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
제 12화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공을 익혔기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여하륜은 기감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이거 먹을래?”
찹쌀떡을 하나 더 꺼내서 여하륜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입을 벙긋거리며 신호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여하륜은 곧바로 그의 의중을 눈치챘다.
찹쌀떡을 입에 가져갔다.
“맛있군.”
진심이었다.
“그치? 주방 숙수 아저씨가 직접 만든 거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큰 키에 시원시원하고 호방한 인상을 가진 여인이었다.
“앗, 은인이구나.”
낯익은 얼굴이다.
“아, 안녕하세요!”
“잘 지냈니? 은인 꼬맹이.”
공손영이다. 목숨을 구해 준 이후로 그녀는 진천희를 ‘은인 꼬맹이’라고 부른다. 가벼운 말투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 대해서 뒤에서 수군거리는 가솔들도 있다.
하지만 말은 가벼워 보일지언정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진천희는 알고 있었다. 그건 그녀 나름의 무거운 약속이다.
언니 공손현을 두고 왜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 바라보는데 그녀가 말했다.
“언니한테 줄 꽃을 모으는 중이야. 꽃차 좋아하거든.”
그녀의 커다란 손에는 수많은 꽃들이 뽑혀 있었다. 뿌리째로.
힘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뿌리까지 차로 담글 생각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 무식한 성격 때문인 건지 꺾는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없었던 모양이다.
“은인 꼬맹이. 대단한 의원이라며? 몸에 좋은 약초도 잘 알겠네?”
“약초 쪽은 배운 게 별로 없어서 잘 몰라요. 부술(剖術-외과 수술을 이르는 말) 전문이라서요. 그런데 약초는 공손영 누나가 드셔야 하지 않아요?”
“나는 몸 하난 누구보다 튼튼하니까 괜찮아. 봐 봐.”
그녀가 돌멩이 하나를 들어서 힘을 주었다.
우드득-
순식간에 가루가 되는 돌을 보며 진천희는 속으로 경악했다.
‘이야, 역시 나도 무공을 배우긴 배워야겠구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언니가 어제 나 걱정하며 울다가 잠들었는데 바로 감기가 왔지 뭐야. 나는 무식해서 이런 꽃 같은 거 말고는 모을 줄 모르니까…… 그리고 언니는 가주가 될 몸이니 아프면 안 되잖아.”
‘정작 그 언니는 가주를 당신한테 양보하고 싶어하는데요?’
-공손가의 가주는 강하고 우직한 자가 맡아야 해. 그건 나같이 유약하고 사악한 자가 받아도 될 자리가 아니었단다. 영아. 우리 영아.
진천희는 한숨을 쉬었다.
“쑥 정도라면 찾아 드릴게요. 그 전에 그냥 시종을 시켜서 차를 내오면 되잖아요?”
“내가 내준 게 아니면 안 마실 거야. 언니는 아플 때는 입이 까다로워지거든.”
공손영이 그렇게 말하며 진천희에게 말했다.
“……그리고 정말 고마워. 네 덕에 목숨을 구한 것도 부족해서 이렇게 신세를 지네.”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차 같이 끓일래? 그렇지 않아도 언니가 너랑 단둘이 꼭 만나고 싶어 했어.”
* * *
공손현은 공손영의 대체 무엇에 저렇게 푹 빠진 걸까.
소설 속 공손영은 초반에 죽는다. 그러다 보니 공손영에 대한 묘사는 모두 공손현의 기억에서 발현된 서술뿐이다.
원래 죽은 사람에 대한 회상이란 미화되기 마련이다.
공손현이 회상하는 공손영이란 이런 느낌이었다.
-언니, 걱정하지 마. 언니랑 함께라면 세상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무예든 공부든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게.
현실은 이랬다.
“저기 쑥…….”
“흡!”
두두두두두!
그녀는 마치 인간 모내기 머신처럼 쑥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뽑아댔다.
그 와중에는 잡초도 섞여 있었다.
그랬다. 그녀는 잡초와 쑥을 구분할 줄 몰랐다.
몇 번이나 가르쳐 주어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변을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초토화시키는 그 능력만큼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었다.
‘무, 무공을 익히면 다 이렇게 되나?’
옆을 보니 리틀 천마 놈도 말을 잃고 멍하니 공손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닌 모양이다.
‘이건 서술과 다르다. 아니, 열심히 한다는 점은 같지만 뭔가 본질적으로 달라!’
후원에서 쑥을 캐게 된 이 상황이 웃기는 건 둘째 치고 엄청난 속도로 모이고 있다는 게 더 두려웠다.
진천희는 함께 캐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인간이 기계를 상대로 이길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잡초와 쑥, 그리고 화초를 하나씩 구분했다.
‘이거 딱 봐도 화려한 것이 비싼 난초 같은데…… 쑥 같은 것보다 백배, 천배는 비싼 난 같은데…… 그래. 다 누나 탓이라고 하자. 맞는 말 아닌가. 나는 쑥을 뽑으라고 했지 근방을 사막화시키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니.’
진천희는 화사하게 웃었다.
“누나, 다 모았어요. 오히려 너무 많은걸요.”
“아, 그래? 더 할 수 있는데……!”
“아뇨. 더 이상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쑥 말고 더 필요한 거 없어? 나무라도 해다 줄까?”
-눈 같고, 꽃 같은 우리 영이야…… 착하고 여린 우리 영이…….
‘어딜 봐서 눈 같고 꽃 같아…… 이건 그냥 인간 농기구인데.’
죽은 사람에 대한 회상은 80%는 사기라는 것을 진천희는 몸서리치게 깨달았다. 그리고 공손영을 보는 공손현의 콩깍지는 티타늄 콩깍지라는 것도.
“이거 쑥. 너무 많으니까 차로 만든 후에 공손현 누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께도 나눠 드려요.”
“아? 응응! 역시 우리 은인 꼬맹이는 착하구나! 그런 것도 생각하다니.”
‘비싼 화초를 이렇게 조져 놨으니 공범이라도 만들어야죠.’
군대 선임이 말해 준 격언이 있다. 혼자 먹으면 체한다고.
진실을 알게 될 즈음이면 모두의 뱃속에 쑥차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진천희는 화사하게 웃었다.
“저 차 끓이는 법은 잘 몰라요.”
“응. 응. 괜찮아.”
그때 리틀 천마 여하륜이 핼쑥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나는 돌아가겠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하도록.”
“그래. 뭐 빠진 말 없어?”
“……형님.”
“그래. 아우님.”
쑥을 캐면서 틈틈이 리틀 천마를 세뇌(?)시키는 것도 잊지 않은 진천희였다.
* * *
여하륜은 쑥을 캐고 나서는 사라져 버렸다.
‘쯧쯧. 아직 애는 애야. 질려서 도망가 버렸네.’
혀를 차고 진천희는 옆을 보았다.
쑥을 그냥 끓인다고 쑥차가 되는 건 아니다. 때문에 쑥을 쑥차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난 결과물이 옆에 있었다.
그 과정이란 무엇일까?
쑥을 씻으며 잎만 남기고 줄기는 모두 다 떼어낸다.
그 후, 씻은 쑥은 그늘에서 건조시킨 후, 한번 불에 볶는다.
그것을 다시 식히며 건조를 시킨다.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야 쑥차가 완성된다.
공손세가에서 온 시비들까지 가담해서 종일 정성을 담으니 대충 차로 끓일 수 있을 만큼의 형상은 남았다. 그러나 역시 맛은 장담하지 못하겠다.
‘상관없지. 중요한 건 공손영의 정성이니까.’
이 과정 전체에 공손영이 끼어들어 손수 만들었다.
제대로 한다기보다는 시비들의 일을 망치는 느낌이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차를 끓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공손영은 환하게 웃었다.
진천희는 그 미소가 보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언니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좋아할 거예요. 누나.”
“우리 은인 꼬맹이! 하여간 예쁜 말은 혼자 다 한다니까.”
그녀는 호방하게 웃으며 진천희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큰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전부 다 덮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이 귀찮은 과정을 명문세가의 자제가, 그것도 무인이 했다.
단 한 번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가솔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마치 봄날의 햇살을 보는 것 같았다.
같이 있으면서 계속해서 에너지를 북돋아 주는 사람.
공손영은 그런 존재였다.
‘저래서 그리도 공손현이 아꼈었구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를 질투하는 건 소인의 일이다. 그에 비해 공손현은 대인이었다.
쑥차가 완성되자 공손영은 묵색 다기를 꺼냈다.
희고 푸른 예쁜 다기도 많을 텐데 공손현은 굳이 검은색 다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뜨거운 물을 담아 찻물을 우려내고서 그대로 버린다.
첫물은 버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물로 마시는 차가 더 향이 그윽하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째 물을 부은 이후. 그녀가 직접 쟁반을 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공손현이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언니. 차 끓였어!”
이윽고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은 몸이 좋지 않습니다만…….”
명백한 축객령이다. 공손영이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언니 또 이럴 줄 알았다.”
그리 말하며 허락도 없이 문을 드르륵 열었다.
지나치게 호탕하다. 아니. 털털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따라 들어가야 하나 진천희가 망설이자 그녀가 진천희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톡 찼다.
“괜찮아. 들어와.”
그곳에는 얇은 주렴이 드리워져 있는 침실이 보였다.
주렴 사이로 여인의 형상이 언뜻 비쳤다. 그녀는 검은색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내 차 안 먹을 거야?”
“……영아.”
“은인 꼬맹이랑 같이 쑥 캐서 만들었어. 백린의선 님께 도움받아 몸에 좋다는 것도 다 구해서 같이 넣었다고.”
주렴을 헤치고 더 가까이 들어가니 그곳에는 창백하고 마른 여인이 앉아 있었다.
얼마나 몸이 말랐는지 목 뒤로 척추 뼈의 윤곽이 보일 지경이었다.
마치 고양이처럼 등을 굽히고 앉아 있었는데 그게 마른 몸을 더욱 기괴하게 보여 주었다.
흑빙독룡 공손현.
검은 옷(黑)을 즐겨 입고, 좀처럼 웃지 않는 데다(氷) 가끔씩 나오는 귀계가 마치 독(毒) 같다 하여 붙여진 별호.
침상 머리맡에는 바둑판이 놓여 있었는데 흑과 백이 진흙처럼 엉켜 있었다.
그 어떤 격식도 없는 반상 위의 난타전은 어쩐지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했다.
그녀는 바둑알을 내려놓았다.
탁-
이 반상 위에서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마 진천희도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그녀를 보이는 그대로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진천희가 보기에 공손영이 호걸과 같다면, 공손현은 책사와도 같았다.
그것도 제갈공명이나 주유와 같은 계열은 아니었다.
순문약(순욱).
이상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사람들이 독룡이라 부르는 이였다.
가벼운 미소조차 짓지 않고, 사람을 가까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바둑판을 치웠다.
“오셨군요. 전부터 뵙고자 했으나 이러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원래라면 격식 있는 자리에 초대하셨겠죠. 지금은 그러거나 말거나 공손영이 무작정 쳐들어온 거고.’
공손영은 대형견처럼 웃으며 언니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조르륵-
찻물이 흐르는 소리가 어색하게 울렸다.
진천희가 말했다.
“아니에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공손영 누나도 저한테 편히 하고 있거든요.”
“이 바보가…… 하아…….”
공손현이 동생에게 눈을 흘기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