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99
제 1099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볼까요?”
하고 유혹하듯 머리카락을 한번 출렁였다.
그 모습에 양력뿐만 아니라 녹력, 패배한 호력까지 홀린 듯 바라본다.
아름다워서 보는 게 아니다.
꿀꺽-
입맛을 다시는 것이 그릴에서 잘 익어가는 삼겹살 보는 눈이다.
“그래서, 양력께서는 어떤 내기를 하시려는지요?”
“저는 호력처럼 힘 대결은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러면서 소매에서 물건을 꺼내는데 그 물건이 아주 컸다.
진천희는 순간 눈이 빛난다.
‘저건… 공간 확장의 술수인가! 나중에 저걸 어떻게든 얻어야겠어!’
양력의 주가가 호력을 추월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온 것은 정사각형의 상자.
상자를 열자 생전 처음 보는 게 나왔다.
“육박(六博)이라고 하는 놀이기구랍니다. 이걸로 승부를 보시는 건 어떨까요?”
육박!
진천희도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들은 적은 있다.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나.
아주 먼 옛날 하(夏)라는 이름의 나라가 있었다.
그 국가의 신하인 오조(烏曹)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이 육박.
물론 이것도 설화 비슷한 고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실제로 육박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본 적이 없다.
‘육박……. 역시 보드게임의 일종이었나!’
청옥과 홍옥의 창시자가 눈을 빛낸다.
양력이 말했다.
“제갈세가의 후계자라면……. 쉽겠죠?”
“저를 도발하시는군요. 좋습니다!”
“육박은 둘이서 이 박국(博局)이라고 불리는 판 위에서 즐기는 놀이. 자, 규칙을 설명드리죠.”
규칙 설명을 다 들은 진천희.
그런데 그 규칙이 뭔가…….
‘이거… 윷놀이랑 비슷한데!?’
물론 생긴 것도 다르고, 세부 규칙도 좀 다르지만… 왠지 할 만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면 양력은 그런 진천희를 비웃었다.
‘제아무리 제갈세가라고 하더라도 처음 규칙을 한 번만 듣고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머리카락 잘 먹겠수다!
* * *
박국(博局)이라고 부르는 판은 윷놀이 판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진천희가 윷놀이와 비슷하다고 한 이유가 있다.
일단.
여섯 개의 기(棋)라고 부르는 말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이걸 박국 판에 올려서 움직이게 된다.
이 말을 움직이기 위해서 쓰는 것이 저(箸)라고 하는 여섯 개의 막대기.
막대기에 쓰여진 숫자가 서로 다르고. 이 숫자대로 말을 움직일 수 있다.
물론 다른 부분도 많지만, 한국인이라면 역시 익숙한 윷놀이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 이유로.
육박 놀이 스타트!
“저의 실력을 보여 드리지요.”
양력이 저 막대기를 집어 든다. 그리고 요력을 불어넣으며 그대로 내던진다!
“호풍환육박기룡저(呼風喚六博棋龍箸)!!”
이쪽 세계 사람들은 다들 기술명이 중요한 듯하다.
진천희는 양력에게서 강호를 느낀다.
기술명뿐이 아니다.
시작부터 당당하게 반칙을 쓰고 있는 양력!
요력으로 저(箸) 막대기를 조종하고 있다!
타닥!
최고 점수가 나왔다!
‘시작부터 사기도박인가….’
이것이 강호다!
“후훗. 저는 이 놀이를 벌써 수백 년간 해 왔답니다! 진 소각주. 당신이 비록 인간 중에서는 제법 강하다고 하지만, 저 양력을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진천희. 너는 안 될 거다!
나를 못 이긴다!
그러니 머리카락을 다오!
그런 눈으로 양력은 웃고 있다.
“자, 그러면……. 이제 진 소각주 차례랍니다.”
후, 어쩔 수 없나.
이것이 바로 강호라면 의당 ‘실력’으로 이기는 수밖에.
진천희는 과거 수많은 대륙의 짭팽이들과의 격전들을 떠올렸다.
왜인지 정품 팽이들보다 전투력이 높고 더 저렴한 팽이들을!
그 팽이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강호 팽이 배틀러 진천희는 자기 안의 흑주작을 깨웠다.
“역시. 그렇게 나오시는 거군요. 그렇다면 저도 보여드려야겠습니다. 저희 제갈세가의 비전의 육박 기술을!”
사마현이 옆에서 시선을 보낸다.
‘그런 게 있었어, 형? 아… 이번에도 그냥 되는 대로 외치는 거군…….’
그러나 그런 시선은 아무래도 좋다.
진천희가 저 막대기를 들어서는 그대로 흔든다. 그러고는 내던진다.
“동남풍아, 불어라!”
‘설마 이게 기술명……? 이것이 정녕 제갈세가의 육박 기술이란 말인가!’
‘일광. 과연 미친 인간이다!’
‘오, 이래야 우리 형이지~’
호력과 녹력조차 옆에서 경악해서 바라본다.
저것은 기사멸조의 대죄인가, 아닌가? 어느 쪽이냐!?
그 순간.
양력이 손을 쓴다.
슬쩍 주술을 사용하려고 든 것이다.
그러나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 초월심무를 순식간에 펼친다.
오행진기에 의념을 불어넣어 잽싸게 그것을 막아냈다.
파직파직!
허공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리고 떨어진 저 막대기의 숫자는!
두둥!
이번에도 최고 점수!
진천희의 기(棋)가 양력의 기(棋)를 잡았다아아아!
“이럴 수가… 어찌 인간이 이렇게 기를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죠? 어째서…….”
양력이 아연실색한 표정이 된다.
진천희는 후훗! 하고 우쭐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자. 이것이 바로 개파조사님 때부터 전해져온 비밀스러운 비기. 계속해 보시죠!”
그렇게 둘의 승부는 계속 이어진다!
그 결과.
“…….”
“제 승리군요!”
진천희, 압도적으로 승리!
모두가 경악하여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동남풍을 부르짖으면 원하는 대로 숫자가 척척 나오는 게 아닌가!
심지어 사마현조차도 형이 되는 대로 외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제갈량께서 육박을 즐기셨으며, 대대로 비밀리에 저런 사기 기술이 후인들에게 전수되고 있는 건가 헷갈릴 지경!
형은 한 줌 거짓이 없다는 듯 너무나도 당당했고.
그간 보여준 짭…삼매진화와 짭…답설무흔, 짭…허공섭물의 여파가 크긴 했다.
‘제갈세가는 대체……?!’
사마현의 개파조사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져 가는 동안 양력은 절망하고 있었다.
“으으으…….”
양력이 손을 부들거렸다. 이렇게 지고 말다니…….
저 머리카락을, 저 혈육을 먹어 보고 싶었건만!
그때였다.
“크아아아앙! 네놈이 사기를 친 것이구나! 내 너를 벌하고 그 머리통을 통째로 먹어 치워 주마!”
호력이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지른다.
우드드득!
그가 입었던 옷이 산산조각 나 흩어지고, 그의 몸이 두 배는 더 넘게 부풀어 올랐다.
그의 얼굴은 호랑이의 것이 되고, 몸에는 털이 수북하게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완전히 호랑이가 된 것은 아니다.
이족보행의 호랑이 인간 같은 형태가 되었다고 할까!
특이한 점이라면 꼬리가 네 개나 된다는 점이리라!
그러나.
진천희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녹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사마현조차도 얌전하게 악기를 계속 연주한다.
현원전단신공을 이용해 시간을 조인다.
거의 멈춘 시간 속에서 작은 진천희들이 서늘하게 눈을 뜬다.
영겁에 가득한 시간 속에서 꼬마들이 속삭였다.
‘오우! 꼬리가 4개! 그럭저럭 강하다는 거려나. 그렇지만…… 쉽게 제압 가능하겠는걸?’
‘근력 체크 완료.’
‘민첩성 체크 완료.’
‘골밀도 체크 완료.’
‘기운의 강도 체크 완료.’
‘시스템 올 그린. 요괴 호력 제압 프로그램 가동 개시.’
마치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처럼 진천희의 머릿속은 부산스럽게, 그리고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현경으로서의 깨달음과 천마신공의 깨달음, 그리고 사마현과 싸우다가 얻어낸 그것.
태고(太古)에서 온 광■의 깨달음이 갈려나가며 진천희에게 어렴풋이 다음 수를 속삭인다.
그 결과.
번쩍!
‘기동. 대학원생 영입 교수 로봇 진메카니우스!’
두 눈이 새파랗게 빛난다.
여기까지가 겨우 0.1초.
동시에 변신을 끝마치고 막 달려들려던 호력이 움찔했다.
그를 생존으로 이끌었던 본능이 위험을 알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크아아아앙!”
거대한 호랑이 요괴가 덤벼들었다.
그 이빨과 발톱에는 요기를 뭉쳐 만든 날카로운 칼날이 매달린다.
강호인이 만들어 내는 강기나 다름없는 위력!
절대 고수라고 한들 이것에 걸리면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이다!
“우리 호력 부장님에게 사내예절(社內禮節)을 가르쳐 드려야겠네요.”
진천희는 자리에 앉은 채로 손을 뻗었다.
마치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또한, 구름처럼 부드럽게.
가까이 다가온 호력의 앞발을 부드럽게 잡아 쥐더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그 손이 회전한다.
후왁!
호력의 거대한 거체가 그대로 공중에서 회전했다.
덤벼들었던 힘은 회전에 휘말려 산들바람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그 상태로 진천희는 호력의 앞발을 받은 손을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그러자.
그 거대한 체구가 그대로 배의 바닥에 처박히는 게 아닌가?
콰쾅!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카아아아아앙!”
호력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의 뼈마디가 울리며 아픔이 번져 나가니 버틸 수가 없을 정도!
그럼에도 배의 바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고, 호력도 고통스러워할 뿐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었다.
‘와우~ 형. 정말 강해졌네. 내공으로 배의 바닥을 보호한 거잖아?’
‘끌끌. 역시 혈린의 제자답군. 저 거구를 잡아채서 한 바퀴 돌리다니…. 현경의 경지에 이른 인간은 과거에도 몇 보았지만 이 정도의 묘수는 보지 못했건만……!’
사마현과 녹력이 놀라서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진천희가 엎어진 호력을 보며 말했다.
“호력 부장. 앞으로 그렇게 폭력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마치 천마군림보처럼-
크그그그-
진천희의 진기가 무형지기가 되어서 호력을 위아래에서 쥐어짜기 시작했다.
호력의 몸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그만! 그만!”
“흐음. 반항이 심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진천희는 품에서 팔찌 하나를 꺼냈다.
두툼하고, 이런저런 문자가 새겨진 팔찌 하나.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계약을 강제 집행해야겠군요.”
그리고 팔찌를 호력에게 채웠다.
이는 녹력과 쟈시 그리고 유호가 만들어낸 것!
주술이 서린 팔찌였다!
“이걸로 계약 집행. 완료입니다.”
철컥!
팔찌가 채워지자마자 두 사람의 내기를 인과율 삼아 응답한다.
호력은 순식간에 자신의 요기가 일부 봉인되는 것을 느낀다!
물론 양민처럼 되는 건 아니다.
늙지도 않고 힘도 강한 것 똑같다.
그저 요력 발출이 어렵고 행동에 제약이 가는 정도!
“크어어엉! 어찌 네놈이 그런 신물을 갖게 되었느냐!”
호력이 울부짖는다.
호력이 덤벼들자 진천희는 일단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전과 달리 몸에서 힘이 빠지고 순한 양처럼 멱살이 잡히는 게 아닌가.
“네놈, 네노오오옴!”
진천희도 살짝 신기해하며 말했다.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호가 쓸 일 있을 거라고 만들어 주더라고요.”
요괴들은 내기를 좋아하니 필시 쓸모가 있을 거라는 조언과 함께… 집어 던졌다.
진천희는 팔찌를 건네…는 게 아닌, 사실상 팔찌로 대포를 쏜 유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아슬아슬하게 팔찌를 받을 수 있었다.
‘잘못 받았으면 죽을 뻔했지. 아마.’
설마 우리 대학원생이 날 암살하려고 던졌겠나.
그게 다 사랑의 표현일 거라고 교수는 생각한다.
녹력은 그걸 보면서 ‘크헤헤헷!’ 하고 웃었고. 양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놈! 고작 그런 계약구로 나를 막을 생각 하지 마라! 굳이 요력이 아니더라도 이 몸에게는 내공이 있으니!”
크허어어엉!
호력이 소리를 지른다.
진천희는 ‘오우!’ 작게 탄성을 지르며 호력의 공격을 유유히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사마현은 그저 즐거이 연주할 뿐.
좋은 날.
좋은 밤.
좋은 풍류였다.
* * *
세상이 변했다.
옛날이었다면 객잔의 호화로운 특별실에 앉아 있어도 차가운 바람이 밀어닥쳐와서는 추위에 떨기 마련이었다.
호화로운 특실이지만 창문은 활짝 열어 두어야 했고, 특실 한가운데에는 큰 화로를 두어서 불을 계속 지펴야 했다.
그나마 향초를 같이 피우니 코가 맵지는 않았지만 솔솔 들어오는 찬 공기 때문에 화로가 있음에도 추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두터운 털옷을 입고 있어야 그나마 추위에서 몸을 보존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백린의각과 손을 잡은 금혈방에서 제작한 유리가 특실의 창문에 달려 있어 더 이상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다가 화로는 사라지고,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난로가 자리한 채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바닥에는 온돌까지 깔려 있어서 아예 여름용 옷을 입고 있어도 춥지가 않은 것.
그런 뜨끈한 곳에 모여 앉아서, 다시금 따끈하게 데운 음료를 마신다.
극락이 부럽지 않다.
“크……. 이게 극락이지. 무엇이 극락이란 말인가!”
삼학사의 한 명.
만 학사가 열기가 그득 담긴 두유를 들어 마시고는 한마디 한다. 그의 앞에는 아주 차갑게 만들어진 행인두부가 놓여져 있다.
차가운 행인두부 한 숟갈! 그리고 따스한 두유 한 모금!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
마침 진천희의 배 근처 객잔에서 삼학사들은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마치 옆자리의 최애 연예인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팬들처럼!
그들은 계 탈 기회를 장강에 버리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크으, 극락을 즐기게 되었지만… 역시 좀 아쉽구먼. 일광이 이곳에서 목격되었다 하여, 볼 줄 알았는데.”
“뭐, 워낙 신출귀몰한 자 아닌가. 현경의 고수를 만나기가 어디 쉽겠나.”
심 학사 바로 등 뒤에서 진천희의 배가 동동 떠다니고 있다.
호력이 멱살을 잡혀 대롱대롱 매달리던 중이었다.
얼마나 가까운지 한 번만 돌아봐도 알아볼 수 있는 거리!
‘요, 요괴 살려어어어어!’
허나 강바람에 소리가 닿지 않는다.
“…….”
“일광의 행사를 놓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친우들끼리 만나 이렇게 술을 나누니 이만한 극락이 어디 있겠나!”
“옳소, 옳소오오!”
장강이 오늘도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