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3
제 113화
거리에는 어둠이 깔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적막했다.
항주가 유흥의 도시지만 밤을 넘어 새벽이 가까우면 역시 조용해졌다.
한국도 새벽 4시쯤이 되면 홍대든 강남이든 조용해지는 것과 같았다.
‘영원히 떠들 수는 없는 법이지. 객잔 사람들도 잠은 자야 할 거고.’
인시(寅時 오전 3시~5시), 진천희는 이른 시간에 눈을 떠서 운기조식을 들어갔다.
전날 그렇게 폭식을 했는데도 위장은 편안하다.
‘역시 젊은 게 좋은 거야.’
맛있는 음식 덕분일까. 벌써 다시 배가 고파진다.
‘아침은 난백찜으로 할까.’
한국의 계란찜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계란 흰자와 두부를 사용해 푹 찐다는 거다.
여기에 간장을 얹어서 먹어도 일품이고, 라유를 얹어 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동파육을 또 조지는 거지.’
입에서 침이 고인다.
삼 일, 아니 이제 이틀 후면 이 집 동파육과도 안녕이다.
몹시 아쉬운 일이었다.
잡념을 조금씩 없애면서 호흡을 정돈해 나간다.
정순한 오행의 기가 진천희의 단전을 타고 천천히 휘돌았다.
늘 하던 주천이었다.
한 바퀴를 끝내고 이번에는 기감을 천천히 넓혀 나갔다.
산과 달리 도시는 많은 사람들의 기감이 느껴진다.
복잡한 가운데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는 활력이 진천희의 기감에 마구 잡혔다.
‘이것도 수행이지.’
싸움은 산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도시야말로 가장 싸울 일이 많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많으면 은원도 많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때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안 돼요! 제발!”
“악! 으아악!”
진천희가 눈을 번쩍 떴다.
누군가가 맞는 소리다. 그것도 어린아이의 목소리.
만약 진천희가 기감을 넓히지 않았으면 들리지 않았을 작은 소리.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이게 강호지. 지구도 무법 지대인데 여기라고 다르겠어.”
진천희가 몸을 일으키자 황구도 함께 몸을 일으켰다.
킁!
주인의 움직임을 눈치챈 모양이다.
진천희는 유호가 준 법구를 손목에 감으며 황구에게 말했다.
“난 나갈 건데 넌 그냥 쉬지 그래?”
컹! – 주인. 따라간다.
그런 말 할 줄 알았다. 개니까.
진천희는 황구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위험하면 알아서 도망쳐. 알았지?”
크응! – 응.
이건 유호의 법구가 아니어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진천희는 창문을 열어 가볍게 밖으로 나갔다.
4층 전각 꼭대기에서 뛰쳐나간 거니 추락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진천희의 모습은 마치 활강이라도 한 듯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천기미리보를 이용한 덕분이었다.
자존심 높은 남궁가에서 한 수 접어 줄 만큼 제갈가의 천기미리보는 유명했다.
진천희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지붕을 밟으며 걸었다.
제법 낡은 기와를 밟으며 가고 있는데도 아주 미세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기묘한 것은 움직임 또한 변화무쌍해서 진천희가 어디를 향해 움직이는지 예측이 어렵다는 것.
‘객잔과 가까웠는데…….’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들을 내려다보며 진천희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리의 주인공이 보였다.
웬 근육질 남자 일곱이 보였던 것. 그중 네 명은 칼을 뽑아 들고 소녀, 소년 4명의 목에 각각 칼날을 대고 있었고 남은 둘이 소년을 패고 있었다.
가장 덩치가 있는 한 명은 낡은 의자에 앉아서 연초를 뻑뻑 피우며 소년이 맞고 있는 걸 킬킬거리며 구경했다.
‘와우, 그린 듯한 악당이네.’
그것도 주인공 주먹에 몇 마디도 못 하고 스러질 엑스트라들이다.
문제는 진천희가 바로 개입하기에는 인질로 잡혀 있는 아이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
꼴에 내공의 끝자락이나마 익힌 듯하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크크큭. 야, 사마현! 그러게 진즉에 내 밑으로 들어왔으면 이런 일 없잖냐. 알량한 무공 믿고 누가 그리 깝치라고 했어?”
사내 둘에게 맞고 있던 소년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소년은 피가래를 뱉으며 말했다.
“킥킥킥… 요즘 항주의 기루가 다 죽었나. 이런 애들한테 오입질하려는 놈이 다 있나 봐? 제사를 개집에서 지내나. 족보가 참 대단해~”
소년이 도리어 사내를 비웃었다. 금속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기묘한 웃음 소리였다.
사내의 얼굴이 구겨졌다.
“덜 맞아서 그런가, 아직도 기운이 있네. 오냐… 내 그래도 돌아가신 석 노사의 면을 봐서 봐주려 했더니.”
빠악!
사내가 발길질을 하자 소년의 몸이 쓰레기처럼 날아가 굴렀다.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아가야, 다 그렇게 크는 거야. 나는 안 그랬는 줄 아냐? 어차피 위에서 시키면 우리 같은 놈들은 따라야 해. 그걸 모르니까 아직도 이렇게 고생하는 거다.”
퍽, 퍽, 퍽!
장정들이 어린아이 하나를 패는 건 엄청난 광경이었다.
“얼굴은 때리지 마. 부잣집 노인네분이 저놈 얼굴을 무척 원하시더라고.”
장정들은 그 말에 소년의 얼굴을 제외한 다른 부분을 구타했다.
“긴말하지 말자. 선택해. 이대로 내 밑으로 들어올 거냐, 아니면 여기서 뒤질 테냐? 어제 보니 은자도 받고 쏠쏠하더라?”
진천희는 그 말에 한숨이 나왔다.
‘악당이라 그런지 내가 준 은자도 다 파악한 모양이네.’
기이한 일이었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 정작 소년은 맞으면서 점점 더 광소했다.
마치 생을 포기하려는 의식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이야아, 개들 속에서 사람 혼자 살려니 죽을 맛이네. 하하하, 얘들아, 어때? 같이 죽을래~? 더러운 꼴 보면서 이 진창에 구르느니…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의 입에서 새카만 핏물이 흘러나왔다.
“오, 오라버니…….”
“형……!”
아이들은 소년을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더러운 시궁창. 자신들은 시궁쥐들이었다.
거둬 준 석 노사 밑에서 악극을 하며 구걸하는 법을 배웠으나 바뀌는 건 없었다.
아이들은 쓸모가 많았다.
석 노사가 노환으로 명을 달리한 후, 더 이상 아이들을 지켜 줄 건 없었다.
“허? 이 새끼 보소. 아직도 그럴 기운이 있어? 독하네. 어쩔 수 없군. 얘들아, 조… 으…… 으어어어!”
왈패 두목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황구였다.
황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접근해 놈의 가랑이를 물어뜯었다.
왕! – 주인 명령. 한다! 피! 전투!
황구는 강호에 강림한 불알 파괴자였다.
놈들이 일제히 황구를 보는 순간, 그걸 신호로 진천희는 놈들 사이에 떨어져 내렸다.
단번에 두 놈의 손목을 붙잡아 반대로 꺾었다.
“으아아악!”
우드득!
힘 조절이 조금 미숙했나.
평소라면 단순 탈구로 끝났을 것이 이번에는 근육이 뒤틀리는 압력에 허연 뼈가 뛰쳐나왔다.
개방성 탈구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상대로 기루에 오라고 칼질하는 놈들 상대로 봐줄 생각은 없었다.
“웬 놈이냐!”
“알면 뭐 하게!”
빠박!
진천희는 남은 한 놈의 무릎을 힘껏 걷어찼다.
슬개골이 박살나는 감촉이 느껴진다.
남은 하나는 옷을 잡아 당겨 균형을 잃게 하고는 목젖을 때렸다.
인질로 잡고 있던 아이들이 풀려나자 소년, 사마현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구타하고 있는 어른을 향해 덤벼들었다.
사마현의 눈동자가 달 아래에서 차갑게 빛났다.
소년의 손이 적의 얼굴을 덮었다.
우드득-
얼굴 가죽이 뜯겨져 나갔다.
“크아아악!”
얼굴뼈도 아니고 가죽을 벗겨 내는 기행에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사마현이 말했다.
“은자 준 그 형이네. 이 진창 속에 그래도 사람이 있었잖아~?”
엄청난 악력. 거기다가 상대의 얼굴 가죽을 뜯어 버리는 기이한 공격법.
진천희는 그걸 보며 깨달았다.
‘하오…문주셨어요?’
사마현은 더 이상 인질이 없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어른 둘을 물리쳤다.
상당히 잔혹한 손속이 이어졌다.
* * *
싸움이 끝났다.
사마현은 가쁜 숨을 내쉬더니 이윽고 허리를 폈다.
소년의 손은 피로 흥건했다.
소년은 연극처럼 히죽 웃는 얼굴로 대충 피를 털었다.
떨리는 감각도 미약한 죄책감도 없었다.
닭의 목을 꺾었다고 해도 같은 표정을 지었을 터였다.
적의 얼굴 가죽을 뜯는다.
그 방식이 지독하게 잔인하였다. 하지만 만약 사마현이 그게 잔인하다고 손속에 자비를 두었다면 아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강호에는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구나.’
진천희는 흰 옷을 입은 정파인들을 보았다.
흰 비단이 햇빛을 받아 눈처럼 반짝였다.
반대로 검은 옷을 입은 마교인도 보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암(暗)이라 칭하며 교주의 명을 받고 교리를 행했다.
사파인 하오문 역시 보았다.
무화와 무월을 치료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여기.
정파도, 사파도, 마교도 아닌 그 어딘가의 진창에 소년이 있었다.
미래의 하오문주, 사마현.
아직은 십 대 초반 정도의 아이다.
“괜찮니?”
진천희의 말에 사마현이 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형~ 우리가 돈을 요즘 잘 벌었더니 철두파 놈들이 끼어든 거지. 우리 애들이 미색이 좋고, 저도 좀 예쁘장하니까 겸사겸사 매춘도 시키려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사마현은 웃으며 흔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울고 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다 다독이더니 진천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 그때 은자는 삼보일배할 만큼 고맙고~ 우리 애들 살려 준 것도 감사한데. 저희 같은 놈들한테 말려들어 봐야 형 좋을 거 아무것도 없으요~”
사마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었다.
“하는 양을 보니 어디 명문대파 귀한 자식 같은데 괜히 구설수 생기면 미안하니까. 다음에도 은자나 많이 부탁합니당~ 얘들아, 인사나 해라.”
사마현의 손짓에 아이들이 포권을 했다.
“고맙습니다. 대협!”
“정말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 쟤는 벙어리라 말 못 해요~ 포권으로 알아들으시고. 그럼 이만!”
진천희는 그런 사마현의 태도에 고민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보았던 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여하륜이 항주에서 하오문주인 사마현과 조우했을 때의 대사였다.
-호오, 마교한테도 정의가 있었어? 거 신통방통하네. 그렇게 잘난 신이면 대체 세상은 왜 이 모양이래~?
-세상은 지~옥이고, 인간은 버러지 아닌가? 태어남으로써 우리는 이유 없는 형벌을 받고, 죽음만이 구원인 곳에서 신이 있다 논하는 게 신기해서 그래.
-저기, 천마야. 그 신이라는 놈이 죽은 내 친인을 살려 줄 수 있니?
-너~무 아파해서 내 손으로 죽여야 했거든. 그러니 말해 봐 봐. 그 지옥 속에서 죽은 아이를 살려 줄 수 있어?
-못하는~구나? 하긴 것도 그래. 하하. 신은 멀리 있어서 목소리가 잘 안 닿나 보다. 그러니까 보내 줄게. 저승에 가서 네가 전해 주면 되겠다.
-너는 천마이고 네가 믿는 신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네가 자알~ 부탁하면 들어주시겠지~?
하오문주는 기이한 사내였다.
살육을 즐겼고, 살육 과정에서 생긴 고통 역시 즐겼다.
머리도 좋았고 무력도 있었다. 하지만 기괴하게 뒤틀린 광증이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의 얼굴이 진짜 얼굴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고, 그의 목소리도 진짜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혈겁을 일으키는 걸 좋아했다.
그저 세상을 불태우고 그 속에서 춤을 추기 위해 사는 자 같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