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81
제 1181화
태원의 소녀가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
누군가를 구하는 꿈이었다.
망설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한 짓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무척이나 곤란해했다.
‘내가 목숨을 걸어서?’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고 그 꿈속에서 소녀는 생각했다.
‘어……. 하지만 누구였지?’
얼굴도 체형도 행색도. 그 모든 것들이 기억은 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 * *
한편 성주의 아들이 깨어났을 때는 베갯잇이 몹시도 축축했다.
얼마나 울었던 걸까.
눈물을 이렇게 쏟아낸 것도 오랜만이었다.
치료에 성공했을 때도 이렇게 울었었으니까.
“어… 아아아아…….”
신음 소리에 부모님들부터 하인들까지 모두 뛰어온다.
“괜찮니? 괜찮아?”
“혹시 몸이 또 저리거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저 이상한 꿈을 꾼 것뿐입니다.”
누군가를 구하러 달려가는 꿈이었다.
‘누구……였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망설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기묘한 꿈이었다.
그날 중원에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꿈을 꾼 자들이 유독 많았다.
허나, 하나같이 얼굴도, 행색도,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아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아…….”
마침내 삼절추호가 눈을 뜬다.
* * *
처음 눈꺼풀을 뜬 삼절추호의 눈에 비친 것은 티 없이 맑은 하늘.
그리고 부서진 복숭아나무와 꽃밭.
바닥은 물이라도 가득 찼었는지 진흙투성이다.
허나, 그 위로 꽃들이 빠르게 돋아서 자라나는 게 보였다.
“이 진흙……. 아니… 물?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눈을 비비고 주변을 보니 사방이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물과 진흙을 이 꽃들이 전부 흡수했던 모양이다.
“이건 꿈인가……?”
분명 죽음을 각오했다.
그런데 거대해진 자신의 몸뚱이와 두 쌍의 팔은 어디 가고 그냥 옛날의 빼빼 마른 사지와 흉터만이 보인다.
마을에서 도원향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게 보였다.
‘분명…… 죽었을 사람들이…….’
원래라면 도원향로에 들어가 있을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도 활기차게 밭을 갈러 나가고 있었다.
몇은 이쪽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간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
죄책감에 명치가 쓰리다.
문득 삼절추호는 오늘따라 유독 머리가 맑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끊임없이 혈선교를 위해 일하라고 다그치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자신과 하나가 된 금천군이 사라졌다는 뜻.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설마 그놈이 동생에게 다시 돌아갔나?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 짐은, 그 업보는!
자신이 전부 지기로 하지 않았나!
“안 돼!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는 삼절추호.
“으응……. 언니?”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동생이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는 잠을 자고 있다.
나신의 상태로 누워 있기에 삼절추호는 급히 장포를 벗어 동생의 몸을 가린다.
“응……?”
눈을 뜬다.
그 눈은, 아아…….
그야말로 삼절추호가 평생 바라 마지않았던 맑디맑은 눈이었다.
“이상한 꿈을 꿨어. 언니. 언니가 팔이 여러 개인 꿈. 하암….”
후둑…….
누군가에게 세뇌당한 느낌도 없이 그저 명료하기만 한 목소리.
동생의 목소리에 삼절추호의 눈에서 물방울이 쏟아졌다.
“……언니? 왜 울어?”
동생에게서는 그 어떤 사이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 개의 영혼이 아닌 하나의 영혼.
삼절추호는 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 어어?”
“……다행이다. 다행이다.”
“근데 언니… 왜 이렇게 키가 커졌어? 주름도 생겼네. 우리 엄마 닮았다.”
“하하하하.”
금천군이 지배하던 때의 기억을 잃은 건가.
그래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보고 싶었어. 진짜진짜 보고 싶었어.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대체 뭐가 맞는 길인 건지도 알 수 없어서… 내가 죽어서라도…… 너를…….”
통곡을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언니를 동생은 당황하며 바라보다가…….
그저 안아주었다.
따뜻한 온기.
작은 토닥임.
“…….”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그것은-
“응. 그랬나 봐. 나쁜 꿈…. 그곳에서 널 계속 찾았어. 밥맛이 없어지더라.”
“우리 언니… 왜 이렇게 말랐어? 뭐라도 먹자. 응?”
“…응.”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몽이 녹아내리는 소리였다.
* * *
의원은 꿈을 꾸었다.
어른이 되고, 대학교 동창들과 TRPG를 하는 꿈이었다.
TRPG는 탁자에 앉아서 주사위를 굴리며 주어진 세계관 속에서 캐릭터를 움직여 게임을 하는 놀이다.
넷플릭S 기묘한 얘기 덕에 많이들 알려졌는데, 당시에 진천희는 그걸 몹시 좋아했다.
그때에도 컴퓨터가 있었지만 모니터가 사람 머리만 했고, 전화선으로 PC통신을 하던 시절.
그런 시절에 모두 앉아서 TRPG를 하는 것은 꽤 운치가 있었다.
TRPG는 크게 두 가지 역할로 나뉜다.
1. TRPG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적을 조종하고, 퀘스트나 보상 등을 설명해 주는 게임 마스터.
2. 그 마스터가 만든 판에서 다 같이 노는 플레이어.
요즘 애들이 하는 게임으로 치면 옆에서 퀘스트 불러 주고, 몬스터 뭐 등장했는지, 아이템 뭐 먹었는지 말해 주는 시스템.
쉽게 말해 옛날에는 그런 걸 사람이 직접 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걸 ‘마스터링’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진천희가 많이 맡았는데, 가끔은 다른 친구가 마스터를 맡기도 했다.
MMORPG의 원조격인 놀이라고나 할까.
꿈속에서 진천희는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모여 TRPG를 하고 있었는데.
왜인지 이게 꿈이라는 생각이 그리 들지 않았고.
이 친구들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스터를 하는 친구가 물어본다.
“자. 이제 너는 마지막 순간에 와 있어. 어떻게 할래?”
진천희가 들고 있는 건 클레릭.
사제 주제에 힘만 무식하게 센 놈이다.
“내가 여기서 돌아가도 되는 거잖아?”
“그렇지.”
“내가 여기서 뭔가를 해 볼 수도 있고.”
“그렇지.”
“…….”
진천희는 턱을 문질렀다.
까끌까끌한 감촉이 제법 기분이 좋다.
오랜만의 휴식.
“그러면 시도해 볼래. 어디 보자……. 지금 이게 소원의 보주 같은 거잖아.”
“대신 대가를 집어넣어야 하지만. 보상도 주사위 굴려야 하고.”
힘만 센 사제를 흔들며 진천희가 용감하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기왕이면 사람을 살리려고 시도해 볼게.”
“너 매번 그러더라.”
“내 캐릭터는 중립 선이니까.”
“혼돈 선이나 질서 선이 아니고?”
“중립 선이야.”
왜 다들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근데 너는 매번 중립 선만 고르잖냐?”
“그게 제일 편한걸.”
그 말에 친구 몇이 웃는다.
왜 친구들은 진천희가 작성한 캐릭터들을 죄다 혼돈 선이나 질서 선으로 보는지 모르겠지만.
중립 선이라고 주장하는 건 결국 진천희 혼자뿐이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게 또 이런 게임의 매력이라고.
마스터링하는 친구 놈이 말했다.
“꼭 캐릭터도 자기 같은 짓만 해요. 주사위 굴려.”
또르륵.
“20면체 주사위로 16. 성공이긴 하네. 대성공인 18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좋아.”
“오오옷!”
진천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같이 하는 다른 녀석들도 함께 주먹을 쥔다.
이 맛이다!
이 맛에 다 같이 모여서 TRPG를 하는 것이겠지.
“너는 무사히 사람들을 구해냈어. 대가로 스스로의 생명을 내주고 말았지만. 생명은 다시 채워지니까 괜찮아. 하지만 명심해. 너는 너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을 상처 입혔어. 너에 대한 애정이 50 이상인 캐릭터들에게 정신적…….”
“…….”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다.
깜빡-
깜빡, 깜빡.
“낯……익은 천장이네.”
며칠간 머물렀던 도원향 마을.
그 집의 천장이 보였다.
“아, 옛날 꿈이네. 그때는 친구들과 TRPG하면서 놀았었는데…….”
나중에 PC 온라인 머드 게임들이 줄줄이 출시되었지만 역시 컴퓨터로는 그때 그 맛이 안 났다.
기계적으로 퀘스트를 받고, 기계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물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다 같이 거대한 몬스터를 잡는 것은.
고작 폴리곤 덩어리라고 치부하기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 같은 게 있었으나-
‘그래도 옛날 게 더 재미있지.’
아재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화려한 인터넷 배너보다.
심플한 명령어를 입력하던 그때의 파란 화면이 어째 더 그립고 즐거웠다고.
그리고 이곳.
‘어째 너무 옛날로 돌아와 버렸지.’
옛날을 더 좋아하는 아재라고는 해도, 증기기관이 생기기 전으로 내려보내는 건 반칙 아닌가.
진천희는 낭만과 야만을 좋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로 좋아하는 것이지 직접 경험하는 건 또 다른 일 아닌가.
“아구, 아구구구구…….”
현경의 몸뚱이면서도 짐짓 엄살을 내본다.
그때 그 친구들은 잘 있을까?
‘나 죽은 소식 듣고 너무 놀라진 말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래도 깊게 사귄 녀석은 없었으니… 잘 견뎌낼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한 의원은 상체를 일으켰다.
가볍게 소주천을 해보니 몸은 정상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골랐던 것은…….’
진천희는 기억을 더듬는다.
‘…공간.’
도원향 마을 안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신을 잃었는데, 제대로 구조가 된 모양이다.
가슴을 만져 보니 역시나 선단(仙丹)을 뽑아낸 부분은 흉터 하나 없이 멀쩡하다.
허나, 내의는 목까지 피가 번져 있어서 한번 제대로 세탁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컹컹컹!
황구가 뛰어 들어온다.
걱정이 잔뜩 묻어나는 울음소리.
뇌진도 그 뒤를 따라 날아 들어왔다.
“어구어구어구. 그래그래. 이 아빠는 괜찮아요. 오구오구오구.”
북슬북슬한 털이며 깃털이며 마구 긁어 주니 둘 다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때-
“드디어 일어났군. 형.”
여하륜.
낮은 목소리였다.
진천희가 물었다.
“드디어? 내가 오래 잤어?”
“삼 일간 혼수상태였다. 그래도 몸은 정상이더군.”
“……그거야 그렇겠지.”
여하륜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진천희 앞에 앉았다.
“형은 여전하군. 여전히 몸을 사리지 않아.”
“하하하…….”
“삼절추호는 무례했고.”
그 삼절추호의 심장을 박살 낸 놈이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 주술이라도 걸어 줘서 너희들이라도 보낼 수 있지 않았냐.”
진천희가 말했다.
“이 형 목숨줄 하나 질긴 건 너도 알잖냐.”
“형. 마교에서 그런 소리 하는 놈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다음 해에 살아있지 못했지. 언제나 행운이 따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뭐어, 이번에는 나도 진짜로 ‘죽을 뻔’하긴 했지.’
자결도 안 되는 장소에 떨어졌는데 그 상태로 도원향로와 하나가 됐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죽은 걸로 치고 회귀가 되는 건지.
아니면 인간계가 아닌 곳이다 보니, 거기서 죽으면 신혈이 반응을 못 해서 끝인 건지.
신혈이 반응한다고 해도 죽은 게 아니라 ‘하나가 된’ 상황이니 누가 꿀꺽할 때까지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회귀는 거하게 종 치지 않았을까.’
반선의 씨앗을 잡기 위해 만든 덫이다.
거짓의, 거짓의, 거짓의, 거짓의, 거짓으로 점철된 덫.
그동안 당했던 것들 중에 가장 치밀했고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도원향의 전설조차도 덫을 가리기 위한 연막이라면…….’
오싹-
역시 영원을 사는 자들에게 인간의 천 년, 이천 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사마현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해에 살아있지 못했다니……. 그 말 한 놈, 대부분 둘째 형이 죽인 거 아니야~?”
사마현이 안으로 들어온다.
녀석은 보라색 눈으로 진천희의 몸 상태를 순식간에 파악한다.
여하륜이 작게 답했다.
“음…. 부정은 안 하지.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적이었으니까.”
“아, 그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아군이 되려면 다 죽어갈 때 그냥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살려줘야겠지. 전의를 잃은 자를 죽이는 취미는 없으니까. 미심쩍으면 일카나가 단전을 폐하겠지만.”
‘괜찮은가. 여하륜 파벌……?’
책사의 절규가 느껴진다.
‘이런데도 여하륜 밑에 붙어 있다니, 일카나의 복수심은 얼마나 깊은 거지?’
같은 책사이기에 아는 업무량.
인재를 등용할 때 이놈이 우리 집단에 쓸모 있는 놈인지 아닌지 분별을 해야 할 터.
허나, 여하륜은 그게 없다.
오로지 협(俠)으로 데려오고 있는 상황.
그러면 일단 들여온 인재를 쓰기는 써야 하지 않겠나.
‘이미 여하륜이 죽사발을 내버린 상황이라 사지 중 어디는 부러졌을 텐데 그놈 회복하고 치료시키는 것도 일카나 일이겠군.’
가뜩이나 이놈이 믿을 놈인지 아닌지도 분별해야 하는 판에 치료도 하고, 어디에 쓸 수 있는지도 계산해야 한다.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먹여 살리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그 돈이 땅 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주군을 골백번 갈아치워도 이해가 될 업무량이다.
‘…사람인가?’
진천희는 일카나가 존경스러워졌다.
사마현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형… 제발 몸 간수 좀 해. 형 쓰러져 있는 동안 우리가…….”
“?”
“……썩…… 좋지는 않았으니까~”
사마현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뭔가 형제들끼리 일이 있긴 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차마 말 못 할 일들이.
그때 천우가 들어왔다.
“형 깨어났다는 말에 죽 좀 덥혀 왔어요.”
“와, 잽싼 거 봐라~”
“과연 셋째군.”
사파와 마교가 감탄하는 사이 진천희의 앞에 일부러 묽게 끓인 죽과 보리차가 올라간다.
약초 향이 나는 걸 보니 단순한 보리차가 아니었다.
“음……. 무당파에서 내상이 생긴 환자에게 이렇게 먹이거든요. 약초는 주변 산야에서 뜯어 왔어요. 여기는 귀한 영초가 넘치는 곳이라 뭐든 구하기 쉽더라고요.”
감탄이 나올 만큼 대단한 솜씨.
천우의 곰 같은 손이 수저까지 내려놓았다.
“먹여 드려요?”
“아, 아니 먹을 수 있어. 보시다시피 멀쩡하거든.”
진천희는 어색하게 웃으며 수저를 받아 들었다.
‘…….’
동생들의 시선이 굉장히, 굉장히 부담스럽다.
이건 결코 큰형을 보는 눈이 아니다.
오히려 가출했다가 다쳐서 돌아온….
…막둥이를 보는 눈에 가까우리라.
‘왠지 미치겠군.’
후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