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70
제 1070화
불현듯 밀려오는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스승님의 종적이 사라져 있었다.
‘가신 모양이군.’
예상은 했지만 다른 사람 시점으로 보니 그야말로 신출귀몰.
왜 강호인들이 스승님을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실버도 제국 내에 눈과 귀가 있다고 봐야 하나.’
설마하니 알아보지는 않았… 아니다. 그냥 이건 도어사만 족쳐도 누가 일을 꾸민 건지 알 수 있을 터.
결국 뭐 둘 다 알게 된 사실이라고 봐야 하겠지.
진천희는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백학루 별채로 돌아갔고.
다음 날 아침.
기다렸다는 듯 도어사가 백학루 별채로 찾아왔다.
“어제 거하게 일을 일으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 주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눈 가리고 아웅을 해달라 부탁했지만 이리 일을 벌이실 줄은…….”
“……저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괴도 처티인지, 선희 공주인지 부캐가 슬슬 헷갈려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안 밝혔다.
암행어사라고 했을 뿐.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문서를 꺼냈다.
“여기 장부. 그런데 어제……. 황상께서 그곳에 계시던데 어찌 된 영문입니까?”
도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대한 보고는 받았습니다. 저희로서도 의외의 일이라서 많이 당황했지요. 단순히 동창들만 연루되어 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니까요.”
“황상께서 이용하시는 곳이라면 적당히 눈감아 줘야 하기 때문입니까?”
“…….”
도어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살짝 망설이더니 이렇게 답했다.
“거짓을 말해 봐야 의미가 없겠군요. 맞습니다. 그런 셈이죠. 황상께서도 나름대로 제국 뒷일을 만지시는 터라 어지간하면 겹치지 않게 주의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일이 생겼군요.”
양쪽 모두 은밀하게 일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
“황상께서는 경매장을 이용하여 제국의 검은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찾아내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아아.”
“그건 도어사도 못 찾아내는 일이니, 황상께서 직접 미끼를 만들어 함정을 파고 계셨던 거지요. 제 불찰입니다.”
불찰까지야.
하지만 도찰원 입장에서는 불찰이 맞으려나?
정확히 말하면 황상의 일을 알아서 피해야 하는데, 이런 암행을 황상이 따로 밝히지는 않을 터고.
동창이 이런 함정을 도어사에게 고하지도 않을 테니 생기는 일이다.
‘조직 사회가 개 같긴 하지.’
낯선 중원에서 현대 조직의 교통사고를 느낀다.
‘자, 잠깐. 하지만 초상화 사는 건 진심이었잖아?’
그건 확실했다.
그것은 진심이 아니면 걸 수 없는 돈이었다.
1할의 거짓이 담겨 있었으면 그림에 그 돈 절대 못 낸다.
이 쉐키는 진짜로 그걸 거액 주고 사려고 했다.
“참, 그 찢으신 그림은 환수하였습니다. 명장의 손에 감쪽같이 복구되어 관이 주관하는 경매에 나올 생각입니다. 그렇게 얻은 이득금은 화가에게 일부 들어가고, 나머지는 국고로 환수될 예정입니다.”
“…….”
제임스 밀러의 홍복이다.
진천희는 그 경매 광경이 다시 이루어지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작권도 좀처럼 인정하는 법이 없는 무림 월드에서 초상권이라고 존중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답은 괴도, 괴도인가?’
법이 지켜 주지 않는다면 결국 남는 것은 협(俠/feat.탈법).
도둑질은 불법이지만 의적은 탈법이다.
강호의 오랜 율법이다.
진천희는 자신의 가슴에 대고 이 상황을 용납할지 말지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했다.
진천희와 작은 진천희들이 내면 세계에서 청문회를 하는 동안.
도어사는 진천희에게 장부를 받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감사합니다. 진 태수.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본래라면 이 정도 규모의 탈세는 극형에 처해야 하는 바이지만……. 황상께서도 이용하고 계시니 추징 정도로 끝내야겠군요.”
그래. 오백 년 설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달리 있겠나.
그것도 천년설삼이라고 주장하면서 파는 가게가 두 개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독도 잘 쓰면 약이라는 건가.’
어제 일은 없었던 셈 치고 싶었다.
“그렇군요. 어쨌든 일이 해결되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러면 후일 다시 뵙겠습니다. 보은에 대해서는 차후 따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몸 보중하시기를.”
그녀는 가볍게 예를 표하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도어사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음…. 도어사께서 왜인지 나한테는 깍듯하게 대하는데… 혹시 뭔가 알고 저러는 건가……?’
황상과 진천희의 관계에 대해.
제독태감뿐 아니라, 도어사도 알고 있다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
정보를 모으는 건 동창뿐이 아니니까.
직속 감찰기관인 도찰원에도 뭔가 비슷한 정보가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됨됨이를 떠보려고?’
만약 그것 때문에 진천희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이라면 도어사 안의 진천희는 대체 어떤 모습이고.
또 어떤 판결이 내려진 것일까?
진천희는 쓰읍, 혀를 차다가 말했다.
“보은하겠다고 했지. 다시 만날 거라고.”
좀 두려워졌다.
* * *
진천희는 그렇게 도찰원과 함께 일을 했다.
일단 도어사에게 달리 보은을 시킬 만한 게 없다 보니 빚은 달아 두기로 했다.
적어도 도어사에게 있어 진천희는….
‘음, 믿을 만한 존재인 것 같긴 하군.’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일을 시키진 않았으리라.
그래도 괜찮았다.
제국의 뒷면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고, 덕분에 이쪽도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안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기왕 와 있는 거, 백린의각 북경 분타의 의원들을 가르치라는 스승님의 명이 도착하여 함께 일을 했다.
“하하하, 소각주님, 드디어 오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언제 또 오실지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북경 분타의 상의원들이 손을 비비며 진천희에게 달라붙는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
정치의 냄새다.
‘음, 북경 분타는 수도답게 의원들 간에 정치질도 좀 있는 모양이군.’
그래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덕분에 진천희는 북경 분타를 어떻게 관리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소각주님!”
“네? 좌천이라고요?”
공부를 게을리하여 실력이 떨어진 자는 가차 없이 목을 치기 시작했다.
‘정치질을 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무능한 건 용서 못 한다!’
특히 의원은 사람 목숨이 달린 만큼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
게을러지는 순간 끝이다.
그렇게 본보기로 몇 놈 보내고 나니 상의원들의 군기가 바짝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오랜만에 철금천을 만나서 진맥했다.
“오우…! 아무리 재생공을 가르쳐서 재활을 했다지만… 너무 빠른데요?”
나이를 초월한, 아니 이쯤 되면 경지를 초월하는 회복력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철금천은 근육을 보란 듯이 불끈거리며 물었다.
“놀랐소, 진 신의?”
“네. 솔직히 엄청 놀랐습니다.”
철금천이 말했다.
“본가의 혈족은 본디 강골이라오. 전설에 따르면 선조께서 대지의 축복을 받았다던가?”
‘아니, 뭐……. 드워프 혼혈이야, 뭐야?’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렸다.
그런 식으로 치면 황실도 복희의 자손이고, 공손세가도 공손 황제의 자손이다.
죄다 신의 자손일진대 대지의 축복은 오히려 새외 느낌도 나고 소박할 지경.
“그래서 본가 사람들은 상처도 빠르게 낫는 편이라오. 게다가 그대가 가르쳐준 재생공……. 이 촌부가 익힌 무공과 아주 상성이 좋더군.”
좋은 소식이다.
“기왕 하는 김에 지식 좀 얻어가도 되겠습니까?”
“껄껄껄. 어차피 진맥하면 다 알게 될 거면서 뭐 그리 허락을 구하오.”
“그러면 염치 불구하고…….”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좀 더 세심하게 진기진맥을 하고는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했다.
‘아하, 천룡불사기공이 상성이 맞는 무공과 결합하면 엄청난 상승효과를 일으키는구나. 하지만 재생공과 상성이 맞는 무공이라……. 이건 나도 어렵군.’
단순히 양생공이 조건은 아닐 터였다.
‘타고난 근골도 영향이 있을 거고.’
정말로 대지의 축복인가 뭔가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진천희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잘되었군요.”
“그래서 오늘부터 작업에 들어가려고 하오. 무엇이 필요하시오?”
그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그 모습에서 진천희는 칼날처럼 벼려진 정신을 느낀다.
‘이제는 답을 주어도 좋겠지.’
다 나으면 그때 이야기하기로 하지 않았나.
환자는 틀림없이 완치되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정 하고 싶으면 명상으로 하십시오. 그……. 강호인들 보면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머릿속 명상을 통해서 무공을 상상하고 연마를 하지 않습니까.
-절세 강호인들만 가능하긴 하죠. 하지만 영감님은 절세 대장장이 아닙니까? 당연히 될 겁니다!
‘오우, 진짜 제대로 깨달음을 느끼신 게 맞구나.’
소 뒷발에 쥐를 잡듯, 작은 거짓말 하나가 진짜 깨달음을 들고 왔다.
양궁 선수들이 활을 쏘기 전에 명상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번 쏘는 상상을 하고, 그 화살이 과녁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상상을 한다고.
강호인들도 마찬가지.
무공을 쓰지 않고도 머릿속으로 그것을 명상하며 오랫동안 그려 넣는다.
물론 어설픈 무학으로는 불가능하고, 무공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만 그 효과가 십분 발휘될 터.
‘대장장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모양이군.’
어르신은 머릿속으로 몇 자루의 신병이기를 만들었을까.
문득 의원은 궁금해졌다.
그리고.
‘거짓말이 잘 먹혀서 다행이다.’
덕분에 회복도 되기 전에 대장간에 가서 망치를 휘두르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진천희가 말했다.
“침술에 쓸 침. 그리고 옷 안쪽에 받쳐 입을 수 있는 보갑(寶鉀)을 원합니다.”
“……!”
드디어, 드디어!
장인은 신의(神醫)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답을 얻었다.
철금천의 턱이 감동으로 떨린다.
하지만 애써 감추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호오, 무기가 아니라 보갑이라……. 강호인답지 않군그래.”
“그러고 보면 강호인들은 대다수 갑옷을 안 입죠.”
“검기 정도만 되어도 갑옷은 종잇장처럼 갈라 버리니까 그런 거요. 애초에 소용이 없다고 할까. 물론 보갑쯤 되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대가 입고 있는 천잠사 내의처럼.”
‘이제는 천잠사 내의도 단칼에 찢어 버리는 상대와 싸우기 시작했지.’
천잠사. 검기에도 견디는 견고함을 지닌 실.
하지만 만나는 적마다 검기를 넘어 검강을 쓰기 시작하니 견디지 못하고 찢어진다.
그만큼 격한 전장을 구르고 있는 상황.
‘그렇다고 죽을 수야 없지 않나.’
단 한칼을 막아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 대가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을 터이니.
진천희는 이런 사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옷 밑에 받쳐 입을 수 있으면 족합니다.”
“흐음…….”
“허나, 천잠사 같은 것은 귀물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지 않소. 그러니 갑옷을 입은 자들이 없는 게지. 갑옷은 검기도 막지 못하면서 값은 또 비싸거든.”
“그런 이유가…? 결국 돈 문제군요.”
진천희의 말에 철금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 문제지. 사실 그래도 입고 다니면 좋은 게 갑옷이라오. 맨몸보다야 낫지. 허나, 다들 안 입어 버릇하다 보니. 갑옷을 입는 자는 강호의 이단아라는 편견과 색안경이 생겼다오.”
“저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만요. 옷 속에 입고 다니기도 할 거고요.”
“끌끌끌. 역시 일광이라고 불릴 만하구려. 좋소. 내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드리리다.”
“아, 강기에 견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입는 의미가 없어요.”
“대, 대체 무슨 싸움을 하는지 모르겠군. 현경과 생사결이라도 벌이는 거요?”
“…….”
진천희는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글생글 웃을 뿐.
그 표정에 진저리를 치듯 고개를 젓더니 철금천이 말했다.
“알았소. 강기에도 견딜 만한 놈으로 만들어 주지. 그러면 나머지 재료는 어떻게 하겠소? 재료가 많으니 이것저것 다 만들 수 있다오.”
“전부 갑옷으로 만들어 주세요. 전부요. 옷 밑에 받쳐 입을 수 있도록요. 그리고 만드실 적에 사이즈 조절… 어……. 그러니까 끈으로 착용자의 체형에 맞게 조정이 좀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세요.”
철금천이 두 눈을 끔벅였다.
“이런 귀물을……. 맞춤형으로 만드는 게 아니고 양산하려는 게요?”
“예! 저만 입을 게 아니거든요.”
사마현이 생각났다.
잘 있다고 서신을 보냈지만, 그리고 그 녀석이 어디 가서 당할 놈도 아니지만…….
그래도 형의 마음으로는 역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속을 모르는 철금천은 눈을 꿈벅이다가 크게 웃었다.
“와하하하핫! 좋소. 좋아. 그렇게 해 드리지!”
철금천은 오랜만에 몸을 풀었다.
그가 말했다.
“아, 구경해도 좋소.”
“진짜요?”
“장인들 중에는 작업하는 걸 남에게 보이는 걸 극히 꺼리는 자도 있기도 하고, 내 기술의 기밀이 빠져나갈까 봐 걱정되는 자들도 있긴 한데……. 음. 자네는 괜찮지. 은인이니까.”
좋은 기회였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견식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천희는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간에 불을 올려라!”
철금천의 명령에 가솔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진천희는 보았다.
‘의념? 의념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한 노인의 위로 의념이 출렁거리며 흔들린다.
의념은 갓 불이 오르기 시작한 대장간에 스미기 시작했다.
산골 주조장인이 도에 닿아 환골탈태가 가능하고.
반백 년 동안 망치를 쥐지 못한 대장장이도 도에 닿아 의념을 사용하는가.
반백 년의 한이 그릇을 비우고-
의원의 하얀 거짓말이 닿아 깨달음을 만들어냈다.
화르르륵-
불타라, 불타올라라.
철이여. 달궈져라.
기적 같은 일에 진천희의 눈이 커진다.
인간은 무엇으로든 도에 다다르고 의념에 닿을 수 있기에.
작은 진천희 하나가 속삭였다.
‘이는 누구라도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
과거 염전에서 진법을 유지보수하며 들었던 의문, 사실 모든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가.
내면 가장 깊은 곳.
심연에서 밀려온 포말(泡沫)이 답이 되어 톡, 하고 터진다.
터진 거품이 진실을 속삭인다.
가능하다고.
우리는 허무(無)에서 벌거벗고 태어나.
이름을 얻어 존재(有)가 되고.
마침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萬能)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無限)
그것이 인간, 인간이라면-
‘경애하라.’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진 이 쇳물에 입을 맞출지니.
끊어진 줄 알았던 반백 년이 신념이 되어 곁에 머물고.
주름진 손등은 도(道)에 닿았다.
마침내 늙은 장인은 도달한다.
도달하였다.
열려라!
-신병이기의 산실(産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