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67
제 1167화
밤이 되었다.
형제는 한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공짜 극락은 없군요.”
“그렇긴 해도. 만약 예전에 내가 여기를 알았다면…… 혜아를 위해서 기꺼이 나를 내던졌을지도. 오히려 기쁘긴 했을 거야. 방도가 없다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
맏형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무언가 생각하는 기색만이 보일 뿐, 말수가 줄어든 것을 아우들은 깨닫는다.
사마현이 말했다.
“그런데 역시, 이번 대 도화선인이 데려왔다는 외인들은 아예 없었어.”
촌장은 최근 도화선인이라고 자칭하는 여인이 나타났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 도화선인이 외부인을 데리고 온 적은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도원경의 밖에서는 분명 다수의 사람들이 도화선인을 따라나섰지 않았나?
때문에 소멸한 마을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없다.
그들에 대한 흔적이 조금도 없다.
“흔적도 없더라고요. 확실히 이 부분은 이상한데…….”
이윽고 진천희가 입을 열었다.
“실마리가 전혀 없어. 일단 도원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는데, 그게 다야. 더 수색해 보고 만약 여기 없다면 다시 나가서 찾아보든가, 우리가 아직 가지 못한 곳을 뒤져봐야겠지.”
진천희가 말하는 곳이 어디인지 천우와 사마현은 즉각 알아들었다.
“일단 남은 곳은 마을 중앙의 복숭아나무잖아? 외지인은 원래라면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해서 못 들어갔으니까.”
도원경의 정중앙에 자라는 거대한 복숭아나무.
그리고 그 나무를 둘러싼 꽃의 들판.
가장 수상한 장소임에도.
그곳에는 아직 진입하지 않았다.
‘아직은.’
여기서 아직이라는 뜻은 조만간 한다는 뜻이다.
“이제 가볼 때가 되었네.”
마을 사람들과 좀 험악해질 수도 있겠다.
물론 그런 일 없게 걸리지 않게 몰래 다녀와야겠지만.
“…….”
거기까지 대화하고는 다시 진천희가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결국 참지 못하고 천우가 물었다.
“무슨 생각 해요?”
“아니, 극락의 가격이 예상 이상으로 저렴해서.”
“네?”
그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하지만 주술에 대해 아는 자의 냉혹한 말이기도 했다.
“그……. 내가 말해도 이상한 소리 같긴 한데 말이야. 왠지 너무 싼 거 같아서.”
“싸다고요?”
천우가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고.
심지어 사마현조차도 혜아를 떠올리는 이 상황에서 극락의 가격을 떠올리는 게 좀 이상할 수 있겠다.
그걸 목숨값으로 대입을 하는 게 미친 기분이긴 한데.
이 세계에서는 생명과 영혼에도 가격이 매겨지는 세계다.
그러니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인신 공양으로 유명한 동네를 다녀왔는데 사람 하나의 목숨값으로 만병통치와 불로장생 기적을 전부 다 내지는 못하더라고.”
안타까운 마음과는 별개로.
현원전단신공이 단가가 맞지 않는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와, 형……. 처음에는 쓰레기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 보니 맞는 말이네요.”
“하하하, 천우야. 쓰레기 같다니, 맞긴 한데 방금 말 아팠다.”
천우는 아닌 듯하면서도 은근 촌철살인이다.
그만큼 이 녀석도 맏형이 이제 꽤나 편한 상대가 되었다는 뜻이니 좋아해야 할지….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일단… 내가 알고 있기로는 이 동네 목숨값이 그래. 하지만 세상은 넓고 당연히 내가 모르는 주술이 존재할 테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만… 고민이 되긴 하더라고.”
“아니, 형 말이 맞을걸요.”
“이렇게 머리로 결론 내면서도 또 한 번 고민하고 있는 점이 형답다고 해야 할지~”
“사람들이 말하는 협객의 모습은 아니지.”
진천희의 답에 천우도 답했다.
“네. 일광의 모습도 아니고요. 형의 이런 모습은 주변 사람만이 알 수 있으니까.”
모두의 편견과 달리.
이 형은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과소평가하는 인간이니까.
시원한 대협의 풍모를 원한다면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형의 본질은 의원이고.
의원은 결국 인간의 목숨 앞에서 평생을 의심하는 자이니까.
그때였다.
방 밖에서 복숭아 향기가 진하게 풍겨 오기 시작했다.
“!”
컹컹컹컹!
황구가 벌떡 일어나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형, 이건……?”
진천희가 몸을 일으켰다.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야.”
사마현이 곧바로 거미처럼 천장에 몸을 거꾸로 붙였다.
기묘한 은신술.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 * *
밖으로 나가니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벅, 저벅-
짙은 복숭아 향기에 끌려 그들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모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잠꼬대를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죽은 듯이 잘 자고 있는 숙수 권씨도 보였다.
“와, 내가 약 한번 잘 지었지. 명의는 명의여.”
진천희는 권씨의 숙면에 자화자찬을 하더니 머리카락을 풀어 잡아챘다.
그러고는 혈도를 눌러 깨웠다.
“일어나세요. 어허이!”
원래라면 혈도를 누르는 순간 금방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몸을 흔들고 뺨을 꼬집어봐도 깊이 잠에 침잠될 뿐.
사람들은 마을 한쪽 아주 넓은 꽃의 들판으로 향했다.
외지인은 갈 수 없는 성지(聖地)이자 금지(禁地).
그리고 할머니가 꽃의 들판에 들어가는 순간.
훅-
몸이 완전히 사라진다.
죽었다면 죽는 그 과정이 보였을 터.
사람이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게 말이 되나?
진천희가 외쳤다.
“얘들아, 막아!”
“형! 혼혈도 마혈도 안 먹혀!”
천우가 상냥하게 물었다.
“그냥 사지를 부러뜨릴까요?”
“…….”
진천희는 인도적 차원에서 팔을 우득, 뚜득하려는 천우를 급히 말리며 말했다.
“일단 묶어!”
“알았어요!”
“아이 가릿~”
두 동생은 곧바로 사람을 잡아 그 옷을 찢어서 묶어버린다.
그러자 꿈틀거리면서도 애벌레처럼 꽃밭으로 기어가는 게 아닌가.
“젠장, 형! 이거 힘들겠는데?”
그 순간.
휘리리릭-!
엄청난 길이의 밧줄이 두 녀석을 향해 날아온다.
사마현은 특유의 악력으로 밧줄을 잡아챘고, 천우는 유능제강의 묘리로 밧줄을 손목에 감아서 잡아챈다.
“이걸로 묶어라.”
“이게 다 어디서 나온 밧줄……. 형, 소매에 별의별 게 다 들어가는군요!”
“원래 유비무환이야! 다 쓰고 부족하면 말해!”
그리 말하며 쿵쿵 걷는 진천희.
그의 머리카락이 마치 문어의 촉수처럼 사방으로 쫙 펼쳐지며 사람들을 붙잡아 묶기 시작했다.
“헐…….”
누가 악당인지 모를 기괴한 모습.
“사람들이 의식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보면 기절했을 테니…….”
“진짜 다행이지~ 소문이라도 났어 봐.”
이번에는 사마현도 천우의 말에 동의했다.
“뭐, 왜, 뭐?”
어린애를 머리카락으로 부드럽게 잡아다가 밧줄로 돌돌 감던 진천희가 묻는다.
심지어는 밧줄 끝에는 여러 사람들이 계속 이어져 있었는데.
흡사 굴비 두름과도 같았다.
“이것이 과거 연무 도시에서 가르침을 내렸던 형(形)을 신경 쓰지 않는 무학이군요. 크윽…! 갑자기 머리가!”
천우는 갑자기 깨달음의 조각 하나를 얻었다.
과연 촉수 앞에서 인간은 계몽이 되는 법이다.
그렇게.
진천희와 사마현, 천우는 마을 주민들 대다수를 묶어 한곳에 쌓아두었다.
“그래도 마을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다. 큰 마을이었으면 이렇게 못 붙잡았다.”
진천희는 지친 기색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건 사마현도 마찬가지.
“역시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는 건 힘드네~ 특히 마혈이 듣지도 않고.”
“양민은 조금만 힘을 줘도 사지가 부러질 수가 있으니 함부로 건드리기도 부담스럽고요.”
차라리 나무나 돌 같은 것이면 모르겠다.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양민을 힘을 안 주고 붙잡는 게 쉽지가 않다.
마치 조그마한 병아리를 집어 올리는 듯한 감각.
“…….”
그중 가장 체력을 소진한 것은 진천희였다.
‘대체 머리카락으로 사람을 붙잡으려면 얼마나 의념을 써야 하는 거지?’
천지교태를 이룬 현경이라고 해도 몸뚱이가 사람.
그것도 무골도 아닌 몸뚱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게 보였다.
“형 괜찮아요?”
“응. 괜찮아. 이 정도면 물 한 잔 마시면 괜찮아져.”
“그렇게 쉽게 회복될 것 같지는 않은데?”
두 아우의 걱정 속에서.
짝.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어디선가 울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꽃의 들판에서부터 누군가가 나타나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가면을 쓴 여인이었다.
허나, 진천희의 현원전단신공은 그녀의 체형과 골격.
그리고 보폭과 습관을 보고 누구인지 눈치챈다.
“도 대협.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역시 진 아우로군. 단번에 이 몸의 정체를 알아차릴 줄이야.”
도화선인은 가면을 벗었다.
그곳에는 진천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그리고 천우가 그토록 추적했던 자가 서 있었다.
“다시 인사하고 싶네. 도화선인의 자리를 얻게 된 금천군 도백하라고 하네.”
“…….”
“역시나 놀라지도 않는군. 하긴, 자네의 영민한 머리로는 이미 예측했겠지.”
“이거만은 아니길 바랐습니다. 제가 틀리기를요.”
그 순간, 등 뒤로 오싹한 감각이 밀려온다.
그것은 흡사 하늘을 찢어버릴 것 같은 살기.
‘아니, 이건… 살기라기보다는…… 사기(邪氣)?’
그때 진천희 앞으로 사마현이 한 걸음 나선다.
사마현이 웃는다.
새빨간 웃음은 요사스럽기까지 했다.
그 웃음이 진해지면 진해질수록 섬뜩한 기운이 사마현에게 뻗어져 나온다.
혈선교의 것과 비슷하게 사(邪)의 속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근간은 다르다.
그 기운에는 명백하게 ‘분노’라는 감정이 뒤섞여 있다. 진천희로서는 살짝 당혹스럽기도 하다. 사마현이 이렇게 화내는 것은 드무니까.
‘현이 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어? 아! 그렇구나…….’
“도백하 대협~ 이건 대체 무슨 일이시랍니까? 저의 의형께서 은(恩)을 베풀어 그 삶을 연장해 주지 않았나요? 당신도, 그리고 당신의 동생도.”
‘역시. 저 녀석은 지금 겹쳐 보고 있는 거야. 자신하고 삼절추호를.’
사마현과 도백하. 둘은 비슷한 처지였다……고도 할 수 있다.
둘 다 동생을 잃을 뻔했지만, 되찾았으니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도백하는 여전히 동생을 완전하게 구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마현은 도백하에게 분노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분노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사마현에게 있어서 가족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도백하에게 깊이 공감하기에, 반대로 용서치 못하는 것일 터이니.
그것은 인간이 품고 있는 지독한 모순이다.
도백하 역시 그것을 알기에 답을 하지 않았다.
“…….”
“그런데 지금 이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은걸요~ 의형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거라니……. 실망스럽사옵니다~”
진천희에게 받은 은(恩)의 보답이 이것인가? 라고 묻는 사마현.
“하오문의 소문주 사마현인가. 진 의원의 의형제들 중 막내. 자네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하지만……. 자네라면 그 이전에 나를 더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네만.”
“호오?”
“사마혜라고 했던가. 자네의 여동생을 치료하기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면 어떻게 할 셈이지?”
쿠그그그극-
도백하 주변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무형의 기운이 그녀를 내리찍는 느낌이다.
도백하 자신은 무사하나, 사마현의 표정은 반대로 냉랭하다.
방금의 웃음과는 정반대의 태도.
“하핫, 화를 내는 건가? 아니면 화를 내는 척하는 건가. 어렵군. 자네 같은 이들은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으니 말일세. 하지만 그래도 말일세, 의외로군. 자네는 명백히 나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아아, 신첩도 그리 생각한 일이 있었지요~”
우득, 사마현이 손에 힘을 준다.
어디까지 연기이고,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기 어렵다.
허나, 두 사람의 눈빛이 진천희를 향해 가고 있다.
“…….”
진천희는 말이 없다.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것은 ‘운명’이고 개인의 힘으로 어찌하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을 본다.
키이이잉-
빙정검이 울음을 터뜨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