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15
제 1115화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충분히 날짜가 지난 후.
일단 황구와 뇌진은 은신처에 남겨두기로 했다.
두 녀석 모두 기척 숨기기는 썩 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요괴처럼 완전히 잘 숨는 것도 아니고, 진천희나 사마현처럼 은신공의 달인인 것도 아니다.
“그냥 눈에 너무 띄어서 그런 거 아니야?”
“개와 새를 달고 다니는 양상군자(도둑)가 어디 흔하겠니.”
진천희는 피식 웃으며 변장을 했다.
우드득-
가볍게 축근공으로 몸을 만지고 나니 미청년은 잠시 동안 평범한 범부(凡夫)의 모습으로 변한다.
“형, 그 얼굴 어째 자주 쓰는 느낌이다?”
“그래?”
지구에서의 본래 얼굴.
딱히 닮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데 불현듯 이 얼굴이 나오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의 무의식이란 참 무섭다.
사마현은 그런 진천희를 따라 변장을 했는데 등이 굽은 노인의 모습이다.
평소라면 변장을 하더라도 화려한 모습으로 변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형에게 맞추려는 모양.
두 사람은 그렇게 훌쩍 출발했다.
사마현의 경신술이 숲의 그림자를 깔듯 길게 이어지면, 그 위로 진천희의 옷깃이 자취를 지우듯 달려간다.
이윽고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남창에 도착했고, 평소보다 불빛이 많은 것을 발견했다.
‘음……?’
남창이 항주 같은 대도시는 아니다.
밤까지 빛이 쭉 깔려 있을 곳도 아닐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온 도시가 등불을 밝히는 것은 뭔가 이상하긴 했다.
그리고 풍악.
둥, 두둥, 둥둥둥!
북소리가 광장 한복판에서 울리고, 예인들이 춤을 추었다.
‘축제……?’
두 사람은 살짝 놀랐으나 변장을 한 모습 그대로 걸었다.
등이 굽은 할아버지와 그를 부축하는 아들.
영락없는 부자(父子)지간이다.
사마현은 탕후루 앞에서 말했다.
“아들, 입이 심심하구나.”
“아, 예예, 아버지. 잠시만요. 거기, 탕후루가 맛있어 보이는데 하나만 주게나.”
“감으로 드릴깝쇼? 아니면 대추나 산사 열매가 좋으십니까?”
“이가 아파서 감은 못 씹어. 대추 줘.”
사마현은 천연덕스럽게 노인을 연기하며 응석까지 부린다.
“어휴, 아버지가 그렇다고 하십니다.”
“여기 대추 있습니다. 물렁한 놈으로 골라드리지요.”
그리 말하며 탕후루를 건넨다.
진천희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 같은데……. 뭡니까?”
“아아, 외지인이슈?”
“네. 아버님께서 생전에 한 번이라도 고향 땅을 밟고 싶다 하셔서 먼 길을 걸어오는 중입니다. 요즘 치매기가 있으셔서 자꾸 깜빡깜빡하세요.”
그리 말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사마현은 졸지에 시한부의 치매 있는 철없는 아비가 되었다.
이 시대에 장거리 여행이란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법.
사실 자식 부려 먹어서 갈 일은 못 된다.
사마현이 답했다.
“뭘, 내가 가기 싫다 했는데 굳이 끌고 가는 거 보게나. 분명 고향에 남긴 옛 마누라 보러 가는 거요오~ 새 마누라한테 버림받으니 이제 찾으러 가는 거지.”
진천희는 그렇게 두 집 살림하고 옛 마누라를 버린 망나니가 되었다.
삽시간에 서로를 쓰레기로 만든 형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음 일격을 준비하며 히죽 웃는다.
“하하핫, 부자가 사이가 좋으니 보기가 좋구만.”
마치 쓰레기 둘이 잘 붙어 있으라는 듯 노점 주인은 그리 말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축제는 어제부터 열렸소.”
“호오, 그렇습니까?”
“귀곡문이 이 지역을 장악한 지가 이제 몇 년 좀 되었는데, 매년 하는 축제지요.”
귀곡문.
진천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아버지께서 귀곡문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긴, 장례업을 하는 곳이니 나이 들면 다 염해줄 곳 찾아보는 법이지. 이해하오.”
하며 안쓰러운 얼굴로 변장한 사마현을 바라봐 주고는 노점상 주인이 말했다.
“자기들끼리 뭔가 규칙이 있는 모양인지라 정확하게 날짜는 모르오나, 매년 하고 있소이다. 거기서는 사자축일(死者祝日)이라고 부르오.”
“사자축일이요?”
“죽은 자들이 현세에 되돌아오는 날이라고 하는데 저승과 이승이 하나로 이어지는 날이라고 하더이다.”
“?!”
그 말에 진천희는 생각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화 제국에서 산 지도 이제 제법 오래되었지만 그런 날은 없는데?’
사마현도 금시초문인 눈치.
이래저래 물어봤는데 딱히 더 자세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마을 사람이라고는 해도 문(門)의 사람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근데 몇 년 동안 이미 귀곡문에서 이걸 계속했다고?] [수상쩍지, 형?] [……그러게. 흑도 사파가 지역 축제를 연다? 그것도… 주술적인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을?]규칙적으로 들리는 북소리와 풍악.
그리고 그 축제의 의미도 다른 마을처럼 단순히 풍년이나 풍어를 기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귀곡문은 강시를 부리고 주술을 사용하는 문파야. 의미가 없을 수가 없어.]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연원왕을 찾으러 왔다가 이상한 것까지 보게 되었는데~ 이거.]그 순간.
진천희는 보았다.
영혼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우…… 진짜냐?’
얼굴까지는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주술을 알고 영안이 뜨인 진천희는 한둘이 아니라 아주 많은 영혼이 돌아다닌다는 것까지는 볼 수 있었다.
[혼이…….] [……아주 많네?]화들짝 놀라서 사마현을 본다.
[너 이게 보여?] [응. 이제 보이네.]그건 퍽 기묘한 일이었다.
영안이 아무에게나 뜨이지는 않는다.
사마현은 주술을 배운 적도 없고, 선천적으로 그런 게 보인 적도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주술적인 의식을 한 일도…….
‘……아, 그건 있구나.’
천변검만공을 대성하여 기묘한 의식을 벌이지 않았나.
천 개의 악(惡)을 삼켜 ‘무언가’를 부르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부름에 성공했다면 이 세계는 한 줌 재가 되었으리라.
‘사마현 안에 혼원(混元)의 조각 같은 게 있다고 쟈시가 말한 일이 있었지.’
그렇다면 이런 쪽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무섭니……?]진천희의 질문에 사마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가~ 저는 얼마 전까지 사람의 얼굴 가죽을 뜯어서 그걸 가면으로 만들던 놈이었습니다. 이미 하오문에서는 제가 곧 괴담인데요~ 저기 다리 여섯 개로 물구나무서며 걷는 놈도 익살맞아 보이기만 하는군요.]…미친놈인가?
아니, 생각해 보면 미친놈이 맞긴 하지.
‘어째 나보다 자세히 보이는 것 같다만.’
진천희는 혼 하나하나를 구분하는 것을 처음부터 어려워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현경이 되어 의념을 좀 더 또렷하게 읽는 것일 뿐, 얼굴 구분이 가능한 건 아니다.
쟈시도 그게 기이하다고 했으니 가장 이상한 것은 진천희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네가 괜찮으면 됐다.]그뿐만이 아니었다.
혼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은 그제야 자연스럽게 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치 산 사람을 대하듯이.
“아, 닷 냥 되겠습니다.”
댕그렁-
“동전이 좀 상했군. 하지만 액수는 맞으니 가져가쇼.”
거기다가 망자 본인이 직접 주섬주섬 노점을 열기도 했다.
물건들이 하나같이 낡았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예뻐라. 이 빗 얼마예요?”
“은자 하나. 아니면 왼손 새끼손톱.”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비싸네.”
“새끼손톱은 다시 자라니까 사는 게 어때?”
“그럴까……?”
둥, 두둥, 둥둥.
규칙적으로 울리는 북소리 때문일까.
사람들도 무언가 상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주는 대신에 물건을 사는 사람도 보인다.
사마현이 말했다.
“머리카락이나 손톱, 피 조금 정도로만 교환하는 걸 보니 목숨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만 하는 건가?”
보기에는 그렇다.
요괴들이 좋아하는 살점이나 내장, 안구 같은 것은 거래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생명에 지장 가지 않는 선의 교환뿐.
손톱 역시 뿌리까지 뽑는다기보다는 짧게 바짝 깎아내는 게 전부. 통증이 생길 일은 전혀 없다.
진천희가 말했다.
“하지만 팔고 있는 것도 비교적 저렴한 물건들이야. 만약 비싼 물건을 파는 곳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오싹-
진천희는 거기까지 말하고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몇 년… 째 이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했지?”
진천희의 말에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대체 왜 이런 축제가 안 알려진 거지……?”
“기억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아니면 왜곡이 있든가. 제대로 기억을 했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어~”
훈련을 받은 살수도 아니고, 이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살 리가 없다.
“단순히 기억을 잃어버렸다면 머리카락이 왜 잘렸는지, 작은 상처가 왜 생겼는지, 손톱이 왜 짧게 정리되어 있고, 모르던 물건이 내 주머니에 있는지 의문을 안 가질 리가 없어. 필시 왜곡일 거야.”
순식간에 핵심에 다다른 진천희가 묻는다.
“예로부터 지역마다 귀시(鬼市)에 관한 전래동화가 있는데……. 현이 혹시 아니?”
귀시(鬼市).
직역하면 귀신들이 여는 시장 정도가 되겠다.
이곳에서는 굳이 죽은 사람뿐 아니라, 요괴가 여는 시장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알아. 어르신들이 무서운 이야기 하면 맨날 나오는 거잖아. 귀신들이 여는 장터. 야시라고도 한다지?”
괴담, 설화, 전설.
이곳 아이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는 이야기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이 귀시에 들어갔다가 기이하고 기묘한 물건을 사 온다는 설화가 있지. 그것 때문에 곤란에 빠지는데, 도사가 찾아와서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
사는 물건이나 곤란에 빠지는 상황은 다 다르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죽든가, 지나가던 도인이 도와주든가.
드물게 혼쭐만 나고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만 앞의 두 결말이 보통 가장 많다.
사마현이 말했다.
“다른 괴담들처럼 하지 말라는 것을 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딱히 교훈을 주는 권선징악 이야기도 아니긴 해.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느낌이니까. 형, 그게 왜?”
“…….”
진천희는 턱을 문지르다가 어렵게 입술을 뗐다.
“예전에, 낮과 밤이 다른 마을을 본 적이 있어. 낮에는 선량한 사람으로 지내다가 밤에는 사람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는데 모두가 기억을 못 하는 그런 마을.”
“……비슷하다는 거야?”
“완전히는 아니야. 하지만 기억에 변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귀곡문이 남창이라는 도시를 설화에 나오는 귀시처럼 만들어 버린 걸 수도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네? 거기다가 원숭이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단순히 추적을 피해 그냥 숨어 있는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현이 말했다.
“형은 언제나 사람을 구하지. 그게 형의 협(俠)이니까.”
“…….”
의원은 언제나 그래 왔다.
진천희는 희미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소매를 쓸었다.
“가시지요. 아버지.”
영락없는 아들의 목소리다.
그 순간, 진천희의 결의를 따라 희미하게 몸에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얇은 주력(呪力).
우웅-
그 힘은 진천희 본인조차도 모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