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28
제 1128화
백린의각 아래 도시.
두 영물과 세 명의 ‘사람’이 걸어간다.
“그러니까 연단술을 좀 할 줄 안다 이거죠?”
“그래. 대왕의 안주 담당이 나였으니까.”
여기서 대왕이란 제천대성 손오공을 의미한다.
손오공이 술 마실 적에 안주를 요리해 바치던 것이 연원왕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요리를 더 잘하기 위해 연단술을 배워 익혔다고.
‘단약도 어찌 보면 요리의 일환이니… 그나저나 나와 비슷한 식견을 가진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연단술은 연금술과 비슷하고, 때문에 화학에도 조예가 생길 수밖에.
다만, 진천희가 기대하던 형태의 현대 화학적 지식과는 많이 다르다.
‘쓰읍, 아쉽구만.’
그래도 연구각에 집어넣어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라가다 보면 뭔가 쓸 만한 게 나올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벌써 백린의각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고.
“집이다아아아!”
진천희는 백린의각의 정문을 지나며 말했다.
헌대, 어째 연원왕은 들어가지 않는다.
“음?”
“대체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
“백린의각인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생각해 보면 호력과 양력도 백린의각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런 경악한 반응이었다.
쟈시도 마찬가지.
‘또 내가 안 보이는 뭔가가 보이는 모양이지.’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허락인가. 내부의 인간이 ‘허락’을 하였으니 별수 없군.”
연원왕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 기세 당당하던 놈이 백린의각 정문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는지 뭔가 시무룩해진다.
마치 기라도 눌린 듯한 모습.
녹림왕이라고는 상상이 안 될 지경이다.
컹!
황구는 진천희 주변을 맴돌더니 의각 안으로 먼저 쌩하고 들어갔다.
삐익!
뇌진 역시 자식들을 보러 뒤도 안 돌아보고 날아갔다.
사마현은 그런 형과 연원왕이 재미있는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저벅.
연원왕은 힘겹게 정문 안으로 들어온다.
마치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
하지만 진천희는 그러거나 말거나 성큼성큼 앞서가서 그를 주술당으로 안내한다.
연구각에 바로 넣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의각의 ‘동료 인간’을 소개시켜 줘야 하지 않나.
마침 쟈시와 호력, 양력이 진법 안에서 뭔가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사람 주먹 두 개 정도 합친 크기의 물고기 석상.
그 석상에 세 ‘사람’은 뭔가 주술적 조치를 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보통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주력의 떨림.
이윽고 쟈시가 진천희를 알아본다.
“오오, 왔는가. 이번 일은 꽤 걸렸군그래.”
“어찌저찌 잘 끝내고 왔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이 ‘사람’은 백린의각에 함께할 새 얼굴인데요…….”
그제야 일에 매진하던 양력과 호력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세상에, 선생님. 선생님까지 잡히시다니!”
“연원왕. 너도 결국 이 지독한 놈에게 잡혔구나!”
탄식을 하는 ‘사람’들.
진천희는 급히 손을 들어 제지한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잡아 온 게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인재를 영입한 것이고, 이 연원왕께서도 자발적으로 본 각의 힘이 되어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연원왕이 말했다.
“대체 몇 년째 쫓아다니는지 모르겠다.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놈이 이제는 황천(黃泉)의 하늘도 갈라버리기에 포기했다.”
“황천의 하늘?!”
“설마 저 거머ㄹ…… 아니, 진 선생을 치우고자 황천의 하늘까지 인세에 강림시킨 겁니까?!”
저세상에 대체 무슨 하늘이 있는 걸까.
이 요괴 놈들은 인과율 머시기 때문에 말해 주지도 않을 거면서 자기들끼리 기함한다.
연원왕이 말했다.
“내가 부른 게 아니다. 정확히는 내 친우가 부른 거지. 그걸 개박살 내면서 날 만나러 오더라.”
“…….”
호력과 양력은 미친놈을 보는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본다.
심지어 쟈시조차도 진천희를 똑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뭐, 왜요. 왜!?”
아니, 한 명의 인재라도 소중히 여기는 자체는 오히려 귀감 아닌가!
뼛속까지 교수인 자는 그리 생각했다.
“황천의 하늘이면 수천의 망령들이 쏟아졌을 텐데 거기서 살아남은 건 둘째 치고 미치지도 않았군.”
연원왕이 말했다.
“말세의 망령들이지. 그런데도 못 죽이더군.”
“…….”
이제는 마치 바퀴벌레를 보듯 진 교수를 바라본다.
호력이 말했다.
“후우, 나중에는 저승길도 쫓아오겠군그래.”
“……그럴까 무섭더군.”
대체 왜 저리 두려워하는 걸까.
역시 아직 연구의 즐거움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게 틀림없다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주술의 즐거움이야 쟈시가 가르쳐줘야 할 일이니 자신이 어찌할 수 없다고는 해도.
이 원숭이에게 화학의 즐거움 정도는 자신이 가르쳐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 인사했으니 이제 연구당으로 향합시다.”
“…….”
진천희에게 끌려가는 연원왕의 뒷모습을 보며 양력과 호력은 작게 탄식했다.
“우리는 그래도 인간 주술사 밑에 배정되었는데……. 심지어 저자는 직속인가.”
“……과연 연원왕. 대우가 다르군요.”
쟈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연구당이 밥은 가장 잘 주는 곳이니 그게 위안이 되기를.”
그렇게 세 주술사는 아직 죽지도 않은 연원왕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묵념.
* * *
연원왕을 연구당에 수납했다.
유호는 없는 걸 보면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간 모양.
사마현은 혜아를 보러 간다며 훌쩍 뛰어나갔고.
진천희는 곧바로 탕에 들어가 빠르게 몸을 씻고는 의관 정제를 하고 스승님이신 제갈린을 만나러 갔다.
“들어오거라.”
스승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재 안에는 진한 다향이 가득 찼다.
희미하게 약초 향도 나는 것을 보니 스승님 특제 극양 차인 모양.
양기가 강한 약재를 넣고 펄펄 끓인 것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독이 될 수도 있겠으나 스승님에게는 그저 좋은 차다.
스승, 제갈린은 빙긋 웃으며 진천희를 반겨 주었다.
“왔구나.”
스승님 뒤에는 유호도 있었다.
‘어째 연구당에 없더니만 스승님을 보좌하러 간 거구나.’
연원왕이랑은 좀 이따 만나면 되겠지.
진천희가 예를 표하며 말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보고서를 건넸다.
얇은 보고서에는 진천희가 그동안 벌였던 행적들이 적혀 있었다.
대단한 글은 없었다.
귀곡문을 하오문에 편입시키기로 했다는 것.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모양새이고.
그쪽에서 쓸 만한 인재들은 백린의각 주술당에 편입시키고자 한다는 이야기들.
빠르게 보고서를 다 읽은 제갈린이 말했다.
“좋구나. 그래, 인선(人仙)과 싸워본 경험은 어떠했느냐?”
“……인선이요?”
제자의 눈이 살짝 커진다.
세상에 대해 다 아는 것 같아도 이런 건 무지하다.
스승은 그게 즐거워 턱을 괴며 제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천지인. 신선을 나누는 경계란다. 천선이 아무래도 가장 높은 직급의 신선이지. 지선은 중간 관리자급이고. 인선은 아래에서 뛰는 이들이다.”
“그런 것도 있었군요.”
“이제는 거의 잊히다시피 한 이야기지. 참고로 시해선은 급으로 보면 지선과 동등하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그런 것이지 실제는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무시무시하더라고요. 진법이 없었다면 이길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진법은 유용하게 사용하거라.”
“네, 스승님.”
“앉거라.”
제자는 곧바로 스승님 앞에 공손히 앉는다.
유호는 그런 진천희 앞에도 차를 따른다.
제갈린이 마시는 것과는 다른 차.
‘내가 오는 시간을 계산해서 미리 끓여 놓은 건가.’
맛을 보니 딱 좋게 우려졌다.
신기한 일이지만 백린의각의 총관이 이상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진천희는 다향을 즐긴다.
제갈린이 말했다.
“그래. 네가 귀곡문에 다녀오는 동안 강소성 무림 대회(feat. 올림픽)은 착착 진행 중이란다. 이 스승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다니 참 제자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구나.”
“죄송합니다. 스승님. 상황이 상황인지라…….”
“뭐어, 그래도 제법 성과가 있었다니 책하지는 않으마. 이제 네가 강소성 무림 대회를 제대로 마무리 짓도록 하거라.”
“네!”
진천희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그런 제자를 스승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의 뒤에서 유호가 불안한 눈으로 제갈린을 바라본다.
[주인님, 말하지 않으실 겁니까?]과거 제갈세가가 있던 터에서 발견한 것.
[아직은 때가 아니네. 이 아이가 그것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는 시험해 봐야겠지.] [엄격하시군요.]제갈린은 작게 웃었다.
[글쎄. 모르겠네.] [흠?] [어떤 시험을 해도 끝까지 아득바득 기어 올라오는 놈이니 말일세.] [하지만 주인님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꽤 엄격하게 도련놈을 시험하겠지요.] [그래. 약하다면 죽을 수도 있으니.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봐야지.]대체 제갈린 안의 진천희는 무엇일까.
시험을 통과하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이대로 통과하지 않고 진실을 모르길 바라는 건지.
‘인간은 어렵군.’
허나, 진천희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불안감이 느껴졌다.
‘주인님께서도 깜빡 잊으신 모양이시지만 도련놈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요?’
미친놈이다.
아니, 그냥 미친놈이 아니다.
천하제일 일광이다.
미친놈이 미친 눈을 뜨고 미친 웃음을 지었다.
“스승님! 이 제자, 강호 평화를 위해 힘내 보겠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 #가보자고!”
“…….”
‘진짜 이딴 놈을 상대로 자격 시험을 볼 생각이십니까?’
* * *
무림맹주는 포고문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두툼하게 쌓인 포고문들은 하나같이 다른 내용이 적혀 있지만, 같은 곳에서 온 것이었다.
[천하제일 강소성 무림 대회!]“아……. 결국 하는군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책사 독고선.
무림맹주도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대체 일광은 제정신인가? 이런 대회를 열다니……? 대체… 대체…….”
“맹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건… 막을 수 없습니다.”
“알고 있네. 강소성주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니……. 본 맹이 진행하던 용봉지회와는 성격이 아주 다르니까.”
여러 개의 포고문 중 하나를 맹주가 들어서 쭉 읽어 본다.
[천하제일 경신보법의 주인은 누구인가!]장애물 달리기.
근거리 달리기.
장거리 달리기.
천하에서 가장 빠른 무인을 결정한다!
맹주는 또 다른 포고문을 본다.
[천하제일 괴력의 소유자는 누구일까!?]철환 던지기.
철봉 들어올리기.
팔씨름.
힘 하나는 자신 있다! 천하제일 괴력을 정한다!
“뭔가… 뭔가……. 강호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회들이군그래.”
“관에서 괜찮은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가끔 돈을 주고 하는 대회들이 있긴 합니다만 이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요.”
독고선이 다른 포고문을 꺼낸다.
“비무대회도 평범하게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여러 분야를 정해 따로 상을 준다고 하니 기이하긴 합니다.”
“대회가 있다면 마땅히 상도 있을 터. 승리자는 무엇을 받게 되나.”
“백린의각표 영약과 호환성이 좋은 신공절학이라고 합니다.”
“호환성……?”
“아… 그러니까.”
독고선이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무공을 익히면 최악의 경우 이종진기의 충돌, 거기까지는 안 간다고 해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평생 불편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걱정이 없는 무공이라고 합니다. 그걸 젊은 무인들은 ‘호환성’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말을 먼저 퍼뜨린 자는 일광 진천희로 추정됩니다.”
“허허……. 내가 늙은 것인가, 세상이 변한 것인가. 그래서 파급력은 어떻던가?”
독고선이 한숨을 쉬었다.
“폭발적입니다. 심지어 사도련에서도 다들 나서려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허허허……. 백린 그자가 이런 계책을 꺼내다니……. 어쩔 수 없군. 무림맹에 속한 이들에게 참가를 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야겠네.”
독고선이 예를 표한다.
“알겠습니다. 즉시 그리하지요.”
“허허, 대체 강호가 어찌 돌아갈는지…….”
“참, 마교에서도 참전한다 합니다.”
“뭣?!”
이것도 일광 놈의 계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