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61
제 1061화
다음 날.
진천희는 강소성주 주왕을 찾아갔다.
주왕은 진천희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야 없지만 상관없다.
“밥 좀 해줘라.”
“아니, 왜 다들 제 얼굴만 보면 밥해 달라 난리입니까?”
골드, 실버, 레드.
이놈들은 진천희를 무슨 밥 주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황당했지만 그보다는 이 일이 먼저다.
“우선 제가 온 이유부터 들어 보시죠.”
“뭔데, 뭔데?”
진천희는 일단 염전 이야기를 했다.
어린아이들을 착취해서 돌아가는 염전 이야기.
현대 기준으로 더럽고 쓰레기 같은 일이지만, 합법은 합법이다.
“안타깝긴 하네. 하지만 그거라면 공무적으로 본왕이 나설 곳이 없다.”
주왕야는 선을 그었다.
그녀는 강호인이 아니라 관(官)의 원칙으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염상권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뇌물이 있더라고요.”
“호오?”
주왕의 눈이 빛났다.
“다른 뇌물도 아니고 염상권 뇌물은 극형인데 그걸 했다고?”
주왕이 생각에 잠기다가 유랑후에게 말했다.
“대화률상 염상권 뇌물은 어찌 처리되지?”
“최소 노역행. 최대는 사형, 그것도 오체분시입니다.”
“……!?”
그 말에 다른 시종들도 놀라서 눈이 흔들렸다.
다들 협객이 선하고 상냥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진천희 스스로 생각하기에 협객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협(俠)은 결코 온화하지 않다.
악인에게 자상하지 않다.
구할 것이 있는 인간이란 냉혹해지는 법이다.
만약 협이 악인에게도 온화하였다면, 그것은 협(俠)이 아닌 선(善)이었을 터.
아이를 사서 염전 일을 시키는 게 합법이라면.
감찰사가 매복하여 장부를 뒤지는 것도 합법.
악법도 법이라면, 이것도 법이다.
진천희가 푸른 눈으로 말했다.
“법대로 하죠.”
“!”
아직 진천희는 황구가 먹은 회색 빵의 은(恩)을 다 갚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을, 그 절박했던 휴식을.
끝을 보자.
염상권은 귀하다.
강소성에서 천일염이 암염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렸다고는 하나, 결국 그렇게 밀렸는데도 먹고사는 게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장이 땅 짚고 헤엄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금이나 은이 붙잡고 부탁하면 암염 광산 큰 거 줄 텐데…….’
한 마디 부탁도 하지 않고 부득불 본인 길로 가는 이놈이 독종은 독종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염상권 획득 과정에서 뇌물이 오고 간 것은 중죄다.
‘보통은 증거를 못 찾지.’
하지만 눈앞의 독종은 관(官)의 옷을 입고 있으나 가슴은 협심으로 움직이는 놈이라 관의 상식이 안 통한다.
여차하면 야밤에 복면 끼고 가서 수색하고 오는 놈.
그 지역 염상은 애를 데리고 부려 먹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도 그리 안 들 거다.
사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도 ‘거기 부모 참 혹독하구먼, 애들이 안됐어.’라고 생각하고 말 일.
살문이나 마교 같은 곳에 애를 팔아먹는 게 흔한 세상이다 보니 염전에 애 파는 것은 ‘부모 잘못 만나서 불쌍해.’ 하고 끝날 일이다.
아예 노예로 삼는 것도 아니고 부모 빚을 대신 차감하는 일이니 또 어쩔 수 없는 거고.
불법도 아니고, 의외로 많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진천희가 있는 백린군도 8세 이하 아동은 가족 농사 일손 돕는 수준이 아니면 노동을 못 하도록 막고 있는데 그것도 꽤 논란이 많다.
애가 슬슬 말 알아듣고 걷고 뛰기 시작하면 같이 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심지어는.
‘아이도 똑같이 일할 의무가 있사옵니다! 아이에게 노동을 금지하면 양민들은 돈을 벌지 못해 그만큼 배를 굶주릴 것이옵니다! 부디 아이가 효를 다할 수 있도록,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이야기를 하며 백린군의 행태에 관해 상소를 올리는 일도 허다했다.
효(孝)는 이 세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부모를 위해 노동을 하는 아이는 효(孝)의 귀감이다.
미친 소리 같지만 진짜였다.
전래동화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 무지갯빛 유교 필살기를 진천희는 어떻게든 막아낼 필요가 있었다.
진천희는 문라이트 파워를 끌어모아 스텝을 밟으며 반박문을 썼다.
‘어린아이는 생산에 그리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글을 가르쳐 유학의 기초를 알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치국이오, 애민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또한, 가난하고 아픈 부모를 끌어안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관아가 될 것입니다.’
당시 양쪽 모두 옛 선현들이 말했던 말들을 열심히 인용하여 길게 길게 써서 올렸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진천희가 이겼다.
물론 진천희의 상소문이 가장 길고 내용이 많았던 덕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냉혹한 유교 아가리 파이트 세계에서, 전투력만 보자면 이상론을 따를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모든 백성을 가르쳐 옳은 길에 이르게 한다는 주장은 결국 유학의 근본이긴 하나, 이상론이기도 했다.
그 예산을 누가 치를 수 있는가.
글공부에도 돈이 들지 않던가.
그리고 아이까지 일을 시키지 않으면 배를 곯을 수준의 집은 어찌하란 말인가.
그 모든 문제를 백린군에서 부담한 셈.
백린군에서 8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거의 무료로 글을 배울 수 있다.
아이가 글을 배우면 그 대신 가구에 쌀을 보내준다.
글을 배우는 것도 하나의 노동으로 치겠다는 뜻이었다.
되려 먹을 걸 쥐여 주니 가난한 집도 흔쾌히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 그 결정으로 백린군 재정에 큰 구멍이 생겼으나, 내총관 유호, 외총관 무월 두 사람이 보좌하여 초기 예산을 편성하는 데 성공했다.
후에 백린의각 자체, 파생 사업들이 더욱 커져 가고,
백린군 평균 소득이 증가하면서 세수가 늘게 되었다.
세수가 늘면 걱정의 절반은 해결된다.
지금은 예산 걱정 없이 모든 아이들이 글을 익힐 수 있다.
‘진천희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나이 상한을 8세에서 10세로 늘리기 위해서 미친 듯이 준비 중이란 이야기를 듣긴 했지.’
나중에는 약관 될 때까지 일 못 시키게 할 생각이냐, 미쳤냐는 소리도 듣고 있다.
하지만 10세부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왕이 봤을 때, 진천희가 염전에서 애들 일한다고 이 정도로 분노하는 것은 확실히 기이하긴 하다.
‘음, 쟤가 좀 독특하긴 하지.’
예민한 건가 싶을 지경.
‘이러다가 나중에 애들 회초리로 때리지 말라는 소리도 나오겠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황족도 어릴 때는 회초리로 맞아가며 배우는데 안 때리고 어떻게 교육을 시킨단 말인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짐승이며, 그 짐승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법이다.
체벌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왕은 생각했다.
그저 진천희가 일광답게 좀 이상하고 예민할 뿐이라고.
어쨌든 감찰어사 직위를 가진 이놈이 증거를 찾아서 들고 왔고.
적법하든 적법하지 않든 일단 손에 넣으면 그건 증거라고 대화률에도 적혀 있지 않던가.
“랑랑.”
“예, 왕야.”
“뇌물 받은 놈 끌고 와. 장부를 보니 뇌물 한두 푼 받은 것도 아니고. 하필 염상권 권리 문제에 뇌물이 얽힌 건 좀 선을 넘은 거잖아?”
차라리 뇌물을 안 던졌으면 더 깔끔했을 터.
더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은 욕심에 뇌물을 쓴 게 실책이다.
“예, 왕야. 명을 행하겠나이다.”
유랑후는 예를 표하고 곧바로 일하러 나갔다.
그런 그를 진천희는 빤히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그래. 염전에서 애들 쓰는 것 자체는 불쌍하다는 감성 외에는 다들 별생각이 없구나.’
이해는 간다.
이 사람들이 특별히 더 무정하거나 덜 배워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주왕도 유랑후도 어지간한 현대인보다 더 많은 것들을 공부했고 기억력 역시 무척이나 뛰어나다.
가족 전화번호도 가물가물하는 현대인과 비교할 게 아니다.
‘그냥 현대는 그게 가능해서 그랬던 거겠지.’
당장 아이를 노동시키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가의 문제.
현대야 당연하다고, 애를 일 시켜서 먹고살아야 할 수준이면 애를 키워서는 안 된다고 하겠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충분한 생산성이 나라에 축적이 되어야 한다.
복지가 필수적이다.
이곳도 나라로서 기본적인 제도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지구와는 다르고 기술도, 인프라도 현대와 비교할 수 없으니까.
‘그래. 그래서 비누 하나 보급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
원래 그런 법이다.
어른도 파리 목숨인 이 세계에서 아이의 권리를 생각하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니.
‘조정에서는 아이도 일할 권리를 말했던 거고.’
일을 금지시키니 오히려 효(孝)를 막고, 아이를 핍박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에는 아가리 파이트로 승리하였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선(善)이란 놈도, 결국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건 내 손에 닿는 데까지 하는 거야.’
전부 바꿀 생각은 없다. 솔직히 바꿀 능력도 없고.
자신은 대단한 사상가도 아니고, 그런 사상에 기반이 되는 철학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설령 대화률에 어긋남이 없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이 시선에 닿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어른이지 않나.
지구에서 무료 교육이라는 것을 받아오지 않았나.
‘그때의 은(恩)을 갚은 것뿐이라고 생각하자.’
모르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거쳐오며 쌓고, 쌓고, 쌓아오던 것이 진천희를 지나서 이제 강호에 좀 닿은 것뿐이라고.
혹시 알겠나.
진천희가 늙을 때쯤이면 뭔가 더 변할지도.
“그나저나……. 황구랑 뇌진 복면이 퍽 귀여웠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일부러 눈 가리고 아웅으로 일을 저지른 건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인가?”
“아,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빠를 것까지 있나. 내가 흑도였다면 ‘합법이든 말든 애들 데려다 염전 일 시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조져버린다!’라고 들릴 것 같은데.”
“하하하하.”
“그 소문, 널리 퍼지길 바라겠지?”
늘 놀고 마신다고는 해도 눈치는 백단이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시를 읊는다는 행위 자체가 문재(文才)에 달린 일이라고는 해도.
주왕 본인이 공부를 아예 안 했으면 불가능할 일 아닌가.
“퍼뜨려주시겠습니까?”
진천희의 말에 주왕이 답했다.
“요즘 주루에 안 간 지 꽤 되었는데 놀러나 가볼까~”
“술을 너무 드시면 유랑후께서 걱정하십니다.”
“으음, 내가 조금만 마시도록 하겠네. 아니면 뭐 우리 랑랑과 몰래 같이 나가 놀아도 좋고.”
강소성 주루에 축제가 열릴 모양이다.
‘이거 생각보다 빨리 퍼지겠는걸?’
진천희는 예를 표하고는 곧바로 요리를 하러 갔다.
잘 먹여야 잘 퍼질 터.
오랜만에 제대로 솜씨를 발휘할 예정이다.
* * *
백린군에 엄청난 일이 생겼다.
그 소식을 듣고 호사가이자 강호 인플루언서 삼학사가 기다렸다는 듯 모였다.
“오오오! 삼학사! 명망은 익히 들었습니다!”
수많은 강호인들이 이제 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허허허, 오늘은 우리끼리 개인적인 담소를 나누기 위해 모인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지요.”
그리 말했으나 강호인들은 힐끔힐끔 바라보며 삼학사들이 무슨 말을 할지 엿듣는 눈치였다.
그들은 백린객잔에서 맥주와 함께 오향장육, 그리고 닭튀김을 시켰다.
주문하자마자 바로 튀긴 닭과 맥주가 먼저 도착했다.
치이이익-
아직 기름이 다 식지도 않았는지 닭이 엄청난 육즙향을 만들었다.
“우일이 운영하던 우가장이 망했다며?”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었지. 애초에 거기를 우가장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어. 데릴사위 형식으로 들어왔다고 했으면 적어도 우가장이라 불리는 일은 없었어야지.”
“본인이 오히려 은근히 그걸 바랐으니…….”
“뇌물은 관례이긴 한데 염상권에 관례 챙기는 건 과했지.”
미친 소리 같지만 화 제국에서 뇌물은 당연한 관례 취급이다.
황상은 당연하지 않다고 하고, 대화률도 당연하지 않다 써놨지만, 관리들은 당연했고.
양민들도 그게 당연한 동대륙 전통 매직이다.
듣기로는 양이들은 야만적이라 그동안 나라가 열 번은 바뀌어서 이 짓을 해도 오래 못 해먹는다 하던데.
동대륙은 왕조가 그래도 묵직하게 버티다 한꺼번에 터지다 보니 뇌물도 우리네 전통문화(?)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 전통문화에 대해 삼학사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걸 일광이 용케도 잡았네그려.”
그런 의미에서 일광은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자다.
진천희의 열렬한 팬.
심 학사는 이 일에 관해 평론을 하고 싶어 입을 풀었다.
근질근질.
동시에 다른 강호인들도 심 학사가 무슨 평을 내릴지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