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78
제 1078화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이 있었다.
철혈마가의 당대 가주이자 철무문주.
철무금.
그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대살검루주가 개한테 두들겨 맞고 쓰러진 광경 말이네.”
장로인 철무백이 답했다.
“그것도 앞발에 회전력을 실어서 채찍처럼 돌려 때리고 있는 게 흡사 태극권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개가 태극권을 쓴다고?”
“…….”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태극권은 그들에게 있어 그저 실전성 없는 기체조다.
허나, 십 척이 넘는 거대한 개가 양다리로 서서 앞발로 태극을 펼치는 것은 제정신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상대가 악명 높은 살검루주면 더했다.
‘개가 무공을 쓰다니?!’
‘아니, 제갈세가는 개도 십 년 살면 풍월…… 아니, 무공을 쓰나?’
‘일광, 무서운 놈. 가뜩이나 데리고 다니는 천뢰응도 치가 떨릴 지경인데 이제는 개가 태극권을 날리다니!’
상리를 벗어났으니 더더욱.
“생전 무당권제께서 개도 태극권을 가르치면 한다고… 너희들은 왜 못하냐며 장로들을 갈궜다는 일화가 유명하긴 합니다만….”
“아니, 그걸 누가 진짜로 믿겠나. 개한테 어떻게 무공을 가르쳐……?”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가 정신을 놓았다.
‘이 일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의미가 없겠군.
일단 당장 이해할 수 있는 것부터 언급하는 게 순서.
“일단… 일광은 현경이 확실하군.”
“네. 세간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었다고 봐도 진배없지 싶습니다. 가주.”
“허어,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철무금은 한숨을 쉬었다.
한참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윽고 그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전대 가주께서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나서지 않는다.”
떡은 떡집에, 현경은 현경으로 대응해야 한다.
천마께서 잠들어 있던 전대 가주를 직접 깨웠으니, 이제 그분들이 강호에 답할 차례.
“그래. 제아무리 일광이라 해도 갓 현경이 된 자. 하늘의 눈을 피해 승천을 미루고 스스로 봉인되신 전대 가주님을 이길 수는 없겠지.”
“네. 또한 일광을 붙잡아 죽이거나, 운이 좋아서 생포하여 내공을 빨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 철혈마가는 더욱 강해질 터입니다.”
“좋다. 그리하도록 하지!”
“존명!”
철혈마가의 교인들 모두가 일제히 예를 표하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든 것은 철혈 아래 이루어지리라.
그것은 일광이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으리.
철무금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일광을 잡게 되는군.”
* * *
살검루 인간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대체 살검루는 살수들은 어떻게 이렇게 양성해오는 걸까.
물론 일카나에게 살수 육성 과정에 대해 대략적으로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쓸 줄은 몰랐다.
‘그래. 중원에 숨겨진 인구가 많기는 한가 보다.’
하긴 관청에 신고된 인구보다 그렇지 않은 인구가 더 많은 시대 아닌가.
거기다 고아든 가난한 집 자식이든 죄다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살수 인생이 불쌍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살수의 칼에 죽은 피해자들.
그리고 그분들의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손속에 사정을 두기도 좀 그렇다.
“오오오! 태수님 아니십니까요오오오!”
관리가 진천희를 보자마자 꽁지를 흔들며 달려온다.
꼬리가 달려 있었다면 프로펠러처럼 공중에 떴을 지경.
그만큼 권력이 무서운 법이다.
진천희는 어려운 예법은 생략시키고는 곧바로 본론부터 말했다.
“전부 인계해주십시오. 단전은 모두 폐쇄해두었습니다.”
“이자들은 그 악독한 살검루 살수들 아닙니까.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놈들인데 이 많은 놈들을 설마…? 혼자 잡으신 겝니까?”
“…….”
그 말에 진천희는 작게 혀를 찼다.
이윽고 그냥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저뿐만 아니라 황구와 뇌진도 함께 잡았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어차피 영물 아닌가.
약간 대단치 않게 생각하며 관리는 관원들을 시켜 오랏줄에 묶게 만들었다.
그중 살검루주를 보더니 물었다.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엄청나게 멍이 들었군요. 태수님께서 직접 주먹을 드신 겁니까?”
“아닙니다.”
컹.
황구가 가슴을 쭉 편다.
그 의미는 간단했다.
‘내가 잡았다.’
본디 짐승 무리에서는 사냥 잘하는 놈이 서열 1위다.
그만큼 사냥 실력은 생존에 직결되며 무리에서 대단한 영예라고 할 수 있겠다.
“어……? 개가 잡았다고요?”
“네. 앞발 크기 보시면 딱 맞을 겁니다.”
황구는 일부러 가더니 자신의 앞발을 들어 기절한 살검루주의 눈탱이에 딱 가져다 댔다.
밤탱이가 된 눈.
그리고 황구의 앞발.
그 멍이 마치 도장처럼 딱 찍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관리가 놀라서 ‘히익!’ 하고는 딸꾹질을 했다.
“개가, 개가 진짜로 때렸단 말입니까? 얼굴을?”
“황구야. 두 발로 서봐라.”
컹컹!
황구가 기다렸다는 듯 두 발로 쭉 섰다.
그러자 황소만 한 개가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황구, 앞발.”
컹!
쉭, 쉬쉬쉬쉭!
날리는 앞발이 잔상이 안 보일 만큼 빠르다.
심지어 회전력까지 담아서 채찍처럼 파바바박 공기를 치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겁니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늘 하더라고요.”
추측하기로는 무당권제님께서 가르쳐주셨던 게 어쩌다가 깨달음이 되어 돌아왔나 싶지만.
‘영물한테도 깨달음이 있… 있나?’
알 수 없다.
겉으로 봐서는 황구는 ‘밥’, ‘놀자’, ‘잠’ 이거 세 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집사 좋아’, ‘집사 스토킹’, ‘집사 화장실 가? 같이 가.’ 같은 개 본연의 주인 집착 정도가 느껴진다 할 수 있겠지.
어찌 되었건 황구는 깨달음…? 인지, 아니면 원래는 할 수 있었는데 이제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강해졌다.
여기에 개 특유의 여차하면 ‘물어버린다!’ 스킬까지 더해진다면 더 무시무시하겠지.
“개, 개라니. 천하의 살검루주가 개한테 두들겨 맞고 쓰러지다니.”
“어…. 그리고 뇌진이 결정적일 때 도와주었지요.”
삐이익!
뇌진은 ‘미욱한 인간아. 이 몸을 경배하라!’라고 말하는 듯 날개를 쭉 펴며 자랑을 했다.
진천희는 미국 국방부 마크를 떠올렸다. 딱 그 자세다.
“그…렇군요. 대단한 새입니다.”
황구에 비해 그리 놀라는 얼굴은 아니었다.
‘영물이 번개를 쏴서 사람을 기절시키는 것’은 그래도 ‘개가 원투펀치로 살검루주 잡기’보다는 상식선(?)의 일이다 보니 그런 모양.
그렇게 살검루의 살수들을 전부 인계하고 나니 밤이 끝나고 날이 샜다.
* * *
거의 해가 중천까지 되고 나서야 진천희는 다시 황구를 따라 움직일 수 있었다.
움직이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음, 이 정도면… 아무래도 현이가 내 소식을 들었겠지?’
아까의 살검루 일이 퍼지는 것까지는 아마 하루 정도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그 전에 사방에서 이목을 끌며 움직였으니.
아무리 현이가 꼭꼭 은신해있어도 형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황구가 두 발로 팬 건 예상외였다.’
이제 이 소문은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빨리 돌지 않을까.
‘이걸 어떻게 참아?’
소홍주 한 병 꺼내는 순간 두 시진은 이것만으로 입을 털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도련 전체가 나서지는 않을 테지만. 철무문과 오살지파는 확실히 움직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
살검루가 움직인 건 의외.
‘아, 스승님이 아셨다면 혼내셨으려나. 어떨 때는 천재처럼 굴면서 이럴 때는 꼭 어설프다고.’
사실 강호인이라면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살검루는 예전에 진천희에게 치욕을 당했고. 그 때문에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
강호인에게 치욕이란 목숨을 걸고 되갚아야 하는 일!
‘아직 나는 강호인으로서 미숙하구나.’
현대인으로서의 자아가 너무 강하다.
‘그래. 은원 때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지. 여기서 내 목숨은 치욕에 비해 가벼운 거야.’
자꾸만 순서를 까먹는다.
원한, 체면, 명령, 세뇌, 목숨.
이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은 목숨이라는 것을.
그건 절대적인 강호의 법칙과도 같았다.
이 세계에서 목숨은 앞의 네 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딱 봐도 수상한 안개라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들어온 살검루 살수들.
살검루주는 이미 진천희를 찌르고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한 모양이다.
그때 진천희가 그의 단전을 폐한 것도 아니고, 사지를 분지르거나 부모의 원수인 것도, 자식을 죽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체면을 크게 상했다는 이유.
그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반기듯 동귀어진을 한다?
체면이 크게 상했다는 이유로?
‘현대인 관점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긴 하지.’
하지만 은원강호를 잊으면 안 된다.
‘그래. 주의해야겠다.’
컹!
황구는 계속해서 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사마현을 추격했다.
그리고 갔다가…….
컹?
다시 광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어어?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광주로 돌아간 거였어?”
추적자를 따돌리기 위한 책략이었나?
‘현아,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니.’
진천희는 허어…. 숨을 토하고는 광주로 다시 돌아갔다.
‘와, 현이 진짜 이상하게 움직였구나.’
뭘 했던 거야? 이놈.
* * *
같은 시간.
오살피자의 문주. 일살.
일살이 높다란 전각의 지붕 위에 서 있다.
그 옆에 오살이 서 있었다.
일살은 평범한 마의를 입었고, 얼굴도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삼십 대 중반의 얼굴.
옆의 오살은 아름다운 미부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나, 두 사람 모두 서로가 보는 그 얼굴이 진짜라 믿지 않는다.
둘은 초일류 살수.
천하에 살행으로 손꼽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동료라 하더라도 쉬이 진짜 얼굴을 보여줄 리도 없는 데다가, 살수에게 변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
둘은 전각의 지붕 위에서 저 멀리, 광주로 접근 중인 진천희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뇌진이 날고 있었다.
‘저 매, 너무 성가시군.’
황구는 땅에서 추적하고, 뇌진은 하늘에서 관찰한다.
거기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은원도 없고 협박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 존재들을 다루며 일광은 움직인다.
두 사람은 뇌진에게 들키지 않도록 잠영술을 쓰며 말했다.
“일광이 다시 돌아오는군. 역시 광면호리가 이곳에 있는 모양이야.”
“사실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사형.”
“그렇지. 밖을 뒤져도 도무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일살은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너는 일광의 시간을 끌어라. 도박파와 철무문이 시간을 도와줄 것이다.”
“죽이는 게 아닙니까?”
그 말에 일살은 쯔읍, 혀를 찼다.
“……저것은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내가 동귀어진한다면 오 할의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오 할?!”
목숨까지 걸었는데 지나치게 낮은 것 아닌가.
하지만 일살이 허언을 할 리가 없다.
특히 사마현을 추적하는 이 상황이라면 더더욱.
“반살선(半殺仙)의 경지에 이르신 사형께서도 오 할의 확률이시란 말입니까? 두 귀로 들어도 믿을 수 없군요.”
반살선.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 도(道)에 이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는 치욕을 참고 말했다.
“그래. 일광은 그런 존재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제 겨우 이립이 아닙니까!”
그 젊은 나이에 이게 된다고?
“들어 보거라. 개도 태극을 쓰는 판국에 사람이라고 현경이 아니겠나.”
“…….”
일광은 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어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