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64
제 1164화
‘음, 조금 민망하긴 하군.’
진천희는 검지로 뺨을 긁적였다.
아무튼.
즉, 권가라는 숙수는 이 마을의 몇 안 되는 요리사로서 무려 백 년간 요리를 해온 달인이라는 것.
사실 백 년간 요리를 했다고 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이리 솜씨가 늘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진천희로서는.
권가라는 저 사람이 얼마나 요리에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이런 진미를 먹을 수 있는 거지.’
특별할 것 없는 재료를 써서 이런 맛을 만들어 내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도원향의 역사는 화 제국 이전 까마득하게 오래전부터 이어졌다고 내려오는바.
신기하게도 그 오랜 시간 아무런 분란도, 걱정도 없이 사람들이 살아왔다고 한다.
‘이웃 간에 자잘한 투닥임이야 있었던 모양이지만 말이지.’
가난하지도, 배고프지도, 아프지도 않은 세계.
아득한 시간 동안 그저 오래오래 살 수 있는 세계.
천우가 전음을 보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도원향은 정말 사람들이 찾아 헤매던 낙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락샤샤 때와는 달리 밤에 사람이 바뀌는 것도 없고 세뇌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양민들이다.
[그건 봐야 알 것 같아.]의원은 동화를 믿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믿고는 싶으나, 그간의 경험이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본다니요?] [밤까지만 기다려도 될걸?]밤이 된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건지.
천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천희는 더는 설명하지 않고 웃는다.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술판 가운데로 향한 진천희.
“한 곡 연주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세상에 무슨 미모가 이리 아름답소. 천인인 줄 알았소!”
“의원이라 들었는데 연주까지 잘한다고?”
이곳 사람들은 다 좋은데 놀 게 부족하다는 게 옥에 티 같다.
디리링-
칠은금이 음율을 자아낸다.
“오오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술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되어 술자리가 점점 깊어 가고.
개중에는 얼큰하게 취해서 말이 헛돌기 시작한 사람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울기 시작했다.
“그 녀석 대신에 내가 갔어야 했어… 그 녀석 대신에 내가……!”
“그런 말 말어. 그게 그 녀석의 선택이었어!”
“희생을 한 게지… 희생을 한 게야…….”
“어머니……. 어흑흑흑.”
곡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천우가 퍼뜩 깨달았다.
[아, 이래서 형이 좀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했던 거구나.]형은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지나가는 말도, 한참 후에 그 뜻을 알게 될 때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뱉어내는 말들, 그 내용도 하나같이 뭔가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다.
선택과 희생.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바친 이야기.
술자리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잃어버린 누군가를 찾았고.
진천희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져만 갔다.
그때.
“자네는 술이 입에 맞지 않은가?”
숙수 권씨가 다가왔다.
그의 눈에도 서글픔은 담겨 있었다.
“다들 이해하게. 이곳은 분명 극락인 곳이지만, 이곳에 오기 위해서 다들 희생한 게 있거든.”
“희생이요?”
“그건…….”
그때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뭐야! 아직 축젯날도 아닌데 이게 다 뭐야!”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
진천희는 놀라서 눈을 홉떴다.
그도 그럴 것이 몹시 익숙한 목소리가 아닌가.
‘어, 이 목소리는?’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진천희가 일전에 치료했던 노인이 서 있었다.
‘구두쇠 영감님?’
계절에 맞지 않는 봄나물을 보내준 사람이었다.
‘설마 그 봄나물이 여기서 온 것이었나?’
“……!”
놀라서 한마디 하려는 찰나, 사람들은 왁자지껄 모여들기 시작했다.
“촌장님이 오셨다!”
“촌장님, 다녀오셨어요~?”
“와하하핫! 촌장. 한잔 받으라구!”
처음 보았던 그 마을에서는 노랭이도 그런 노랭이가 없다며 사람들이 욕을 했다.
철전 한 푼까지 아껴서 집에 쌓아둔다고.
그걸 알기에 영감에게 농을 걸었던 진천희였다.
‘아, 혹시…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준 그 아재 농담을 여기 사람들에게 퍼뜨린 것도 영감님이겠군.’
아직 꽃도 안 피는 시기에 봄나물을 가져다주었으니, 나름대로 농담값은 치른 셈이다.
특히나 그렇게 향이 그윽한 봄나물은 천금으로도 구하기 어려웠으니.
‘어디서 나물 뜯어오는지도 말을 안 한다고 다들 손가락질을 했지.’
그러고 보면 이 영감님도 참 독하다.
이만한 비밀을 평생 숨기고 살아왔단 말인가.
“장가 이놈 이거 술을 떡이 되도록 먹었잖아! 신씨! 신씨, 어디 있어! 당신 남편 데려가! 그리고 축젯날도 아닌데 왜 축……. 어허. 외인이 와 있었어?”
그제야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영감은 이쪽을 바라보았다.
“!”
영감님은 놀라서 눈을 홉떴다.
“……어, 오랜만입니다.”
의원은 머쓱하게 웃었다.
* * *
“도원향의 촌장 노릇을 하고 있는 형(荊) 모라고 하네. 이미 눈치챘겠지만 원래 마을 풍습상 우리는 서로 성씨로 부른다네.”
노인 역시 자신의 성만 밝혔다.
생각해 보면 처음 보았던 그 마을에서는 성이 형씨도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밖에서는 가명을 쓰고 다녔던 모양이군.’
진천희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이 노인과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배신감을 느낄 법도 하나, 이쪽은 옷깃만 스쳐 지나간 사이 아닌가.
“밖에서도 뵈었지만, 이쪽도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도록 하지요. 백린의각의 진천희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의동생들이죠.”
“아아. 그래. 그래. 대체 무슨 수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자네에 대한 이야기가 허언은 아닌 모양이네.”
“무슨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또 미쳤다는 이야기를 하면 반박을 하려고 했는데 노인의 대답은 의외였다.
“워낙 신출귀몰하여 움직임을 종잡을 수 없다는 소문이 있지. 아무리 꼭꼭 숨겨둔 산채라도 반드시 발견해서 죄다 박살을 내버리는 미친놈이 있다고.”
“아, 아하하하…….”
이건 반박을 할 수가 없군.
진천희는 어색하게 웃는다.
“뭐, 그래도 이 늙은이가 말을 놔도 이해하게나. 나이가 제법 많거든. 대충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으면 알겠지만 말이야.”
“어째 밖과는 인상이 다르셔서 놀랐습니다.”
“외지에서 친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되거든. 아무래도 수명이 다르니 말일세.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지.”
노인의 눈에는 긴 수심이 들어 있었다.
아아, 그것은 오랫동안 같은 상처를 받아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고.
의원은 자못 무심하게 화제를 돌렸다.
“들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느리게 늙고, 병 없이 건강하시다고.”
“그런 법이지.”
노인은 의원의 배려가 고마웠다.
괜히 캐물으면 뭐라고 답할지 조금 난감해졌기도 하고.
세월이 이리도 흘렀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어, 그냥 그게 아프게 쓸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묘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둔감해지기는커녕 예민해지기만 한다.
그게 세월의 무서운 점임을 노인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의원은… 어째 젊은 놈 같지가 않고 속이 깊군.’
보통 저 나이의 강호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우묵한 안광과 행동에서 보이는 신중함이 더욱 그랬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나저나 도원향의 촌장이실 줄은 몰랐네요. 주민들이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는가 보죠?”
“아니. 나만 가능하네. 촌장으로서의 권한이지. 다른 녀석들은 여기를 나가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어. 그리고 이곳에 대한 이야기도 발설할 수 없게끔 금제가 되어 있고.”
“호오.”
그때 천우가 끼어들었다.
“저희도 그런 금제가 적용됩니까?”
만약 나가지 못한다면 그거대로 큰 낭패기 때문.
촌장은 팔짱을 끼고는 한참 끙끙 앓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 자네들은 유명한 무인이지 않던가?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 알 수 없구먼. 우연하게 들어오는 외인들의 경우 전부 외부로 나가면 이곳의 일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되거든.”
돌아갈 수는 있는 건가?
기억을 못 하는 건 아쉽지만, 무당의 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게 천우에게는 최우선이었다.
진천희가 물었다.
“이곳 사람이 나가면 어찌 되나요?”
촌장이 말을 이었다.
“아주 가끔 있지. 이곳에서 평화롭게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지루한 자들이. 그런 경우 외부로 나가 살게 되면 기억을 잃지는 않지만 말을 할 수 없고. 뭐, 대충 그런 금제가 걸리게 되네.”
그런 거라면 도원향의 비밀이 오랫동안 유지가 되는 게 일견 이해가 된다.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지존천마에서는 분명 금천군이 자신이 도원향 출신이라 했단 말이지. 흐음. 그놈은 금제에서 자유로웠던 걸까?’
아직은 단서가 부족하다.
사마현이 전음을 보냈다.
[술법이라든가 약물을 이용한 특수한 종류의 금제 같은걸? 강호에도 그런 것들 많으니까.]촌장이 말했다.
“그래.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나? 되도록 조용히 있다 나갔으면 하는데. 설령 기억을 잃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 주면 좋겠구먼.”
300살을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며, 굶주리지도 병들지도 않는 세계.
만약 그 위치가 퍼져나간다면 어찌 될지야 뻔했다.
촌장으로서는 지금 같은 상태가 가장 좋으리라.
진천희가 말했다.
“삼절추호라는 별호를 쓰는 도백하라는 분을 찾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도불사에서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촌장이 놀라서 눈을 홉떴다.
“자네들 도불사를 통해서 들어왔나?”
“예? 예. 그렇습니다만.”
“허헛. 놀랍구먼……. 놀라워, 거기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다른 입구가 있었다는 게 이쪽은 더 놀랍다.
촌장이 물었다.
“그곳은 정식 입구가 아니네……. 혹시 진시황의 토용병이 공격하지 않던가?”
“어……. 그것들 진짜 진시황의 토용병이었군요?”
“그렇다네. 이곳 도원향에 들어오는 입구는 여럿인데. 그곳은 그중 하나일세. 아주 먼 옛날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이 그의 자랑인 토용병을 이끌고 쳐들어온 곳이지.”
“우와!”
진천희의 눈이 빛난다.
그 모습에 촌장은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현경의 고수나 되는 고절한 무인이 흡사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
‘왜 사람들이 저자를 따르는지 알 것 같군.’
마을에서 가장 고약한 노인이 된 자신에게도 땡깡을 부릴 정도로 넉살이 좋은 인간이다.
보통 현경이라면 산에 들어가서 수련만 주구장창 해야 하지 않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노인은 그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토용병들은 어떻게 된 건가요?”
“아아, 결과적으로는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네. 대신 토용병이 덩그러니 남아서 졸지에 침입자를 격퇴하게 되었지.”
“어째 잘 이용하게 된 셈이네요?”
“그런데 자네들이 박살 냈지 않나.”
“헤헤헤헤…….”
그 많던 토용을 죄다 박살 낸 장본인은 푼수처럼 웃었다.
‘혈선교의 함정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네.’
그건 다행이다.
“그러면 도불사는 대체 어떻게 지어진 거죠?”
이건 좀 신기했다.
“흠?”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진천희가 다시 말했다.
“그곳이 토용병의 함정이라면 도불사는 대체 어떻게 지어진 겁니까?”
“아아! 그걸 말하는 건가. 그런 질문을 하는 젊은 놈은 처음이군. 보통 강호인은 옛날에 어떻게든 지었겠지, 하고 생각하고, 그 토용병이 사용했던 무예. 그거 적힌 비급이나 물어보기 마련인데.”
‘영감님……. 그 긴 시간 살아가면서 어떤 강호인들을 만나신 겁니까.’
촌장님은 약간… ‘오! 너는 1+1이 2인 줄 아는구나! 보통 강호인들은 그걸 모르던데 대단하군. 그X핀도르 10점!’ 같은 느낌으로 진천희를 보고 있었다.
“…….”
좀 민망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