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09
제 1109화
진천희는 생각도 못 한 이야기에 머릿속에서 정보를 다시 정리했다.
녹립십팔채.
제국 전역에 뻗어 있는 거대한 산적 무리의 연합체.
그러나, 연합이라는 것은 상당히 나약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일전에 크게 대패한 이후에는 더더욱.
그래서 녹립십팔채의 권위가 떨어지고, 각 산적들은 각자도생을 하게 되었다는 정보가 서류에 적혀 있었다.
“이런 일이…….”
진천희로서는 금시초문.
사마현이 말했다.
“녹림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일이지. 산마다 녹림이 있고, 부서지고 야합하기가 반복되는 녹림이니. 개방이나 하오문도 알기가 쉽지 않아. 전체 녹림의 전도라도 만들어서 돌리지 않는 한에는…….”
“하지만 돈이 안 되겠지?”
사마현이 피식 웃었다.
“응. 그런 전도를 만들었다고 해도 내일 생길지도 모르는 게 또 녹림이니. 그렇게 채산성은 없어.”
“반면 관은 가능합니다. 관가에 신고가 오는 양을 통계를 내면 녹림의 세력 확장을 알 수 있지요.”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녹림과 수적의 정세에 관해서는 관이 가장 정통하지.”
옆에서 사마현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유랑후가 말했다.
“당금 강호는 혼란의 와중에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녹림십팔채는 해체나 마찬가지 상태이고, 사도련은 사실 마교의 세력이 다수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죠. 그리고 사도련주가 자신의 직위를 내놓고 잠적해서 그 행적을 찾을 수가 없는 상태니까요.”
“…….”
술제님이 잠적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하지만 저러다가 돌아온 일도 몇 번 있다고 하니, 앞날은 알 수 없다 생각했건만.
‘진짜로 집어던지셨구나.’
그럴 줄은 몰랐다.
유랑후가 말했다.
“예. 그것 때문에 새로운 사도련주를 뽑기 위해서 대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아니…. 왜 그러셨대…….”
“내가 들은 바로는 귀령문은 소수정예의 문파라서 사실 사도련주 직위에 있든 아니든 문파에 영향이 없다고 하던데? 그리고 마교의 앞잡이 놈들도 많아졌으니까~ 더러워서 때려치운 거 아닐까?”
사마현이 옆에서 그럴싸한 이야기를 한다.
“아니. 더러워서 때려치울 정도로 사도련주가 뭐 없는 자리야?”
“음~ 권력은 많이 있지. 하지만 그 영감님은 옛날부터 그렇게 련주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어서.”
“하긴. 조금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이시기는 했다.”
그렇게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 천유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사도련은 현재 혼탁한 상황입니다. 거기에 무림맹도 상황이 썩 좋지 않죠.”
“…….”
“역시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공동파가 사도련이 혼란에 빠진 사이 멸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전쟁을 주장 중이라는 풍문을 듣기는 했습니다.”
공동파의 반기.
“예. 공동파가. 그에 동조하는 문파들도 제법 있고요. 예를 들어 점창파와 청성파 그리고 아미파라든가.”
“청성파 봉문한 거 아니었나요?”
“원래라면 그게 정상이지만요.”
“…….”
진천희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유랑후가 말했다.
“청성파가 거의 몰락 직전이긴 했지만 지금은 뼈대 정도는 재건되었습니다. 청성파의 속가 제자들과 살아있던 직전 제자들을 중심으로 어찌저찌 문파의 모양새를 다시 만들었거든요. 뭐……. 그 전력이야 과거의 오분지 일 정도 될까 말까 합니다만. 그나저나, 이 세 문파가 왜 찬성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진천희는 그 말에 정답을 바로 말했다.
“이권이군요?”
“그렇습니다. 과연 진 태수이십니다.”
옆에서 사마현도 끼어든다.
“점창파는 운남성. 그리고 청성과 아미는 사천성. 둘 다 제국 입장에서 보면 약간 변방이지. 그나마 사천성은 비단의 생산지인 데다가 기화요초 같은 것 때문에 돈을 좀 벌긴 하지만… 운남은 애초에 중원인보다는 그쪽 토박이 이족들 세력이 더 강하니까.”
백족, 묘족, 민족 등등등.
진천희도 오독문 사태 때 그 지역에서 풍장이나 전염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로, 강호는 지금 고요하지만 물밑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 중이죠.”
“그래서 혼돈 속의 균형이라고 하신 거군요.”
“예. 저희 강소성은 강호의 일에서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긴 하지만요. 전부 진 태수 덕분이죠.”
“으으음. 제 덕분인가요, 그게.”
“그럼요! 신공절학을 수련한 포관들이 득실거리는 이 강소성에서 감히 어떤 강호의 문파가 난동을 부리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황상께서도 강소성의 치안 확보 방법에 아주 비상한 관심을 보이시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아마 전국의 포관들이 전부 무량연화범심공을 수련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건…… 좋은 일 같네요.”
권력이 부패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무정부 상태인 지금의 제국 꼴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통치자가 있다면, 적어도 강소성만큼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고.
때문에 진천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제대로 된 통치자가 연속으로 나올 확률이 한없이 낮은 게 문제겠지만…….’
고대 사회 대다수가 멸망한 것은 기술의 부족도 물론 있지만.
왕을 중심으로 한 고대 정치체계가 사실 불완전하고 불합리하기 때문이었다.
권력자가 부패하고, 민생을 돌보지 않는 순간 제후가 군세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난이 일어나기 마련.
성씨가 바뀌고 국호가 바뀌게 된다.
‘십 연속 뽑기 운이 좋으면 몰라도……. 그건 역시 불가능하니까.’
성군이 나와도 기껏해야 2대 정도 나오면 잘 나온 것일 것이다.
3대째에서는 개차반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최초의 통일제국을 만든 진시황 사후에는 나라가 초나라와 한나라의 두 개로 쪼개지기까지 했었지 않은가?
2대는커녕 1대로 끝나 버린 제국인 것이다.
“진 태수께 관의 도움을 드려서 저는 기쁠 따름이군요.”
유랑후가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진천희는 그렇게 답하고서 읍하고 물러났다.
스승님이 명한 ‘무림대회’ 건에 대한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
‘그동안에…… 녹림왕을 추적하러 가 봐야 하나? 아니면. 양력을 찾아가서 공간 확장 주머니부터 만들어야 하나?’
진천희는 심사숙고를 했다.
* * *
공동파 장문인 진문자(眞問子).
그의 사제가 바로 공동일검이라 불리는 진성자(眞成子)로, 진문자는 본래 진성자에 비해서는 무위가 반 수 아래라고 강호에서는 평가한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본래부터 무공보다는 경영과 운영에 능했기에 결국 진문자는 장문인이 되고 그의 사제가 공동일검이 된 것이니까.
그런 진문자는 근엄한 얼굴로 무림맹이 자리한 도시의 한곳에 있는 호화로운 객잔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특실의 안으로 들어설 때.
그 근엄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술 먹은 주정뱅이처럼 히죽거리는 표정이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야♪ 역시 강호인들은 싸우기를 좋아한단 말이죠? 하기사 무(武)라는 것은 싸우기 위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어. 자기 목숨 따위는 내던지고 싸우고 싶어 하는 게 강호인인걸.”
“일이 잘된 모양이네……? 그렇게 즐거워… 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특실의 안에는 약간 등이 굽은, 그러나 화사하면서도 어쩐지 냉하고 음침한 모습의 미녀가 앉아 있다.
그녀는 느리고 기묘한 어조로 말을 걸어 온다.
“그래도 인사부터… 해……. 아니면… 혈선교도는 예의… 없어?”
심혼귀령가의 가주.
주유려.
그녀가 갑자기 무림맹의 본진이 있는 도시에 나타났다.
“어라라? 저희 사이가 예의를 차릴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나요? 제 기억에 의하면, 그냥 손 한 번 잡은 사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방문을 닫고 안에 들어선 공동파 장문인 진문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뒤틀리면서 변이한다.
그 얼굴은 퇴폐적이고 나른한, 그리고 악의와 광기로 점철된 미남자가 된다.
혈선교 십천군의 하나.
백천군.
그가 공동파의 장문인을 연기하며 무림맹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요? 마교의 전령이 여기까지 오신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 텐데.”
그렇게 말하며 백천군은 주유려의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자 손도 쓰지 않았는데 그의 앞에 놓여진 잔을 향해 술병이 스스로 떠올라 날아가 술을 따랐다.
놀라운 모습이나 조금의 동요도 없이 백천군은 그 잔을 들어 그대로 쭈욱 마신다.
“크으…. 술맛 좋고!”
“천기순행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지……. 알아……?”
“그놈들이야 늘 움직이고 있었잖습니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만?”
“조금 대대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양산박… 팔선도… 곤륜산… 그리고 그 외의 것들까지…….”
“그거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그래서, 그쪽에서 원하시는 것은?”
“축제를 열 거라면…… 더… 크게 열자는… 이야기……. 그놈들도 같이 축제에… 참여시켜 주자고…….”
“아하? 그렇게 일을 꾸미자. 이거군요?”
백천군이 히죽 웃어 보인다.
이미.
백천군은 무림맹에서 전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곧이어서 사도련에서도 전쟁의 불이 붙어 타오를 것이다.
이윽고 그 두 개의 불은 크게 타올라 서로를 집어삼키려고 충돌하게 되리라.
혈선교와 일월신교.
두 개의 집단이 물밑에서 이리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천하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래……. 무림맹에는 분명… 팔선도와 연결된 놈들이 있을 테니… 그쪽을 좀 당겨 봐… 우리 쪽은…… 양산박을 당길 테니까…….”
“흐으으음. 좋네요. 좋아요. 그러면. 제법 많이 죽을지도. 후후후훗♪”
백천군은 기분이 좋아진 건지 싱글벙글 웃는다.
그런 백천군과 다르게, 주유려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일을… 처리해…. 후후……. 나중에… 축제에서…… 보자……. 백천군… 파편의 아이…….”
그 말을 끝으로.
주유려의 모습이 흐릿해지면서 사라진다.
극에 이른 술법의 힘.
환영 혹은 인형. 그것도 아니라면 축지술과 같은 이동을 위한 주술일 터였다.
“아하핫. 저쪽도 여러모로 힘을 쓰는 모양이군요♪ 가가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막으시려나? 아니면 관심이 없으실까나? 아하하핫?”
백천군은 혼자 앉아서 웃으며 진천희를 떠올린다.
그리고 기쁘게 술을 마셨다.
그 의원이 보고 싶다.
자신을 보면 대체 어떻게 웃어 줄까.
그자의 피도 붉을까.
이 세상 이치를 모두 알 것 같던 그 뇌수 색은 얼마나 예쁠까.
자신을 증오스럽게 올려다보던 푸른색 한 쌍의 눈이 떠올랐다.
‘그래. 아름다웠지.’
이 세상 모든 청빛을 담은 듯한 색이었고.
희망이 스스로를 태울 때 나는 빛이었으니까.
‘숨겨진 것들을 하나하나 열고 싶은데 말이죠♪’
그에게는 비밀이 많다.
그건 확실했다.
그리고 백천군은 그의 비밀을 모조리 열고 싶었다.
모조리 열어 마침내-
‘진정한 죽음에 다다르게 하고 싶습니다?’
세계의 끝에서 모든 진실과 마주했을 때.
당신은 그때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시대에 이런 천재가 존재하다니.’
스승에게 가려져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천재가 맞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
백천군은 그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보잘것없는 인생 속에서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아마 그건 이쪽 세계의 현(玄)도 마찬가지겠지.
‘하, 보고 싶군요♪’
문득 백천군은 변덕이 들었다.
망가진 자아 사이로 광기가 움직인다.
‘진천희, 그 천재성으로 과연 저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멸망을 연주하라. 세계여.
한 명의 천재가 끝없는 춤을 추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