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
제 11화
‘나도 무공이나 배워 볼까? 그러고 보니 소설 속에 빙의하는 소설들 보면 다들 무공이든 마법이든 배우던데.’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천하제일 무인 진천희! 캬…… 뽀대 좀 나는데?’
그렇게 웃던 진천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제 좀 몸에 힘이 들어갔다.
“후…… 살 거 같다.”
진천희는 팔을 돌려 본 다음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방금 전의 일은 머리 한편으로 밀어 넣고 생각했다.
‘운룡표국의 분타를 공격한 자들이 누구인지는 결국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지? 마교가 의심된다지만, 의심뿐. 하오문과 개방조차도 결국 알아내지 못하고 흐지부지가 되고 말았다…… 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그들이 어디서 온 존재인지, 그리고 누굴 노렸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
결국 한 달 후, 운룡표국을 습격한 죄를 물어 본보기로 포로들의 목을 날리고 끝낸다.
사람들은 본가의 공손현이 사촌 동생인 공손영을 죽이기 위해 흉계를 꾸몄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처음 습격으로 부족해서 두 번이나 습격한 것이라고.
‘뭐, 공손현은 끝까지 해명하지 않겠지. 그녀 성격이라면 아마도 공손영에게 가주 자리를 주려고 하고 있을 테니까.’
그림자에서 보필하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해명보다는 자신의 아끼는 동생을 죽이려 한 흉수를 찾기 시작했을 거다.
가주를 넘기더라도 길을 닦고 넘겨 주는 것이 그녀의 성미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쳤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네놈, 어디 갔나 했는데 여기에 있었군.”
‘저놈은 또 왜 나를 찾아? 천마 여하륜. 아직 천마는 아니지. 천마 꼬맹이. 리틀 천마. 스몰 천마.’
그 생각을 하며 천연덕스럽게 찹쌀떡을 오물오물 먹었다.
“사람 치료하느라 피곤해져서 지금까지 자고 있었을 뿐이야. 무슨 일인데 그러는데?”
“거래를 하지 않았나.”
“언제?”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굴자 스몰 천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야, 화내는 거 봐라. 잘하면 죽이겠다. 천살성은 이게 문제야.’
저 새끼는 지금도 나무젓가락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을 죽을 만큼 팬 적은 있어도 그냥 죽여 본 적은 없다는 것이겠다.
“아고고, 목이야. 아이고, 목이야.”
진천희는 갑자기 스몰 천마가 조였던 목을 붙잡고 엄살을 부렸다.
“노오오오옴…….”
“사람을 살려줬더니 죽이려고 하네.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지. 아야야야…….”
빙글빙글 놀려 대는데도 여하륜은 입술을 꽉 깨물고 참고 있었다.
그래도 진천희에게 목숨값을 빚진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성정은 이때도 있었네.’
천살성의 살인마의 피를 갖고 있으면서 또 주인공답게 은과 원은 확실하게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참 골 때린다.
“……고맙다.”
“뭐?”
“……살려줘서 고맙다.”
“또 빠진 말이 있을 텐데?”
“……안하다.”
“아고고, 내가 목이 아파서 안 들린다.”
“정말 미안했다!”
‘흠, 이 정도 기를 꺾어 놨으면 괜찮으려나.’
저 자존심 강한 놈이 이렇게까지 입으로 선언을 했다.
‘아냐아냐. 좀 더 확실하게 말뚝을 박는 게 좋겠지.’
진천희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어라,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손에 든 것을 보니 청소를 하러 온 모양이다.
진천희와 여하륜,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더니 가솔이 말했다.
“설마 둘이 싸우는 건 아니겠지? 우리 천희 괴롭히면 안 된다?”
진천희도 아니고 천희도 아니고 ‘우리 천희’다. 진천희는 바로 표정을 바꿔 배시시 웃었다.
“괴롭히다뇨. 그런 적 없어요. 누나.”
“정말 괜찮은 거지?”
“네.”
‘제가 괴롭히는 중이죠.’
진천희는 양심의 외침을 무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륜아. 나가서 놀자.”
“…….”
여하륜은 그런 진천희를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이 사기꾼 새끼야.’
그러거나 말거나 진천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발랄하게 밖으로 나갔다.
* * *
후원, 인적이 드문 곳으로 둘은 향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둘은 각자 바위 위에 털썩 앉았다. 이윽고 리틀 천마, 여하륜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냐?”
“원하는 게 없어서 문제야.”
“뭐?”
“그렇잖아. 그 죽을 위기에서 치료해 주고, 산공독을 밝혀 내서 사람들에게 습격을 예측하게 했지, 심지어 그 난리 통에서 간호까지 했는데 나한테 돌아온 게 뭐냐? 이거?”
진천희가 목 자국을 보여 준다.
백린의선의 지극한 치료 덕에 사실 이제는 윤곽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알 게 뭐냐. 내가 아직도 아프다는데.’
진천희는 인정사정도 없이 리틀 천마 놈의 양심을 푹푹 쑤셔 댔다.
중간에 영단을 받았다거나 벌모세수를 받고 대운룡표국의 표국주가 은혜를 갚겠다고 눈에 불을 켜는 중이라는 건 쏙 빼먹고.
“하지만 너는…….”
아니나 다를까. 여하륜이 먼저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 진천희가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아야야야.”
그의 신음 소리에 여하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꺼내려던 말을 접고 다른 말을 했다.
“거래하자는 건……?”
“마음이 변했어. 널 못 믿겠거든.”
진천희는 소매 안에서 찹쌀떡을 꺼내서 한입 씹었다.
달콤한 단팥의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참 맛있단 말이야.’
어릴 때로 돌아왔기에 그런 걸까?
미각이 더 예민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시력도 청력도 훨씬 더 좋았다.
옛날엔 안경 없으면 한 치 앞도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머리 위 잎사귀의 잎맥도 보였다.
어른이 된다는 게 그렇다.
돈과 지위가 생기려면 그만큼 젊음을 갈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하지, 운이 없다면 돈도 지위도 없이 젊음만 빼앗긴다.
그걸 완전히 깨달았을 때는 늦고 만다.
진천희는 이 육체가 좋았다.
어릴 때의 자신보다 더 건강하고, 더 잘생겼다.
생각하는 것도 옛날보다 더 또렷하고 빠르다.
뭐든 배우기 좋은 몸이다.
“…….”
여하륜은 입을 한일자로 굳히고는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깊이 생각에 잠겼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책에서 종종 보았던 묘사지만 실물로 보니 꽤 볼만했다.
주인공답게 진중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아직 어려서 귀여운 데가 있기도 했다.
하기사 미청년으로 묘사되니 어렸을 적에는 미소년일 수밖에.
이윽고 여하륜이 말했다.
“미안하다는 사죄만으로는 부족한가?”
“사과는 받았어. 하지만 이건 신뢰의 문제야.”
둘은 아이의 몸을 하고 아이답지 않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진천희는 그런 여하륜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았어. 알았어. 이렇게 하자.”
못 이기는 척 진천희는 본론을 꺼냈다.
“앞으로 날 형으로 불러.”
“의형제라도 맺자는 건가?”
“그런 거창한 건 잘 몰라. 하지만 나, 너보다 나이도 많은데 내가 동생이 될 수는 없잖아.”
그의 말에 여하륜의 눈에 불이 켜졌다.
“너는 생명의 은인이니 의형제는 이쪽에서 청하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네가 형님인 건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데?”
그 순간, 여하륜이 몸을 일으켰다.
퉁.
그는 양팔을 벌리고 자세를 잡는다. 흡사 범이 사냥감을 잡기 직전의 자세였다.
“날 싸워서 이겨라.”
‘음. 보통 무협 소설에서는 여기서 이긴 사람이 형 자리를 하고, 진 사람이 아우를 하지. 하지만…….’
꼭 그걸 따를 필요가 있을까? 진천희가 말했다.
“무공도 못 하는 나 같은 양민을 때리게?”
진천희가 이마를 찌푸린다.
“내공은 쓰지 않겠다.”
“들어 봐. 내공을 쓰지 않아도 나는 질 거야. 왜냐고? 선량한 양민이니까.”
“네놈은 마교 간자…….”
“뭐? 안 들려. 아무튼 난 양민이라니까? 그건 목을 졸라 본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내가 조금이라도 싸울 줄 알았다면 네 손을 피했겠지.”
대신 불붙은 이불을 던졌지만 진천희의 머리에서는 이미 지워진 후였다.
자신은 연약한 양민, 피해자였다.
“힘없는 양민을 핍박하려고? 심지어 치료해 준 은인을?”
“…….”
무협 주인공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악한 성격이든 약한 성격이든 어쨌든 힘없는 양민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이 새끼도 주인공인 이상 무적 양민 실드를 뚫을 수가 없음을 진천희는 알고 있었다.
비록 벌모세수를 받아서! 조만간! 무공을 배우겠지만! 그 이야기도 구태여 하지 않기로 했다.
“형이라고 불러 봐라.”
“……그게 무슨…….”
“그럼 내가 네 주먹에 맞아서 아우가 되어야 하리? 알았어. 야. 때려. 때려!”
진천희의 무적의 논리에 여하륜은 말을 잃었다.
분명 개소리인데 자꾸만 설득이 된다.
“뭐 해?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알았어. 내가 맞아 준다. 또.”
그렇게 말하며 여하륜의 주먹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여하륜은 흠칫 놀라 주먹을 뺐다.
“자, 불러 봐!”
“……형…….”
“더 크게!”
“……형님!”
“더 또렷하게!”
“진천희 형님–!”
“그래. 아우야.”
진천희는 그렇게 주먹 한 번 쓰지 않고 세 치 혀로 어린 천마를 아우로 두게 되었다.
훗날 어른이 된 천마가 그때의 자신의 호구력을 통탄하며 피눈물을 흘렸지만 진천희가 형님 자리를 돌려주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 * *
진천희는 여하륜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여하륜 역시 진천희가 표국행에 함께 동행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진천희 자신도 머리를 맞고 죽기 전까지 말수가 무척 적었다는 것 정도겠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었다.
어느 어른들과도 대화하지 않았다.
다만 어른들이 마교를 조심하라고 이야기할 때 눈빛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
그때 어렴풋이 최종 목적지가 같다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솔직히 머리를 맞아서인지 기억나는 건 많지 않아.”
진천희는 천연덕스럽게 여하륜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널 도울 수는 있을 거 같아.”
“……거래라는 건?”
“딱 까놓고 말해서 내가 너한테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 그냥 그때 무마하려고 했던 거지. 무서웠으니까.”
아, 그랬구나. 무서워서 빗장까지 잠그면서 거래하든가 여기서 죽든가 고르라고 했구나.
리틀 천마 여하륜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진천희를 보며 자신이 잘못된 건지 저 새끼가 사기를 잘 치는 건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대신에 말이야. 나중에 내 부탁이나 하나 들어줘. 알았지? 작은 걸로 부탁할 테니까.”
“……작은 것…… 말인가?”
“응. 별거 아닐 거야.”
여하륜은 그런 진천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큰 각오를 했었던 모양인지 이제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작긴, 작지. 하지만 다이아몬드도 작지만 비싸단다. 얘야.’
그건 뒷일로 두도록 하고.
그때 여하륜이 진천희의 입을 막았다.
“누가, 멀리서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