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7
제 107화
식사를 끝내고 두 사람은 차를 마시러 제갈린의 집무실로 향했다.
산처럼 쌓인 각종 서류들과 전서들을 놔두고 둘은 탁상에 마주 앉았다.
유호는 차를 타 왔다.
대추차였다.
이제는 지나간 가을의 향이 담겨 있었다.
“할 이야기가 무엇이냐? 공동 식당에서 말하지 않은 걸 보니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 말이다.”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 나가 보려고 합니다.”
그 말에 스승님의 표정이 멈춘 것도 찰나. 이윽고 다시 부드러운 미소로 변했다.
“그렇구나. 강호, 네 성취라면 늦은 편이지. 이번에는 만년화리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건 아니겠고…….”
제갈린의 눈이 반개했다. 그는 생각을 끝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다섯 마리 영물과 일곱 가지 영약 때문이니?”
그 말에 진천희는 살짝 놀랐다.
과거 진천희는 만년화리의 소재를 어찌 알았는지 이야기할 때 이 말도 덧붙인 적이 있었다.
-그것이 거기에 있는지는 어찌 알았느냐.
-사실 저는 적어도 다섯 마리의 영물이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일곱 가지 영약의 소재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때 했던 말을 당연히도 제갈린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진천희의 의표를 찔러 먼저 물었다.
진천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가 먼저 발견하기 전에 갖고 오겠습니다.”
“그것만이 전부가 아닐 것 같구나.”
“…….”
사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지존천마의 주인공은 여하륜.
이 녀석이 천살성의 업 때문에 고생은 하지만 스스로 나서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거기다가 본인이 천마의 자리에 올랐을 때 자연히 마교를 자신의 방식대로 고쳐 나가게 된다.
강자존의 마교에서 천마는 곧 법이다.
여하륜이 천마가 되면 마교의 체계는 다시 한 번 변화하게 된다.
반면 지존천마 소설의 진짜 적은 혈선교다.
혈선교.
지존천마의 절대 악. 마교의 진짜 이름은 성마신교로 성과 마를 동시에 숭앙하는 종교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무당파나 화산파가 도교 안에서 원시천존이라는 신을 추앙하는 것과 같다.
혈선교는 좀 더 이질적이다.
도교의 분파지만 원시천존이 아닌 통천교주를 신으로 모신다.
전설 속의 요선들의 집단인 금오도를 추종하는 종교인 셈. 그리고 그놈들이 바로 지존천마의 주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하필 요선들을 숭상하다 보니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살아있는 인간을 공양하는 게 문제.
‘사실 혈선교 외에도 여러 적들이 존재하긴 하지.’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혈선교의 행사를 지금 단계에서 방해하는 게 맞는 일이다.
그러나 이걸 제갈린에게 말했다가는 정말 감금행이었다.
단순 강호 출두가 아닌 마교보다 더한 집단과 싸우러 가겠다는 뜻이니까.
‘희야, 다리가 부러져도 괜찮단다. 두 달 있으면 다시 붙을 테니 그때 다시 이 스승에게 물어보련? 의원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란다.’ 하고 상냥하게 진천희의 다리를 또각하실 수도 있다.
오행신공의 재생력이 잘 통하지 않게 화기로 정성스럽게 만져 주실 터였다.
‘입이 찢어져도 그건 말 못 하지. 암.’
진천희는 눈알을 굴렸다.
“그게 전부입니다. 스승님.”
우선 제갈린에게는 진실만 말하는 게 우선이다.
사실은 다 말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은 절대 안 된다.
걸렸다가는 뒤탈이 끝내줄 터였다.
“그게 주목적이니?”
“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섯 동물 중의 둘은 혈선교가 먼저 차치하게 된다.
또한 일곱 가지의 영약 중 네 가지는 혈선교와 상관없는 자들이 차지한다.
걔들도 여하륜의 적이다.
‘하륜아. 형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 딱 대고 기다려라. 형이 고속도로 뚫어 줄게!’
스승님의 목숨을 구했으니 이제 여하륜 앞에 있을 가시밭길을 치울 차례!
진천희가 두 가지 영물과 네 가지 영약을 먼저 꿀꺽한다면?
당연히 그들의 세력도 줄어들 게 뻔하다.
‘겸사겸사 형 몸보신도 할게.’
어차피 적이 먹을 거 진천희가 먹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거기다가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혈선교는 사악의 대명사답게 지금 이 순간에도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으니까.
전부 막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놈들이 가는 행로에 압정을 뿌려 주는 것 정도는 능히 할 수 있다.
그것들을 미리 처리한다면 미래가 더 밝아질 터.
“…….”
스승님이 생각에 잠겼다.
진천희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윽고 스승님이 입술을 열었다.
“단, 조건이 있단다. 한 가지 무공을 더 익히고 나가거라.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을 익힌다면 강호행을 허락할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잠자코 용봉지회가 끝날 때까지 의각에서 기다리렴. 유호! 그것을!”
그 말에 유호는 똥 씹은 표정으로 어디선가 물건을 들고 왔다.
족쇄였다.
“만년한철로 만든 특수 제작 족쇄란다. 희야, 네가 스승에게 숨기는 게 있으니 나 역시 엄히 나갈 거란다. 각오가 되어 있느냐?”
과거 유호가 이렇게 말했다.
-후후후, 그렇지 않아도 만년한철을 구하시더군요. 도련님 발목 치수를 눈짐작으로 재시는 걸 봐서는 금방 완성될 겁니다.
‘미친! 그때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만년한철이 뭔가.
천하제일 명검을 만들 때 사용되는 철로서 무슨 짓을 해도 상하는 일이 없다 하는 그야말로 지고의 보물 아닌가.
돈을 싸다 바쳐도 구하지 못하는 철이다.
어느 미친놈이 만년한철을 구해다가 족쇄를 만든단 말인가.
진천희는 깨달았다. 그 미친놈이 스승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은 그 스승님을 피해 혈선교와 싸우러 가는 또 다른 미친놈이고.
스승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겁먹을 건 없단다, 희야. 네가 이 스승과의 내기에서 이긴다면 이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까.”
“무슨 무공을 익히면 됩니까?”
“독공.”
“기한은……?”
스승님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일주일. 싫다면 강호 출두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해도 좋단다. 용봉지회가 끝난 연후에 이 스승과 같이 돌아다니면 될 일이니까.”
그건 안 된다.
같이 돌아다니게 되면 혈선교를 은밀히 훼방 놓겠다는 작전도 물거품이 될 테니까.
진천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날아가는 셈이었다.
진천희의 입술이 한일자로 굳어졌다.
‘독공을 일주일 안에 익히라니.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지.’
아무리 진천희라고 해도 그건 미친 짓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묘한 자신감이 진천희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수없이 많은 고행을 거처 왔던 단단한 자존감 그 자체였다.
“해 보겠습니다.”
‘까짓것, 안 되면 족쇄 하지 뭐!’
진천희의 표정에 스승님이 스산하게 웃었다.
“우리 제자님이 나한테 말 못 할 짓을 꼭 하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좋다. 한번 내기를 해 보자꾸나.”
* * *
다음 날.
연공실.
오행신공은 기본적으로 독에 대한 내성이 높다.
오행의 기운이 독을 태우고 중화하고, 밀어내고,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당가의 정통 독공을 상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번 대련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일이었다.
당가급의 독에 진정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진천희 자신도 독공을 익히는 게 맞았다.
독공 자체가 자기 독은 자기가 해독을 해야 한다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뱀이 제 독에 죽지 않고, 당가가 독에 중독당하지 않듯.
독공을 익힌 이는 자연히 타인의 독에도 강했다.
재미있는 점이었다.
여러 독공 중에서 진천희가 선택한 독공은 단 하나였다.
오행독공.
오행신공을 익힌 자만이 익힐 수 있는 독공이다.
오행지기에 독의 기운을 스며들게 하는 것으로 본래 운남 오독문에서 오행신공을 연구해 만든 독공이다.
다만 오행독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오행신공의 성취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행신공을 익히는 일 자체가 극기를 요구했다.
자연히 오독문에서도 오행독공을 익힌 이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결국 시간이 흘러 흘러 오행독공은 제갈세가로 흘러들어왔고.
본가의 사람들은 독에 의한 암살을 막고자 이것을 다시 개량시켰다.
제갈세가 입장에서는 본인들 전문 분야도 아닌 독공을 나서서 전문적으로 수련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뇌로 견제를 받는 터에 독공까지 쓴다고 하면 강호의 평판이 어떨지야 뻔했기도 했고.
그런고로 오행독공은 독공으로서 약간의 효용도 있으나 대부분의 비중은 이러한 독에 저항하는 데에 치중되어 있었다.
진천희는 스승님께 배운 오행독공 관련 구결을 외우는 데 하루를 쓰고.
이튿날에는 오행상극독을 먹으면서 수행하게 되었다.
진천희는 유호에게서 오행상극독을 받았다.
“아무런 향도 안 나는걸?”
“수련용 독이라고 해도 독이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도련님.”
“이거 잘못 먹으면 죽나?”
“죽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고생은 꽤 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고생?”
“해독제가 있긴 한데 부작용으로 한 달 내내 피똥 싸게 된다더군요.”
과연 이 시대의 교육 인권다웠다.
그런 건 처음부터 없다는 뜻이었다.
“…….”
독공 연마하다 실패해도 장 때문에 결국 의각에 처박혀야 한다는 뜻.
‘이거 스승님에게 너무 남는 장사인데?’
내기에 패배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천희야. 쫄지 마. 이길 수 있어. 일주일이면 천지 창조도 되는 시간이다. 뭐든 할 수 있어.’
진천희는 스스로를 독려하며 오행상극독을 꿀꺽 삼켰다.
“이거 맛이 꽤 단데?”
“다과에 넣기에 적합한 독이지요. 내공에 직접 스며드는 방식이니 영단과 비슷하면서도 반대 효과를 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목구멍으로 다 삼키기 전에 빠르게 녹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독 맞군. 젠장.’
몸이 뜨거워지다가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허파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피똥이 문제가 아니군. 이거…….’
진천희는 가부좌를 하고는 스승님이 가르쳐준 구결을 외웠다.
유호가 말했다.
“독을 파악하기까지가 1단계, 그리고 그것을 갈무리하기까지가 2단계. 대부분은 2단계에서 고생한다더군요.”
총 5단계까지 있다.
진천희는 몸 안에 들어온 오행독을 파악해 나갔다.
‘갈무리까지 갈 길이 멀다.’
체외로 배출을 하든, 융합을 시키든 그것을 한데 모을 수 있어야 했다.
진천희는 유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유호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