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65
제 1165화
촌장이 말했다.
“그쪽 길은 애초에 매우 가끔 열리네. 정확한 주기는 나도 알 수 없으나, 대충 수십 년에 한 번꼴 정도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네.”
‘아, 그래서 놀라신 거군.’
“애초에 몇십 년 전에는 그곳도 빈 땅이었지. 그러다가 도불사가 들어왔다가… 토용병이 일어나기도 전에 그 절이 망해버린 것뿐이네.”
“오우…….”
어쩐지 목재로 만든 건물 주제에 제법 버티고 있다 했더니.
‘그나저나 이 모든 게 천기가 찢긴 것과 연관이 있으려나.’
어르신이 말했다.
“그래서, 사람을 찾으려다가 들어왔다면… 이곳에 아주 머물 생각은 아니구먼?”
“그렇습니다만… 문제가 있습니까?”
“여기는 엄밀히 말하면 선계와 현계의 중간쯤 되는 곳일세. 속세의 사람이 오래 있어 봤자 좋을 일이 없지. 게다가…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거든.”
“대가요?”
“꽤…… 큰 대가가 필요하지. 그렇지 않는다면 이곳에 거할 수 없어.”
“…….”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야 자네 같은 천하신의가 이곳에 거한다면야 기쁘지. 하지만 그 대가 때문에 추천하기 어려우이.”
대가.
사마현이 물었다.
“사람들이 희생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걸 주워들었는데 뭔가 관계가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촌장님, 그 대가가 뭔가요?”
그 말에 촌장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군……. 아까의 짧은 술자리만으로 이미 거의 다 답에 도달한 모양이군. 내게 확인을 받고 싶은 건가?”
“…….”
진천희, 천우, 사마현은 잠깐 서로와 눈빛을 교환했다.
“네. 당사자의 입으로 전해 듣는 게 가장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저희가 오해했을 수도 있으니.”
“아니네. 자네들 짐작이 맞네. 사람을 희생해야 하지.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굳은 결심을 가지고…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지.”
스스로의 의지?
굳은 결심?
진천희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오우.”
역시 동화는 없는 건가?
* * *
그렇게 촌장과 대화한 후.
삼형제는 침실에 나란히 누웠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한참이나 누워 있던 상태였다.
사마현이 말했다.
“형, 자?”
진천희가 답했다.
“아니. 아직…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할 게 많네.”
천우가 말했다.
“확실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죠.”
“응.”
촌장이 말한 건 뭐랄까, 이 꿈결 같은 동화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설명하는 자리였다.
백설공주만 해도 그랬다.
이 동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봉건 군주제에 무능한 아버지가 계모를 들여야 하고.
그 계모가 딸을 괴롭히는데도 누구도 반발하지 못할 상황이어야 하며.
계모가 딱히 국정 운영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고.
공주가 가장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내쫓겼는데 복지시설 하나 없는 세계여야 한다.
그리고 공주는 일곱 명의 난쟁이들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보통 인간 여자 혼자서 감당할 노동량이 아니고.
월급 같은 대우 이야기도 없다.
머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정도?
하지만 노동권에 대해 논하기에는 공주가 너무 착해서 계속해서 함께 일을 해주고.
마침내 독이 든 사과를 먹어야 하며.
시체를 상대로 입을 맞추는 왕자가 과연 제정신인가 약간 고민은 된다만.
어쨌든 그래야 동화가 성립은 하고.
적어도 책 속의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도원향이라는 동화를 얻기 위해서는 이것과 비슷한 과정이 필요했다.
우선.
‘도원향에서 머물기 위해서는 혈족 중 하나가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희생시켜 제물로 바쳐야 한다.’
공주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전에 고난을 겪었듯.
이곳에도 비슷한 고난이 있다.
다만, 좀 더 현실적인 대가를 원할 뿐이다.
저 마을 중심의 거대한 복숭아나무로 가서,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바친다 말하면 그대로 죽어 복숭아나무의 거름이 된단다.
‘양분을 얻은 대가로 복숭아 열매가 열리게 된다고 하지.’
이것을 가족들이 나누어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불로장생하게 된다.
그것이 이곳 도원향에서 대대로 해온 의식.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이 도원향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이 도원향에 대한 기억도 잃어버리게 된다고…….
-이곳은 양민들의 마지막 도피처요.
이 낙원에 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도원향에서 태어난 이들은 그런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겠지만…….’
아이 자체가 적게 태어나기에 주기적으로 외부인을 데려오는 식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정력제를 원하셨던 건가?’
아니, 그냥 밤에 허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락샤샤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천국인가. 이건…….’
스스로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 몸을 던져 도원향에 가족의 자리를 만든다.
밖은 기아와 전쟁, 역병이 창궐하고.
살기 위해서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복숭아나무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희생에 대한 조금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되네. 그러면 복숭아나무가 그를 먹지 않지.
-나라님에게 당하고, 역병에 당하고, 가난에 당해서. 도망치고 도망쳐도 갈 곳이 없는 자들이, 소중한 이만은 살리기 위해 오는 곳이지.
-제물의 자격은…… 이상한 말이지만 ‘사랑’이네.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이의 목숨값으로 살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지.
가뭄이 지독해지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당장 삼국지만 봐도 한 나라의 백성들을 어린아이까지 몰살시키는 예가 있다.
굳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그저 전쟁으로 인해 죽을 뿐이다.
인세가 지옥일 때.
인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간절히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부모와 자식, 형제, 부부, 친우까지.
상대를 위해 간절히, 아주 간절히 목숨을 바치고자 해야만 복숭아나무는 그것을 받아준다고 했다.
-중간에 결국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네. 그래도 나무는 그저 밖으로 돌려보낼 뿐. 그냥 그게 다인 일이지. 우리는 이것밖에 없어 여기에 있지만, 그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진천희는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천우가 말했다.
“형. 설마 복숭아나무에 불질러 버린다거나…….”
‘대체 이 녀석에게 나는 대체 무슨 이미지인 걸까.’
한번 물어보고 싶었지만 진천희는 참았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여기서 나는 외지인일 뿐이잖아. 아직 복숭아나무의 정체가 뭔지도 모르겠고. 정보가 부족해. 그건 아무리 좋게 말해도 ‘위선’이지.”
다행이다.
형이 그래도 제정신이긴 하다.
천우가 살짝 안도하며 물었다.
“이 땅이 형의 관할지이고, 형이 모든 것을 판단할 뭔가 적법한 권리가 있다면요?”
“으음, 그 어떤 부차적인 상황이나 사정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 독단으로 처리한다면…….”
진천희는 턱을 문질렀다.
“……태웠지.”
굳이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유지되는 천국이라면 없애는 게 나았다.
“역시.”
“그리고 옆에 복지 관련 상담소를 세웠겠지.”
“……!”
뭔가 결말이 이상하다.
그렇게 고민하던 형이 말했다.
“아니다, 일단 복숭아나무를 태우면 여기 사람들도 죽거나 그러는지부터 따져봤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갑자기 와서 감히 그럴 권리가 있냐고 이 마을 사람들이 묻는다면 아무리 진천희라도 답할 수 없다.
촌장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진천희는 사람을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굶주려 본 일도.
전쟁으로 엄마, 아빠, 자식, 할머니가 모두 생매장당해 본 일도 없다.
그리고 중원은 언제나 그런 일이 가득해 왔으니까.
그리고 그걸 다 책임져 없애주는 것도 불가능하면서, 저 사람들의 인생을 심판할 수가 있는가.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이방인의 시선인 거지.’
욕심을 부리자면 그래도 도원향 입구는 막고 싶긴 하다.
‘불치병 환자를 가진 가족들의 생각은 또 다르겠지만 말이지.’
어디까지나 의원의 독단.
새외에서도 늘 그랬다.
선악은 너무나도 꼬여 있어서 오히려 현대사회가 더 명료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의원은 일단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곤 한다.
때로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올라오곤 하니까.
‘그냥,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거지.’
어른의 지혜다.
이 이야기를 천우에게 하니 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지극히 의원다운 시선이군요.”
“그러니?”
“네. 강호인의 시선은 아닌 것 같아요. 형.”
“하하하, 차갑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뇨, 아뇨, 차갑다는 건 오히려 저희 같은…….”
천우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약간의 침묵.
이윽고 천우가 말했다.
“형은 오히려 정반대죠.”
진천희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냥 유유부단한 거야.”
그 말에 천우는 고개를 저어 반박하려고 했다.
“형…….”
“애초에 촌장도 이 도원향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모른다고 했잖아.”
다만.
백 년에서 백오십 년에 한 번, 도화선인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외부인들을 대량으로 들이고는 했다고.
촌장 역시 수백을 먹은 나이를 가졌고,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어느 순간 세는 것을 포기하여 자신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마을에서는 제법 많은 편이라고.
그런 그도 도화선인을 세 번 봤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 한 번, 백이십 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이번에 한 번.
도화선인은 매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가면을 썼다고.
‘어렸을 적에 본 도화선인은 건장한 체구의 장한이었고. 두 번째로 본 이는 가면을 썼으나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고. 지금은 여인이었다고.’
사마현이 말했다.
“형…. 혹시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 형도 생각하고 있어?”
“…….”
“모르겠다.”
진천희는 부정한다.
사마현이 그런 형의 마음을 쑤셨다.
“키가 크고 유독 깡마른 여인……. 행색이나 말투로 봐서 나는 삼절추호가 생각나는데…….”
“…….”
진천희는 뒤척인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진실은 왜 이렇게 막막한 걸까.
“형처럼 영민한 자가 모를 리가 없잖아.”
“……맞아.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진시황의 토용병이 함정처럼 존재하는 도불사. 하필 그곳에서 사라진 삼절추호. 그리고 당대의 도화선인에 대한 인상착의와 말투까지. 아무리 봐도……. 이 상황에 그런 사람이 둘이나 있기는 어렵지.”
삼절추호가 도화원주.
진천희는 이를 악문다.
그러고는 웃는 건지 찌푸리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혹은, 도원향과 도화원주를 찾으러 온 것일 수도 있고. 그녀의 동생은 보통 방법으로는 치료할 수 없었으니까.”
현원전단신공으로 다른 변수를 필사적으로 찾는다.
사마현이 물었다.
“형도 치료 못 하는 거지~?”
“그래. 그건…… 육체의 문제가 아닌 혼백과 영혼의 문제였거든.”
진천희는 마지막으로 금천군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를 소상하게 말했다.
“금천군이 이혼대법인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사술을 쓴 건지 모르지만, 그 혼백을 삼절추호의 여동생과 합일시킨 게 문제야.”
“한번 합쳐지면 분리가 어렵나요?”
“응. 계란노른자 같은 거야. 섞이기 전에는 경계가 나뉘어져 있지만, 한번 뒤섞고 나면 흰자와 노른자가 합쳐져서 다시 분리해내기 어렵지.”
천우가 말했다.
“혼백을 계란에 비유하니 이해가 가긴 하네요.”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복숭아나무를 이용해서 여동생을 치료하려고 하는 거라면 납득은 가지. 문제는 만약에 정말로 그녀가 도화원주 노릇도 하고 있다면….”
거기까지 말하고는 진천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의원의 눈이 서늘하게 빛난다.
영겁 같은 찰나.
이윽고 그가 말을 잇는다.
“……이번에 근처 마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갔느냐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