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12
제 1112화
당주.
보통 문파의 수뇌부들을 칭하는 말 중의 하나다.
문파는 아니나, 백린의각만 해도 의각주 제갈린 휘하로 당주들이 있지 않나.
‘지구 회사로 치면 대충 이사급이나 부장급이지.’
무림 월드이니 현대와 완전히 일대일 비교는 못 해도 대충 이런 느낌이긴 하다.
그리고 접객당은 외부에서 오는 인사를 맞이하는 곳.
사실상 없는 문파도 상당하다.
당주라는 직위에 비해서 실권은 없는 게 바로 접객당주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을 연마하거나 약을 조제하거나 돈을 관리하는 게 아닌, 그저 외부인을 맞이하는 담당이니까 그럴 수밖에.
‘그런데 귀곡문에는 접객당이 있었나 보구만.’
진천희가 허락하자, 접객당주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진천희가 머무는 별실 자체가 큰 집 한 채 크기라서. 사람을 맞이하거나 식사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
거기서 그를 모시고 차를 내왔다.
점소이가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가 다과를 내온다.
땀까지 뻘뻘 흘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긴장한 모양.
‘음, 저 점소이에게 있어서 우리 동네를 지배하는 마을 주민회와 본사 부회장님의 만남이겠군.’
지구 쪽 주민회와 다른 점은 이쪽은 죄다 칼을 들고 있어서 여차하면 찔러 죽일 수 있다는 점이려나.
그리고 본사 부회장님도 마찬가지.
이쪽도 얼굴 가죽을 뜯어 버릴 수 있으니 지구와는 좀 긴장감이 다르긴 하겠지.
“귀곡문 접객당주인 모이선이라고 합니다. 진 소각주를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백린의각의 소각주인 진천희입니다. 이쪽은 제 의동생인 하오문의 소문주 사마현이고요.”
짧지만 챙길 예는 다 챙기는 인사가 오간다.
진천희가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단도직입.
‘약간의 미사여구라도 들어갈 줄 알았건만.’
일광의 소문이 허언이 아니라고 접객당주는 생각한다.
“그건 제 쪽에서 질문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저희 문주께서는 오륜회의 회주인 제갈린 회주의 직전제자이자 백린의각의 후계자인 진천희 대협이 왜 사도련의 영역인 이곳에 온 것인지 궁금하거든요. 아니면, 강호인이 아닌 관인의 신분으로 온 것입니까?”
번역하자면 그랬다.
‘진 소각주로서 온 거냐. 아니면 진 태수로서 온 거냐.’
진천희가 짧게 답했다.
“백린의각의 소각주로서 온 것이긴 합니다만… 관인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지나칠 수는 없겠죠.”
부드럽지만 단호한 답변.
이 사내라면 그리 말할 줄 알았다.
그는 세상을 비틀어버릴 만큼 강하고, 현명하고, 미쳐버린 자라는 것을 알기에-
“좋지 않군요. 강호의 것은 강호의 법으로 처결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
그들에게 있어서 진천희는 까마귀와 다름없다.
불행이 올 것이라 나무 위에서 까악까악 울어대는 까마귀.
그 까마귀가 씨익 웃는다.
“글쎄요…. 제가 현재 태수로서 행정을 보고 있는 백린군은 지극히 평화스럽습니다만?”
진천희의 말에 접객당주는 그저 웃는다. 웃기만 했다.
“……관점의 차이겠지요. 그리고 제가 그것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땅은 이제 저희의 영역. 강호인으로서 다른 문파의 영역에 오셔서 그런 도발을 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진 소각주는 왜 사도련에 속한 녹림왕을 추적하고 계신 겁니까?”
녹림십팔채와 장강황하수로채.
둘 다 사도련의 소속이고. 다른 사파들이 그래도 탈법과 불법적인 일을 저지를지언정 합법적인 문파로 인정받는 것과 다르게.
‘이 두 문파는 확실한 범죄 조직. 토벌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지.’
그런 놈들을 사도련이라는 연맹 안에 아직도 가만히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무불가침이라는 오래전의 관습이 제법 강하게 사람들 사이에 박혀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사마현은 곧바로 전음을 보낸다.
[역시. 저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형, 어떻게 할래?]녹림왕을 왜 진천희 소각주가 추적하고 있는가?
오륜회가 사도련을 공격하려는 건가?
아니면 개인적인 은원?
진천희는 마음속 바둑알을 만진다.
자, 이다음 수는 무엇이 좋을까.
‘개인적인 은원을 주장한다면 사도련 전체가 끼어들 여지는 없지.’
그것이 강호의 법도니까!
일전 살검루가 나섰다가 개박살 난 것은 그들의 은원 때문이었기에 사도련 차원의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었던 것도 그런 이유.
그런 형을 보며 사마현은 생각한다.
‘그 당시 사도련 전체가 형을 잡으려고 날뛰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니까.’
진천희를 잡기도 어렵지만, 진천희의 특수 신분 때문에 뒷감당도 생각해야 하니까.
강호인 입장에서는 이만큼 골치 아픈 상대도 없다.
실제로 광동성주는 그 이후 크게 질책받았고. 금의위에서 상당수가 파견 나와 광동성의 사파들을 때려잡기도 했다.
그래서.
진천희는 다음 수를 차분하게 놓았다.
탁-
“예전에 녹림왕에게 습격받은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 당시에 잘 해결했지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원(怨).
진천희가 내려놓은 바둑알이다.
사마현은 살짝 놀랐다.
‘호오, 여기서 개인적인 은원을 주장한다? 이쪽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허나, 분명 원(怨)은 원이라 할 수 있다.
진천희가 녹림에 의해 다친 자들을 들먹이며 그들의 원한을 갚으러 왔다 하면 강호의 법도상,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접객당주가 말했다.
“정말 그런 이유입니까? 전혀 납득이 안 갑니다만……. 뭐 좋습니다.”
‘풍문대로 확실히 영민하군. 이렇게 말하면 우리 쪽에서는 더 개입할 명분이 없으니.’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어쨌든 진 소각주. 우리는 이 강서성의 지배자로서 당신에게 미리 경고합니다. 우리의 영역에서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나가십시오.”
제법 강단 있는 말.
강호의 법도를 믿고 있기에 하는 말이기도 했다.
“…….”
진천희는 도리어 씨익 웃었다.
접객당주 모이선은 진천희의 미소에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 사람 좋아 보이고 잘생긴 사내가 왜 밤에 만난 이물(異物)보다 무서운지는 알 수 없으나, 굳이 표현하자면 이성보다는 본능의 영역 같았다.
허나, 여기까지 와서 만약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 또한 귀곡문의 불명예.
“앞으로의 일은 전부 귀곡문의 영역에 들어온 천하진일광 당신의 탓입니다.”
선악과는 관계없다.
어찌 되었건 이 강호에서, 타 문파의 영역에 들어와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는 죽어도 싸다.
그것만큼은 모두가 알고 있는 강호의 법도 아닌가.
그것은 진천희가 들고 온 은원(恩怨)만큼이나 오래된 것.
만약 이 안에서 선악을 따질 것이었다면 애초에 사도련이 생길 수도 없었던바, 그렇다고 지금의 진천희가 관군을 동원할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
산적, 해적, 혈선교 같은 무리나 ‘대화률을 크게 어긴 것’이 아닌 한.
관무불가침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관무불가침을 벗어날 정도의 불법행위란, 역적 무리의 반역 같은 것이지. 개인적인 살인이나 개인적인 행방불명 같은 건 또 해당되지 않지.’
살인도 마을 하나를 다 쓸어버려도 작은 마을이면 관군이 몇 조사하고 끝이고, 행방불명도 관의 높으신 자제 정도가 사라져야 움직일 수준의 법.
인권이 집 나간 세계에서 그 이상을 바랄 수도 없다.
‘그래. 그렇기에 문파가 한 지역의 왕이 되는 것이지.’
도산검림의 세계에서 힘이 있는 자가 법이고 질서인 이유가 다른 게 아니었다.
“그러면 본문에서는 할 말을 전부 전한 듯하오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일광 진천희.
이 사내는 위험하다.
같이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기묘한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 드니까.
“…….”
귀곡문 접객당주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밖으로 향했다.
별채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지켜보다가 진천희가 이윽고 입술을 뗐다.
“……내가 여기에 온 것 자체에 신경질이 난 게 아니라, 혹시… 연원왕의 행방을 저들이 알고 저러는 걸까?”
“!?”
오싹-
사마현은 소름이 돋았다.
분명 연원왕에 대한 것은 한 글자도 나누지 않았다. 그럼에도 형은 작은 반상 위에서 상대의 속내 하나를 끄집어냈다.
사마현이 형의 푸른 눈을 들여다보며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상식으로 보면 형이 온 자체가 불청객인 것이겠지. 얼마 전에 광동성에서 사도련의 문파 중 두 개를 박살 냈잖아.”
철무문과 살검루.
이 두 곳은 이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었다.
투도문이나 오살지파는 하오문 소속이니 다르다고는 하나, 결국 진천희의 손에 두 개의 사도련 문파가 완전히 끝을 본 셈.
나비의 날갯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일이다 보니 그렇게 만들어진 태풍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마현이 말을 이었다.
“사도십이문 중 두 개가 다시 공석이 되어 버린 상태이고, 사실상 사도십문이 돼 버렸지.”
“사도련 입장에서는 큰일이겠네.”
“응. 최근 무림맹에서 가해오는 압박이 심상치가 않거든. 거기다 오륜회와 전면전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거고.”
스승님께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상황.
거기에 그 힘을 뒷받침되고 있는 남궁세가, 보타문, 공손세가, 이제는 사마현이 권력을 쥐어 버린 하오문까지.
장의사 업에서 경쟁자인 눈엣가시 같은 진주언가와 이번에 가입을 찍먹하고 있는 모산파도 있다.
“싸움을 반길 건 진주언가일걸? 강시술도 겹치는 마당에 정정당당하게 문파 기둥 뽑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참겠어?”
진천희는 문득 언가주를 떠올렸다.
해맑게 미친, 지극히 학문적인 사내.
어째 무인보다는 문인에 가까운 성품을 가졌으나, 적을 살려둘 성정은 아니었다.
“그래. 절대 안 참으실 거야.”
“형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하오문의 정보를 보고 움직이는 게 좋겠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음?”
“…만약 단순히 세력 구도의 문제라면 이렇게까지 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 오히려 나를 환영하는 잔치라도 벌이는 게 더 쉬울 거야. 나는 이곳 사람들과 원한을 진 적이 없으니, 좋은 인상을 남기는 쪽이 더 편할 테니.”
적일수록 가까이에 둔다.
이 간단한 것을 모를 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진천희는 턱을 문지르더니 말했다.
“하지만 좀 달라. 오히려 내가 뭔 짓을 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이니까.”
문파에 초대하는 일은 없다.
첫 단추부터 나쁘게 꼬일 각오를 해서라도, 처음부터 철저하게 배척한다.
여기까지 심계를 짚은 진천희는 악동같이 웃었다.
“자, 그러면 문제. 얘들이 봤을 때 내가 가장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형은 그래서 저들이 연원왕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고 추측하는 거야?”
“응. 그것 외에는 지금 없으니까. 관원을 끌고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너랑 조촐하게 온 것뿐인데 말이야.”
“…….”
진천희는 손목을 탁탁 흔들었다.
“이건 일단 지극히 경험적인 추론일 뿐이야. 마침 연원왕 보러 왔는데, 이 동네 왕께서 물러나라고 하시네? 그게 좀 재미있지.”
그리 말하고는 몸을 일으킨다.
“어쨌거나 지금은 나도 크게 움직일 생각은 없어. 그러니… 그래. 좀 산책이나 다녀올까?”
씨익-
형이 푸른 눈으로 웃는다.
사마현은 어째서 이 형을 사람들이 그리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타인이 자신을 보았을 때의 감정이기도 하다는 것도 이성으로는 이해했고.
형은 곧바로 별실을 나섰다.
딸랑-
별실 문에 달린 방울이 맑은 소리를 냈다.
“…….”
사마현은 방울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윽고 형을 쫓아 나갔다.
방울 소리를 들으니, 왠지 하오문에 있을 때와 같은 감각이 들었다.
지독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사마현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히죽.
그는 악(惡)을 수집하는 자.
새로운 악은 언제나 환영이다.
즐겁다-
왠지 더 강해질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형도 같은 기분일까?’
진천희의 옆얼굴이 칼날처럼 공기를 갈랐다.
“현아.”
“응?”
“…원숭이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어.”
강호는 형을 미친놈이라 부르고, 사마현은 가끔은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