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18
제 1118화
“몇 놈이 그런 소리 하는 걸 들었습니다만.”
진천희가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삼천갑자를 다 채우지 않았음에도 말세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반선의 씨앗, 천하진일광 진천희 당신이라고도 하고. 하하핫. 재미난 정보 아니오?”
“……그렇군요.”
그는 재미난 농담을 하듯 웃지만, 인간은 이 이야기에 웃을 수 없다.
거기다 말세를 당긴다.
자신의 존재가 말세를 당길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내가 사라진다면…….’
지존천마대로 간다면 전쟁과 역병, 강호의 혈사들로 인해 시체가 산과 강을 이루게 된다.
그런 의원에게 정보상이 비웃듯 말했다.
“흐……. 진천희. 당신이 신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지만, 사실 나는 그 정보를 믿지 않소이다. 겨우 한 명의 존재 따위가 말세를 앞당긴다니? 웃기는 일이지.”
차라리 그런 거라면 다행이리라.
진천희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종말’은 무엇입니까?”
“음?”
“말세(末世)는 세상이 끝나기 전을 의미하지만 완전히 끝나는 ‘종말(終末)’을 뜻하지는 않잖습니까.”
‘끝나 간다’와 ‘끝났다’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의원은 그렇게 세상의 경계가 무너진 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멸망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종말 후에는 어찌 되는지도.
“…….”
“과연 예리하군. 좋은 질문이오. 허나, 그건 나도 모르오. 그저 말세가 온 다음 약간의 유예 후, 본격적인 ‘종말’이 온다는 것만 알고 있소.”
“?!”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정보.
진천희가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말세 자체를 막을 근본적인 방법은 혹시 아십니까?”
그 말에 정보상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근본적인 방법이라…. 알 리가 있나. 그 정도 정보라면 드높고 존귀한 자들이나 알 법한 것이 아니겠소? 내 능력으로는 무리지. 사실 존귀한 분들이라고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소.”
역시 그런가.
정보상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말세가 그리 멀지 않다는 건 알지. 당장 이 귀시를 부르는 술법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이게 원인이 될 수도 있겠군그래.”
“그렇군요.”
이 정도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정보상은 정보상일 뿐 신은 아니니까.
그리고 이미 지금 얻은 것들만으로도 대단한 소득.
그 어떤 곳에서도 답해 주지 않던 것을 알게 되었다.
‘꽤나 핵심적인 정보를 알게 되었군.’
정보상이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혼계 속이니 나도 말할 수 있는 거라오. 원래라면 제약으로 인해 입도 벙긋 못 하지. 이곳이라면 인과율도 허락할 터이니. 굉장히 조심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하오.”
그때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닭이 우는 소리였다.
정보 장사꾼이 말했다.
“흐음. 오늘은 장사를 여기서 접어야겠소이다. 오늘의 거래는 아주 좋았소. 종종 이용해 주시구려.”
그러면서 명함 대신 비늘을 한 장씩 진천희와 사마현에게 휙휙 던지고는 물안개를 일으키더니 사라졌다.
퍼엉!
순식간에 가게까지 사라지는 모습에 두 사람 모두 놀랐으나 상대는 요괴.
인간의 이지(理智)를 넘어섰다.
“말세라~ 형이 예전에 말하던 그거려나.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나 봐~?”
사마현이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경각심을… 가져야겠는걸.”
‘이 시장도 내버려두면 말세의 단초가 된다고 했지.’
귀시가 폭주하게 되면 모든 것이 뒤섞여 버린다고 했다.
‘이렇게 가까이 멸망의 단초를 하나 찾아내다니.’
대체 연원왕은 이곳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진천희의 눈이 푸르게 변했다.
그것은 지금 하늘과 같은 빛.
새벽 색이었다.
* * *
닭이 울고 물고기가 사라지자, 귀시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축제는 그대로이나 귀시 특유의 현상은 사라지고, 인간이 아닌 것들은 마치 처음부터 거기 없었다는 듯 모습이 점점 흐려지더니 마침내 사라져 있었다.
진천희와 사마현의 얼굴도 자연스럽게 주술이 풀려 원래의 사람 얼굴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평온하다.
야시장이 끝났다며 점포를 정리하는 인간들과 길거리에서 토하는 취객들까지.
그 모습은 항주의 야시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사마현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무시무시하네~”
“어디가?”
“사람들의 정신을 대규모로 제어하고, 조작하고, 조종하는 거잖아? 이거.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있다면 대량 학살, 반란, 광란 등등… 여러 가지로 쓸 수 있다고~”
“섬뜩한 생각을 하는구나.”
사마현의 말에 진천희는 답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우가 말했다.
“하지만 흔한 일이잖아, 형. 저 일월신교는 교도들을 세뇌하듯이 교육시키는걸? 광신도가 괜히 광신도가 아니니까. 혈선교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고. 사실 결이 다를 뿐이지 황궁도 비슷한 게 많아~ 알잖아?”
미친 소리 같지만 이 강호에서는 흔한 일이다.
미국 음모론에서도 세뇌, 도청, 인체 실험 등의 이야기들은 어째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사실이라 밝혀지게 된다.
자국민을 상대로 정말로 그런 짓을 자행해 왔다고.
인권침해부터 해서 피해자들의 인터뷰, 그로 인해 망가진 인생들을 조명하고 사람들은 욕을 했다.
나중에는 어린이를 위한 공포 미스터리 같은 책에도 실릴 지경.
그만큼 큰일이었다.
허나, 강호에서는 딱히 숨길 만한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당당하게 하니 부끄럽지 않은걸?’ 같은 마음으로 애초에 그냥 다 한다.
인간의 기대수명은 한없이 짧고, 아이는 100일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인권을 논하기도 전에 글을 아는 사람 자체가 적은 시대.
반면 소수의 특별한 사람은 현대의 화기를 뛰어넘는 파괴력을 갖게 되는 세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세뇌란.
어찌 보면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방도일 뿐.
흑도뿐만 아니라 정파조차도 정보 쪽은 아이들을 육성할 때 충성심 향상이라는 이름하에서 그런 걸 하니까.
약물을 쓰지 않았다 뿐이지, 운기를 하고 구결을 외울 때조차도 끊임없이 충성심을 주입시킨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세가를 위해 싸우고, 세가를 위해 죽는다.
세가를 배신하여 독문무공을 외부에 흘리거나, 기밀을 말하게 된다면 최소 사형.
깔끔하게 목이 날아가면 다행이지, 혀를 자르고 사지근맥을 끊어서 죽을 때까지 뇌옥에 가둬 인두로 지지는 게 상식이라는 것을 배운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애들한테 무슨 짓이냐 싶다.
아이의 인권은 어디에 있냐고.
하지만, 말단이라고는 하나 명문대파의 무인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양민에게는 엄청난 신분 상승.
아이의 부모도 자랑스러워하고, 받는 아이들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세계.
그런 강호.
‘그저 귀시에서 물건 산 기억이 조작된 정도는 이 세계에서는 어찌 보면 지극히 별것 아닌 일일 수 있겠구나.’
현대인에게는 미친 소리 같지만 사마현의 반응, 그리고 정보 상인의 반응을 보니 더 알 것 같았다.
손가락을 자르고 살점을 베어 먹지는 않았으니까.
행인들도 머리카락이 조금 잘리거나 손톱이 바짝 깎인 게 전부.
마치 어린아이 장난 같다.
“그래. 알긴 알지.”
진천희는 쓰게 웃었다.
일전에 상대한 도견.
그는 삐뚤어진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황제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진짜였다.
‘세뇌에 가까운 교육과 훈련 때문이겠지.’
선황이 폭군이며 암군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결국 자연사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황제를 지키는 검들은 어릴 때부터 환약과 특별한 대법까지 사용하여 비인외도의 방법으로 길러지기 때문에 더더욱.
무관 시험을 치러서 훗날 태양 장군이 된다고는 해도 금의위 최측근은 될 수 없다.
화 제국에서 그쪽은 근본부터 다르다 할 수 있겠지.
‘특히나 기억 조작과 세뇌, 언령이 모두 가능한 쌍둥이들이니 그 걱정은 더 없겠구나.’
꽤나 대담하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등에 칼 심길 위험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진천희가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귀곡문이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인 건지는 알아야겠어.”
“진심 잠입으로 할 거야?”
“원래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진천희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아니. 정면으로 쳐들어갈 거야.”
“하하, 하하핫!”
사마현은 그 말에 그만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월담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닌 모양.
참으로 미친 소리 아닌가.
“끝을 볼 생각이야?”
“명분도 세력이 있어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니까.”
그 말은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이번에 세력 자체를 눌러주겠다는 뜻.
딱히 후에 있을 난전까지 갈 것도 없이.
처음에는 후에 따라올 귀찮은 일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손보려 하였으나, 대규모로 양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
거기다 멸망의 단초라고 아예 확답까지 듣고 말았다.
귀시가 정확히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수많은 이물(異物)들을 상대해 온 형이다.
그것들이 어느 순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때는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에.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문파를 상대로 그만큼 아예 눌러버리는 게 가능한가?’
지극히 논리적인 이성으로 비논리적인 짓을 벌이는 형을 보고 있자니 사마현은 왠지 광기에 취할 것 같았다.
허나, 그래도 중심을 잡아야 했다.
어쨌든 지금의 그는 착한 동생이고.
이런 미치광이 형을 그래도 누군가 한 번쯤은 붙잡아줘야 하지 않나.
“형, 알다시피~ 형이 현경의 고수고, 나도 그에 준한다고 해도 술법이나 강시는 그런 논리를 벗어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잖아. 그 정도 역사를 가진 곳인데 당연히 문파를 지킬 방책 정도는 대대로 만들어 놨을 거고.”
“그래. 보통은 자살 행위겠지.”
“맞아. 그 대단한 천마라도 무당의 본진에 직접 쳐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어? 소림사 주지승의 머리를 못 깨부수는 이유가 뭐겠어?”
개도 자기 골목에서는 한 수 먹어주는 법.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문파는 말할 것도 없다.
“역사가 덜 깊거나, 하다못해 검문이나 권문 같은 강호인 대 강호인의 싸움이라면 편할 거야. 하지만 진주언가 때를 생각해 봐~”
진주언가 지하에는 무엇이 있던가.
“제아무리 현경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진주언가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해. 알잖아?”
알고 있다.
지존천마에서도 진주언가를 내부에서 좀먹었을 뿐 이렇게 무력으로 복속시키는 짓은 하지 못했다.
사마현이 히죽 웃었다.
“아니면~ 불을 지르거나 가가 왼팔의 흑염룡을 써서 죄다 죽이시겠습니까? 그러면 찬성입니다요~”
잔혹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불을 지르는 것도 문제지만, 특히 사마현이 말한 왼팔의 흑염룡.
현경지독!
짐조의 깃털까지 먹어치워서 지금에 와서는 천하제일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것을 풀면 귀곡문의 사람 전원을 중독시켜 죽일 수도 있을 정도로 끔찍하고 위력적이겠지.
문제라면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
귀곡문의 문도는 그렇다 쳐도, 그 안에서 일하는 하인과 숙수 같은 양민들도 전부 죽을 터였다.
그리고 귀곡문이 남창시 안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인근의 양민들 역시 피해를 입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문제.
진천희가 묵묵히 답했다.
“……괜찮아. 다 방법이 있어.”
진천희의 두 눈동자가 샛별처럼 빛나고 있다.
‘다문 입으로 또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르려는 걸까. 이 형은?’
사마현이 완곡한 표현으로 묻자 진천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미치다니. 전통적인 제갈세가의 방법을 쓸 거란다.”
“진법?”
“진법.”
그 말만으로 형제는 동시에 서로의 의도를 파악했다.
진천희는 저 멀리 귀곡문의 장원을 노려보았다.
‘어떤 흉계를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쉽지 않을 거요.’
의원.
이제야 강호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 * *
같은 시간.
연원왕은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다.
진귀한 과일도 실컷 먹었겠다, 아주 팔자가 좋다.
노곤한 기분을 느끼며 바닥에 누워있는데, 왜일까? 순간 털이 쭈뼛 서는 게 아닌가!
오싹-!
원숭이가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온몸을 득득 긁었다.
“뭐야! 엄청 싸해! 이거. 안 좋은데!”
닭살이 온몸에 돋아나고, 털도 마치 고슴도치처럼 삐죽이기 시작했다.
연원왕은 곧바로 옆에 놓인 종을 마구 흔들었다.
딸랑딸랑딸랑-
그러자 종소리에 맞춰서 문주 귀혼자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이봐. 곧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대비해라!”
이것은 연원왕이 가진 비술 중 하나.
원생술!
위기를 예지 수준으로 감지하는 능력.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이 원숭이는 참회동에 갇히는 일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래전.
제천대성이 그에게 내려준 몇 안 되는 능력 중 하나.
이 덕에 진천희의 끈질긴 추격에서 수년째 도망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귀혼자도 이에 대해서는 대충은 알고 있었다.
“으으음. 그대가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미증유의 위기가 닥친다는 건가. 허나 문제없네.”
“뭐가 문제없어?”
씨익-
귀혼자가 미소를 짓는다.
“지금 닥칠 위험이라고 하면 필시 일광 진천희에 관련된 것. 내 그를 반드시 죽일 방책을 만들어 두었네.”
“방책?”
“아무튼 걱정하지 말게나. 곧 있으면 천하가 손안에 들어오고, 누구의 목숨이든 능히 거둘 수 있게 되니까.”
그 말에 연원왕은 생각에 잠긴다.
‘정녕 그 거머리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눈앞의 친우는 결코 허언을 할 자가 아님을 알고 있다.
“설마 그 물건이 곧 완성인가, 이렇게 빨리?”
“크하하핫!”
귀혼자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귀기를 뿜으며 말했다.
“제아무리 일광이라도 본문의 행사를 막을 수 없을 걸세!”
정말 가능하다는 건가.
금지된 의식이 정녕 성공하여 인세(人世)에 ‘그것’이 완성이 된다고?
‘어쨌든 일광이 더는 나를 추적하지 않는다는 거지?’
어라, 그러면 개꿀 아닌가?
이놈 피해 다니느라 산적질도 쉽지 않아졌다.
원래도 관군들이 강해지고 있어서 대비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추적해 오는 일광 놈 때문에 더욱 소극적으로 일을 벌이게 되고 결국 그의 사업.
즉, 산적 사업도 부도가 나게 생기지 않았나.
연원왕은 과일을 좋아하는지라 다른 요괴들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극히 드무나, 전처럼 금품을 갈취할 수가 없다!
과일은 비싸다.
어떤 과일들은 상하기 전에 운송하기 위해 빙고를 쓰고, 경공의 고수를 쓰기도 한다.
그랬다. 산적질을 못 하면 이런 과일도 못 먹는다!
‘죽어라, 거머리 놈!’
드디어 지긋지긋한 일광이 떨어지나.
“아무튼 이번에야말로 놈을 확실히 짓밟을 수 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