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89
제 1089화
백마 탄 초인도 돌아갈 집이 있는 법.
백마, 아니 황구 탄 진천희는 백린의각에 돌아왔다.
그런 멍멍이 탄 초인이자 하늘 같은 소각주님을 맞이하여 사람이 나왔으니…….
‘오, 혜아네?’
보통 총관인 유호나 무월이 맞이하러 오는 일이 많았는데 혜아가 직접 달려오는 건 오랜만이다.
“은공, 오빠는요?”
‘음? 현이가 함께 오는 이야기는 딱히 외부에 말한 바가 없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정보 조직의 일원이면 모를까, 사마혜는 그냥 의원 아닌가.
물론 재생당주나 되는 사람을 ‘그냥 의원’이라고 말하기에는 묘한 감이 있지만 칼로 모든 것을 증명하는 강호 월드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다.
진천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사마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꿈에서 봤어요. 오빠가… 괜찮죠?”
꿈?
그제야 사마현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원래 혜아가 이상하게 꿈으로 뭘 좀 잘 맞혔거든.”
“오빠!”
“짠! 정의의 협객 등장이오~!”
“협객은 무슨 놈의 협객! 사람 걱정시키고는!”
사마혜가 등을 두드린다.
처음 사마현의 소문을 들었을 때 별로 걱정하지 않던 혜아였다.
그래서 타인은 모르는 굳은 신뢰가 있나 보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사실 내심은 줄곧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솔직하지 못한 것뿐이고.
-걱정한다고 한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잖아요?
과거 사마혜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아픈 말이기도 했다.
그것은 강호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의, 그 사람의 어찌할 수 없는 심정이기도 하니까.
“앗, 아파, 아프다. 혜아야! 오빠 아야야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현이는 도검불침의 외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마혜가 때릴 때마다 아픈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혜아가 현경의 고수로 보일 지경이다.
‘게임에서 타격감이란, 역으로 맞는 묘사가 얼마나 그럴듯한지에서 나온다던데…. 오우, 좋은 예시군.’
사마혜가 말했다.
“오빠, 또 뭔가 했잖아! 어쨌든……. 뭐, 괜찮아 보이긴 하네. 그럼 됐어.”
파앙!
발로 사마현의 종아리를 시원하게 차버리더니 씩씩거리며 올라간다.
“아이고오~ 단단히 삐졌나 봐.”
그때 사마혜가 진천희를 향해 크게 외쳤다.
“은공! 이딴 오빠지만, 그래도 구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오오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아아아아–!”
그 외침에 다른 의각원들이 모두 진천희를 바라본다.
원래도 소각주님의 은혜가 하해와 같음을 알고 있지만, 사마 남매의 분위기.
그리고 재생당주님의 말.
마지막으로 진천희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또 사람을 구해 오신 모양이군. 이번에는 재생당주님 오라버니이신가?’
‘소각주님 의동생이라고도 하지. 하오문 전쟁은 삼학사들의 논평이 유명하지.’
삼학사들은 당시 소중한 동생을 잃을 거라고 했다.
구하지 못할 거라고.
상식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지 않던가.
하오문 전체를 상대로 고작 한 사람이 전쟁을 벌인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자신의 세력들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고 사마현은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낭인들을 고용할 돈도, 아니면 돈이 아니더라도 불러올 인맥들도 충분히 있었으면서.
사마현은 누구도 끌어들이지 않고, 굳이 혼자 싸우기를 택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평범한 자살행.
그런 미친놈을 대체 누가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강호의 예측이 틀렸군.’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광경은 늘 가슴을 울리는 데가 있다.
‘과연 소각주님이시네. 또 활약을 하신 모양이야.’
‘한동안 또 객잔에서 호사가들이 이 일에 한마디씩 거들겠구먼.’
소각주님은 의원이지만 강하다.
그렇기에 자신 같은 평범한 의원들에게 있어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나가던 의원, 의각원 할 것 없이 이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반면 진천희는 홍시 같은 뺨을 손으로 가린다.
‘혜아야. 목소리가 크다. 아이고오.’
반면 사마현은-
“혜아도 참, ‘이딴 오빠’라니~”
혜아의 말에 투덜거린다.
하지만 걱정을 시킨 죄인이다 보니 달리 반박할 말은 없는 모양.
진천희는 위로 대신 화제를 돌렸다.
“…혜아 꿈이 평소 잘 맞는 모양이네?”
“응. 혜아가 옛날에 음……. 그 토굴에서 계속 누워 있던 거 기억하지?”
“그럼, 기억하지.”
아편 연기로 가득 찬 그곳을 어찌 잊을까.
“그때 혜아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고, 깨고, 내 걱정 하는 것밖에 없었잖아.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내 꿈을 잘 꾸더라고. 물론 나도, 혜아도 처음에는 안 믿었지만 내가 다치는 전날에는 기가 막히게 꿈자리가 뒤숭숭한 모양이더라.”
호오, 사마혜가 내심 불안해하면서도 사마현을 믿었던 이유에는 이런 것도 있었나.
“뭐, 지금도 반신반의하고 있사옵니다~ 가가.”
“반신반의하는 것치고는 적중률이 높은 것 같다?”
“…….”
현이는 웃기만 한다.
진천희는 그런 현이의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아얏!”
이번에는 진짜로 아플 거다.
도검불침에도 통하게 의념을 담아 때렸으니까.
“가서 달래 줘라. 걱정 많았던 모양인데.”
“응.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리 말하더니 사마현의 기척이 지워지더니 대문 위에서 다시 잔상이 나타난다.
‘이번 일로 현이가 깨달음을 얻기는 했구나.’
이제 진짜 한 발자국인가.
아직도 천변검만공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것은 무공이라기보다는 제의무(祭儀舞)에 가까운 무언가라는 것.
현이의 몸을 통해서 무언가가 들어올 뻔했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는-
‘괴어인 성소에 봉인된 것보다 더 나쁜 존재였지.’
태고(太古)부터 존재해온 악의(惡意).
그것을 본 이후로 작은 진천희들은 입을 다문다.
‘현원전단신공으로도 딱히 짐작 가는 게 없기 때문이려나?’
어찌 되었든 독특한 피 때문인지 진천희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이 밖으로 풀려나가면 확실한 멸망이라고.
그것은 천기를 통한 멸망이 아닌, 다른 방식의 멸망.
왜 그런 것이 제의무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해 오며 명맥이 유지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이의 저주가 크다.’
하늘이 내린 악(惡).
저지르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업(業)이 그에게 내려오고 있다.
복잡해진 속을 정리하고는 진천희는 곧바로 목욕재계를 하고 스승님을 뵈러 들어갔다.
스승님께서는 이번에는 전각에 앉아 혼자서 바둑을 두고 계셨다.
흑과 백의 돌이 단정하게 최소의 수만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다.
어느 한 돌이라도 잘못 두었다가는 판세가 결정 날 터.
기보가 없어도 이 돌의 배치만으로도 기사의 기력(棋力)을 알 것 같았다.
스승님은 제자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흑돌이냐, 백돌이냐?”
잘 다녀왔느냐, 어디 다친 곳은 없고? 같은 인사 따위는 없다.
진천희도 이런 스승님에게 익숙하다.
그렇기에-
“제자, 흑돌을 쥐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두어 보아라.”
진천희는 스승님의 맞은편에 앉아서 검은 돌을 쥐었다.
차륵-
계산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탁.
“호쾌한 한 수구나. 그래. 이 수처럼 네 동생은 잘 구했더냐?”
“네. 제가 안 갔으면 위험할 뻔했다니까요? 천변검만공, 그거 아주 무시무시한 마공이더라고요. 얼마나 다행인지~”
“흐음.”
스승님은 백돌을 허공섭물만으로 움직여 착수했다.
제자는 바둑을 두며 조잘조잘 그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머리카락으로 암기를 붙잡는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짜로 머리카락을 의념만으로 움직여 꾸물꾸물 흉내를 냈다.
그 모습에 제갈린은 그만 웃고 말았다.
“네놈은 여전하구나.”
냉소도 비웃음도 아닌, 진짜 웃음.
이런 표정을 지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는 것을 이 녀석은 알까?
“으음,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빈틈이 없으시군요.”
제자는 이마를 찌푸리며 흑돌을 바라본다.
이런 놈이다.
한번 집중하면 주변을 볼 줄 모르는 놈.
“그래. 잘했구나. 참. 용린면사갑에는 주술적 처리까지 해 왔단다. 아주 귀한 보물이 되었어. 게다가 주술당주도 연구할 거리가 생겨서 일거양득이지. 네가 입고 간 것도 이리 주거라. 그것은 주술당주에게 주술 처리를 하라고 시켜 보아야겠으니.”
“쟈시가 벌써 그 정도 수준이에요?”
“그래. 이래저래 수련도 하고, 연구도 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게다. 게다가 주술당의 일에는 녹력도 같이 하고 있으니 더욱 쓸 만하지. 어지간한 문인(文人)보다 더 잘할 게다.”
문인(文人). 무인(武人)과는 반대의 말.
이 세계에서는 주술을 쓰는 자들을 문인(文人)이라고도 부른다.
“아아. 녹력 그분이요? 확실히 일을 잘하시죠.”
“어지간한 모산파 장로보다도 더 주술을 잘하지. 물론 이런 잡기에 한해서 말이지만.”
“아, 공격 주술에는 좀 서툴지요.”
“그러니 소림사 참회동에 잡혀 온 것 아니겠느냐.”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오랫동안 한담을 나누었다.
“으, 역시 스승님은 못 이기겠습니다.”
돌을 던진다.
불계(不計).
더는 이길 방도가 없다는 뜻.
하지만 진 제자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스승님은 스승님이시니까.
고작 반상 위라고는 하나, 스승님이 패배하는 모습 자체가 상상이 잘 안 갈 지경이다.
“그래도 바둑이 많이 늘었구나.”
현원전단신공끼리의 싸움이다.
남들이 한 번을 생각할 시간에 열 번, 스무 번, 백 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싸움에서 제갈린에게 늘었다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음을 천하가 알고 있다.
“헤헤헤, 과찬이십니다.”
제자는 그리 말하며 예를 표하며 돌아간다.
승부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후릅-
차를 마시는 제갈린의 손길이 기분 좋아 보였다.
그는 멀어지는 제자의 뒤통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유호가 한마디 했다.
“도련님이 안 다치셔서 기분이 좋으신 겁니까?”
“그렇다네. 이제는 어디 가서 사지 잃고 올 일은 없지 않은가? 저 정도 경지라면 삼존을 만나더라도 몸 성히 도망칠 수는 있을 테니까.”
무학부터 지략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자란 제자다.
강호에 이런 놈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
스승으로서 어찌 뿌듯하지 않을 수 있겠나.
“글쎄요. 도련놈은 도망치지 않고 몸을 가져다 들이박아서 문제일 텐데요.”
그 또한 맞는 말.
제갈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키워도 스승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을 벌 능력은 생겼으니 말이네. 그나저나… 이번에 받아온 것을 요긴하게 써야 할 텐데 말이야…….”
제갈린이 품에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원향반!
진천희가 받았던 주술 도구.
그런데 그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원래라면 그냥 평범한 나침반의 모양이었으나, 제갈린이 들고 있는 것은 새카만 묵빛에 무언가 부적이 잔뜩 붙어 있었다.
“강화되었군요.”
“이거면 숨어 있는 벌레들을 더 빠르게 찾을 수 있겠지…….”
제갈린은 작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