명했다.
스승님이 말했다.
“당아는 꼭 내보내 달라고 했단다. 그리고 이번에 사용할 주요 암기에 전부 흑룡를 새겨 달라고 부탁했지.”
“흑룡? 왜죠?”
“네가 팔에 감고 있던 것에서 영감을 받은 모양이더구나.”
진천희는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천마 여하륜이 선물해 준 흑천혈사다.
이것은 찐광기에서 비롯한 암기였다.
당아가 겪고 있는 가짜 광기가 진짜 광기에 반응하고 말았다.
“또한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더구나. 백린의각에서 제대로 붕대술을 배워서 잘 벗겨지지도 않는다고, 당가의 어르신들이 걱정하셨어.”
“그렇다는 건…….”
“그래. 자칫 선대 가주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거지.”
“그렇군요.”
“선대 당문의 가주님께서는 이름을 개명하셨단다.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지.”
“…….”
진천희는 진심으로 혈편왕이 혹시 당아의 미래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다.
소설에선 단 한 글자도 혈편왕의 본명이 나온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사천당가가 당아를 봉인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그녀를 용봉지회에서 볼 수 있겠지.”
스승님은 자못 비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진천희는 중얼거렸다.
“편술은 치료할 때 까다롭겠네요.”
“그래. 생소한 무기이니 치료할 때도 많은 의각원들이 죽어 나갈 거란다. 거기다가 독공…….”
스승님은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약재당주 만파곡 님은 부디 당아가 당가에 봉인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단다. 당아는 정말 강하고 손속에 거침이 없으니 여럿 보내겠지.”
독공과 편술의 합동 공격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그랬다. 무림인과는 다른 시선으로 의각원들은 이 일을 보고 있었다.
스승님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밀려오는 일을 다 때려치울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진천희는 그런 스승님을 붙잡고 말했다.
“스승님의 그런 모습이 이 제자, 참 존경스럽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고난 앞에서 절대! 피하지 않고! 열심히 무림인들을 치료하는 그 모습!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희야. 수작 부리지 말렴.”
“하지만 스승님…….”
“그래. 수작 부리는 걸 알면서도 또 마음 한켠으로 넘어가게 되는구나.”
제갈린은 두통이 밀려오는지 한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의 제자는 의인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할지라도 제갈린이 보기에 그는 의인이었다. 그건 제갈린에게 있어 귀찮은 일이었다.
“만약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너라도 가겠다고 하겠지.”
또래의 고수.
용봉지회에 모인 그 젊은 혈기가 진천희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강한 고수와 싸워 보겠다고 어떻게 시비를 털지 빤히 보였다. 그리고 악인이 아닌 존재에게 진천희가 진심을 보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뼛속 깊이 의원이니…….’
진천희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외과 수술 전수가 순조로워서 다행이에요. 이대로면 용봉지회에서 많은 이들이 외과 수술이 가능해지겠어요.”
“부술 말이지?”
“앗, 네네.”
진천희는 종종 부술 대신 외과 수술, 또는 써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나마 써전이라고 말하는 일은 줄어들었으나 외과 수술이나, 수술이라고 말하는 습관은 아직 남아 있었다.
결국 다른 이들도 부술을 수술이라고 부르는 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예 진천희에게 물들어 수술이라고 말하는 의각원들도 생겼다.
존경하는 사람을 닮고 싶어 하는 건 사람의 자연스러운 생리였으니까.
“아직 간단한 수준의 부술만 가능하단다.”
“스승님은 꽤 복잡한 수준까지 가능하시잖아요.”
“음. 그리되었지.”
처음 시작을 끊고 나니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피로를 모르는 육체와 섬세한 손끝, 인간의 생명조차도 저울질하는 천재성까지 합쳐지니 스승님은 진천희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장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진보한 거죠.”
“희, 네 덕분이지. 너도 이제 본 의각 기준으로 중의원 이상이니 말이다. 세간에는 너를 천재라고 추앙하는 이들이 많단다.”
쑥스러운 말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진천희가 보기에 진정한 천재성을 가진 이는 제갈린이다.
자신은 그저 알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린 것뿐. 거기에 제갈린이 가르쳐준 것을 그냥 계속 연마한 게 전부였다.
“곧 상의원이 되겠지.”
“중의원만으로도 감지덕지죠.”
의각에서는 의술 수준에 따라 하의원, 중의원, 상의원으로 나뉜다.
현대 의학 체계와 비슷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간단한 병 정도는 치료가 가능하나 배우는 과정인 하의원.
진맥을 보고, 처방전을 책임하에 쓸 수 있는 중의원.
중의원 단계가 되어야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 의방을 낼 수 있다.
상의원은 모든 의술에 달통하고 무수히 많은 이들을 치료해 스스로 의서를 집필할 수 있을 때 그 자격이 주어진다.
진천희는 부술에 관해서는 상의원.
기존 정통 의술에 관해서는 중의원 정도의 능력까지 성취하게 되었다.
“침구당주는 이미 중의원 중에서도 상급 수준이라고 평하더구나. 그 깐깐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볼 줄은 몰랐단다.”
제갈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제자의 성취는 스승의 가장 큰 기쁨.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본래 의사였던 것도 있지만 현원전단신공과 전생의 공부 덕분인 거지.’
자만해지면 실수를 할 것 같아 진천희는 스스로를 다시 다잡았다.
그런 진천희의 표정 변화를 제갈린은 느긋하게 감상했다.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억누를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스승님.”
“가끔은 네가 나보다 오래 산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단다.”
진천희는 너스레를 떨었다.
“반로환동 고수였다면 이러고 살았겠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 할 이야기가 있어요.”
제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