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75
제 1075화
‘유호 속을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태초에 어린아이(feat.진천희)에게 살해 협박을 한 죄로, 심판을 받아 노역 생활을 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유호.
그는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미스터리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지엄한 랩실 앞에서는 한낱 피조물일 뿐이었다.
그것은 이 강호 랜드가 비록 법(法)이 없어도 협(俠)은 올바르게 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세상에서는 어린아이 살해 협박죄가 위법이 아니기에 법이 없는 것이고, 협(俠)은 백린의각 이인자로 들어온 덕에 협을 세울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꼭 협(俠)은 주먹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좋은 예시라 할 수 있겠지.
덕분에 진천희도 그 더러운 성질머리를 받아주며 편한 마음으로 붙잡아 갈아 버릴 수 있었더랬다.
하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결국 정이란 게 들었지 않나.
‘애초에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상 차리고 연주를 해주는 상대를 계속 미워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그게 사람 아닌가.
그게 삶인 거고.
그러니 일을 줄여 주고 있는데 도리어 불편한 기색이다.
‘쓰읍, 이놈 혹시 일하는 데 중독돼서 저러는 건가?’
유호가 들었으면 멱살 잡았을 소리를 태연하게 하며 진천희는 차를 한 모금 삼킨다.
후릅-
진천희는 유호가 건네준 서류에 시선을 못 박는다.
[백린의각 첩보 조직 영린대의 보고서]거기에는 하오문의 내분 심화에 대해 적혀 있었다.
-오륜회의 입장에서 개입해야 할지 알 수 없으나, 소각주의 의형제인 사마현의 행방이 묘연함. 위기 상황일 수 있음.
-마지막 종적은 절강 아래에 있는 광동성(廣東省)의 성도 광주(廣州).
‘현이 녀석…….’
개방에서도 못 찾은 정보를 영린대가 찾아냈다?
기뻐할 시간도 없이 진천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급히 물건을 챙기고 움직였다.
‘늘 현이가 먼저 찾아와 줬지.’
먼저 서신을 보내는 것도 현이였고.
먼저 만나러 오는 것도 현이였다.
어리석은 형은 아우가 먼저 다가오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바보같이 그저 기다리고 말았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널 붙잡으러 가야겠구나.’
부디 늦지 않기를.
이 형의 준비가 충분하기를.
현아, 살아있는 거지?
* * *
제갈린은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던 중, 후다닥 달려 나가는 제자를 발견했다.
뻗친 머리카락과 웬일로 구겨진 장포.
달리는 뒷모습에 조급함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흐음…….”
그 한숨 한 번에 옆에 있던 의각원이 ‘히익!’ 소리를 내더니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서류만 던지고 도망간다.
백린의각은 늘 이렇다.
무슨 제갈린이 공포의 무언가라도 되는 양 모두가 몸을 사리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왜인지 이 사내가 앉아 있는 공기는 묘하게 낮고 얼어붙어 있으니까.
딱히 살기를 내뿜지 않아도 칼날 같은 예기가 늘 느껴지는 존재였으니까.
허나 유호는 알고 있다.
‘살짝 심기가 불편한 한숨이군.’
뭐 그 정도 일이라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필멸자들은 제갈린의 이런 작은 감정 변화조차도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게 이 사내가 가진 심상의 일부이고, 경지가 높아져 가며 생기는 자연 현상과도 같으니.
유호가 물었다.
“안 말리실 겁니까?”
제갈린이 답했다.
“말린다고 들을 아이가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는 대용맥으로 단번에 갈 수 있는 지역은 아닙니다만.”
“괜찮네. 하오문의 내분은 우리 오륜회의 일이기도 하니… 약간의 밑작업 정도는 해두었으니까. 게다가 이번 일은 혈선교가 끼어든 것도 아니었으니…….”
진천희가 사람을 움직이듯, 제갈린은 진천희를 움직인다.
최근 진천희 하나를 움직여, 독고중후의 옛 인연을 회복하고.
천하십대장인, 아니, 어쩌면 천하제일일지도 모르는 장인의 팔을 치료하여 일생의 은(恩)을 얻었다.
노인은 신병이기인 무기는 아니나 거기에 견줄, 어쩌면 그 이상일 귀물들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반백 년 망치를 쥐지 못한 장인은 그 한을 쏟아내듯 진천희에게 와르르 모든 것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하나 같이 값을 치를 수 없는 보물들이다.
거기다 겸사겸사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제국의 칼.
도어사.
그 도어사에게 빚까지 달게 되었으니, 고작 진천희 한 수로 득을 네다섯 개나 본 셈이다.
보통은 그 하나하나가 일생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을 고작 제자 하나 움직여서 이루어냈으니.
‘바둑으로 치면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겠지.’
유호는 생각했다.
이번에 정보를 흘린 것 역시 뭔가 같은 맥락일 거라고.
“무엇을 계획하십니까.”
“계획이라고 할 게 있나.”
후릅-
제갈린은 차를 삼키며 눈을 감는다.
방금 제자가 마신 차와 같은 차였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다들 내가 천하를 다 안다 하지만, 틀렸네. 그저 모든 것들은 순리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네. 나는 그 시간을 조금 조절하는 것뿐이지.”
“……그렇군요.”
이 인간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런 소리를 할 때면 틀림없이 큰일이 벌어지고 만다는 것을 유호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제갈린이나 진천희는 바둑으로 세상을 비유하곤 한다.
반면 유호의 세계는 장기에 가깝다.
존귀한 존재에게 숫자란 의미가 없고, 개인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에 달렸지.
그런 의미에서-
‘도련놈은 엄청난 기세로 역경을 부수며 달려가지.’
그를 장기로 친다면 포(包).
인연이 있어야 건너가며, 그 인연이 닿는 곳이라면 대륙 끝까지라도 단번에 건너뛴다.
면밀하게 계획된 묘수(妙手)가 포(包)를 궁 밖으로 끌어냈다.
그의 양옆에 붙은 마(馬)와 차(車).
황구와 뇌진 두 마리.
최고의 다리가 되어줄 터였다.
유호는 포(包)의 운명은 모른다.
하지만 천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에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 손가락을 또다시 만들 일이 없기를.
‘내가 왜 그놈 걱정을 하는지…….’
존귀한 자는 인간에게 너무 많이 물들어버렸다.
* * *
광동성 광주.
광동성의 성도인 광주는 강에서 바다로 바로 나갈 수 있는 항구도시다.
그냥 도시도 아니고 대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이곳은 본디 절강성과 광동성 양쪽에서 움직였던 해사방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사도련에 속한 사도십이문, 그 아래에 있는 철무문이 차지한 지역이다.
다만 철무문은 마교의 위장 세력.
그 사실은 극소수밖에 모르는 비밀이다.
‘철무문이 차지하긴 했지만……. 애초에 전통적으로 광동성은 해사방이 완전 장악한 것도 아니었던 동네라 지금도 혼란으로 가득하지.’
특히.
최근 정보로는 하오문의 오살지파와 도박파가 이쪽으로 유입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오문 내부의 내전에서 사마현은 하오문주의 명령을 받고 오살지파의 문주.
일살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왔으나 현재 행적이 묘연해진 상태.
‘그것도 몇 달간 행적이 없기에 죽은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자들도 있을 거야.’
왜 개방에서 찾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흑도들의 영역이며, 정보를 알게 된 거지는 필시 살인멸구를 당할 터.
그런 험한 상황에서.
천하진일광 진천희가 광주에 도착한 사실이 사방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변장을 하거나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닌 당당하게 들어오는 모습.
“이리 오너라아아—-!!”
그것은 틀림없이 속내가 있는 행동이었다.
* * *
같은 시간.
철무문.
철무문의 문주 철무금과 장로 철무백이 앉아서 대화 중이었다.
“일광이 왔다 이거로군. 겁도 없이… 본교의 영역에 직접 들어오다니.”
문주 철무금은 금강철신 같은 거한으로 두 눈이 부리부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릴 만한 기세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허나, 조심해야 합니다, 가주.”
철무백은 기이하게도 그를 문주가 아닌 ‘가주’라고 불렀다.
사실 철무문은 철혈마가의 세력이 통째로 나와서 차린 것.
문주는 사실 철혈마가의 당대 가주.
그리고 철무백은 철혈마가의 장로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철무백이 말했다.
“일광. 그놈의 무위는 적어도 화경의 끝으로 알려져 있으니…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일각에서는 현경에 다다랐다 말하는 자들도 있지만, 상리에 맞지 않아 무시하는 분위기다.
이립에 현경에 도달하는 게 가능한가?
강호에 천재와 기재(奇才)가 그리도 많았지만 그 나이에 현경에 도달했다 하는 이는 들어 본 일이 없으니까.
이런 강호에도 ‘상식’이라는 놈은 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었던바.
“괜찮다. 전대 가주께서도 오시기로 하였으니…….”
철무백이 놀라서 눈을 홉뜬다.
“정, 정말입니까! 현경의 경지라는 그분이……?”
가주 철무금이 답했다.
“일광을… 여기서 잡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 오살지파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허나 문제는 숨어버린 광면호리입니다만…….”
“……그건 오살지파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그 정도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정도일 뿐이었던 게지.”
“예. 가주!”
둘이 이런 대화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 진천희는 골칫덩어리다.
진천희를 건드리면 오륜회가 나서는 것도 있고, 제갈린이 개지랄하는 문제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지.’
진천희는 태수.
그것도 황제의 주치의.
건드리면.
‘관군도 나선다!’
이 새끼는 관무불가침이라는 강호의 신성한 법도도 귀 한번 파고 때려치우는 놈이다.
이래서 의원이 강호인이 되면 안 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도 탈이 나는데, 만약에 사방팔방 목격자가 남을 정도로 전투를 벌인 후에 죽인다?
관군이 광동성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폭탄!
‘그 천둥벌거숭이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다니!’
물론. 그런 걸 떠나서.
천하십육대고수 중에서도 현재 삼존 다음으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태.
그래서 더욱더 건드리기 까다롭다.
‘대체 젊은 나이에 어찌 그런 무학을 가지고 있는 게지?’
단순히 영약을 많이 먹는 것으로는 턱도 없다.
만약 그게 되는 거였으면 이미 본교에 산처럼 쌓여 있는 영약들로 전부 현경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허나, 그게 된다는 건 이자의 오성(悟性)이 상식을 초월한다는 뜻이며.
생사의 기로에서 계속해서 무학을 던지며 하루하루 살아왔다는 뜻.
‘젊은 놈이 어떻게 살아가면 그게 되는 거지?’
거기다가 제갈린도 자신의 제자를 난초처럼 키우지 않는다.
필요한 전장이 있다면 제 제자를 집어 던지고.
제자는 그 속에서 삶을 피워내 마침내 깨달음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목숨이 몇 개나 되는 것처럼 제자를 굴려대는군.’
그 짓을 해야 하는 제갈린의 속을 모르는 철혈마가 가주는 생각했다.
‘더 커지기 전에 잡아 해치워야 한다.’
물론 현경에 다다랐다는 소문 그 자체를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좌시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그걸 위해서 전대 가주… 즉, 천마의 최측근 중 하나가 이곳에 오고 있었다.
‘그분이라면 상대가 가능할 터.’
어떻게든 일광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
그래야 마교가 살아남는다.
* * *
“이리 오너라아아—-!!”
내공을 담아 사방으로 샤우팅을 하는 진천희.
모든 이들이 진천희를 힐끔거렸다.
‘설마 진짜로 일광 진천희요?’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인지.’
‘원래 미친놈이라고 소문이 나지 않았소? 최대한 눈 마주치지 맙시다.’
그렇게 진천희는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배에서 내렸다.
“오우, 광주 도착!”
광동성은 온난한 기후.
겨울이라고 해도 초가을 정도의 온도에 불과하다.
가장 추울 적에도 한국으로 치면 봄 날씨 정도로 알려져 있는 것이 광동성.
‘바다를 접해 있어서 해산물이 풍부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목축업도 발달해서 육류와 채소, 과일도 풍부.’
때문에 광동성은 요리로도 유명하다.
물론 진천희는 그런 걸 관광하러 온 것은 아니다.
사마현을 찾기 위해서 온 것.
문제라면, 하오문이 내분 중이어서 하오문의 정보망을 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몸으로 직접 뛰어야겠지.’
우선.
사마현이 맨 마지막으로 관측되었다는 곳으로 향했다.
광주에서 제일 비싼 객잔이라는 광룡객잔(廣龍客棧).
미칠 광 자가 아니고. 광동성의 광에 쓰는 넓을 광 자를 쓰는 객잔으로 향했다.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 비싸고 고급진 것뿐만 아니라 크기도 장원급으로 크다.
‘현이 취향이긴 하네.’
그리고 귀주성의 특급 양조장과 계약하여 가져오는 최고급의 모태주(茅台酒)와 그를 이용한 요리가 유명하다.
‘이 객잔에서 현이가 종적을 감췄다, 이거지…….’
진천희는 일단 광룡객잔의 입구로 갔다.
점소이가 보더니…….
“헉! 설마! 백린의각의 소각주이신 진천희 신의님 아니십니까?”
‘오우, 바로 알아보는군.’
이 넓은 강호에 사진도 없는데도 바로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거대한 황구와 뇌진의 지분이 반반씩이겠지만 진천희는 곧바로 손을 들어 팬을 맞이한다.
“오우, 맞습니다. 제가 일광입니다.”
진천희는 마치 선거철 정치인들 인사하듯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일광에게 한 표를.
“일광?!”
“일광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그렇지 않아도 객잔의 눈치 빠른 몇몇이 진천희 쪽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광동성에서 가장 큰 객잔이자 흑도들의 구역.
진천희를 가장 증오하는 적들이 모인 곳 아닌가.
진천희가 휘파람을 불었다.
‘오우, 시작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군.’
진천희는 칼날 속에서 미친놈처럼 웃는다.
‘그러니까, 이 동네에 현이가 숨어 있다는 거지?’
하필 흑도들의 영역 한복판이라니.
이 동네 풍수가 좀 거시기하다. 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