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82
제 1082화
“감, 감히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관제묘에서 진천희 태수를 살해하려고 하다니이이! 이는 반역이나 다름없다아아아–!”
호사스러운 장신구를 주렁주렁 찬 장년인이 와서는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다.
그가 입은 관복이 그의 직위를 나타낸다.
광동성주!
넓디넓은 광동성을 전부 지배하는 자다.
그러나.
지금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꼴사나운 모습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폭삭 무너져 버린 관제묘 앞에서.
습격을 받은 진천희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으니까.
아까의 싸움에 휘말린 양민들이다.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몇몇 잔당들이 도망치면서 양민들을 보이는 대로 넘어뜨린 것.
그러면 일광의 발이 묶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애초에 진천희는 도망치는 자들까지 쫓아갈 생각은 없었다.
‘미친놈들…….’
그들은 진천희보고 미쳤다 하지만, 정작 진천희 눈에는 그들이 미친놈들이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긴 한데…….’
광동성은 사도련의 영역이기에 백린의각 분타가 없기 때문에 인근의 의방들이 동원되어 같이 치료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돈도 안 되는 일에 움직일 리 없는 금전귀(金錢鬼) 같은 것이 이 광주의 의원들이지만.
천하진일광 진천희의 ‘협조 요청’에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눈앞에서 사도련의 주축인 철무문과 살검루가 개박살이 났고.
거기에 하오문의 두 개 문파인 도박파와 오살지파가 박살 나는 것을 봤다.
이게 인간이긴 한가? 싶을 정도의 신화적인 무위를 뽐내는 데다가. 상대는 황제의 주치의로 이름 높은 태수 진천희다.
때문에 그들은 원래부터 민생을 살피는 의원인 척, 여기서 진천희를 도와 양민들을 치료 중이다.
“성주님. 조용히 하십시오. 환자 치료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그리고.
포청의 포두와 포졸뿐만 아니라, 광주성을 수비하는 광동성의 주둔군 일부까지 차출해서 달려와 날뛰는 척하고 있는 광동성주에게 진천희가 나직하게 구박을 한다.
‘치료하는 데 방해를 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권력이나 무공보다 의술을 우선시하는 신의(神醫)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강호의 풍문이 허언이 아닌 모양이군.’
“험험. 죄, 죄송하오, 진 태수.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저 무도한 강호의 무뢰배 놈들이 관을 무시하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럴 줄은 몰랐소.”
그러면서 눈치를 본다.
그도 화포가 사용되었음을 보고받았기 때문이리라.
그런 저간의 사정은 진천희도 이미 다 안다.
그래서 이렇게 대놓고 면박을 주고 있는 거고.
“성주님. 목숨이 아까우신 건 알겠는데 나중 일도 생각하셔야죠. 동창에 지원을 요청하든, 금의위에 지원을 요청하든, 아니면 자체적으로 무인을 초청하든 일이 이 꼴이 되게 만드시면……. 어떻게 될지 아시지 않나요? 제가 첨도어사인 건 아시죠?”
“할……. 할 말이 없소이다.”
관무불가침이 왜 나온 것인가?
관의 힘이 강호에 지나치게 투사될 경우, 강호인들은 과감하게 암살을 실행해 버리기 때문이다.
아주 먼 과거.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최초의 통일제국 황제 진시황.
그가 분서갱유(焚書坑儒-진시황이 수많은 유생을 묻어 죽였으며, 민간의 여러 서책을 모아 불태우며 민중을 탄압한 사건.)를 일으키며 수많은 압정을 펼쳤을 때.
결국 그를 죽이기 위해서 그 당시 최고의 검객이 황제를 암살하고자 나섰을 정도였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다.
때문에 관리들은 자신의 목숨이 소중해서라도 적당하게 강호인들의 일을 외면하거나, 은밀히 돕고는 했다.
물론 그 와중에 받는 짭짤한 수수료는 당연한 거고.
그래도 여기 광동성은 심했다.
화포를 끌고 나오다니!
관아가 강호의 일에 어지간하면 간섭을 안 하는 것과 같이, 강호에서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그게 바로 암묵적인 불문율.
화포다.
비천뢰, 폭천뢰 같은 강호의 폭탄들은 있지만, 이것들도 따지자면 수류탄 계열.
즉, 들고 던진다는 거지, 화포 같은 공성병기가 아니었기에 눈감아 주는 측면이 있다.
“철무문, 살검루. 두 문파의 세력이 거의 사라졌으니까 정리 잘 하세요. 안 그러면 감찰이 나올 겁니다.”
“화… 화포는…….”
“성주님이 책임지셔야죠. 설마, 성주님이 직접 빼돌리는 데 가담하신 건 아니죠?”
말하면서 시선도 주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양민이 보아도 영험한 기운이 흘러넘치는 침을 환자에게 푹푹 꽂아 넣고 있었다.
환자의 혈색이 빠르게 돌아오는 것이, 확실히 신의라고 할 만한 솜씨였다.
그러나 성주는 그걸 보고 감상할 심적 여력이 없었다.
“그, 그렇지 않소이다! 아마도 아랫것들 중 하나가 일을 쳤을 거요. 내 이것들을!”
“없는 죄 뒤집어씌우지 마시고. 절차대로, 확실하게. 아셨죠?”
“그. 그리하리다!”
성주는 그리 답하고는 허둥지둥 도망갔다.
진천희는 여전히 성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목숨이 위험할 만큼 심각한 환자는 없네. 이게 천운이지.”
도망치면서 양민들의 등에 칼이라도 안 꽂은 게 어디냐 싶다.
물론 진천희의 무위에 경악하여 도망치느라 급급했던 놈들이다.
‘괜히 칼까지 꽂을 정신이 있었을까마는…….’
사람의 목숨이 길가의 가축이나 다름없이 취급되는 시대.
의원으로서 피곤할 수밖에 없다.
진천희는 눈가를 문질렀다.
* * *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하루가 꼬박 지났다.
용각생사침의 영험한 힘에, 현경으로서 가진 무한의 내공을 통한 기공 치료.
거기에 주변 의방들에서 ‘협조’받은 약재까지 사용해서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지만, 그 수가 제법 되다 보니 시간을 허비하고 만 것이다.
그나마 하루 만에 치료가 완료된 것은 진천희가 저 옛날.
다두 왕국의 왕자를 기생충에서 구제해주던 시절 익혔던 치료 주술 덕분!
가벼운 외상에 한해서는 상당히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주술 덕분에 치료가 빨리 끝날 수 있었던 것.
‘이 동네에서는 부술 못 하니까.’
백린의각이나 흑전의각이 부술을 사용하지, 대부분의 의방과 의각은 부술에는 손도 안 댄다.
부술은 침이나 뜸과는 다르다.
부술실이 있어야 하고, 도와줘야 할 간호의원이 필요하다.
부술을 한 후에도 문제다.
항생제를 비롯한 각종 약들.
환자들의 예후를 돌볼 침상까지.
‘부술은 사람과 인력, 둘 다 갈아먹는 하마지.’
그런 의미에서 이런 곳에서는 진기진맥으로 내부를 살핀 연후에 주술을 사용한다.
‘대부분 놀라서 도망치다가 엎어진 상처라 다행이지.’
그래도 어르신들이 많이 다치셨다.
똑같이 넘어져도 연로하신 분이 넘어지면 그대로 못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보니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주술 선에서 치료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치료를 끝내고 나서야 진천희는 다시금 사마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나마 오살지파의 세력은 크게 박살이 났으니 현이가 숨통은 트였겠지만… 이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죽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중얼거렸다.
“다들 현경이 되면 천기가 보인다느니 어쩌느니 하던데 왜 나는 안 보이나 몰라. 그걸로 현이 생사라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진천희는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옆에는 황구가, 그리고 황구 머리 위에는 뇌진이 앉아 있다.
사마현이 일부러 냄새를 끊어버린 터라 황구가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다.
그러니 발상을 바꾸기로 했다.
어제 제압해서 단전을 폐하고 관아의 뇌옥으로 보내버린 오살의 향기를 맡게 시켰다.
황구는 이제부터 오살이 과거에 다녔던 장소를 찾아갈 것이다.
그렇게 뒤지다 보면 무언가가 더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
광동성은 오래전부터 사도련의 영역이라 천하의 개방도 그렇게 많이 활동하지 못하는 장소.
그러니 정보를 얻기가 난망하다.
하오문을 이용하면 좋겠지만 내분 중이라서 정보망이 가동 안 되고 있을 터.
결국 몸으로 뛸 수밖에.
“그래도… 좀, 불길한 예감이 드는걸. 늦지 않게 찾으면 좋겠는데…….”
천기는 볼 수 없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현경에 올라선 후 더욱 예리하고 날카로워진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은 거지? 현아.’
* * *
아무도 없는 망한 객잔의 무대.
이제는 관리하는 이도 없어서 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다.
바람 소리에도 삐그덕거리는 마루 위.
달빛을 조명 삼아 누군가가 춤을 추고 있다.
탁. 타탁. 탁.
작게 발을 구른다.
예술품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다운 당혜(唐鞋).
이 당혜를 신은 발이 경쾌한 운율을 만든다.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다른 손에는 늘어진 가죽 같은 것을 들었다.
부채가 얼굴을 스친다 싶으면, 그곳에는 새로운 얼굴이 자리한다.
눈이 가느다란 미녀. 살찐 부호의 얼굴. 코가 뭉툭하고 입이 튀어나온 아저씨. 큰 눈의 아주머니. 심술 맞은 노인. 온화해 보이는 미부인. 고뇌하고 있는 학사.
수없이 많은 얼굴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인간.
한 사람 안에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변검.
그것도 일반적인 가면이 아닌.
인피면구를 사용한 변검의 춤.
그것은 신비하며, 동시에 기괴하고 경이롭다.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 정신을 더럽히고 흔들며 매혹하는 것 같았다.
웃고, 울고, 분노하고, 사랑한다.
수없이 많은 자아와 수없이 많은 감정들을 느낀다.
사마현.
반쯤 장난으로 광면호리라는 별호를 퍼트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별호가 지독하게 어울리는 사내가 된 하오문의 소문주.
그가 어느샌가 춤을 끝내고 아무도 없는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달빛만이 그의 인사를 받아준다.
“…….”
하지만 괜찮다.
사마현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 주신 내빈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무대, 즐거우셨는지 모르겠네요. 이살과 삼살 그리고 사살은 전부 즐기고 있답니다.”
그리 말하며 혼자서 박수를 짝짝 쳤다.
그러고는 손끝까지 가다듬고 우아하게 예를 표한다.
“그들은… 모두 제 안에 있거든요. 증거가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보여드리죠.”
사마현이 얼굴에 손을 가져간다.
그곳에는 여성의 얼굴이 드러난다.
“사형! 미안해요. 이 괴물을 죽이지 못했어요.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우리의 예측이 실패한 거죠. 하지만…… 괜찮아요. 여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거든요. 다른 사형제들도 있으니까. 아니. 사실 싫어요. 여기. 싫어. 싫어. 으아아아아악!”
얼굴이 일그러지고. 사마현이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다시 본래의 얼굴이 되었다.
기괴. 괴이. 변이. 공포. 광기. 괴기. 흉악…….
형용하기 끔찍할 정도로 흉괴(凶怪)한 것이 그곳에 있었다.
이것이, 천변검만공인 것인가.
“신기하죠, 손님? 얼굴이란 많은 이야기를 한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상했단 말이죠. 왜 노야는 저에게 이런 무공을 가르쳐 준 걸까……. 하오문주에게는 왜 전반부만 가르쳤던 걸까……. 흐음……. 재미있죠? 안 그래? 천기순행에서 살객의 위치를 가진 일살이여.”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다.
“어라라. 없을 리가 없는데~ 지금이 아니면 이제. 기회는 없을 텐…….”
푹.
그때.
사마현의 옆구리에 칼이 꽂혔다.
마치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작은 단검은 늑골 아래를 옆으로 찔러 들어가 그대로 폐를 깊이 찌르고 있다.
보이지도 않았고. 기척도 없었음에도.
그곳에 단검이. 그리고 단검을 쥔 손이 있었다.
“이야아…. 역시. 왔구나~?”
폐 한쪽에 칼이 들어섰음에도 사마현은 환하게 웃고 있다.
어느샌가 사마현의 손은 잔상을 그린다.
무대 위로 살의가 진득하게 덧칠되기 시작했다.
즐거워, 즐겁네, 즐겁지 않나? 풍류로다, 즐거움이, 유희, 쾌락, 락(樂), 락(樂), 락…….
“아아, 너무 재미있다.”
사마현은 이 기분을 표현한다.
삶은 왜 이다지도 흥겨운지.
이곳은 그가 죽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외롭지 않았다. 모두가 관객이 되어 주니까.
개화된 악(惡)이 새카맣게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즐겁다.
사마현이 죽인 천 명의 악인(惡人)들이 함께 웃고 있었다.
웃는 사마현을 보며 일살의 눈이 커진다.
‘네놈, 분명 죽어가는데 왜 이리 즐겁게 웃고 있는 거지?’
그 순간, 사마현의 새하얀 손이 꿈틀거렸다.
일견 성스럽기까지 한 손에 태고(太古)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이, 이리도 사특한 기운이라니!’
그 광기에 일살마저도 충격을 받는다.
반면 사마현은 즐거웠다.
즐겁다.
‘어라, 나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등대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등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형?’
그가 누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