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0
제 120화
사마현은 혀끝으로 입술을 훑였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눈앞의 마두는 여태 만나 왔던 자들과 차원이 다른 자였다.
겉보기와는 달리 사마현은 꽤 냉정한 상태였다.
눈앞에 있는 자는 그리 허언을 하지 않는 자 같아 보였다.
사지를 부러뜨리겠다 했으니 그리할 것이었고, 형제들을 죽이겠다했으니 그럴 것이었다.
‘아쉬워~ 내공만 더 있었어도 해 볼 만할 텐데…….’
버러지 같은 인생. 이야, 만세다. 만세!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역시 호사다마(好事多魔)군.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
그래도 경극을 해서인지 문자는 좀 알았다.
좋은 일이 생겼으니 나쁜 일이 오는 건 자명했다.
사마현은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얼굴 가죽 반은 찢고 가야겠다.’
동귀어진이 불가능하다면 그 반이라도 하는 게 좋았다.
“영감. 그러고 보니… 그 얼굴 꽤 좋아 보여. 나 줄래?”
“어쩔 수 없군. 저리 죽고 싶어 발악을 하니 뭐… 본좌를 너무 원망치 말거라.”
사마현의 가슴 깊은 곳에서 광기가 밀려온다.
‘내공이 없으면, 좋아. 선천진기라도 폭주시키자~’
다소 아프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현의 단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끝을 보기 위해 소년은 결심을 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아저씨. 내 환자 보호자한테서 손 떼.”
컹! – 주인, 저놈은 급소를 물기 어렵다. 강하다.
사마현이 눈을 든 곳에는 진천희가 있었다.
마두가 물었다.
“네놈은 이놈과 무슨 관계냐?”
그 말에 진천희의 안광이 빛났다.
“주치의와 보호자 관계다! 쟨 아직 의료비 수납 안 끝났어. 그러니 손 떼시지.”
세 개의 은(恩).
그 말에 사마현은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주치의와 보호자.
진천희가 사마현에게 말했다.
“너 지금 하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수납할 때까지 위험한 짓은 하지 마라.”
어떻게 눈치챈 걸까.
제갈가의 신묘한 내공 때문일까. 아니면 저 영물이 수상한 냄새를 맡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직 의료비 수납 못 했지.’
대체 저 의원은 언제까지 자신을 살려줄 셈인가.
사마현은 진천희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 * *
일단 사마현이 선천지기를 폭주시키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오우, 말발이 먹혔군. 다행이야.’
현대 외과의인 진천희가 보기에 강호 놈들은 참 쉽게 자기 목숨을 내던진다 싶다.
‘소설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하오문주가 선천진기를 폭주시킬 때 손바닥이 붉게 물든다는 묘사가 있었다.
보통이라면 추워서 붉어지는 것과 선천진기 폭주의 징조를 구분하기 어려울 터였다.
또한 그걸 구분할 수 있을 때쯤이면 이미 선천진기가 폭주한 후이니 살리기는 늦었다.
진천희가 사마현을 막을 수 있었던 건, 반은 원작 소설을 읽어서였고.
나머지 반은 아재의 눈치였다.
진천희는 짧지 않은 전생 중에 인간이 엿 됐을 때 어떻게 더욱 그 상황을 엿 되게 하는지 숱하게 봐 왔다.
상황이 상황인 데다 현대인으로서 슬슬 무림인의 감성에 익숙해지고 있다 보니 다행히도 찍어 맞출 수 있었다.
‘틀렸어도 무난한 멘트로 던졌고.’
이럴 때 사회생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자, 그러면 눈앞에 있는 거한이 어떤 인간인지 소설에서 찾아봐야겠는데…….’
현원전단신공 덕분에 진천희의 사고의 흐름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선명했다.
손과 얼굴이 마치 고목처럼 단단하다는 건 꽤 특징적인 모습이다.
소설 한켠에 서술이 있을 법도 했다.
몇 놈을 추린 후에 체구와 연령대를 바탕으로 다시 추렸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진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고목 마공의 특징이군요. 설마 고목혈마인가요?”
“끌끌. 아해가 제법 안목이 있구나.”
정답인 모양이다.
고목혈마.
소설에서 등장한 빌런이다.
무협지 빌런으로 치면 중간 보스 정도는 되는 급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스인 문주, 마두, 괴 같은 이들 아래에서 명령을 수행하지만 본인들도 부리는 잡졸들이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무림의 중간 관리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 보스 빌런들은 최종 보스들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는데 성격이 좋은 이를 거의 못 보았다.
중간 관리직의 애환이다.
고목혈마의 무위는 초절정 수준이라는 서술을 본 적이 있었다.
초절정 수준이면 중소 문파의 문주나 호법 자리 정도는 꿰찰 수 있는 실력!
‘저 정도의 인물이 왜 폼 안 나게 어린아이 하나 잡자고 직접 왕림하셨대?’
무화, 무월 남매가 못 움직인 이유가 이거였다.
이런 유교 국가의 문파에서 직급은 목숨과도 같다.
여기서 목숨과도 같다는 건 물리적으로 목숨과도 같다는 뜻이다.
그래도 고목혈마 주변에 다른 졸개들은 없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선에서 컷을 한 모양이다.
실무 관리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 셈.
‘말조심해야겠네. 괜히 무화랑 무월이 알려줬다고 했다가는 단전 폐하고 사지 근맥을 찢는 수가 있으니.’
진천희는 황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신호를 보냈다.
컹! – 일단 짖고 본다. 주인!
진천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개방의 정보를 무시하면 안 되지요.”
“크크크, 개방의 영물을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소백룡이군. 정보는 들었다.”
고맙다. 황구야.
진천희는 말 한마디로 그렇게 은근슬쩍 무화, 무월의 자취를 지워 버렸다.
고목혈마가 말했다.
“네가 이 아해를 치료했다지. 소문대로 소백룡은 불의를 참지 않는군. 허나 이 일은 본문의 일. 물러가거라.”
고목혈마도 가능하면 좋게 좋게 끝내고 싶은 모양이다.
‘과연 중간 관리자군. 폼이 상하지 않으면서 멘트도 제대로 치고 있어.’
진천희는 고목혈마의 짬을 느꼈다.
‘고목혈마는 하오문 소속이었지, 아마? 본래는 마교에서 갈라져 나온 고목마문의 문파가 망할 적에 하오문에 의탁했다는 서술을 본 적이 있어.’
무화와 무월이 애먹을 만도 했다.
‘하오문 내의 내부 경쟁인가.’
하오문은 현대로 치면 여러 범죄 조직이 합쳐진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다.
자잘한 중소 조직들을 제외하고 크게 나누자면 다섯 개의 지파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그들 내부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들었다.
고목혈마는 이 중에서 분명 자객, 살수, 암살자들의 지파인 오살지파에 속해 있었다.
무화, 무월이 속해 있는 기루와 유곽, 객잔을 다루는 곳과는 다른 지파라 할 수 있었다.
‘무화, 무월 남매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는군.’
다른 파벌의, ‘혈마’ 별호까지 붙은 까마득하게 높은 중간 관리직.
그것도 성격이 더러운 중간 관리자를 상대하는 건 위장이 뚫리는 일이었다.
“오살지파의 단독 행동인가요?”
“흐음. 본문에 대해 제법 잘 아는구나. 개방…… 아니. 이건 네 스승인 백린이 가르쳤을 수도 있겠군. 간교하고 냉혹하기로는 뱀 같은 자이니.”
역시나 강호는 넓으면서도 좁다.
피차 알고 하는 일.
하지만 스승님을 욕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강호인이 아니었다.
진천희는 최대한 정중하고 단호하게 이 점을 명시했다.
“스승님의 이름을 함부로 모욕하지 마십시오.”
“크크크큭. 아해답지 않게 너무 차분하여 본좌가 돌을 던져 봤노니……. 이제 조금은 그럴듯한 표정이 되었구나.”
진천희는 서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머리 한켠으로는 생각을 마쳤다.
‘내 반응을 보고 내가 물러나지 않을 것을 눈치챘구나.’
강호에서 스승을 욕하는 것은 부모를 욕하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굳이 그걸 꺼냈다는 건 두 가지.
‘첫째는 물러나지 않으면 싸우겠다는 뜻.’
진천희는 빙정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한기가 진천희의 손바닥을 타고 들어왔다.
‘둘째는 나 정도는 한 끼 식삿거리와 다름없다는 사파식 경고.’
스르릉-
진천희는 빙정검을 뽑아들었다.
손잡이를 바꾸고, 검날을 바꾸고, 검집을 바꾸었다.
겉으로 봐서는 평범한 검과 진배없다. 그러나 그 소리만큼은 청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본좌를 막아서겠다는 것이냐.”
‘이미 알면서 다시 물어보는군.’
그렇다면 현대인 진천희도 무림의 법도에 맞게 그럴듯한 멘트를 쳐줘야 할 터였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게 강호인 아닌가.
진천희는 이 상황에서도 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현대인이 아닌 무림의 혈마다.
“아직 무명소졸의 어린아이입니다. 굳이 고목혈마께서 직접 손을 쓰시게 된다면 전 강호인들이 비웃을 겁니다.”
“본좌가 그걸 모를 것 같으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느니라.”
‘수치를 감수하고서라도 나서겠다는 거군. 이런… 빌어먹을.’
위에서 까라고 해서 까러 온 모양이다.
이 경우에는 진천희도 답이 없다.
설득을 하려면 고목혈마 윗분을 설득해야 하는데 현대식 통신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랫놈은 까라니까 까야 하는 거고.
진천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혈마 님께서도 이 일이 그리 마땅찮으신 줄 압니다. 그러니 제가 대신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저 아해 대신 대리전을 하겠다는 거냐?”
“네. 제가 지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제가 이긴다면 이번만큼은 물러나 주십시오.”
어차피 일어날 일을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혈마로서도 무명소졸의 어린아이를 우격다짐으로 납치하고 싶지는 않을 터.
진천희의 말에 혈마가 동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소백룡의 이름이 고목혈마의 이름에 부족할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제 등 뒤에 있는 작은 아이와 싸웠다는 불명예보다는 나을 듯합니다.”
그 말에 사마현의 눈이 커졌다.
“형……!”
다친 몸으로 튀어 나가려는 사마현을 진천희가 막았다.
“날 믿어.”
“죽고 싶어?”
사마현이 소리 질렀다.
“됐어. 날 그냥 데려가라! 형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말고!”
그러나 고목혈마가 답했다.
“너만 한 아해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지만, 좋다. 본좌도 그런 오명을 얻고 싶지는 않으니 한판 하도록 하지.”
진천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마현은 여전히 소리 질렀다.
“날 데려가라고!”
진천희는 그런 사마현의 어깨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고는 안면 근육을 당겨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 형. 믿지?”
“무슨…….”
“나 강해. 그러니 믿고 기다려 봐.”
진천희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했다.
얄미울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사마현의 머리를 쓸었다.
사마현은 그런 진천희의 손길에 그만 주저앉았다.
진천희를 믿기로 한 걸까. 아니면 바꿀 수 없음을 안 걸까.
“…죽지 마. 저놈은 강해.”
“오냐.”
진천희는 그 말을 끝으로 사마현을 등지고 섰다.
좁은 골목.
두 사내가 마주 보며 섰다.
진천희는 빙정검을 그를 향해 겨누었다.
‘스승님이 보셨으면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고 하셨을 거야.’
만년한철 검을 주기보다는 만년한철 족쇄를 준비한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칼 줘 봐야 어차피 사지로 갈 거.
막는 게 일 순위라는 계산 때문.
거기다 북방한철로 만든 빙정검까지 있으니 만년한철 검을 얹어 봐야 의미가 없다.
안 죽으려면 위험한 일을 안 하는 게 최우선 순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지 않을 진천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