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47
제 1147화
사신의 총아(寵兒)가 당도하자.
어둠 속에서 백단향이 훅하고 밀려왔다.
망자를 위로하는 향이었다.
“와, 너 언제 온 거야?”
“지금 막. 음, 저번 이후 오랜만인가?”
하륜이에게서는 희미한 밤의 향기가 났다.
차갑고 어두운 향.
진천희는 이 녀석이 방금 전까지 사람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왔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는 모르는 척 볶음밥을 덜었다.
“잘됐다. 너도 먹어라. 넉넉하게 만들었거든.”
“…….”
여하륜은 답하지 않는다.
대신 동생들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우들은 나한테 인사가 없나?”
진천희도 인사하라는 듯 눈빛을 쏘자 천우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둘째 형님.”
누구와도 서신을 나누는 게 가능한 게 바로 천우.
하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보는 것은 오랜만이군.”
사마현도 말했다.
“이야~ 깜짝 놀라서 그랬지. 둘째 형님은 잘 지내셨수?”
“음.”
골고루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천우와 달리 사마현과 여하륜은 상극이다.
원작에서도 서로가 최대의 숙적이었던 만큼 더욱 그랬다.
이 마지못한 인사에도 진천희는 혼자 감동했다.
“아아. 의동생들이 이렇게 타지에서 서로 인사 나누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구나. 이 형아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눈가가 시큰거려요. 그래. 어서 앉아라. 밥도 먹자고.”
묘하게 연륜이 느껴지는 말.
‘이런 말은 보통 나이 지긋하신 장로님이나 하지 않나?’ 싶었지만 세 사람 모두 그 말은 자제했다.
진천희는 재빠르게 여하륜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는 침을 꺼내서 미각도 살려냈다.
그리고 식사.
“…….”
조용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형제들은 한 마디도 안 하고 각자의 밥만 먹고 있다.
진천희가 원하는 건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 보려고 운을 띄워 본다.
“와, 이 녀석은 고양이 주제에 밥을 먹네.”
말하는 진천희도 당연히 얘가 사람 밥도 먹는 건 안다.
영물이니까.
하지만 이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무 말이나 해야 했다.
“요즘은 입맛만 높아져서 그렇더군. 최고급 육포가 아니면 거들떠도 안 보게 되었어.”
흑설의 입맛에 혁혁한 공을 올린 진천희가 말했다.
“그렇구먼.”
다른 사람 일이라는 듯이 가증스럽게 답하고는 이렇게 물었다.
“일카나는?”
“다른 일 중이다. 그리고 소교주는 이제 나 외에 하나뿐이야.”
둘이라고?
그 말에는 다른 의형제들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천우가 물었다.
“일월신교의 내부 정리가 끝난 겁니까?”
“아직 안 끝났다. 이제 하나 남은 녀석과 나, 둘 중 하나가 남으면 되는 일이야. 허나 전처럼 귀계를 사용하는 것은 엄금되어 있다. 그래도 곧 결판이 나겠지.”
드물게도 여하륜은 평소보다 길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그는 시선을 돌려 우묵한 눈으로 천우를 바라본다.
“셋째 너는 무림맹의 입장에서 질문을 하는 건가.”
천우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요.”
“뭐, 그리 묻는다면 답하지 못할 것도 없지. 본 교는 이미 내부 정리가 끝났다. 단 두 명의 소교주. 이것 역시 본 교 의식의 일부이지. 남은 하나가 차대 교주가 된다.”
“잠시만, 새 교주요? 그렇다는 것은…….”
여하륜은 지극히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래. 차대 교주가 결정되는 순간, 천마께서 승천을 하실 것이다.”
분명 일월신교로서 천마에 대한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할진대.
기묘하게도 여하륜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존경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불러올 파장은 결코 사무적이지 않다.
“!”
승천?
진천희의 눈이 커진다.
‘천마는 승천을 안 하려던 게 아니었나.’
그래서 계속 미루고 또 미뤄 오지 않았던가.
천우가 묻는다.
“일월신교의 승천 의식이 진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까?”
“셋째. 너는 본 교의 승천 의식에 대해서 뭔가 아는 모양이군.”
살려둬야 하나?
저쪽도 형의 동생이다. 형이 가만히 둘 리는 없다.
허나, 최소한의 입막음, 또는 맹에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캐내야 하지 않을까?
여하륜의 주변으로 살의가 퍼진다.
구구구구구-
그 모습에 천우가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팔을 들어 올렸다.
유능제강의 태극이 깃든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진천희가 끼어든다.
크헤헤헤헷, 괴이한 웃음을 흘리면서.
“이 형아는 감동이다…….”
두 사람의 살기 사이로 들어가 느물거리는 게 아닌가?
그 한마디에 살기 어린 분위기가 삽시간에 이상해졌다.
‘형이 또 무슨 소리를……?’
진천희가 말했다.
“우리 하륜이가 이렇게 말을 길게, 자세히 하게 되다니. 일카나 씨 덕분인가? 나중에 꼭 보답을 해 드려야겠어.”
“음…. 형. 지금 일월신교의 승천 의식을 한다는데 그건 위험한 거라고요. 둘째 형이 사회적인 사람 됐다고 좋아하실 때가 아니에요.”
천우의 말에 진천희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그걸 우리가 뭐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하겠다는데 뭘. 그걸로 양민에게 피해만 안 오면 되지. 안 그래?”
양민우선주의.
진천희의 절대적인 기준.
“형. 혈사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일전 비동 때처럼요.”
“그 정도는 어떻게든 막아 봐야지. 스승님도 계시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 이 형이 이제는 현경이라고!”
그 말에 천우는 그만 실없이 웃고 말았다.
“그러네요.”
그리 말하며 저도 모르게 태극을 거두었다.
음양의 묘리로 뒤섞여 있던 장심이 부드럽게 물러난다.
“그리고 하륜이가 다음 천마가 될 테니 괜찮아질 거야. 그렇지?”
믿고 있다는 저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니, 어이가 없어서.
여하륜 역시 살기를 완전히 거두었다.
왠지 모든 게 다 바보같이 느껴졌다.
“물론이다.”
하륜이가 즉답했다.
기묘하다.
이렇게 쉽게 끝날 분위기인가.
만약 원래라면 누구 하나는 죽을 때까지 싸웠어야 했다.
그게 무림의 오래된 법도니까.
하지만 이상한 웃음 한 번으로 날려버린다.
‘무엇보다…….’
이 형은 자신이 천마가 된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단순히 믿는다의 수준이 아니었다.
‘안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여하륜은 손으로 턱을 쓸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히 헛소리다.
만약 미래를 전부 알고 있다면 형이 그렇게 다치고 살 리가 없겠지.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이 사람을 만나며 느껴온 희미한 육감이 있었다.
“…….”
여하륜이 한쪽 이마를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는데 사마현이 슬쩍 끼어들었다.
“이야~ 둘째 형은 여차하면 마교도 순식간에 바꿔버리려는 모양이네.”
“막내. 너는 형과 하오문 내부 원칙, 어느 쪽이 우선이지?”
“나는 당연히 우리 큰형님이 먼저지만요~”
“결국 원칙이라는 것도 당대 천마가 만드는 법. 일월의 교리를 바탕으로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가기 마련이지. 그것을 나는 바로 세울 것이다.”
“자자, 그 이야기는 이걸로 끝!”
이야기가 너무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
진천희가 보기에 이 녀석들의 본질은 결국 강호인이다.
개개인은 괜찮으나, 모였을 때 화약고가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애써 분위기를 흩어두었는데 다시 진중하게 가버리면 아까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겠지.
‘천마의 등선부터 정보가 너무 많군.’
머리가 복잡해져 왔지만 일단 지금 더 이야기해 봐야 의미가 없는 일.
천마는 등선을 할 것이고, 하륜이는…….
‘순리대로 가겠지.’
다만 원작 지존천마 때보다는 덜 상처받고, 조금은 더 둥근 면이 있고, 그래도 주변에 사람이 있는 형태의 여하륜.
그거면 된 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진천희가 말했다.
“그래서 하륜이 너는 여기 무슨 일이야?”
“맡은 일이 있다. 혈선교의 새로운 십천군을 찾아서 제거하는 일이지. 추적하는 와중 형이 보여서 잠시 들른 것뿐.”
“새로운 십천군?”
‘천마님 등선만큼이나 핫한 소식이군. 이거.’
여하륜이 말했다.
“본 교가 파악한 바로는, 현재 십천군 중 죽은 이는 넷이었다.”
“요천군, 동천군, 원천군, 금천군 말하는 거지?”
“그래. 나머지는 바퀴벌레처럼 죽여도 죽지 않는 놈들이지. 그리고 공석인 금천군의 자리에 새로운 자가 들어섰다고 하더군. 놈을 처리하는 임무다.”
“으음…. 새로운 금천군이라…….”
여하륜이 말을 이었다.
“삼절추호. 그녀를 추적하면 새 금천군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새로운 금천군이 옛 금천군이었던 동생을 해하려고 한다면 막을 사람은 바로 언니인 삼절추호일 테니까.
“호오,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삼절추호를 찾으러 가는 중인데 어째 시기가 맞아떨어지네.”
그렇게 말했지만 육감이 되물었다.
‘단순히 우연일까?’
진천희는 턱을 괴고는 한참 생각에 잠긴다.
“…….”
푸른 눈이 무엇에 다다랐는지는 형제들은 알 수 없다.
허나,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은 후.
여하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맛있었다. 형. 다음에 다시 보지.”
그러고는 훌쩍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거……. 무공의 일종이겠죠?”
“희한한 은신술이네. 전혀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애옹.
허나, 흑설묘는 가지 않고 진천희의 발에 얼굴을 부빈다.
“간식 더 달라는 건가?”
그때, 흰 손이 어둠 속에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흑설묘 뒷목을 잡아챘다.
“임무 중이다. 흑설. 자중해라.”
키야아아아악! 샤아아악!
영물님께서 대로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할퀴었다.’
분명 이건 할퀴든 물어뜯든 했을 거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어찌 되었건 여하륜과 흑설묘는 그렇게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천희가 등을 돌리며 부드럽게 황구를 쓸었다.
“……냄새는 둘 다 기억해 뒀니?”
컹컹!
그 모습에 두 아우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여차하면 추적하려고?’
‘빈틈이 없네요. 형.’
가장 무서운 사람은 따로 있다.
그때 황구가 말했다.
낑!
“음? 냄새 자취가 완전히 사라졌어? 하긴, 그럴 수도 있지. 둘이라면 내가 모르는 걸 쓰고 있을지도. 천리추종 정도가 아니면 힘들려나.”
“…….”
문득 과거 스승님이 했던 생각과 똑같은 결론에 다다른 제자였다.
‘역시 제대로 위치를 파악하려면 천리추종향 정도는 묻혀 놔야 하나.’
스승만큼이나 제자도 걱정하는 방식이 비뚤어진 데가 있다.
원래라면 놔두겠지만, 천마의 승천.
그것이 의미하는 게 말처럼 평온하지만은 않으리라.
‘그래도 여차하면 원향반을 쓰면 되겠지. 하륜이가 은신 주술을 익힌 것은 아닐 거고.’
원작에서도 그런 장면은 없었으니, 추적하고자 하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거기까지 다다르는데 고작해야 눈 한 번 깜빡일 사이.
진천희가 뒤를 돌아보았다.
“뭐 해? 잘 준비하자.”
천우는 새삼 깨달았다.
형은 저렇게 바보처럼 웃고 있지만, 사실 심계가 깊기로 유명한 인간이라는 것을.
애초에.
그는 무공을 해체하고.
강호를 상대로 싸우는 자였다.
* * *
삼 일 후.
드디어 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일행은 곧바로 배에 올라 황하 줄기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배는 앞으로 수시로 정차한다고 하네~?”
사마현의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하는 장강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거든. 애초에 수심 자체가 깊고 수량이 많아 제국을 풍족하게 만드는 젖줄이지만, 대신 좀 변덕스러워.”
중간에 갑자기 말라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곳이나, 급류가 너무 심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지역.
거기다 갑자기 좁아지는 지역까지.
황하는 변덕스럽다.
‘지구 황하도 이러려나.’
가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다만 아무튼 장강처럼 배를 타고 한 번에 끝에서 끝까지 가는 건 불가하다.
천우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황하강의 수적들은 약간 산적 느낌도 강하죠.”
강에서 배를 타고 수적질하는 게 아니라 강 근처에서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배에 갈고리를 걸고 당겨 정박시켜 버리기 때문.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힘센 노잡이라고 해도 배가 쭉 끌려갈 수밖에 없다.
상선을 향해 빠른 배를 가져다 대고 약탈을 하는 장강 수적과는 퍽이나 다른 방식.
그러다 보니.
장강황하수로채, 혹은 반대로 황하장강수로채라고 부르는 일종의 연합체이지만.
실제로는 황하 수적들과 장강 수적들은 성향이 극과 극이고.
‘완전히 통합되지도 않지.’
그리고 지금.
진천희는 십대상단 중 하나.
일금상단(一金商團)의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배가 한 척이 아니다.
여러 척이 흡사 함대 같은 대형으로 가고 있는 것.
“큰 배 세 척. 그리고 작은 배 여섯 척이 같이 가는 형태네요.”
작은 배가 큰 배를 호위하듯 도열해서 가는 형태로.
황하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큰 배도 상대적으로 작은 배보다 크다고 할 뿐이지, 장강의 기준으로 중간 크기의 선함.
둥둥둥-
큰 배에서 북을 치면 작은 배에서 깃발을 올려 대열을 조절한다.
북소리 신호를 따라서 돛이 접히고 펴지는데 그 모습이 그야말로 군대를 방불케 했다.
“허이야! 허이야!”
“어기여차! 어기여차!”
구호에 따라서 선원들이 움직인다.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을 이용해 북소리와 깃발 신호들을 외우고 있었다.
“황하강은 처음 타 보는데……. 신기하네. 확실히 장강과는 달라.”
사마현이 물었다.
“예전에는 안 탄 거야? 산서성을 갈 때라든가.”
“죄다 육로로 왔었거든.”
사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하강은 원래 이래. 형~ 강폭이 큰 곳이 많지 않거든. 작은 배에 호위 무사들이 타고 중간 배에 짐과 선객이 타지.”
“그렇구먼.”
그렇게 가고 있을 때.
와아아아아!
사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인승 배들이 나타나기 무섭게 갈고리들이 일제히 투척되더니 갑판에 꽂히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일금상단의 배인가! 가진 것을 전부 내놓거라!”
수적의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외쳤다.
그 모습에 사마현이 놀라서 눈이 커졌다.
“아니…. 다짜고짜 다 내놓으라고? 미친놈들인가?”
산적과 수적.
둘 다 도적이긴 하지만 물건 전부 놓고 가라고 하는 경우는 강호에서 의외로 드물다.
상대도 호위대가 있다 보니 진짜로 부딪치게 되면 양쪽 모두 큰 피해를 면치 못하기 때문.
그렇기에 통행료라는 것을 받고 보내주는 것이 관례라 할 수 있었다.
사마현의 말에 천우가 물었다.
“막내님, 왜 그러는데?”
존댓말과 반말이 묘하게 섞여 있다.
원래부터 저 형이 그렇다.
사마현이 말했다.
“만약 물건을 전부 털면 해당 세력과 원수 사이가 되는데 그러면 토벌대가 오거든.”
“뇌물 주고 관군을 데려오는 건가?”
“아니. 기왕 뇌물 줄 거면 관군을 왜 줘. 강호인한테 쓰지.”
“……!”
천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