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00
태산.
태산은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에서 남쪽으로 하루 정도 걷다 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물론 태산 초입이 그렇다는 거고.
더욱이 천제단 방면은 일반인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진천희는 바로 그 천제단에서 기거하는 선존을 만나야 하므로, 그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관도가 그쪽까지 깔려 있고, 관도에는 수십여 명의 관군이 초소까지 지은 채로 대기 중이었다.
거대 황구를 본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건 진천희 태수가 타고 다닌다는 견왕 황구!”
“그러면 진 태수가 여기에?”
“장군. 나가 보셔야 하는 게 아닌지…….”
권력에 민감한 것은 관(官)의 생리다.
심지어 진천희의 개조차도 견왕(犬王)이라 부를 정도면 말 다 했으리라.
일광 진천희.
황상의 총애를 받는 자.
심지어 그의 주치의로서 몸까지 돌보고 있으며.
그 능구렁이 제독태감까지 포섭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몸을 사리는 게 당연했다.
이윽고.
관문의 수문장군이 직접 밖으로 나왔다.
“소장은 비장군인 석척이라고 합니다. 의국백의 봉토인 백린군을 대리 통치하고 계신 진천희 태수께서 맞……. 비장군 석척이 의국백을 뵙습니다.”
진천희가 맞는지 일단 신분을 확인하려던 석척 장군.
제자 뒤에서 오만하게 내려보고 있는 제갈린을 보고 왠지 모골이 송연했다.
“……!”
살기는 없는데 어찌하여?
왠지 그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는 스스로도 당황했다.
마치 몸이 자신보고 살라고 알아서 관절을 접어버리는 듯한 그 기분.
그러나 스승님이 뒤에 서 있어 제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은 아니었으니.
그저-
[우와, 스승님을 바로 알아보는 모양이군요. 역시 스승님! 그나저나, 여기는 장군급이 지키고 있네요?]스승님을 척하고 알아보는 것을 보니.
역시 대단하긴 하구나, 나는 역시 아무것도 아니구나.
제자는 감탄한다.
제갈린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기골이 장대하고 외모가 독특하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 게다가 황구와 너도 있으니 그런 것일 게다.] [아아, 역시 그렇군요.] [그리고 이곳은 봉선 의식을 치르는 특별한 장소 아니겠느냐? 그러하니 금역으로 지정된 것이고, 지키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법이지.]과연 스승님이셨다.
반면-
‘저자가 그 성질이 흉악하다는 백린의선!’
비장군은 제갈린이 뿜어내는 기세에 몸을 떨었다.
‘저놈 제자는 스승이란 자가 뿜어내는 흉악한 기운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설마.
익숙한 건가?
하지만 그 또한 이상했다.
‘저 정도의 기세를 몸으로 받아서 흘리는 게 익숙해진다고?’
그 말은 단순히 ‘견딘다’라는 수준과는 다른 내구력을 가져야 한다.
인내한다, 극기한다가 아닌,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대체 일광은 어떤 무학을 가진 거지?’
비장군은 어이가 없어졌다.
“…….”
보통 비장군은 편장군 바로 아래 등급을 뜻한다.
장군 중에서는 가장 낮은 직위라고 하지만-
‘그래도 장군은 장군이라는 게 문제지.’
관(官)의 전체 계급도에서 보면 결코 낮은 등급이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이윽고 제갈린이 먼저 나섰다.
“석 장군이시군요. 일어나시지요. 기별도 없이 찾아와서 실례를 끼쳤습니다.”
왜일까.
이 사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밀려온다.
떨리는 손끝으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의국백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헌데……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 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별도의 명령을 받은 바는 없습니다만…….”
번역을 하자면.
‘여기는 명령 없으면 못 들여보낸다.’라는 뜻.
제갈린이 말했다.
“기별이 안 갔습니까? 선존께서 이 제갈 모의 ‘제자’를 초대하셨습니다만…….”
그 말에 비장군이 경악했다.
“다름 아닌 갈(葛) 황사(皇師)께서 직접 초대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 그런 명령은…….”
아까보다 어째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선존.
과거 황제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황사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다.
‘아니, 그런데 제자를 초대했는데 왜 스승도 함께 왔단 말인가!’
자식 가는 데 부모가 따라붙는 것도 아니고.
딱 봐도 일광의 무위가 보통은 아닌데 대체 왜 스승 놈이?
강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냥 스승도 선존에게 볼일이 있어 온 것임이 틀림없다.’
설마하니 일광의 나이가 몇인데 과보호를 하겠다고 같이 동행했겠나.
그래.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절대.
그 순간.
[석 장군. 길을 열게.]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으음!”
석척이 대경한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른 병사들까지 놀라서 우왕좌왕했다.
“허나 갈 황사. 황상께서 윤허하지 않으시면 이는 불가…….”
[이미 허락은 득해 두었으니 길을 열게.]석척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 이상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개 비장군은 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의국백과 진 태수.
그리고 갈 황사의 명.
여기에-
‘황상께서 윤허까지 하신 일이다?’
심상치 않은 일임은 틀림없었다.
“의국백. 그리고 진 태수. 오르시지요. 허나 소관도 상부에 보고를 해 둘 것입니다.”
목이 붙어 있으려면 형식상으로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해두어야 했다.
제갈린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하십시오.”
그리 말하고 사제는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 * *
그래도 나름대로 예를 갖추어 황구는 몸을 작게 줄였고.
뇌진은 그런 황구 위에서 깃털을 골랐다.
본인 깃털 단장하는 김에 황구의 털도 부리로 뜯어주었는데.
겉으로 봐서는 황구 털을 쥐어뜯어 버리는 것 같은 흉악한 광경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컹!
정작 황구 본인은 시원한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죽은 털들인가 보네.’
그렇게 뽑은 황구의 죽은 털을 본인 겨드랑이 아래 어딘가에 챙기는 것을 진천희는 보았다.
뇌진은 보석도 그렇고 이런 것도 그렇고.
겨드랑이 깃털 아래에 쑤셔 넣어 숨기는데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그 상태로 대체 어떻게 비행이 가능한지도.
‘그래. 영물을 보통 동물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되겠지.’
애초에 영물은 고대에 신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기도 했고.
실제로 육각영독사 같은 존재들은 거의 반신에 가까웠으니까.
‘어쩌면 먼 훗날 뇌진과 황구도 선(仙)에 닿는 날이 오려나?’
왠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진천희는 두 녀석에게서 관심을 접기로 했다.
더 생각해 봐야 의미가 없으리라.
그보다는-
“선존이 황사셨어요?”
“그래. 강호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의 하나이지. 전전대 황제의 스승이 이분이란다.”
“와, 그렇게 오래전에…….”
“오래 살아오신 분 아니더냐.”
오래 산다고 황제의 스승을 할 수 있었다면 투괴 어르신이 저러고 살지 않았으리라.
아니, 애초에 황궁이 제대로 된 곳이면 황상에게 도둑질을 가르칠 게 아닌 한 투괴 어르신을 쓸 일은 없겠다만.
“지금 황상분들과는 교류가 없으셨으려나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우리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최소 서신 정도는 나누었을 터.”
“그러고 보면 스승님께서도 한 번도 그분을 만나 보신 적 없으신 거죠?”
“나뿐 아니라, 강호에서도 선존을 만난 이들이 드물단다. 태산파 정도나 교류가 있을까……?”
“태산파라면 이 태산에 자리한 문파 말이군요. 역사가 깊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악 중 으뜸인 태산에 자리했던 도가 문파이니 역사가 오래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구파일방이라는 테두리에 들어간 적도 있고, 없을 때도 있으나. 그 역사는 저 천년소림보다 오래되었다고 전해진단다.”
“헤에…….”
진짜일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 사제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굽이치는 길을 올랐다.
그렇게 꾸물거리는 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천제단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가 하늘에 의식을 올린다는 곳이군요.”
태산 봉우리 꼭대기에 그 천제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
문득 진천희는 어느 순간 스승님의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주변을 돌아보니 스승님은커녕 황구도, 뇌진도 없다.
‘어느새!?’
진법이라면 들어가기 전에 느껴지는 기감이 있을 터.
주술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사람을 속이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특히나 다른 이도 아니고 진천희 자신이라면.
그리고 주변 풍경이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
모든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
나무도, 흙도, 길도, 천제단도, 산도, 하늘도…….
그 모든 풍경들이 그저 녹아서 사라지고는 순수한 백색만이 남았다.
과거 진천희가 도원향에서 경험했던 空의 공간과는 달랐다.
白.
희고, 흰, 그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
빈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대체 뭐지? 나는 무엇에 당한 거지……?’
그러다 문득.
진천희는 자신이 과거, 지구의 병원에 돌아온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수술하기 전의 준비 모습.
거울을 보니 옛날의 자신이 거기에 서 있지 않던가.
‘이건…. 북해빙궁에서 경험했던 진법과 같은 종류인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수준이 높다.
주술과 결합된 것은 확실하나, 그 하나하나가 상당히 정교하다는 것을 순식간에 의원은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어, 어라?’
진천희는 달렸다.
그는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인 것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실려 온 응급환자.
손가락과 발가락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
잘린 게 아니라 그냥 갈렸거나 뜯겨서 뭉개졌을 수도 있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걸 알아볼 시간조차 없다.
하지만 일단 숨은 붙여 놔야 하기에 긴급하게 모두가 환자를 붙잡고 살려 보려고 했다.
청년이었다.
당시는 몹시 추운 겨울이었고.
기록적인 강추위 속에서도 살기 위해 배달을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삐이이이-
죽을 사람은 죽었다.
뒤늦게 현장의 누군가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찾아왔다.
하지만 죽은 이에게는 필요 없는 선물이었다.
보호자실에 할머니가 달려왔다.
부모는 없었고.
이 청년이 어릴 때부터 계속 둘이서 살아왔던 모양이었다.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무너졌다.
혼절.
연세가 많으신데 손주까지 잃으셨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의료진들이 달려갔다.
‘삶이란 어디로 가는가.’
병아리 인턴은 멍하니 그걸 생각했다.
근데 웃기게도 사람이 죽었는데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며칠간 제대로 눈을 붙인 일이 있긴 하던가.
정신력이 마모되니-
‘아, 감정도 같이 스러지는구나.’
눈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흘러나왔다.
그 눈물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
이대로면 죽겠다 싶어 몸이 보낸 신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움직이고.
또 움직일 뿐.
* * *
마치 생을 빨리 감듯, 진천희는 점점 의원으로서 성장했다.
하지만 경험하는 것은 모두 누군가가 죽었을 때뿐.
의원이 있음에도 사람은 계속해서 죽어간다.
현대 의학을 무슨 신처럼 모시며.
강호 세계에서 ‘엣헴!’ 거드름이나 피우지만 현대 의학은 사실 아직도 보잘것없다.
우리는 아직도 인간의 몸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항생제와 각종 의료기기에 의지하고 있지만,
사람의 몸은 얼마나 불확실한지 파도 위에 뗏목 하나 타고 다니는 기분이다.
공부를 해도 해도 부족했고.
책상에서 공부하는 것과 실제 사람을 대한다는 것.
치료한다는 것은 지식이라는 노를 들고 무지의 바다를 저어가는 것과 똑같았다.
그럼에도 어찌 되었건, 내 손은 노 젓는 법을 알고 있고, 내 눈은 별을 보는 법을 알고 있다.
그게 바로 현대 의학이다.
그 바다가 바로 사람인 것이고.
모든 것을 다 안다, 모든 게 다 책에 있다 믿던 삐약이가 드디어 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럼에도 우리는 배운 것과 경험으로 어떻게든 노를 저어야 함을 깨달았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인간은.
한 사람의 의사로 거듭나게 된다.
의원은 그렇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나아가고, 나아가다가-
죽는다.