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6
제 116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수술 중 마비의 위험성인가.’
1순위 위험이다.
사람들이 디스크 엑스레이 사진 같은 것을 볼 때 흔히 착각하는 게 척추가 한 방향으로 휘어 있을 거라는 거다.
사람의 척추는 별의별 방향으로 휘어진다.
옆으로 휘어지고, 휘어지다가 꺾이고, 스크X바처럼 휘기도 한다.
이걸 고정하는 것을 어찌 보면 나무를 지지하듯 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갈빗대가 송곳처럼 변형이 된 상태(Rib pencilling)고, 척추도 부채꼴로 변형(Scalloping) 중이었어.’
척수강, 신경, 척추 변형.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자칫 실수했다가는 하반신 마비가 오는 수가 있다.
신경을 피해서 해내야 했다.
‘이건 현원전단신공 아니면 못 해먹겠네.’
진기진맥을 통해 철저하게 파악해 내야 했다. 단 하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예후.
신경섬유종은 재발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다. 수술 후에 또 생기는 케이스도 존재한다.
수술로 끝나는 게 아니라 추적해서 계속 검사해야 한다.
그래도 이건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었을 때 이야기.
진천희는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사마혜의 죽음은 곧 많은 이들의 죽음을 뜻했다.
두렵다.
진천희는 입술을 씹었다.
‘유호가 없는 게 아쉽네.’
유호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간호사가 이곳 의각에도 있다.
오행신공을 이용해 피와 오물을 치우고 소독을 하고, 수술 보조를 하는 법 역시 배웠다.
아무래도 의료 최전선이다 보니 실전 경험도 쌓여서 수준도 높았다. 그러나 1호 간호사 유호만큼은 아니었다.
‘그립다. 그리워. 간호사. 내 다용도 생체 수술 보조 로봇……!’
유호가 들었으면 살기를 줄기줄기 날리며 죽고 싶냐고 협박했을 터. 그러나 진천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유호는 쓸모가 많았다.
가장 좋은 건 한 번 들으면 쌍욕을 하더라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점. 그리고 체력이 지치질 않아서 온갖 잡무로도 부려 먹을 수 있다는 점.
허구헌 날 진천희에게 죽인다고 협박하니 부려 먹을 때 양심의 가책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마치 핸드폰을 두고 온 현대인처럼 진천희는 텅 빈 가슴을 부여잡았다.
‘유호가… 유호가 있어야 하는데. 유호야……!’
진천희는 참지 못하고 유호에게 와줄 수 있는지 전서를 날렸다.
그러나 유호에게서 날아온 답변은 정중한 쌍욕이었다.
항주 분타 간호사는 유호의 수제자이니 신뢰할 만하다면서.
진천희는 마음이 아팠다.
‘유호. 내 노예… 무한한 노동력…….’
* * *
모든 준비는 끝나고 수술 날짜가 되었다.
진천희는 분타 의원들을 들들 볶아 철저하게 훈련을 시켰다.
본산만큼 굴렸으나 그들은 매우 열성적이었다.
중간에 체력이 소진되었는지 쓰러지는 상의원들이 있었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방대한 지식들을 밀어 넣느라 생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진천희는 꼰대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수술 전날에는 함께 들어가는 수술의들이 푹 쉬도록 해야 합니다. 피로는 실수로 이어져요. 전날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푹 쉬세요. 중요합니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장기전.
아이의 몸을 지키기 위해 병마와 싸워야 한다.
체력도 정신력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른 아침, 명상을 마치고 진천희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수천 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사마현은 만나지 않았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줄 터.
얼마를 노력했든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압박이 밀려왔다.
진천희는 그래서 안면 근육을 당겨 웃었다.
긴장을 쫓기에는 웃음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수술실에 들어가니 마취가 끝난 사마혜가 누워 있었다.
고통을 담기에는 작은 몸이었다.
‘아이가 아픈 게 제일 싫다.’
어른도 싫지만 아이는 특히나 더 싫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밥 배불리 먹었죠? 차도 진한 거 마셔 두라고 했는데 주방에서 제대로 말 들었나 몰라.”
능글맞게 너스레를 떨며 수술대 앞에 섰다.
진천희가 말했다.
“차근차근 합시다. 차근차근 하면 괜찮을 거예요.”
신기하게도 목소리에 긴장한 기색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자, 그러면 시작하죠.”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집도의로서는 가장 힘든 링이었다.
* * *
신경섬유종증.
갈색이 섞인 반점이 특징이다. 마치 커피 중 카페오레 같다고 해서 ‘Cafe-au-lait macules’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이들의 몸에서 주로 발현되며 단순 피부, 시신경, 척추 신경, 뇌 신경 등에 나타난다.
‘시력 문제나 학습 장애 문제는 다행히 없었지.’
이것만으로도 사마혜에게 있어 천우신조. 그러나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몸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지.’
최대한 빨리.
개흉 이후, 진천희는 잠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의 몸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허혈성 쇼크만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척수가 노출되자 척수액을 빠르게 빨아들이고 종양들을 절제해 나갔다.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손끝의 감각에 모든 것을 집중해 나갔다.
신경종은 크고 많았다.
지독하다는 말 외에 진천희가 할 말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마지막 하나까지 전부 적출하는 데 성공했다.
달칵-
마지막 종양이 쇠그릇 위를 굴렀다.
그 모습을 모든 상의원들이 보조하며 지켜보았다.
‘세상에… 저렇게 정밀하게…….’
이후에는 악성으로 번진 종양이 있는지 주변 조직을 확인해야 하지만 진기진맥을 통해 악성은 아님을 알았다.
그거 하나만은 현대보다 나았다.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비틀린 척추를 정복해 나갔다.
후방 유합술, 기기 고정술을 위해서는 이 과정이 몹시 중요했다.
우득-
다행히도 척추 변형 자체는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정복한 척추 위로 핀을 꽂을 차례.
‘스승님이 한 번 보여 주셨지.’
유랑후의 개방성 골절을 치료할 때 하프 핀을 한 번에 밀어 넣었다.
검기 덕분에 마치 두부처럼 핀이 꽂혀 들어갔다.
진천희는 내기를 집중해 핀을 꽂았다.
푹-
‘연습은 수천 번 했지.’
정확한 힘으로 빠르게.
아이의 활력 상태를 계속 주시하면서 진천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진천희를 항주 분타 간호사가 보조했다.
부지런히 진천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보조하는 간호사를 보며 생각했다.
‘유호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뛰어나. 팀워크도 상당히 좋고.’
이른바 키울 맛이 나는 곳이다.
지시를 길게 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숨 하나 몰아쉬지 않고 진천희의 움직임에 따라 철저하게 보조해 나갔다.
‘아, 그래. 실전 경험만큼은 백린의각 본산보다 많겠어.’
응급 외상 환자에게 필요한 부술.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진천희는 갖고 있었다.
‘오늘로 더 성장하겠구나.’
진천희는 차분히 수술을 이어 나갔다.
* * *
진천희를 바라보며 항주 분타의 상의원들은 경의에 찼다.
‘본산의 의원들이 수준이 높다 들었는데 그중 부술당주는 천하일품이군.’
파견을 간 상의원들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술당주를 칭찬했다.
그들에게 있어 진천희는 교주이자 신이었다.
항주의 싸움은 끊이지 않고 새벽이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다친 이들이 밀려온다.
의원으로서 사람으로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컸으나 계속해서 환자를 보내야 했고, 유가족들이 절망하는 걸 봐야 했다.
패잔병의 마음이었다.
그때 부술당이 생기고 기적같이 외상들이 치료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누구 하나 가슴이 뛰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가장 뛰어난 상의원을 파견 보내 하나라도 더 배워 오게 하고, 그 상의원이 돌아와 중의원과 하의원, 같은 상의원들에게 지식을 전수했다.
그러나 그래도 배움의 목마름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만난 부술당주다.
들은 것보다 키는 컸지만 어린 건 매한가지. 그리고 사람 굴리는 건 들은 것보다 더했다.
‘그리고 얄미울 정도로 차분하지.’
두려움이 없는 걸까.
아니면 확신이 있는 걸까.
덕분에 다른 의원들도 크게 긴장하는 법 없이 진천희의 지시를 따라갈 수 있었다.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길었던 부술이 끝나 간다.
신기한 것은 진천희는 아직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계속해서 손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
신경, 연부 조직과 근육을 확인하며 여유 있게 웃음까지 흘리면서.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는 부분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람인가 괴물인가.’
우리는 과연 저렇게 성장할 수 있을까.
의원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되고 싶다.’
* * *
흰 기린은 백린의각의 상징이다.
기린은 예로부터 상서롭고 현명한 존재로서 인간을 돕고 불의를 참지 않았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에 뱀을 걸어서 의사의 상징으로 삼았듯 의술은 저마다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본디 뿌리가 제갈가에 있는 백린의각은 그 분타에도 골고루 영향을 미쳤다.
의술을 전수하고 사람을 살렸다.
그 뿌리가 강호의 것이기에 현대 지구의 모습과는 달랐으나 병마를 물리치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다.
수술을 마친 사마혜는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으…….”
마취에서 깨면서 의식이 점멸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천장이 몇 번 바뀐 거 같고, 헛소리도 좀 내뱉었던 것 같다.
“엄마… 엄마…….”
그녀의 엄마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이리 입에 남아 계속해서 중얼거리게 되는 걸까.
엄마는 없지만 천장에 보이는 기린 문양만큼은 선연하다.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괜찮아. 나을 수 있을 거야.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픈 것도 같고, 그게 아닌 것도 같은 이상한 감각이 밀려왔다.
몽롱하던 정신이 마침내 수면 밖으로 밀려 올라왔다.
오래된 인간의 본능으로 아이는 말했다.
“엄마……?”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
“일어났니?”
진천희였다. 진천희는 눈가를 한참 쓸더니 그녀 옆에 앉았다. 계속 상태를 지켜보기라도 한 걸까?
역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진천희는 눈 아래가 까만 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술은 잘 끝났어요?”
“음. 공학적으로는.”
그게 무슨 말일까.
진천희는 아이의 발가락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어때?”
“어…… 누르고 있어요. 차가워요.”
“내 손이 좀 차가워졌나 보네.”
진천희는 사마혜의 팔다리를 눌러 신경이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겠어?”
까딱-
“오케이, 손상된 곳은 없고.”
가끔 진천희 의원님은 이상한 말을 섞어 쓴다.
오케이, 수술, 페니실…….
모르는 말들이 너무 많다. 다른 의원님들도 못 알아듣는지 다시 물어볼 때도 있다.
그때는 입버릇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체온도 괜찮고. 후. 그래, 과연 나다. 역시 나는 대단해.”
약간의 자화자찬도 하면서.
괴짜는 괴짜지만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걸 사마혜는 알고 있다.
“등도 한번 보자.”
진천희는 몇 가지 추가로 점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