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69
제 1069화
둥, 두둥-
북소리와 함께 학사의를 입은 사내가 단상에 올라왔다.
그는 황금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먼 길 오신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흑점 북경점의 점주인 왕상 인사 올립니다.”
모두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본명일까? 아마 가명이겠지?’
본명을 쓸 거면 저 가면을 쓰는 이유가 없으니까.
진천희는 짧은 말에서 왕상이 이 일을 꽤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해왔음을 느꼈다.
말에서 반들반들 윤이 났기 때문이었다.
왕상이 말했다.
“자아, 연회는 이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그의 뒤로 황금 수레들이 드르륵 도착한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것이 빛을 받아 휘황찬란했다.
그런 수레 위에 올라갈 물건들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사이 곧바로 왕상이 말했다.
“자, 첫 번째 물건입니다.”
신기한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의 여의주!”
진짜 여의주인가 싶어서 눈이 커졌다.
‘에이, 커다란 왕진주네.’
좀 과장이 섞였기는 하나 성인 주먹보다 거대한 진주였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사람들은 각자 금액을 외쳤다.
“금자 500냥!!”
“이쪽은 금자 200냥을 더해서 700냥!!”
적당히 괜찮은 금액.
저 정도 크기의 진주는 그야말로 사치 그 자체 아닌가.
무엇으로 가공해도 호사스러울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미인 가면을 쓴 자가 낙찰을 받아 갔다.
그렇게 경매가 계속되었다.
그다음 나온 것은…….
“모두가 기다리셨습니다. 천년설삼이오! 이 천년설삼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번의 섭취로 내공이 일 갑자가 넘는다 하옵니다!”
진천희는 의원, 덕분에 약재를 보는 눈도 발달되어 있었다.
‘천년까지는 아니어도 한 오백 년 묵기는 했구나. 저 정도만 해도 귀물 중의 귀물이긴 하지.’
딱 반만 믿으면 된다.
과장이 보태져 있긴 하지만 적어도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금자 1,000냥!”
“금 1,000냥에 200냥 추가요!”
“두 배! 두 배!”
아까보다 훨씬 치열하다.
확실히 오백 년 설삼이라도 혈사가 일어나고 남을 만큼의 약효를 가지고 있지 않나.
이번에 가격을 부르는 자들도 기도가 남다른 것이 어딘가의 세가 사람 같아 보였다.
높으신 분이 직접 왔든가, 믿을 만한 자가 대신 왔든가.
‘오백 년 설삼을 믿고 맡길 수 있으려면 보통 신뢰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말이지.’
나름대로 꽤 평화적인 방법이다.
그동안 비급과 영약으로 인한 혈사에 지친 의원은 이 광경에 일종의 힐링을 받았다.
서로 죽고 죽여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평화롭게 돈으로 승부 보는 광경.
죽는 사람 없다.
다치는 사람도 없다.
‘다들 이런 곳에서 물건 구해 오나?’
귀물인 건 맞지만 물건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건 오로지 본인의 안목뿐.
‘재미있군.’
“낙찰입니다!”
이번에는 용의 가면을 쓴 사내가 가져갔다.
딱 봐도 무골로, 손을 보니 오랫동안 무공을 연마한 흔적이 보였다.
‘강호에 새로운 고수가 나올지 궁금한걸?’
이제 다음 물건이 등장하셨다.
“만년한철! 북해빙궁 특산물~! 백린의각의 소각주 일광 진천희의 검도 만년한철이 들어간다 하지요. 신병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만년한철이 필요합니다!”
‘음, 만년한철이 아니라 북방한철로 만든 칼인데…. 이것이… 강호의 사기인가?’
과연 강호.
어설픈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
이런 경매장에서조차도 눈 뜨고 코 베이기 딱 좋다.
사회자의 감언이설에 속은 사람이 꽤 있는지 속닥이는 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
‘북방한철이 아니더라도 보통 신병이기에 만년한철이 들어가긴 하니까.’
거짓말에는 진실이 깔려 있긴 해야 한다.
설령 속았다고는 해도 수중에 만년한철이 남을 터이니 뒤탈은 없다.
그렇게 만든 칼을 되팔기만 해도 돈이 얼마냐?
‘오우, 사기는 이렇게 치는 거군.’
의원은 그렇게 강호를 배웠다.
그렇게 신기해하고 있을 때.
가격이 올라간다.
“금 1,200냥!”
“이쪽은 그 두 배요!”
제법 세군.
만년한철은 신병이기의 주재료.
그것으로 벼려낸 칼이 얼마나 강할지 궁금해졌다.
이것을 받아 간 사람은 강호인은 아니나 손에 굳은살이 많은 자였다.
‘장인……인가?’
저 정도로 굳은살이 잡히려면 최소 일류 장인은 될 법했다.
저걸로 만든 검이 시장에 나온다면 누구든 사려고 눈이 벌게질 터.
왠지 진천희는 장인의 행동거지가 묘하게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짧은 걸음걸이 몇 보.
그것도 먼 곳에서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걸 안력을 돋궈 판별하는 수준이다.
궁사인 왕각연이라면 모를까 진천희에게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수레가 드르륵 도착했다.
마지막 수레답게 금이 아닌 홍옥으로 깎은 사치스러운 수레.
모두가 말소리를 멈춘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사회자 왕상이 손을 비빈다.
“자. 이번에는 머나먼 서쪽에서 온 화가의 그림입니다. 최근 이 화가의 그림이 아주 큰 인기를 끌고 있죠.”
오오오오!
벌써부터 무슨 그림인지 짐작하는 자들이 소리를 냈다.
‘대체 뭐지? 엄청난 명화인가 본데?’
신기했다.
거대 진주는 둘째 치더라도, ‘천년설삼’과 ‘만년한철’보다 더 이목을 끌 만한 물건이 있단 말인가?
그림이 그 정도라면 얼마나 대단해야 한단 말인가.
“자임수(自任手) 밀라(密螺)의 그림. 선희공주탄금도(鮮喜公主彈琴圖)입니다!”
“쿨럭!”
진천희는 그만 마시고 있던 차를 뱉었다.
‘아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자임수(自任手) 밀라(密螺).
즉, 제임스 밀러.
서대륙 화가가 본인의 화풍으로 그린, 선희 공주의 탄금… 즉 금(琴)을 타는 모습의 초상화였다.
그림이 얼마나 유려한지, 마치 연주하는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말했다.
“이리도 성스러울 수가…….”
“마치 천인이 사람의 옷을 입고 내려온 것 같지 않소.”
“들리는 말로는 새외의 공주라 하던데, 백린의선이 무척이나 사모하여 초상화를 의뢰했다 들었소.”
“황상께서도 소문을 듣고 그 초상화를 궁금해하시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지.”
“저 그림이 이 경매장에 풀리다니……!”
사람들은 마치 성화(聖畵)라도 보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선희공주탄금도를 바라보았다.
서양식 흰 베일을 머리에 쓰고 있는 그 모습은 흡사 성모(聖母)와도 같았다.
‘이, 이게 무슨!’
깃털처럼 내리깔린 속눈썹과 입가에 살짝 배어난 미소는 사람의 죄를 씻어줄 것 같은 경건함까지 담겨 있었고-
‘아니, 미친……!!?’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을 돌리고 있음에도 3초 동안 정신을 놓고 침묵했다.
‘…….’
무음(無音).
내면의 작은 진천희들도 입을 다물고 정신을 놓았다.
그것은 진천희 인생에 몇 없는 일이었다.
그때 패닉을 깨고 누가 크게 질렀다.
“금자 3,000냥.”
묵직한 저음이다.
그런데 그 말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시작 가격으로는 최대급!
아까의 만년한철과 천년설삼(사실 오백 년짜리지만)보다 비싸다!
‘미친! 아니. 저딴 그림에 왜 3,000냥이나!!’
진천희가 그렇게 놀라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는데, 생각해 보니 목소리가 뭔가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였다.
그래서.
목소리의 주인을 보니.
아는 체구와 아는 옆 선.
가면을 썼지만 그럼에도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시, 시, 실버 놈이 여기 왜, 왜 있는 거냐아아앗!!?’
옷과 가면으로 가렸다지만, 진천희는 풍하은의 주치의.
그의 골격과 근육은 전부 알고 있다.
진천희처럼 골격마저 변형한 게 아니라면, 진천희가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풍하은이 직접 여기에 왔다.
‘아니… 저 인간이 왜 있어? 거기다 금자 삼천씩이나 부어서 왜 내 그림을 사려고 하는데?!’
진천희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모를 상황.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더 크게 돈을 지르는 게 아닌가.
“금자 6,000냥. 두 배다.”
멀리서 작게 말했는데 이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육합전성과는 다르다.
허나,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의념이 담겨 있었다.
상대는 의념을 가지고 노는 자였다.
‘이 목소리는……?’
진천희는 방금 현원전단신공이 도출한 결과가 사실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스, 스승님?!’
까맣게 물들인 머리카락.
그리고 그나마 그 머리카락도 틀어올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딱 알 수 있었다.
이건 스승님이다.
그리고 유호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니. 스승님은 또 언제 오신 거야!?’
미쳐 버린 상황 속에서 진천희는 그제야 자신의 본분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밀 장부는 어떻게 찾으라고오오오오!?’
악몽인가?
필시 악몽인 게 틀림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금액을 겨루기 시작했다.
“금자 9,000냥. 한 배 반을 부르도록 하겠다.”
“금자 10,000냥. 즉시 지급.”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몰랐다.
이 그림이 뇌물용으로 좋다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두 사람이 자력으로도 구하러 다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장내가 충격과 경악으로 가득 찬다.
“……!!”
마교가 발호했다고 발표를 해도 이보다는 경악스럽지 않으리라.
“어, 어, 어마어마한 큰손이 낀 모양이군!”
“그, 그렇지. 대체 저 선희공주탄금도에 무슨 비밀이 있어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든 건지 모르겠네.”
“저 미색을 모르겠나? 경국지색의 미모를 족자로 간직하겠다는 심리지.”
진천희는 살심을 느낀다.
“…….”
홍시처럼 붉어진 얼굴은 필시 분노 때문이리라. 결코 부끄러움 때문은 아닐 터!
패닉 속에서 진천희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툭-
‘에이, X발 못 참겠다아아아아!’
그 순간, 진천희는 경매장 단상을 향해 우다다다 달려갔다.
그러고는 호위대가 제지도 하기 전에 현경의 묘리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간 후 그림을 찢었다.
부우우우욱!
“……!”
경악과 충격.
방금 금화 10,000냥을 부른 그 그림이 순식간에 두 조각이 났다는 사실에 모두의 사고가 멈춘다.
상관없다.
이쪽은 초상권이 있지 않나.
‘도, 도, 도, 동의 없이! 그린 쪽이! 나, 나, 나쁜 거니까!’
암암, 그렇고말고.
진천희는 스스로를 납득시킨 다음에 내공을 담아 소리를 질렀다.
“아, 암행어사 출두요오오오오——!!”
시뻘게진 얼굴이 가면 사이로 슬쩍 보인다.
내공이 실린 고함이 사방에 뻗어나간다.
감찰패가 달빛을 받아 윤기가 반들반들하다.
“암행어사?”
“이게 무슨……?!”
진천희가 단호하게 외친다.
“세금 탈세 혐의로 네놈들을 추포하겠다아아아아아—!”
진천희의 내공 담긴 목소리가 사방에 공포를 만들어냈고, 호위대가 달려와 검을 휘둘러도 진천희의 손가락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타앙!
무학이 절묘하게 들어간 검지가 강철을 잘라냈다.
고작 일합.
심후한 무학에 순간, 호위대의 표정에 절망이 스쳤다.
“이, 이, 이건 못 이긴다!”
“아, 안 돼! 쳐라! 치란 말이다!”
호위대가 도망을 치기 시작하자 주최자도 도망을 친다.
내빈들 역시 놀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보아하니 내빈을 잡아 봐야 아는 게 없지 싶고. 주최자만 족친다.’
진천희가 주최자 뒤통수를 치러 달리려다 힐끔 뒤를 본다.
그 많은 사람들 속, 풍하은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우, 벌써 사라져 있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양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아마 강호인들은 모르는 은신술을 써서 여유롭게 자리를 피한 모양.
‘와, 괜히 킹 받네!’
반면 스승님은 후퇴조차 하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면 속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진천희라는 것을 알아본 모양이다.
‘아이고……!’
옆에 유호가 있으니 더욱 어쩔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진천희는 일단 주최자의 뒤통수에 탄지천통을 날려 기절시켜 버리고는.
빠악!
그와 동시에 냅다 음공을 썼다.
지면에 발을 굴러 돌아오는 반향을 읽은 것.
투웅!
순식간에 비밀 공간을 찾아내고는 혼란한 틈을 타서 그곳으로 향한다.
뭔가 내려놓은 진천희는 곧바로 비밀 공간의 문을…….
따지는 않고.
‘머리 쓸 시간이 어디 있어!?’
빠악!
주먹으로 그냥 후려 팼다.
벽돌이 푹 파이면서 뒷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 장부!
목표물이었다.
‘그래. 모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그만이지.’
진천희는 허탈한 심정으로 정신 승리를 했다.
일은 해결된다.
아무튼 해결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때 전음이 들려왔다.
[희야. 참 재미있는 일을 하고 다니는구나.]목뒤로 무언가가 달라붙는 기분이 들었다.
‘시선?’
스승님과 유호의 시선이다.
허나, 이 자리에는 두 사람이 없을 터. 그렇다면 이 감각은 무엇이란 말인가?
‘의념인가?’
진천희는 난데없이 의념에 대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그렇군. 소리에 의념을 담으면 더욱 다양한 걸 할 수 있구나.’
단순히 내공을 써서 음공을 발현하는 것과는 다른 이치.
‘내가 그동안 음공에 의념을 담았다고 믿었던 것은 사실 좁은 의미였던 거야.’
스승님 입장에서 진짜로 소리에 의념을 담는다는 것은 더욱더 크고 광오한 개념이었다.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의념’이란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은 것.
그동안 알아 왔던 것이 사실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 왕각연이 기가 아닌 순수하게 의념을 쏘았던 것과 같은 원리.
거기까지 깨달은 진천희는 순식간에 돈오(頓悟)에 닿았고.
‘아!’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벽을 때린다.
두우우웅-
의념에 닿은 벽이 흡사 종처럼 울려 사방을 뒤흔드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