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86
제 1186화
며칠 후.
꽤 공을 들인 것과는 별개로, 충치 환자의 수가 곧바로 줄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칫솔과 치약의 판매량은 늘고 있다.
‘치실과 치간 칫솔까지는 무리더라도 이것만 해줘도 고맙지.’
진천희는 흐뭇한 얼굴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만 유지해도 백린군, 나아가 강소성 전체의 치아 건강은 올라갈 것이다.
그림자 인형극을 공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즐거움도 줄 수 있고.
그로 인한 고용 효과로 경제도 잘 굴러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
아주아주 흐뭇하기가 그지없는 일이다.
“자. 그러면…….”
진천희는 전용 주방으로 향했다.
예전에 만든 전용 주방!
스승님과 진천희만이 쓰는 바로 그 주방이다!
예전에 전용 주방을 만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문제 때문이었다.
백린의각 직원 식당 주방을 쓰면 이래저래 민폐이기 때문.
요리를 해보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주방 도구나 양념통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일류 숙수들 같은 경우에는 이런 것에 굉장히 예민하지.’
오죽하면 양념통 자리에 양념통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신경질이 밀려오곤 한단다.
물론 진천희야 야생 요리의 전문가라서 아무 데서나 다 요리를 할 수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쪽에 자리 잡게 한 칫솔 공방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요리할 적에도-
‘공방 옆 공터에 조리도구를 늘어놓고 만들었었지.’
온실(주방)에서 곱게 자란 난초 숙수와.
되는 대로 어떻게든 끼니 안 굶어 보려고 뭐든 하려는 잡초 숙수는 가는 길이 다를 수밖에.
‘그리고 스승님도 여간 까다로우신 게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별도의 주방을 쓰시는 걸 더욱 좋아하시기도 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진천희의 의지가 아니라 스승님의 의지다.
‘그리고 일단 만들고 이유는 나중에 붙인 느낌이기도 하지.’
백린의각에서는 스승님이 법이고 질서이니.
그분이 하고 싶다는데 뭔들.
그렇게 진천희는 아궁이에 불을 때지도 않고 열양기만으로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치이익-
유호 전용 요리.
‘이 녀석은 화식(火食)보다 생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공을 쓴 열양기는 또 곧잘 먹지.’
반드시 ‘정순한’ 열양기여야 한다.
예전에 내공을 쓸 줄 아는 요리사가 출장을 와서 열양기로 요리를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 것은 한 입도 안 먹었다.
열양기가 탁하다나 뭐라나.
‘까탈스럽단 말이지. 이 여우 놈.’
그리고 반숙한 오리알을 간장에 푹 절인다.
일본에서 라멘을 만들 때 곁들이는 맛달걀을 오리알을 사용해서 만든 것.
그것도 사천에 사는 청흑오리를 여기까지 공수해 와서 그놈이 갓 낳은 오리알을 삶았다.
청흑 오리알은 오리알 특유의 농후한 담백함이 극대화된 녀석으로, 한 알에 같은 무게의 은과 교환된다.
그야말로 평범한 오리알과 비교가 불가한 놈.
이걸…….
‘국수에 곁들여 볼까나.’
치이이익-
라유 향이 진하게 배어난다.
끓는 라유를 면발 위에 빠르게 끼얹고 각종 토핑을 얹은 후 오리알을 넣는다.
이 과정에는 모두 진천희의 열양기가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 군만두부터 각종 계란 요리까지.
이것저것 또 준비하고.
“아차, 천일취!”
진천희가 직접 담근 술도 잊지 않았다.
“크헤헤헷……. 후식은 씨앗 호떡이다!”
씨앗에 꿀, 밀가루.
여우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제아무리 여우라고 해도 이것만은 맛있다고 할 터.
그렇게 약속 장소인 후원 정자로 향했다.
백린의각 특유의 구불구불한 진법을 지나가니 유호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
하지만 평소와 달랐다.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었던 것.
기묘하게도 강호인들이 하는 운기조식과는 달랐고.
어찌 보면 도인의 기도와도 같은 느낌도 있었다.
우우웅-
유호의 주변으로 공기가 기묘하게 일렁거린다.
그것은 청아해 보이기도 했고, 일견 요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찍 오셨군요.”
“응. 유호는 일찍부터 기다렸고.”
원래라면 진천희가 미리 상차림을 끝내고 유호를 초대한다.
하지만, 왜인지 오늘은 유호가 먼저 나와 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오우, 웬일이야?”
그리 말하며 유호 앞에 차곡차곡 음식을 내려놓는다.
한 상 가득히 놓인 음식을 유호가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걸 다 만든 겁니까?”
“응. 남겨도 돼. 한입씩 잡숴 봐.”
“안 드실 겁니까?”
“나는 연주해야……지?”
그 말에 유호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안 드실 겁니까?”
“…….”
진천희가 침음을 삼킨다.
결국 칠현금을 내려놓고 유호 앞에 마주 앉았다.
“요즘 묘하게 피해 다니시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 주기적으로 보는 약조는 지키고 계시는군요.”
“어…. 외유 나가 있거나 하는 거 아니면은 그래야지. 유 총관이 얼마나 우리 의각에 공헌을 하는데. 크헤헤헷!”
일부러 아재 웃음을 터뜨리는데 유호는 말없이 진천희를 바라보고 있다.
“…….”
“…….”
진천희도 할 말이 없어져 어물거리다 입을 다문다.
“드시지요.”
유호가 그리 말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가시방석 같다.
아니, 가시방석이었다.
‘그날…….’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역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으니까.
목에서 말이 맴돌기를 한참.
진천희가 술을 삼켰다.
벌컥, 벌컥.
일부러 내공을 잠가 천일취의 기운을 확 북돋웠다.
천일취는 재미있는 술이다.
그냥 먹을 때도 꽤 도수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일부러 내공을 닫아 취기를 받아들일 때는 더 독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러니 유호 같은 존재들이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도, 도원향 말이야! 나 엄청 고생했는데 말이지!”
그것을 단순히 고생이라는 표현으로 퉁 칠 수 있을까?
“……아쉽지 않으셨습니까?”
“선(仙)이 될 기회 말하는 거야?”
“네. 인간 역사를 수천 년 뒤져 봐도 그만한 기회는 없을 겁니다. 그냥 선(仙)이 아니라 진정으로 ‘존귀한 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둘이 뭐가 다르지?’
아무튼 깨달음을 얻어 우화등선하는 것보다 더 높은 무언가가 된다는 뜻이리라.
진천희가 말했다.
“더 강해진다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야. 이 세계에서 ‘힘’이란 곧 내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니까. 하지만 그걸 위해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킨다? 가장 별로인 선택이지.”
“어째 화경이나 현경의 경지처럼 선(仙)을 논하시는군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당신뿐일 겁니다.”
후릅.
유호도 천일취를 한 모금 마신다.
진천희는 다시 술을 무지무지하게 삼킨다.
‘와……. 유호가 둘로 보이네.’
목구멍이 후끈후끈하고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지금이라도 내공으로 취기를 몰아낼 수 있지만, 만약 그리한다면 용기도 같이 사라지리라.
유호가 말했다.
“영원히 사는 것에는 관심 없으십니까?”
“무론 있지. 하지만 그것도 마찬가지야. 이러케까지 하면서 영원히 사는 건 관심 없어.”
혀가 좀 꼬였다.
“…….”
유호는 그런 진천희를 바라본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묘하게 섬뜩하였으나, 진천희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윽고 유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의원이 물었다.
“그……. 다음번에도 내가 위험해지면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그 기묘한 의식.
타인의 목숨들을 공양받아 기적을 일으킨다.
복희의 영토가 아니더라도.
그 ‘기적’의 매개체는 틀림없는 진천희 본인이니.
“통상적으로는 생길 일 없습니다. 그것은 복희의 피가 통하지 않을 경우 당신을 살리기 위한 안배니까요.”
“……어… 유호가 금지하면 안 돼? 중간에 여우 토용이 그 매개체인 듯한데. 유호가 막으려고 하면 막을 수 있잖아.”
“…….”
유호는 자신의 유일한 신관을 바라본다.
취기에 올라서 어쨌든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고 하는 놈을.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본인도 모르리라.
진천희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선(仙)에 올라 봐야 나는 더는 살 생각이 없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자결을 반복할 것이란 뜻입니까.”
“……응. 지난번에는 완전히 복구를 해냈지. 하지만 다음번에도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 그렇게 되면 큰 대가를 줘서라도 그리할 거야.”
그리되면 시간을 돌린다.
그게 진천희가 사람으로 살다, 사람으로 죽는 유일한 길.
취기 속에서도 명료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들어온다.
진천희의 곧은 눈을 유호는 빤히 바라본다.
“알고 계십니까?”
“음?”
“당신에게 목숨을 바친 사람들 모두 당신이 살기를 바랐습니다. 선(仙)이 될 수 있으면 그러길 바랐지요.”
“알아…. 강호에서 은(恩)이 어떤 무게인지 이제는 몸으로 깨달았으니까.”
“그것을 갖고자 혈선교의 모든 이들이 노력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 중에 거기까지 닿은 이는 ‘한 명’뿐이었지만요.”
“…….”
혈선교주를 뜻하는 건가.
진천희는 생각한다.
“당신은 혈선교의 비원을 이루었습니다. 단순히 무(武)로 강해지는 것으로는 닿을 수 없는 선(仙)에 닿으신 겁니다.”
“괜찮아. 유호.”
“…….”
“내가 괜찮다고. 그런 건. 싫다고.”
이 사내는 타인의 호의를 명료하게 거절하는 성격이 아니다.
늘 두 번, 세 번은 생각하고.
꼭 거절해야 할 때는 융통성 있게 답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
진천희는 거부하고 있었다.
유호는 신관의 빈 잔에 술을 채운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한동안? 그걸로는 부족해.”
“글쎄요. 그 이상은 약속드릴 수 없겠군요. 저는 제 것을 귀히 여기거든요.”
“…….”
“싫다면 복희의 피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인간계 밖까지 튕겨 나가서 죽는 일은 없도록 하십시오.”
눈앞의 신관을 죽게 놔줄 수는 없다.
설령 정신이 망가지고, 영혼이 마(魔)로 물든다고 해도.
존귀한 자는 유일한 신관에게 죽음을 내릴 생각이 없었다.
제갈린은 진천희라는 존재의 정신을 지키고자 한다.
그렇기에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으라 명(命)하고.
최근에는 귀계를 내서 제자 놈 본인도 모르는 사이 끌려 들어가 ‘자유’를 얻게 해 주었다.
평생 꼭두각시로 살 뻔한 자를 그 밖으로 꺼내는 것은 누구도 하지 못할 계책.
그 과정을 극복하며 이 녀석의 정신은, 혼은 누구보다 빛났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존귀한 자’는 정반대였다.
그는 타고나길 짐승이었고.
육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인간들은 정신이 육체보다 중하다 생각하나, 짐승이 보기에는 달랐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고 피부로 공기를 느끼고.
보고, 듣고.
그 모든 감각을 끊임없이 느끼면서.
‘어째서 인간은 육체를 괄시하는지.’
유호가 보기에 육(肉)이 온전하다면 정신은 알아서 그 그릇에 담기기 마련이다.
마(魔)로 물든다 하더라도 ‘살아 있다’면, 그것은 산 것이 맞았다.
허나-
“그냥 죽게 해줘. 유호…….”
“…….”
“제발.”
그의 신관은 죽음을 원했다.
“흥이 식었군요.”
유호가 손짓하자, 진천희가 켜려던 칠현금이 유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다.
디링-
여우는 칠현금을 켰다.
존귀한 자의 음악.
그것은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는 틀림없는 성찬(盛饌)이었고.
먼 곳에 있던 호력과 양력, 녹력, 연원왕과 정령인 이샤까지 눈을 감고 그 은혜에 절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와……. 돌아버린다는 건 이런 감각인가.’
압도적인 무언가의 실체를 조우했을 때.
인간은 이성이 멈춘다.
‘그 의식’을 또다시 겪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과거 저 같은 자가 이렇게 직접 생사(生死)에 대해 이야기하면 인간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자식도, 형제도, 부모도 전부 심장을 뽑아 바쳤던 시절이 있었지요.”
“유호.”
“당신의 선업으로 이제는 정반대의 개념이 되어 버렸습니다만, 분명 과거 제게 인간은 ‘먹이’였습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곰도 사람을 잡아먹는다.
인류는 언제나 자신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인 것처럼 군림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들이 토끼를 잡아먹듯, 호랑이도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다.
유호는 그런 먹이사슬의 정점이며.
‘인간’이…… 아니다.
알면서도 진 교수는 부정한다.
하지만 존귀한 자는 그런 인간의 부정도 비웃으며 말한다.
“이쯤 되면 제 실체를 부정하는 것도 웃기지 않습니까.”
존귀한 자의 명(命)에.
유일한 신관의 세상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유호는 대체 뭐야?”
“당신께서 ‘인간’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니 계속 ‘인간’ 노릇을 해 보도록 하지요.”
의원은 이제-
“…….”
다른 의미로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