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83
제 1083화
사마현은 자신의 옆구리에 박혀 든 칼, 그 칼을 쥔 손을 덥석 움켜쥔다.
그 순간.
스륵.
그 손은 마치 없는 것처럼 사라진다.
완벽하게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지워버린다.
투명 인간이 된 거라면 느껴지기라도 할 터.
그저 순식간에 무(無)에 녹아들었다.
그것은 오살지파의 신공을 대성했다는 증거였고,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호오?’
그야말로 꿈에 나올까 두려운 모습.
허나, 사마현은 도리어 더 활짝 웃었다.
즐겁다.
너무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그저 즐거이 이 모든 것을 본다.
마치 치명적인 독을 가진 꽃처럼.
“신기하네~ 이야. 정말 신기해. 이러고도 현경에 발을 내딛지 못한 거야, 일살~?”
그러나…… 답은 없다.
상대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홀렸다고 말한다.
여우에게 홀렸다고.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던 거고 그냥 어쩌다가 착각한 것이라고.
하지만 제아무리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하더라도.
옆구리의 통증이 상대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의념으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형이 벌였던 일을 생각하면 가능할지도.
‘어라? 형이 누구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즐겁다.
“아아~ 그러고 보니 일살. 오살지파의 문주가 되고 나서야 익힐 수 있다는 신공절학을 익혔다고 했던가? 분명… 수상행식살형경(受想行識殺形經)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무너져가는 자아 속에서도 사마현의 사고는 건재했다.
기억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끄집어내서 그 요체까지 파악해낸다.
오싹-
‘무서운 놈. 분명 마공에 취한 듯한데… 어찌…?’
설마하니 아직 대성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변검만공이 그의 자아를 천 갈래로 찢어서 잡아먹는 중인 듯했다.
당연히 자신에 대해 기억은커녕 타인에 대한 기억도, 그 경계가 흐려질 터.
그럼에도 사마현은 죽일 상대가 누군지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 기억도 혼돈 속에서 끄집어낸다.
그것은 실로 무시무시한 재능!
아니?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재능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했다.
마치 놈은 처음부터 혼돈 속에서 수영하는 법을 아는 듯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대성하겠어.’
놈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일살은 사마현의 천재성에 위기감을 느낀다.
수상행식살형진경(受想行識殺形眞經).
수상행식이란 반야심경에 나오는 글귀이다.
그 뜻은 ‘사람의 정신이 마땅히 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해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사마현이 ‘가면’을 이용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수상행식살형진경에서의 해석은 이러했다.
수(受)란 즐겁고 괴롭고 슬프고 기쁜 감정들을 뜻하며.
상(想)은 내 마음에 맺히는 형태, 그것을 깨닫는 것이고.
행(行)은 그렇게 받아들인 마음을 행하려고 함을 일컬으며.
식(識)은 그 모든 앎의 작용을 뜻한다.
즉, 수상행식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가 아는 것을 뜻한다 할 수 있겠지.
허나, 이는 또한 불가에서 말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문구와 연결되면 아주 의미심장한 뜻을 지니게 된다.
색(色)과 공은 결국 하나이며, 공(空)과 색 역시 같다면.
색이란 세상 만물을 의미하고, 그것이 곧 없음(空)이라면.
‘수상행식 역시 결국 공(空)허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수상행식의 형(形)을 죽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죽일 수 있으며, 색과 공의 경계 역시 무너트릴 수 있지 않을까?’
역설적인 발상.
불가의 무공이 살공과 연결이 된다.
그야말로 불가해한 무의(武意)를 지닌 무공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아. 신묘해. 기묘해. 아주 절묘해~ 그러니 내 이목을 속이고 이렇게 칼을 꽂을 수 있는 거구나? 이렇게 칼을 찌른 후에 바로 사라질 수도 있고. 과연 일살이야! 대단해! 대단해. 하지만.”
사마현이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달칵-
이상했다. 분명 얼굴에 손을 대었는데 왜 도자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걸까.
일살이 의문을 갖는 순간, 사마현이 손을 뗀다.
그리고 손을 떼어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이.
없다.
검은 어둠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
눈도. 코도. 입도 없고.
오로지 검은 어둠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가면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얼굴.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우우우우우웅.
그것은 무공(武功)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무공(武功)다웠다.
주변 천지자연의 기운이 사마현에게 빨려들어 간다.
그리고 이윽고 그가 천천히, 하지만 확연히 빠르게 움직인다.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가면. 그러나 쓰고 있는 것은 언제나 하나뿐이라네~”
동시에 노래를 불렀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사마현 본연의 미성으로 부르는 노래.
그것은 활기차고 힘이 넘친다. 흥에 겹고,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어린아이의 동요.
얼굴은 하나~ 가면도 하나~ 준비한 가면은 몇 개일까?
오늘은 어떤 얼굴? 어제는 새침한 소녀. 내일은 화난 아저씨.
오늘은 이런 얼굴. 어제는 지루한 왕. 내일은 바쁜 관리.
자아. 노래를 부르자. 춤을 추자. 너도 우리와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자.
그러면 하나가 될 거야. 모두가 하나가 될 거야.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가면. 그러나 쓰고 있는 것은 하나뿐.
하나의 가면에 녹아서 모두모두 즐겁고 활기찬 내일을 같이 보내자.
기묘한 노래와 춤이 이어진다.
이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춤과 노래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극한에 이른 섭혼공(攝魂功)이자 음공(音功).
그 모습을 보고 들은 이를 현혹하고 이지를 상실케 하는 저주받을 마공의 일부!
또한.
그 기운은 주변의 사물을 파괴하고, 으스러트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위력!
그때.
허공의 한 지점이 갈라진다.
일그러진 틈새에서 일살. 오살지파의 문주가 튀어나왔다.
살수의 새카만 단검이 마치 일그러진 어둠을 삼키고 있는 듯했다.
수상행식살형진경(受想行識殺形眞經).
초월심무.
공즉살(空卽殺)—-!
죽고, 죽고, 죽이다 보면 그 모든 것이 허무로 되돌아갈지니-
살(殺)이야말로 진정한 공(空)에 이르는 길이로다!
그러나.
그런 검은 칼날을 사마현의 손가락이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으로 잡아챘다.
콰드득!
사마현의 손가락의 피부가 갈라지며 그 속살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살점이 갈라져 터져 나가고, 뼈마디가 드러나 보였다.
그럼에도.
사마현은 고통에 찬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태연하다.
즐거워.
사마현의 손을 타고 흐르는 사이한 강기가 박살 난 손가락을 지탱하며 칼날을 잡아 지탱하고 있다.
초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일살은 허공에 매달린 채.
그 역시 온몸으로 강기를 뿜어내고 있다.
강기로 이루어진 내공 대결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 상태에서 일살의 눈과 귀.
그리고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네놈……. 대체 그것은 무슨 무공이냐. 천변검만공에 그런 것은 있지 않을 터인데!”
일살이 공즉살의 초월심무를 사용한 이유.
그것은 저 칠공에서 피를 흘리는 것에 원인이 있다.
사마현의 춤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 감각에 주화입마가 시작된 것이다.
때문에 참지 못하고 공격했고, 지금 이렇게 막혀 버렸다.
“와아, 역시~ 일살 너는 천변검만공의 구결을 일부라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답해라! 대체 그건… 그 저주받을 무공은 대체…….”
검은 어둠이 사마현의 얼굴에서 서서히 걷혀 나간다.
본래의 얼굴이 된 사마현은 여전히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답해 주었다.
“천변검만공… 그 요체는 결국 ‘경극’이거든. 극한에 이른 후에 알게 돼. 이건…… 무공이되 무공이 아니야. 그저 하나의 극을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 대체…….”
“알잖아, 일살. ‘경극’은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거라고. 관객을 홀리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그러니 관객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들어야 하지. 그래야 마땅해! 천 개의 가면을 가지고 하는 ‘경극’에 모두가 환호하고 몰입하여 광기에 빠지시길~!”
사마현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번에는 어린애들의 동요가 아니다.
모두가 ‘경극’에 매료되고!
모두가 ‘경극’에 심취되어.
모두가 ‘경극’에 매혹되리!
이윽고 모든 것이 ‘경극’이 되리라!
연기를 하듯 외친다.
여전히 일살은 허공에 매달린 채였고, 서로의 강기가 서로를 침범하려 허공에서 충돌하며 폭발하고 있음에도.
그는 그렇게 즐거이 웃으며 노래 부른다.
가슴 속에 환희가 차오른다.
경계가 점점 더 무너지고 있다.
일살은 느낀다.
사마현의 천변검만공 대성까지 이제 반보.
놈은 기어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 세상을 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역시… 천변검만공은 저주받을… 무공이구나……. 그렇다면, 나 여기서 너를 반드시 죽일 터다.”
“과연~? 할 수 있을까나~?”
그때.
일살이 부들거리며 단검을 쥔 두 손 중 하나를 떼어내어 자신의 품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꺼내 든 것은 울퉁불퉁한 겉면을 가진 금속의 구체였다.
“할 수 있지. 파천극천뢰. 폭발력 하나만큼은 강환에 필적한다.”
“오호라. 과거 사라진…… 벽력천뢰문의 화탄이잖아? 해봐. 해보라고. 그걸로 이 나를, 천 개의 가면을 전부 찢어버릴지……. 보여 줘.”
사이하게 눈동자가 반짝인다.
“그 오만함이 네놈을 죽일 것이다. 지옥에서 보자!”
일살이 화탄을 터트렸다.
응축된 파괴의 힘이 그 몸을 부풀리며 주변으로 팽창해 나간다.
“아하핫!”
그 폭발 속에서.
사마현은 미친 듯이 웃는다.
한 개의 가면에는 한 명의 인생이 담겨있다.
백 개의 가면에는 백 명의 인생.
마치 종이학을 접듯 천 개를 모으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즐거워. 즐거워, 즐겁다고!
그 순간.
후웅-
구멍 난 천장에 눈꽃이 한 송이 나풀거리며 떨어진다.
흰 눈이 하나, 둘, 셋…….
세상을 물들이며 광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륵-
차가운 바람이 눈을 끌고 무대에 도착한다.
누군가 이 멸망의 무대에 접근하고 있다.
겨울을 부르며.
빙정(氷晶)의 진정한 소유자가.
한 줌 남은 더운 공기를 밀며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의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맹세.
맹세는 공간이 되어 사람을 덮치고.
먼 곳에서 흑백의 세계가 지평선을 밀며 다가온다.
‘아아, 아름다운 풍경이다.’
누구의 심상일까?
겨울의 세계에서 수국이 피기 시작했다.
여름에 피는 수국을 누가 눈 속에 파묻었나.
흑백의 세계는 답하지 않는다.
사마현은 광기 속에서 생각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잔혹한 세계라고.
이런 심상을 가진 자는 결코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물론 이쪽도 혼돈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 이 심상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차갑다.’
눈이 사마현의 살에 닿아 녹아내린다.
마치 인간의 생명처럼.
일살의 시체를 덮으며 겨울이 온다.
핏물 속에서 동토(凍土)를 연 자는 누구인가.
“현아—!”
나를 부르는 건 누구인가.
* * *
컹컹!
“이쪽이니?”
컹!
“음. 오살이라는 사람 참 바쁘게도 돌아다니…….”
황구와 함께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기를 한참.
이미 해는 저물어 달이 걸렸다.
항주나 백린군처럼 밤에도 불을 밝히는 곳은 아니기에 금방 세상은 컴컴해졌다.
그럼에도 진천희는 수색을 멈추지 않고 있었었다.
그런데 아주 강렬한 기파가 느껴졌다.
찌이이잉-
공기를 타고 흐르는 진득한 살기는 덤이다.
휙!
진천희의 고개가 기파가 발생한 장소를 향한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저기구나.’
예리해진 육감이 저 먼 장소에 사마현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황구야. 가자!”
컹!
진천희의 육신이 비조(飛鳥)처럼 뛰어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기파가 느껴지는 광주시의 외곽에 위치한 폐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콰 ? 르 ? 릉!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나며 작은 버섯구름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현아—!”
진천희의 육감이 경종을 울린다.
‘사특한 기운이 느껴져.’
사람이 이만한 사기(邪氣)를 뿜어내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설마 현이가 뿜어내는 건 아니겠지?’
분명 현이의 목숨을 노리는 누군가일 것이다.
오살지파의 일살이라거나.
그래야만 했다. 설마하니 하나뿐인 아우가 이런 기운을 뿜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것은 평생 사람을 잡아먹는 마두들이나 내뿜을 기운이 아닌가.
‘그게 아니면…….’
진천희의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현경의 경지를 개방하고, 그의 의념에 세계가 응답하기 시작했다.
겨울이 세계를 물들인다.
마침내, 진천희의 눈에 사마현이 보인다.
그의 뒤통수가.
겨울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