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67
제 1067화
백린의각 북경 분타.
분타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분타다.
단순히 강호인뿐만 아니라 관의 사람들도 들르는 곳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예산에 크게 편성되었던바.
보통 의각의 두 배는 되는 부술실이 갖추어져 있고.
부술당 상의원들도 그 숫자만큼 상주해 있다.
백린의각 본산에서 예약을 잡지 못한다면 북경 분타의 예약이라도 잡는 부자들이 있을 정도.
그곳 부술실의 가족 대기실.
과거 보호자 대기실이라고 불렀다가, 어찌 부모의 보호를 자식이 한다 감히 말할 수 있냐는 말에 ‘가족 대기실’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철금신은 초조한 얼굴로 철전을 만지작거렸다.
금전도 아니고 은전도 아닌 철전.
이것을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다들 우리 철금방은 위기가 없다 믿는다. 그게 아니란다. 위기가 없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지. 군수와 연계가 되어 있는 것도 그 방편이고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위기는 온단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철금방의 막대한 부를 생각하면 위기가 오려다가도 말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웃었다. 그저 웃기만 했다.
-평화롭던 시절이었다. 아이야. 평화로운 시절에 철금방의 수익은 쪼들리지, 당시에 내 아버지……. 아니 네게는 할아버지겠구나. 할아버지께서 무리하게 철광산을 구입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하필 그곳에 혈사가 일어나더구나. 운이 나빴지.
당시에는 강호인들의 혈사가 지금보다 더 지독하던 시절이었다.
그 일대의 양민들의 마을들이 모조리 불타고, 그 사람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 사파에 몸을 의탁하곤 했다.
그리고 광산을 무리해서 확장한 철금방에 그 여파가 미쳤다.
-하필 다른 상단과 철광석 거래를 끊은 후인 데다가 무리한 확장 탓에, 어음을 막지 못하여 소속 공방이 모조리 문을 닫을 뻔했단다. 그때 이 아비가 어찌했는지 아느냐?
그때 아버지는 낡은 철전을 꺼내서 아들에게 쥐여 주었다.
-철전을 녹였다.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다들 말렸어. 하지만 이 아비는 이 철전들로 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비싸게 팔면 된다 했다. 들인 철전보다 칼값이 더 비싸다면 우린 살아남을 것이라고.
광기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천하십대명장이라 하더라도 매번 신병이기를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뭐랄까.
운(運)과 업(業)이 만났을 때, 단 한 번의 찰나가 스쳐 지나갔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좋은 재료는 물론 도움이 된다 하였으나, 이 찰나의 무언가가 없다면 신병이기까지는 오르지 못한다고.
그의 선조께서도 그리 말씀하시곤 했다 하였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철을 받을 수 없었던 대장장이는 철전을 녹여 칼을 벼렸고, 이제 남은 것은 그 하늘, 즉 운(運)에 달린 일이었다.
-광산에서 시작된 혈사가 번져서 강호인들이 칼이란 칼은 다 구매하고는 이제 우리 공방에 알짱이기 시작했단다. 웃기지? 우리를 죽일 뻔한 자들이 도리어 우리를 강하게 해주었단다.
짤랑-
때로는 그랬다.
우리를 죽이지 못한 것은 결국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그때 녹이지 않은 유일한 철전이란다. 이 아비의 행운의 상징이지. 네게 주마.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 작은 철전이 때로는 생사를 결정한단다.’라고.
그것은 그의 행운의 상징이었고, 아버지가 가장 강했을 때였다.
지금은 선황의 변덕으로 팔이 부러져 예전 같은 총기는 사라지셨지만, 철금신은 그때의 아버지를 기억한다.
‘제발, 제발…….’
벽안신의이자 소의선, 이제는 의선이라고 불리며, 강호에서는 일광이라고 불리는 자.
그자가 말했다.
금속으로 고정술을 할 거라고.
그때 치료를 못 받아 뼈가 잘못 붙은 부분을 다시 부술로 고칠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게 천운이라고 했다.
보통 양민들은 나이 때문이라도 쉽게 뼈가 붙지 않는다고.
혹시 모를 후유증과 위험성, 그 확률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다 듣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어디에다가 직인을 찍어야 하오?’라고.
통증은 둘째 치고 애초에 팔을 위로 드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터였다.
-유랑후가 뼈가 부러져 다리를 쓰지 못할 위기가 있다 들었소. 화주의각 의원들 모두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지? 그걸 고친 신의(神醫)에게 뭘 더 바라겠소.
아버지의 눈에는 신의에 대한 의심이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마치 구세주를 보는 듯한 눈.
아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의가 조금이라도 늦게 왔다면 아버지가 어찌 되셨을지 아들인 철금신 자신도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그걸 치료하는 게 훨씬 어려웠을 터이니, 이건 훨씬 쉽게 할 거라며 말했다.
상의원이 부술 시간이 이쪽이 더 짧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 모양.
신의는 그저 모든 부술은 전부 위험성이 있고, 몸을 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면 안 여는 게 좋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결국 신의의 설명을 다 듣고, 직인을 찍었다.
신의가 이겼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다니…….’
기적 같은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나고 있었다.
-으음, 그래도 석 달은 족히 정양하셔야 합니다. 다 아물고 나서도 일 년은 그 팔로 무리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안 들으시겠죠?
벌써부터 대장간에 불을 올리고 싶어 근질근질해하는 아버지를 보며 의원은 투덜거렸다.
-강호인들이 퇴원하고 의원 말 안 듣고 어디서 칼싸움하다가 팔 망가지고 옵니다. 철심 박은 거 고대로 박살 나서 와요. 그때는 의원이 와도 다시 어떻게 하지도 못해요. 평생 장애가 남는다고요.
아버지는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의원은 뭔가 직감했다.
-쓰읍, 말 안 듣는 눈이야. 큰일이네.
환자를 많이 치료하다 보면 뭔가 뺀질이들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는 모양이다.
의원은 ‘으르신들이 원래 내 말 진짜 안 듣지.’ 하며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약속해요. 최소 세 달은 쉬기로. 그리고 일 년은 어디 가서 칼싸움하지 않기로. 대장간 일은… 하……. 외공 배웁시다. 재생공도 가르쳐 드릴게요.
철금방주가 보기에 백린의각 소각주는 나이답지 않게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아버지가 참는 건 최대 세 달이다.
대장간을 향한 아버지의 열정은 거의 광기에 가까우니까.
아픈 팔로 불만 올리며 매일매일 아궁이만 바라보던 삶.
그 한(恨)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우리라.
일 년 후에 자신이 살았을지 죽었을지 알 수 없는 강호에서 모든 것을 잃은 채 하루하루 늙어가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그걸 기다릴 여유가 있을 리 없지.’
그래서 외공과 재생공을 가르쳐준다는 것일 터.
‘이리되면 우리 철금방은 결코 백린의각을 배신할 수 없게 되겠지.’
사제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공을 전수하고 받는 관계까지는 되었다.
대장장이에게 있어 팔은 생명이다. 그 생명을 구원받은 셈.
‘아버지 성격에 목숨을 구명 받고 무공까지 전수받았는데 배신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목에 칼이 들어오면 들어왔지, 그럴 일은 없을 터.
그리고 그것은 아들인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제 철금방과 백린의각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연이 생겼다.
‘일광은 그것까지 계산하고 안배한 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곤 한다.
일광과 일을 하고 있다 보면 그 순간에는 눈앞의 일만 처리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크크큭, 기분이 나쁠 리가……. 목숨을 구명받게 되었는데…….’
이제 아버지는 예전 그에게 철전을 주었던 그때의 눈빛을 하고 있다.
단 한 냥의 철전도 소중히 하라는 그때의 그 눈빛.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선황은 결국 아버지의 신념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거의 죽을 뻔했지만, 신의(神醫)가.
커다란 새처럼 날아와 이 집에 앉았다.
‘부술이 잘 되겠지?’
일광 그 양반은 꽤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약간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크헤헤헤!’ 웃음을 터뜨리는데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
‘하지만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짜증은 나는데 왠지 안심이 된다.
긴 부술 시간 동안 그는 철전을 만지고 만진다.
그 감촉을.
이제는 그의 손에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그 철전은 눈을 감고도 어디에 흠집이 있고 주름이 있는지 외웠다.
아버지가 부디 회복되기를.
만약 회복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부술실에서 생이 끝나기를.’
끔찍한 생각이지만 희망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이었으니까.
대장장이들은 전부 미치광이다.
* * *
얼마나 기다렸을까.
영겁 같은 시간 속에 숨소리만이 들린다.
모두가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를 걱정하며.
아버지께 잘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씩 떠올리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노라고 후회한다.
마치, 염라대왕의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 같다.
이 수술이 잘못되면 아버지가 어찌 될지 알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마침내.
달칵-
부술실 문이 열린다.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힘 있는 발걸음이 턱턱턱-
일부러 소리를 내어 걷고 있다.
“어이쿠우,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신의(神醫)다.
“결과는……?”
“팔뚝 뼈가 얼마나 굵으신지 앞으로 신병이기를 한 열 자루는 생산하시겠던데요? 아주 순산형 팔뚝이십니다.”
웃음이 나왔다.
“아……!”
그런데 왜일까, 저도 모르게 철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울컥, 눈물이 난다.
멋없는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가주로서 체면이 상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울 아버지가 저보다 팔이 두껍습니다. 하하하……. 나이는 허투루 먹었는지.”
“아이고, 폐인처럼 사셨다면서 다 거짓말이더라고요. 혼자 무공 연마를 얼마나 하셨는지 어지간한 장정보다 근육이 장난 아니시더라고요. 그 아픈 팔로 무공은 어떻게 연마하신 건지, 배우신 심공 중에 근육 유지되는 그런 심공이라도 있습니까?”
“하하하, 비슷한 게 있습니다. 거력을 유지하는 내공이죠. 대장간 일이 고되기 때문에 하루도 거른 적이 없으십니다.”
팔을 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그 심공을 연마했다.
분명 고통이 극심했을 텐데도.
‘독종도 그런 독종이 없지.’
벽안신의도 그걸 통찰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육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이립 된 장정도 저런 팔뚝은 못 가집니다.”
“크크크크, 아직도 어머니 앞에서 팔뚝 자랑하는 거 아십니까? 팔에 돋아난 힘줄을 어머니가 은근히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여름 되면 괜히 걷어붙이고 어머니 앞에서 얼쩡얼쩡…….”
“이놈이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어머니가 등짝을 때린다.
하지만 때리는 어머니도 울고 계셨다.
아버지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분 아니었나.
나중에는 크게 싸우고 서로 별거까지 하셨다.
그럼에도 끝내 처가로 돌아가시지는 않으셨다.
뒤를 돌아보니 아우들도 울고 있다.
“하여간 형님도 주책이십니다.”
“맞아요. 꼭 이런 곳에서 그런 걸 말해야 하나?”
“내 저럴 것 알았다니까.”
모두가 울고 웃었다.
“감사합니다. 천하신의.”
천하에서 최고의 의원.
눈앞에 있는 의원은 그 호칭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치료받은 아버지가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일 터.
그만큼 이 집안의 가장 큰 우환을 이리도 쉽게 풀어주었지 않았나.
허나 천하신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일광이라고 편하게 부르십시오.”
“아, 이제 그 별호가 더 편해지신 겁니까?”
“크헤헤헤헤!”
진천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회복되시는 대로 무공 전수할 테니까. 안 봐드립니다. 가족분들도 적어도 석 달은 망치 못 쥐게 하셔야 해요. 성질 같아서는 그냥 노는 수준도 아니고 진짜로 무기 만들 만큼 휘두르실 거잖아요?”
“네. 그 팔뚝 값만큼 휘두르시겠죠.”
이건 좀 걱정이다.
그 불같은 성정으로 반백 년을 참았다.
이제는 참지 않을 터.
“석고로 꽉꽉 감을 테니까. 꼭 막으세요. 알았죠?”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네, 알겠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눈을 빛내자 진천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다들 눈이 영감님이랑 닮으신 걸 보니, 뼈 붙는 건 걱정 없겠네요.”
다행인 건 우리도 한고집 한다는 것.
철금방의 사람들이니까.
* * *
노인은 오랜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불꽃을 보았다는 것만 기억났다.
대장간의 꿈.
‘그 꿈을 또 꾼 모양이군.’
망치를 잃어버리고 계속 찾는 꿈이었다.
보통은 일어날 때까지 계속해서 망치만 찾다가 끝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땠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노인은 눈가에서 눈물이 시작돼서 주름 사이로 고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노인이 견뎌온 세월의 흔적이었다.
“오우, 일어나셨군요.”
진천희가 와서 진맥을 하고는 여기저기를 눌러본다.
“감각이야 있네. 걱정하지 마시게.”
“헤헤헤. 진기진맥할 때 이미 부술 잘된 건 느꼈지요.”
“하여간…….”
그의 옆에는 아들인 철금신이 있었다.
“아버지. 돌려드립니다.”
그리 말하며 철전을 침상 옆에 놓았다.
손으로 얼마나 닦아댔는지 반들반들하게 윤이 났다.
“내 행운의 상징을 네게 맡겼거늘. 이제 행운은 필요 없느냐?”
“제 행운은 아버지니까요.”
장부(丈夫)의 눈이었다.
이 아들이 언제 저렇게 자랐는가 생각하며 철금천이 말했다.
“그래. 소각주… 최고의 무구가 필요하다 하였지?”
“네. 이무기 재료에 아깝지 않을 무구면 됩니다.”
거기까지만 답한다.
정확히 어떤 무구가 필요한지는 회복된 후에 말하자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다 회복되기 전에 만들러 달려갈까 봐 걱정되는 것이겠지.’
이런 영악한 의원 같으니.
하지만 가슴이 근질거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열망을 담아 노인은 말한다.
“내 만들어 주겠소.”
그 말에 진천희가 정색했다.
“다 나으시고, 뼈 다 붙고, 재활치료까지 하고 나서 생각합시다. 반백 년 동안이나 못 움직였던 팔이었잖습니까.”
“아니…….”
“재생공과 외공 전수할 테니까 그거 다 익히셔야 합니다.”
“아니, 그게…….”
“제가 진단해보고 충분히 신병이기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그때 일하십시오.”
철금천이 어이없어 아들에게 물었다.
“일광은 낭만을 모르나?”
진천희가 말했다.
“신병이기고 나발이고 팔뚝이 먼저입니다. 몸을 건사해야죠.”
“……그거 정말 이상한 말이로군. 이상한 말이야.”
대장장이 인생 동안 평생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오늘 신병이기를 만들 수 있다면 내일 목숨이 끊어져도 좋은 게 장인의 마음 아닌가.
그러나 일광은 그것을 여상하게 말했다.
“정 하고 싶으면 명상으로 하십시오. 그……. 강호인들 보면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머릿속 명상을 통해서 무공을 상상하고 연마를 하지 않습니까.”
“그게 가능한가?”
“절세 강호인들만 가능하긴 하죠. 하지만 영감님은 절세 대장장이 아닙니까? 당연히 될 겁니다!”
미친 소리였다.
진천희 스스로도 그냥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척수반사적으로 외쳤을 뿐.
“!”
허나. 철금천에게는 그게 무언가 파문이 되어 마음에 박혔다.
마치 강호인의 깨달음처럼 영겁의 시간이 찰나가 되어 뇌를 때린다.
뇌전이 몸을 튀기듯 짜릿한 섬광이 그의 반백 년의 시간을 씻으며 나아간다.
깨달음.
깊은 깨달음.
불가에서는 돈오(頓悟)라고 부를 만한 것이 대장장이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릇을 채우려면 일단 비워야 하는 법.
반백 년 동안 비운 그릇에 깨달음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오히려 반백 년 동안 망치를 쥐지 않았던 덕분에 그 깨달음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었던 역설적인 상황!
“그렇군. 그런 것이었어! 그런 것이었군. 굳이 육체(體)에 집중할 필요는 없었어. 중요한 것은 마음(心)인 것을.”
“!?”
‘…깨달음을 얻었다고?’
순간 진천희의 동공이 짧게 지진했지만 어쨌든 표정 유지에 성공했다.
노인은 돈오 속에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방법을 사용한다면 신병이기를 완성할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은 연습할 수 있겠군.”
“……그렇죠. 맞습니다! 후후후, 저는 이미 이를 알고 있었던바. 이제라도 깨달으셨으니 다행입니다.”
“어리석은 내게 가르침을 주어 고맙네. 과연 제갈세가! 명불허전이군.”
“하하하, 선조께서 전수하신 현원전단신공 덕분이지요.”
“오오오! 역시 대단하군. 신의의 말대로 다 나을 때까지 쭉 정양하면서 명상으로 기예를 연마하고자 하네. 이 방법을 알려주다니, 과연 천하제갈이오!”
“의원 말을 이리 잘 들어주시니 기쁘군요.”
진천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상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눈이었다.
‘이게 이렇게 먹히다니.’
사기도 치고 볼 일이다.
“…….”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